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송비
박송비(朴松庇: ?~1278년 2월 20일(음력 1월 27일)[1])는 고려 후기의 장군·재상이다. 본관은 영해다.
생애 편집
덕원의 향리 출신으로[2] 본래 최우와 최항을 섬겼다.
1258년(고종 45년)에 장군으로 대사성 류경, 별장 김준, 임연 등과 함께 최의를 살해해서 최씨정권을 타도하고 정권을 왕에게 돌린 공으로 대장군이 되고[3] 뒤이어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었다.[4]
1259년(고종 46년)에 고향(내향)을 덕원소도호부로 승격시키고 다시 예주목으로 승격시켰다.[5]
1262년(원종 3년)에 공신당을 다시 지을 때 그의 초상화가 벽에 걸렸으며,[6] 그 해 동지추밀원사 우산기상시가 되었다.[7]
1263년(원종 4년)에 수사공 태자소부 좌복야(守司空太子少傅左僕射)가 되었으나[8] 이듬해인 1264년(원종 5년)에는 파직되었다.[9]
박송비가 등장한 작품 편집
가족 관계 편집
- 아들: 박성대(朴成大)
참고자료 편집
- 《고려사》
각주 편집
- ↑ 가 나 《고려사》 권28, 〈세가〉28, 충렬왕 4년(1278년) 1월 27일(신해)
- ↑ 《고려사》 권130, 〈열전〉43, [반역], 김준
- ↑ 《고려사》 권24, 〈세가〉24, 고종 45년(1258년) 3월 26일(병자)
- ↑ 《고려사》 권24, 〈세가〉24, 고종 45년(1258년) 4월 1일(경진)
- ↑ 《고려사》 권57, 〈지리지〉2, 경상도 예주
- ↑ 《고려사》 권25, 〈세가〉25, 원종 3년(1262년) 10월 6일(기미)
- ↑ 《고려사》 권25, 〈세가〉25, 원종 3년(1262년) 12월 25일(정축)
- ↑ 《고려사》 권25, 〈세가〉25, 원종 4년(1263년) 12월 20일(병인)
- ↑ 《고려사》 권26, 〈세가〉26, 원종 5년(1264년) 8월 11일(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