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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1909년)

박태원(朴泰遠, 1910년 1월 17일 (1909년 음력 12월 7일)[3] - 1986년 7월 10일)은 일제 강점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주의 계파 시인, 문학평론가, 소설가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號)는 구보(丘甫, 仇甫, 九甫), 몽보(夢甫), 박태원(泊太苑)이다.

박태원
朴泰遠
이상이 박태원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옆의 글은 "아, 이거야말로 꼬리표가 달린 요시찰 원숭이 / 때때로 인생의 울타리를 탈출하기 때문에 / 원장님께서 걱정한단다"[1]
이상이 박태원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옆의 글은 "아, 이거야말로 꼬리표가 달린 요시찰 원숭이 / 때때로 인생의 울타리를 탈출하기 때문에 / 원장님께서 걱정한단다"[1]
북조선 국가원수 겸 국무원 수상 예하
문화예술행정특보보좌관
(前 北朝鮮 國家元首 兼 國務院 首相 隸下
文化藝術行政特報補佐官)
임기 1969년 12월 18일 ~ 1970년 9월 30일
주석 김일성
부주석 최용건
수상 김일성
후임 박문원
신상정보
출생일 1910년 1월 17일(1910-01-17)
출생지 대한제국 한성부
사망일 1986년 7월 10일(1986-07-10) (76세)
사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본관 밀양(密陽)
학력 일본 호세이 대학교 법정학과 중퇴
경력 시인, 문학평론가, 소설가
조선문학건설본부 소설분과위원회 대표위원
前 조선로동당 문화예술정책연구위원
정당 무소속
부모 박용환(부), 남양 홍씨 부인(모)
형제 누나 1명
형 1명(형 박진원)
남동생 2명(첫째 남동생 박문원)
누이동생 1명
배우자 권영희(재혼), 김정애(이혼)
자녀 슬하 2남 3녀
장녀 박영은(월북)
차녀 박소영(대한민국에 머무름.)
삼녀 박설영(월북)
차남 박재영(대한민국에 머무름.[2])
친인척 숙부 박용남(의사)
친조카 박철호
친조카 박찬호
둘째사위 봉상균
외손자 봉준수
외손녀 봉지희
외손자 봉준호(영화감독)
외손부 정선영
웹사이트 구보학회

생애편집

한성부에서 출생하였으며 숙부가 의사, 숙모가 교사로 일하는 개화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6년 《조선문단》에 시 〈누님〉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본 호세이 대학교 유학 이후 귀국한 1930년 신생 10월호에 단편소설 수염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33년 이태준, 정지용, 이상, 김유영, 김기림 등과 함께 순문학적, 유미주의적 성향의 구인회를 결성했다. 1934년 10월 27일 한의원 김중하 씨와 그의 부인인 이연사 씨의 무남독녀 김정애(金貞愛, 1912년 ~ 1984년)와 결혼. 신부 김정애 씨는 경성 숙명여고보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1931년)라는 곳을 나온 재원이었음.

광복 후인 1946년 좌익 계열의 문학인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을 맡는 등 잠시 남로당 계열의 문예 운동에 몸을 담았다가, 1948년 보도연맹에 가입하며 전향했다.[4]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후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 오장환, 정인택, 이용악 등을 따라 남조선문학가동맹평양시찰단원으로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 7월경 조용만에게 목격된 것이 남쪽에서 박태원을 보았다는 마지막 증언이다.

1950년 한국전쟁중 종군기자로 활동하였다. 1952년 로동신문리순신장군을 연재하였으며, 임진조국전쟁 360주년기념 리순신장군전을 발간했다. 1953년 평양 문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국립고전예술극장 전속작가로 활동. 《갑오농민전쟁》은 북한에서 재혼한 아내 권영희가 구술을 받아적어 완성했으며, 마지막 3편은 구술 능력마저 잃은 후에 권영희가 대신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영희는 박태원의 경성 제일고보 동창이자 구인회 시절 동료였던 정인택의 아내로, 정인택 사후인 1956년 박태원과 재혼한 것이다. 특히 권영희는 박태원과 막역한 문학적 교류를 나누었던 이상의 연인이었다는 설이 있다. 1979년 12월 1일에는 국기훈장 1급 수여와 70회생일상 하사. 1998년 11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애국렬사로 승인하여 평양 신미리 렬사릉으로 이장함.

작품으로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모더니즘적인 기법으로 묘사한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를 비롯하여 남동생 박문원(朴文遠)이 장정을 맡은 소설집 《천변풍경》(1936년), 월북 후 북한에서 집필한 대하 역사 소설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갑오농민전쟁》 등이 있다. 한국 전쟁 중 1951년 월북한 아우 박문원(朴文遠)은 사회주의 계파 미술평론가로 유명하다.

1973년 4월 28일에는 함께 월북하여 지낸 아우 박문원심근 경색으로 잃었다. 아울러 박태원은 사망 시기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남로당 계열 문인들과는 달리 1986년 7월 10일에 고혈압으로 사망을 한 즉시 《조선문학》에 부고 기사가 실렸다. 또한 정인택과 권영희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딸로 현재 북한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태은이 2000년 평양에서 〈나의 아버지 박태원〉이라는 글을통일문학에 발표하여, 다른 월북 작가들에 비하여 월북 이후 행적이 비교적 소상히 알려져 있다.

박태원은 서울에 2남 3녀와 前 부인 등 가족을 모두 두고 단신 월북했다. 이중 중학생이던 맏딸 박영은과, 셋째딸 박설영은 1951년 월북했으며, 대한민국에 남은 가족 중 둘째딸의 막내 아들이 영화감독 봉준호이다.[5]

학력편집

이외 이력편집

사후편집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화한 《군국의 어머니》(1942년)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저자=민족문학연구소 |제목=탈식민주의를 넘어서 |날짜=2006 |출판사=소명출판사 |출판위치=서울 |id=ISBN 978-89-5626-201-7 |장=소극적 협력의 한 양상: 일제 말 박태원의 친일문학 (고인환)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예비 명단을 정리했을 때 포함되었으나, 최종 명단에서는 제외되었다.

작품목록편집

  • 1926 누님
  • 1929 해하의 일야
  • 1930 적멸
  • 1934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1936 천변풍경
  • 1937 성탄제
  • 1938 우맹
  • 1963 계명산천은 밝았느냐
  • 1977 갑오농민전쟁 1부
  • 1980 갑오농민전쟁 2부
  • 1986 갑오농민전쟁 3부

외부 링크편집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

  1. "이상 마지막 자화상 속 주인공은 구보". 《연합뉴스》. 2009년 6월 26일. 2018년 7월 2일에 확인함. 
  2.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다니엘이라는 세례명으로 천주교 신자 입문.
  3. 링크
  4. 문학과지성사,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저자 소개 Archived 2005년 10월 27일 - 웨이백 머신
  5. 퍼슨웹,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반백(半白)의 아들 - 소설가 구보씨의 아들 박재영 씨 인터뷰 Archived 2007년 9월 28일 - 웨이백 머신,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