류조지 마사이에

류조지 마사이에/시게토모(일본어: 龍造寺政家/鎮賢, 1556년 ~ 1607년)는 센고쿠 시대 말기 규슈의 다이묘로, 히젠 7군 32만 석을 다스린 류조지 가문의 제20대 당주(堂主)이다.

류조지 마사이에

생애편집

1584년아리마 하루노부(有馬淸信)가 류조지 씨(龍造寺氏)에 배반하여 아버지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에게 아리마 가 토벌을 명령받지만, 아내가 아리마 가의 소생이며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했기에 류조지 마사이에는 전쟁에 부재하였고, 류조지 다카노부가 아리마가 토벌에 친정(親征)하나 오키타나와테 전투에서 횡사하는 일이 벌어진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명실공히 류조지 가(다카노부가 살아있을 때도 당주였지만, 그의 아버지가 죽자 실세를 얻게 되었기 때문)의 뒤를 이었지만 다이묘로서의 재질이 부족하고, 병약하였기에 국정의 실권은 중신(重臣)이자 의숙인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가 잡는다. 다카노부가 죽자 사기가 고양된 시마즈 씨(島津氏)의 군대가 류조지 가의 거성 무라나카 성(村中城)에 쳐들어 오지만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덕으로 시마즈 군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전투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여 결국 시마즈 가의 군세를 물리게 한다. 1587년 류조지 마사이에를 알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규슈 평정에 의해 시마즈 가를 쳐부수고 류조지 가를 히젠 7군 32만 석을 봉한다. 그러나 1590년 3월 히데요시가 은거하자 국정의 실권은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이양되었고, 1592년부터 시작한 임진왜란에도 마사이에는 착출되지 않고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출정한다.

1607년 아들 다카후사(高房)가 자살 미수를 일으켰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죽게 되었다. 이에 대해 충격받은 마사이에도 같은 해 뒤를 쫓는 듯이 사망했다. 마사이에의 죽음으로 류조지 가문은 단절하고 32만 석의 영지는 류조지 종가(龍造寺宗家)가 아니라 나베시마 씨(過島氏)에 이봉한다.

전임
류조지 다카노부
제20대 무라나카 류조지 가문 당주
1578년 ~ 1590년
후임
류조지 다카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