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케 칸

몽골 제국의 제 4대 카안

뭉케 카안(몽골어: ᠮᠣᠩᠺᠡ
ᠬᠠᠭᠠᠨ
Möngke qa'an 또는 몽케 카안, 1208년 음력 12월 3일(1209년 1월 10일) ~ 1259년 음력 7월 20일(8월 11일))은 몽골 제국의 제4대 칸(재위: 1251년 7월 1일 ~ 1259년 8월 11일)이다. 휘는 보르지긴 뭉케(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ᠮᠣᠩᠺᠡ
, 한국 한자孛兒只斤夢哥 패아지근몽가), 별칭은 망래구(莽赉扣)이다. 칭기즈 칸의 손자이며 귀위크 칸의 사촌동생이기도 하고, 쿠빌라이 카안, 아리크 부케의 형이기도 하다. 묘호헌종(憲宗)이다.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뭉케 카안
ᠮᠣᠩᠺᠡ
ᠬᠠᠭᠠᠨ
Audience de Möngke.jpeg
지위
몽골 카안
재위 1251년 7월 1일-1259년 8월 11일
대관식 1251년 7월 1일
전임 귀위크 칸
후임 쿠빌라이 카안
이름
보르지긴 뭉케(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ᠮᠣᠩᠺᠡ
, 한국 한자孛兒只斤 夢哥 패아지근 몽가)
묘호 헌종(憲宗)
시호 환숙황제(桓肅皇帝)
신상정보
출생일 1208년 음력 12월 3일(1209년 1월 10일)
사망일 1259년 음력 7월 20일(8월 11일)
매장지 부르칸 칼둔
가문 보르지긴
부친 보르지긴 툴루이
모친 소르칵타니 베키
종교 텡그리교

그의 아버지는 톨루이이며 어머니는 소르칵타니로 그의 형제는 쿠빌라이, 아리크 부케, 훌라구 등이 있었다. 몽케는 4대 몽골 황제가 되었다. 몽케라는 뜻은 중세 몽골어로 영원함(永遠)이라는 뜻이다.

초기 생애편집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인 툴루이케레이트족 출신 소르칵타니 베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쿠빌라이 칸, 훌라구 칸, 아리크 부케는 그의 동복 친동생들이었고, 요절한 홀도도(忽睹都)는 그의 동복 친형제라는 설과, 생모미상의 첩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오고타이의 카툰 중 앙회 2황후(昻恢 二皇后)는 자녀가 없었고,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몽케를 양자로 삼아 한동안 데려다 길렀다. 1232년 툴루이가 죽자 몽케는 쓰촨 성 일대 툴루이의 영지로 보내져 다스렸다.

1248년 구유크 칸이 죽자, 그의 처 오굴 카이미쉬 카툰이 섭정을 맡아보았다. 오굴 카이미시는 우구데이 가문에서 후계자를 세우려 했고, 툴루이 계열은 이에 반발했다. 구유크와 사이가 좋지 않던 주치바투는 툴루이 가문의 손을 들어주었다.

즉위 후의 생애편집

즉위 직후편집

1251년 쿠릴타이에서 툴루이계의 몽케가 대칸에 선출되자 시레문(失烈門)을 비롯한 우구데이계 왕자들은 대칸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음모는 금세 발각되어 음모의 주동자인 시레문을 비롯한 여러 우구데이계 왕자들과 귀위크 칸의 미망인인 오굴 카이미쉬 등이 숙청당했다. 그밖에도 오고타이계 인사 77명을 처형했는데, 입에 돌과 흙이 물려 있었다.

몽케는 오고타이와 차가타이의 후손들은 견제, 박해하였다.

몽케는 무역 조건을 간소화하되, 일반 상인에게 세금이 부과하였다. 또한 몽케는 몽골 부족장, 귀족들에 의한 약탈을 법으로 금지하고, 과도한 세금부과도 억제하여 교역이 증가했다. 몽케는 귀족의 사치, 상인의 미신고 밀거래를 금지하였다.

즉위 직후 몽케는 차가타이계의 독립 시도에도 불구하고, 중앙 정부를 강화하고 무역로 확보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무슬림과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을 통해 교역로 확보 정책을 펼쳤다.

1254년 고려의 무신정권 최항은 친 몽골계 인사들을 처형했다. 몽케 칸은 그해 7월 자랄타이에게 군사를 딸려 보내 고려 북부 지방을 약탈하게 했다.

대리국 원정편집

1252년 6월 몽케는 동생 쿠빌라이를 시켜 대리국을 치게 하였다. 쿠빌라이7월에 군사를 이끌고 대리국으로 가 교전하였다. 1253년 8월 쿠빌라이의 군대는 섬서성을 점령하고 대리국을 정벌하였다. 1254년 1월 2일 대리국의 군주 단여지(段興智)는 쿠빌라이에게 투항하였다.

1256년 몽케 칸은 단여지를 대리성총관으로 임명하여 대대로 세습하게 했다.

