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
박두진(朴斗鎭, 1916년 3월 10일~1998년 9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밀양이고 호는 혜산(兮山)이며,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경상북도 경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후 경상남도 밀양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박두진 | |
---|---|
작가 정보 | |
출생 | 1916년 3월 10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기도 안성군 |
사망 | 1998년 9월 16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82세)
국적 | 대한민국 |
언어 | 한국어 |
직업 | 시인, 대학 교수 |
학력 | 서울 우석대 국문학과 학사 |
경력 | 추계예술대학교 전임대우교수 |
종교 | 유교(성리학) → 개신교(감리회)[1] |
필명 | 호(號)는 혜산(兮山) |
활동기간 | 1939년 ~ 1998년 |
장르 | 시문학 |
배우자 | 이희성 |
자녀 | 슬하 4남 (장남 박영혁, 차남 박영조, 3남 박영하, 4남 박영욱) |
생애
편집경력
편집박두진은 1939년 문예지 《문장》에 《향현》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조지훈(趙芝薰)·박목월(朴木月) 등과 함께 ‘청록파(靑鹿派)’의 한 사람이다. 8·15광복 후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좌익계의 조선문학가동맹에 맞서 김동리(金東里)·조연현(趙演鉉)·서정주(徐廷柱) 등과 함께 우익진영에 서서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결성에 참여했고, 이어 1949년 한국문학회협회에도 가담하여 시분과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2]
처음에는 자연을 주제로 한 시를 썼으나 이후에는 광복의 감격과 생명감 있는 시를 썼다. 말년에는 남한강 등지에서 직접 수석(水石)을 수집하면서 쓴 『수석열전』과 『수석연가(水石戀歌)』 등의 시편들을 통해 "그의 시의 핵(核)이기도 한 시원적(始原的) 생명을 노래"했다. 이는 자연의 결정체인 수석을 통해 "수석이 고요히 일러주는 내밀(內密)한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동시에 시인 자신도 돌을 향해 "끝없이 메시지를 보내[2]"는 일종의 자연과의 교감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1960년 4·19 당시 학원분규로 물러나게 된다. 그 뒤 우석대학(후에 고려대학교와 합병)과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거쳐서 1972년 다시 연세대학교 교수로 돌아와 근무하다가 1981년 정년 퇴임했다.
이후 단국대학 초빙교수(1981∼1985)와 추계예술대학 전임대우교수(1986∼96)를 역임한 후에, 1998년 9월 16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세아 자유문학상과 서울시 문화상, 삼일 문화상, 예술원상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 《해》, 《오도》, 《청록집》, 《거미와 성좌》, 《수석열전》, 《박두진 문학전집》 등이 있다.
학력
편집기념
편집서훈
편집같이 보기
편집참고 자료
편집각주
편집- ↑ 청록파 시인 故 박두진장로 Archived 2017년 9월 13일 - 웨이백 머신, 한국기독공보
- ↑ 가 나 김학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박두진(朴斗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1년 2월 1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