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화

방귀화(房貴和)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증조부는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이고, 할아버지는 정산현감 방구성(房九成)이며, 아버지는 승훈랑(承訓郞) 방순문(房恂文)이다.[1]

생애편집

1469년(예종 1년) 사마 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여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역임하였다.[2]

1479년(성종 10년) 신계 현령(新溪縣令)에 제수되었으나 대사헌(大司憲) 박숙진(朴叔蓁)이 역학(譯學)에 정통(精通)한 방귀화(房貴和)를 내직에 제수할 것을 청하자 왕이 개차(改差)하라고 명하여 주부(主簿)로 임명되었다.[3]

1483년(성종 14년) 영접도감 낭청(迎接都監郞廳)으로서 《노걸대(老乞大)》와 《박통사(朴通事)》를 교정(校正)하였다.[4]

가족 관계편집

  • 증조부 : 방사량(房士良)
  • 증조모 : 백계(白磎)의 딸
    • 조부 : 방구성(房九成)
      • 부 : 방순문(房恂文)
    • 외조부 : 조운수(趙云璲)
      • 모 : 조운수(趙云璲)의 딸
      • 처부 : 이봉손(李奉孫)
        • 부인 : 용인 이씨(龍仁李氏)
          • 아들 : 방한걸(房漢傑)
            • 손자 : 방응현(房應賢, 1524년 ∼ 1589년)

각주편집

  1. 방귀화 - 한국학중앙연구원
  2. 《성화기축6년9월일생원진사시방(成化己丑六年九月日生員進士試榜》
  3. 《성종실록》 106권, 10년(1479 기해 / 명 성화(成化) 15년) 7월 8일(임술) 1번째기사 박숙진이 역학에 밝은 신계 현령 방귀화를 내직에 쓰기를 청하니 허가하다
  4. 《성종실록》 158권, 14년(1483 계묘 / 명 성화(成化) 19년) 9월 20일(경술) 7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