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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朴容晟, 1940년 9월 11일 ~ )은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박두병의 삼남이다.

박용성
출생 1940년 9월 11일(1940-09-11) (78세)
서울특별시
거주지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뉴욕대학
직업 기업인
부모 아버지 박두병. 어머니 명계춘
자녀 장남 박진원, 차남 박석원

목차

생애편집

박용성은 1940년 9월 11일일제 강점 하의 경성부에서, 박승직(朴承稷)의 손자이자 박두병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9년 3월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2월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1969년 6월에는 미국 뉴욕 대학교의 경영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력편집

경영편집

1973년 6월에 한국투자금융의 상무가 되었고, 1984년 2월OB맥주의 대표이사 겸 사장직을 역임했다. 1990년대 초반인 1991년 2월에는 한국상업은행 이사회에서 회장이 되었으며, 1993년에는 두산그룹의 부회장, 2001년 3월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의 대표이사 겸 회장, 2005년 4월에는 두산인프라코어의 대표이사 겸 회장이 되면서 두산 가(家)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재계편집

그는 재계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지난 1988년 4월서울상공회의소(商工會議所, 상의)의 부회장이 되었고, 1998년 1월에는 국제상의(ICC) 한국위원회(KNC)의 의장을 지냈다. 2000년 5월에는 대한상의의 회장을 맡는 한편, 서울상의의 회장을 재역임했으며, 2005년 1월에는 국제상의의 회장이 되었다. 2005년 창업 109주년을 맞은 두산그룹은 7월18일 박용오 당시그룹 회장이 동생 박용성 씨에게 회장직을 넘겨줬을 때 만해도 형제간의 그룹 회장직 승계를 통한 가족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 박용오 전회장이 동생의 회장 취임에 반발해 검찰에 그룹의 경영현황을 비방하는 투서를 제출했고, 박용성 회장이 이를 반박하면서 ‘형제의 난’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결국 양쪽의 폭로전과 검찰의 수사가 이어지면서 두산의 오너 일가가 분식회계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유산분배 비율대로 나눠 세금, 부동산경비에 사찰시주까지 했다는 어이없는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충격을 던져줬다.

수상편집

박용성이 받은 상훈은 아래와 같다.

체육계편집

산업 훈장편집

외국편집

기타편집

그 외에 그는 2008년 6월에 학교법인 중앙대의 이사장이 되면서 학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1999년에는 서울엔젤그룹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경험도 있다. 2015년 4월 막말파문으로 학교법인 중앙대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가족 관계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