중동아시아 원정편집

1253년 6월 그는 훌라구에게 이란, 이라크 원정을 명한다. 1255년 훌라구는 몽케의 명을 받들어 대군을 이끌고 서남 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정복에 나섰다. 그는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스타심에게 몽골족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할 것을 강요했는데 아바스 칼리파가 거부했다. 그는 수십만의 몽골군을 이끌고 아무다리야 강을 건너 바그다드로 진격하여 페르시아 남부의 루어 왕조를을공격했고, 1256년 12월 서부 페르시아의 알라무트의 아사신 근거지를 파괴하고 거침없이 바그다드로 쳐들어갔다.

훌라구의 군대가 바그다드를 포위하자 칼리파 알 무스타심은 자비를 구했으나 소용없었다. 1258년 2월 10일 훌라구는 이슬람군의 항복을 받았고 이슬람군이 무장해제함과 동시에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여 거의 8만명의 바그다드 이슬람교도가 학살당했고 칼리파 알 무스타심 역시 죽임을 당했다. 이로써 압바스 왕조는 멸망하고 말았다. 바그다드를 멸망시킨 뒤에 훌라국 군대는 1260년 3월 1일에는 아이유브 왕조를 사실상 궤멸시키기도 했다.

1259년 고려를 항복시켰다. 그동안 몽케는 직접, 동생 쿠빌라이, 장군 우량카다이 등과 함께 남송 원정을 추진한다. 그러나 몽케는 친중국적인 성향의 동생 쿠빌라이를 내심 의심하였다.

중국 원정과 최후편집

이윽고 1258년 몽케 칸의 친정군이 남송으로 원정하였다. 남송의 장군 가사도쿠빌라이의 군대를 악주(무창)에서 격파한 공적으로 재상에 등용된다. 이때 가사도가 대승할 수 있었던 것은, 몽골의 황제 몽케의 사망으로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는 가사도와 쿠빌라이와의 사이에 밀약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1259년 7월 쓰촨성에 당도했다. 1259년 여름 쓰촨성에서 남송 군과의 전투 중 투석기 돌에 맞아 부상 병석에 누웠다가, 그해 8월 11일 쓰촨성 합주(合州) 조어산(釣魚山) 근처에서 부상 후유증과 이질, 발진티푸스 등으로 사망하였다.

사후편집

1259년 제4대 대칸인 몽케가 남송 원정 중에 병사하고, 몽골고원에 있던 수도 카라코룸을 수비하던 막내동생 아리크 부케는 몽케파의 왕족을 모아 쿠릴타이를 열어 서부의 차가타이 가문 등 여러 왕가의 지지를 얻어 대칸의 지위를 얻었다. 이에 몽케와 함께 남송 원정 중이던 둘째동생 쿠빌라이는 윤11월에 군대를 되돌려 내몽골에 들어서 동쪽 3왕가(칭기즈칸의 동생 가계)등의 지지를 얻은 다음, 이듬해 3월에 자신의 본거지였던 내몽골개평부(開平府 : 훗날의 상도)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대칸의 지위에 앉았다. 이로써 몽골 제국은 사상 처음으로 몽골고원 남북에 두 명의 대칸이 들어서게 된다.

몽케의 장례를 치르고, 제도(帝都) 카라코룸에서 즉위한 아리크 부케가 대칸으로서의 정통성은 확보한 셈이었으나, 군사력을 장악한 쿠빌라이 역시 아리크 부케를 배신자로 여기고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대칸이라고 주장했다.

쿠빌라이아리크 부케의 양군은 여러 차례 격돌하였으나 승패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군사력과 화북의 물자를 장악한 쿠빌라이에게 전세가 유리해지기 시작했다. 서전인 1261년 시무토노르 전투에서는 쿠빌라이가 승리했으나, 아리크부케는 북서쪽 몽골의 오이라트의 지원을 얻어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나 아리크 부케 산하의 제후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차가타이 가문마저 아리크 부케에 대한 지원을 끊자, 1264년 아리크부케는 결국 쿠빌라이에게 항복했다. 이 일련의 전란을 승리자 쿠빌라이를 정통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아리크부케의 난이라고 불렀다.

쿠빌라이와 아리크 부케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자, 훌라구는 귀환하지 않고 중앙아시아에 정착, 일 칸국을 세웠다.

몽케 울루스편집

툴루이에게 분봉된 영지는 쓰촨성 주변이었다. 후일 몽케의 자손들은 카이두의 난 당시 카이두의 편에 섰지만 계속해서 원나라에 투항하였다. 테무르 정권도 카이두 세력 무너뜨리위해 투항자를 우대했는데, 이때 몽케의 후예는 몽골리아 서쪽 자부항 강 유역에서 울루스를 형성 하게되었다. 그러나 천력의 내란 중 몽케 계 제왕의 유력자의 대부분이 영지를 몰수당하고 실각, 이후의 족보는 전해지지 않는다.

