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후산(母后山)대한민국 전라남도 순천시(주암, 송광면) 과 화순군(동복, 사평면) 사이 경계를 이루는 높이 943.8m의 이다.

모후산(母后山)
라복산, 모호산
순천 주암호에서 바라본 모후산(해발943.8m) ⓒ노영기 미인순천
최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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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
위치전라남도 순천시주암면,송광면, 화순군사평,동복면
부모 산맥화순 백아산 줄기 모후지맥 최고봉

무등산 북쪽 지맥의 한 봉우리이나 규모가 크고 산세도 험한 편이다. 정상에 오르면 동복호주암댐, 무등산, 백아산, 조계산 등이 보여 전망이 트여있다.

본래 라복산(蘿蔔山)이라고 부르다가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홍건적의 고려 침공이 있었을 때 공민왕 부부가 태후와 함께 피난해 산 것을 계기로 모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 선조 25년인 1592년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동복현감인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죽었다 하여 모호산(母護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모후산 남쪽 계곡에는 당나라유마운이 창건했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유마사가 있다. 한국 전쟁조선로동당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숨어들어 백아산과 연계하여 활동한 일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소굴이라는 이유로 당시의 유마사 건물은 소각되었다. 새로 지은 유마사를 기점으로 산행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적이 드물었으나 현재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주변에 화순 적벽, 김삿갓 유적지, 남도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오지호의 생가와 기념미술관이 있다. 조계산도립공원, 화순온천과도 가까운 거리이다.

★★★모후산 하면 화순 모후산 으로★★★

퍼뜩 떠오르지만, 모후산 의 한자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화순 쪽 보단 순천 쪽의 역사 가 더 크다 하겠다.

고려 공민왕 때 에 홍건적 의 개경침공으로 피신을 해야 했던 공민왕 은 왕의처가 쪽인 화순 동복오씨 분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피신처를 찾던 중 화순동복사람 인 "김도" 의 안내 로 지금 의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모후산 자락 왕대마을 쪽에 안착하게 된다. 아들인 공민왕 은 경상도 안동으로 가게되고, 어머니 와 처가쪽 사람들이 이곳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 에 머무르면서, 모후산에서 자생하는 산삼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후 홍건적 난 이 어느정도 진압된 이후 어머니를 모시러 온 공민왕 이 이곳 순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 에 도착하여 기이하고 우람한 산세를 보고 곁에 있던 "김도"에게 물었다. 이산 이 무슨 산이냐? 라고 물으니, "김도"는 예 라복산 이라 하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왕이 말하기를 과연 "덕여모후"로다 라고 말하였다.산 의 크나큰 덕이 어머니 같다 란 뜻의 이말 은

순천 역사 중 송광면 삼청리 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전설 로 전해지고 있으며 왕이 머무른 장소 라 하여

마을 이름도 "왕대" 라 칭하였고, 왕족 이 피신한 임시수도 라 하여 그 아랫마을 이름 은 "유경" 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이곳 송광면 왕대, 유경 마을에는 공민왕 의 이야기와 함께 산넘어 주암면 대광리 용문마을 에 존재하던 "대광사"란 큰절이 존재했었고(조선말 때까지 존속 그후 폐찰 됨) 대광사 관련 불교유적 들이 송광면 삼청리,후곡리 주암면 대광리 주변으로 남아있으며 대표적인 대광사 의 유적 에는

대한민국 명승25호 로 지정된 "초연정원림" 이 있고 후곡리 모후산 중턱에는 유마사 운성암절터 가 현재 에도 남아있다.(한국의폐사지 란 책자에 수록)

과거에는 후곡리 절터, 삼청리 절터 로 불리었던 곳이다. 이렇듯 모후산 은 화순군과 함께 순천시 주암,송광면 의 진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대광사 이야기와 함께 기록되어있는 명산 임 에도 불구하고

1991년 광주권 상수도 공급을 위해 이곳을 중심으로 주암호 담수가 시작되고, 수몰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상수원보호구역과 함께 자연환경보전구역으로 묶여있는 탓에 순천 쪽 명성보단 화순군 의 산으로 알려진 모후산이다.

같이 보기 편집

참고자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