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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펑(이붕, 중국어 간체자: 李鹏, 정체자: 李鵬, 1928년 10월 20일 ~ )은 중화인민공화국정치가로, 1992년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 수교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의 총리이다.

리펑
(중국어 간체자: 李鹏, 정체자: 李鵬)
Lipeng.jpg
중화인민공화국제4대 총리
임기 1987년 11월 ~ 1998년 3월
전임: 자오쯔양(3대)
후임: 주룽지(5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제9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임기 1998년 3월 ~ 2003년 3월
전임: 차오스(8대)
후임: 우방궈(10대)

신상정보
출생일 1928년 10월 20일(1928-10-20) (90세)
출생지 중화민국 쓰촨 성 청두
학력 중화민국 산시 성 옌안 중학교 졸업
중화민국 산시 성 옌안 자연과학전문학원 화학과 전문학사
중화민국 허베이 성 장자커우 공업전문학교 전문학사
소련 모스크바 동력대학교 기계학과 학사
정당 중국공산당
부모 아버지 리옌쉰(李硯勛)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전국인민대표대회 제9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총리를 지내면서 장쩌민(江澤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총애를 받았다.

목차

생애와 경력편집

쓰촨 성 청두에서 태어났다. 리펑(李鵬)의 아버지 리옌쉰(李硯勛)은 중국 공산당 초기의 지도자였지만 중국 국민당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주은래)와 그의 부인 덩잉차오(鄧穎超)는 그 밖에도 많은 양자를 기르고 있었는데, 열사의 아들이라 하여 리펑(李鵬)을 데려다가 보살펴 주었다. 저우언라이덩잉차오의 양자로 자란 리펑(李鵬)은 1945년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 후 중국 장자커우(張家口) 공업전문학교소련 러시아 모스크바 동력대학교 기계학과를 졸업하였다. 1982년에는 당 중앙 위원, 1985년에는 정치국원, 1987년에는 중앙 정치국 상무 위원을 맡아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덩잉차오의 후원까지 받으며 국무원 총리까지 오른 정치인이지만, 1989년 톈안먼 사건을 수습 이후, 비교적 조심스런 경제 정책으로 당시 최고 실력자이었던 덩샤오핑으로부터 과단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진 못했기 때문에, 자오쯔양 실각 후 남아 있던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음에도, 당시 그보다 아래로 정치국 위원이었던 장쩌민(상하이 시당위원회 서기)에게 주석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 개혁 진영에서 한 자리에 놓이며 1988년 4월에는 중국 제4대 국무원 총리가 되었고, 1998년까지 국무원 총리를 맡은 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에 취임했다.

1994년 중화인민공화국 총리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도 했다.

가족 관계편집

리펑(李鵬)은 첫째 딸이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회장을 지낸 리샤오린(李小琳)이다.

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