천문학편집

몽케 칸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난제를 몇 개를 풀었다는 천재로 동서 세계의 달력을 통일하고자 오래전부터 천문대 설치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자말 앗 딘 무하마드 타힐 이븐 하만드 알 자이디 브하리'에게 준비를 시켰고, 수학의 전문가 나시르 투시를 초빙하기 위해 훌레구에게 알라무트 산성에서 이스마일파를 섬멸할 때 그를 구출해서 데려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훌레구는 투시를 정치고문을 삼았고 또한 서북 이란의 아제르바이잔에 말라카 천문대를 개설하고 초대 소장으로 투시를 임명하였다.

기년편집

몽케 칸 원년 2년 3년 4년 5년 6년 7년 8년 9년
서력 1251년 1252년 1253년 1254년 1255년 1256년 1257년 1258년 1259년
육십간지
(六十干支)
신해(辛亥) 임자(壬子) 계축(癸丑) 갑인(甲寅) 을묘(乙卯) 병진(丙辰) 정사(丁巳) 무오(戊午) 기미(己未)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예종 툴루이(睿宗 拖雷) : 추존황제(追尊皇帝)
  • 어머니 : 헌의장성황후 케레이트씨(顯懿莊聖皇后 怯烈氏) : 추존황후(追尊皇后)
  • 홀도도 대왕(忽睹都 大王) : 일설에는 다른 여성 소생이라는 설이 있다.
  • 세조 쿠빌라이(世祖 忽必烈) : 몽골 제국의 5대 대칸, 원나라의 초대 황제
  • 울렬올 대왕(旭烈兀 大王) : 일 한국의 초대 대칸
  • 아리불가 대왕(阿里不哥 大王) : 몽골 제국의 대립 대칸

후비편집

  • 정절황후 옹기라트씨(貞節皇后 弘吉剌氏)
  • 야속아 황후 옹기라트씨(也速兒 皇后 弘吉剌氏)
  • 독특미 2황후 알올립씨(禿忒迷 二皇后 斡兀立氏)
  • 출비 3황후(出卑 三皇后)
  • 황후 이키레스씨(皇后 亦乞烈氏)
  • 명리홀도로 황후(明里忽都魯 皇后)
  • 화리차 황후(火里差 皇后) 화로자사씨(火魯刺思氏)
  • 실력길 비자(失力吉 妃子) 백요기씨(伯要幾氏)
  • 귀비(貴妃) 파아올진(巴牙兀眞)
  • 귀비(貴妃) 규첩니(奎帖尼)

자녀편집

아들
  1. 반독 태자(班禿 大子) - 정절황후 소생.
  2. 아속알 황자(阿速歹 皇子) - 귀비 규첩니 소생.
  3. 옥룡답실 대왕(玉龍答失 大王) - 정절황후 소생.
  4. 하평왕 시리기(河平王 昔里吉) - 귀비 파아올진 소생
  5. 변도 황자(辯都 皇子) - 정절황후 소생.
  1. 창국대장공주(昌國大長公主) 백아륜(伯雅倫) - 정절황후 소생. 창충선왕 홀린(昌忠宣王 忽鄰)에게 하가(下嫁)
  2. 실린공주(失隣公主) - 독특미 2황후 소생. 출신(朮臣)에게 하가(下嫁)
  3. 필적합 공주(必赤合 公主) 활올년(闊兀年) - 독특미 2황후 소생. 출진백(朮眞伯)에게 하가(下嫁)
  4. 미상(未詳) - 생모미상(生母未詳). 출신(朮臣)에게 하가(下嫁)

족보편집

 
 
 
 
 
 
 
 
 
 
 
 
 
 
 
 
 
 
16. 보르지긴 바르탄
바가투르
 
 
 
 
 
 
 
8. 보르지긴 예수게이
바가투르
 
 
 
 
 
 
 
 
 
 
 
4. 보르지긴 테무친
칭기즈 카간
 
 
 
 
 
 
 
 
 
 
 
 
 
 
9. 올코노드 호엘룬
 
 
 
 
 
 
 
 
 
 
 
2. 보르지긴 툴루이
감국
 
 
 
 
 
 
 
 
 
 
 
 
 
 
 
 
 
10. 온기라트 데이세첸
 
 
 
 
 
 
 
 
 
 
 
5. 온기라트 보르테
우진 카툰
 
 
 
 
 
 
 
 
 
 
 
 
 
 
11. 초탄
 
 
 
 
 
 
 
 
 
 
 
1. 보르지긴 몽케 카간
 
 
 
 
 
 
 
 
 
 
 
 
 
 
 
 
 
 
 
 
24. 케레이트 마르쿠즈 칸
 
 
 
 
 
 
 
12. 케레이트 아이샨 칸
 
 
 
 
 
 
 
 
 
 
 
6. ♂
 
 
 
 
 
 
 
 
 
 
 
 
 
 
3. 케레이트 소르칵타니 베키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각주편집


전임
사촌형 구육 카안
제4대 몽골 제국 카안
1251년 ~ 1259년
후임
동생 쿠빌라이 세첸 카안 쿠빌라이
아릭 부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