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 인민당

바이에른 인민당(독일어: Bayerische Volkspartei, 약칭 BVP)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바이에른주에서 활동했던 가톨릭계 보수주의 정당이다. 전국 단위에서는 독일 중앙당과 협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이 당 노선을 계승했다.

바이에른 인민당
Bayerische Volkspartei
이념 가톨릭 정치
보수주의
바이에른 지역주의
역사
창당 1918년 11월 12일
해산 1933년 7월 4일
분당 이전 정당 독일 중앙당
후계정당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 (사실상)
Plakat Bayerische Volkspartei 1919.jpg

역사편집

제1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중앙당 내 우파 세력은 좌파 세력을 대표하는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의 활동에 반감을 갖는데, 특히 이들 중에서도 바이에른에서 활동하던 일련의 정치인들은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중앙당을 나와 바이에른에서만 활동할 보수적 가톨릭계 정당 창설을 모색한다. 11월 혁명이 발발하고 5일 뒤인 1918년 11월 12일 게오르크 하임제바스티안 시베바워레겐스부르크에서 바이에른 인민당 창당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국민투표제·여성 참정권 도입, 농업 개혁을 주장했고, 프로이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지방 분권화를 추구했다.

창당 후에도 전국 단위에서 중앙당과 협력했지만, 중앙당에 비해 선명한 보수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특히 독일 사회민주당의 내각 참여를 막기 위한 범우파 연합을 지향했다. 전국적인 문제보다는 바이에른주 지방의 문제에 집중했으며, 이 지역에서 강한 지지를 받았다. 특히 소속 정치인이었던 하인리히 헬트는 1924년 바이에른주의 주총리에 취임해 1933년까지 재직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바이에른 인민당은 쿠노, 마르크스, 루터, 뮐러, 브뤼닝 내각에 참여했다.

1930년 이후부터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내각 참여를 지지했다. 1933년 수권법 통과로 해산됐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이 당 노선을 계승했다.

역대 지도부편집

당 의장편집

대수 이름 취임 퇴임
1 카를 프리드리히 슈페크 1918년 1929년
2 프리츠 셰퍼 1929년 1933년

국가의회 원내대표편집

대수 이름 취임 퇴임
1 요한 라이히트 1920년 1933년

역대 선거 결과편집

국가의회 선거편집

연도 의석 득표율
1919년
0 / 423
3.8%
1920년
21 / 459
4.4%
1924년 5월
16 / 472
3.2%
1924년 12월
19 / 493
3.7%
1928년
16 / 491
3.1%
1930년
19 / 577
3.0%
1932년 7월
22 / 608
3.3%
1932년 11월
20 / 584
3.1%
1933년
18 / 647
2.7%

주의회 선거편집

연도 의석 득표율
1919년
66 / 180
35.0%
1920년 6월
65 / 158
39.4%
1920년 10월
46 / 129
39.0%
1924년
46 / 128
32.8%
1928년
45 / 156
31.6%
1932년
27 / 103
32.6%

참고편집

  • Winfried Becker. “Bayerische Volkspartei”. 《Konrad Adenauer Stiftung》.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