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기(朴鍾基, 1879년 ~ 1939년 또는 1880년 ~ 1947년[1])는 조선 고종, 일제강점기 때의 대금 산조 명인이다. 전라남도 진도(珍島)에서 출생하였다.

박종기
朴鍾基
본명박종기
출생1879년 또는 1880년
전라남도 진도
사망1939년 또는 1947년
국적조선
경력조선성악연구회
직업대금 산조 명인

대금 연주에서, 정악(正樂)에 김계선(金桂善), 민속악(民俗樂)에 박종기로 쌍벽을 이루었다. 일제 때 삼남지방(三南地方)에서는 ‘박젓대’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이름을 날렸다. 어려서부터 젓대의 학습에 열심이었고, 뛰어난 재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재래의 심방곡(心房曲)·봉장취 같은 곡에도 능하였을 뿐 아니라 판소리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산조에 판소리 기법을 많이 활용하여 대금산조의 체계를 세운 공이 크다.

부모의 중병에 살을 도려 약에 쓴 효행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긴 기인(奇人)이었다.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서 기악 부문의 연주와 교육에 활약하였다. 그의 제자로 한주환(韓周煥)이 있다. 왜정 때 취입한 산조 음반과 많은 기악반주 음반이 남아 있다.

각주

편집
  1. “<화제> 옛 소리 되살려 내는 연주회 잇따라”. 연합뉴스. 1994년 12월 8일. 2015년 8월 16일에 확인함. 1879년에 태어나 1939년에 죽었다는 기록과 1880년에 나서 1947년에 사망했다는 학설이 엇갈리는 朴鐘基는 `朴젓대'라는 애칭으로도 통하는 대금산조의 창시자. 

참고 자료

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