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화

방영화(方永化, 1872년 ~ 1958년)는 조선국 관료 출신 대한제국 독립운동가, 외교관정치인이다.

방영화
方永化
Bhoxz Christiano Bangnaldo Bhang
조선국의 경기도 여주군 예하 군서기관
임기 1892년 2월 15일 ~ 1893년 5월 23일
군주 조선 고종 이형

대한 임정구미외교위원회 총본부
남미주국가외교행정보좌관
임기 1926년 2월 26일 ~ 1926년 4월 9일
주석 양기탁 (대한 임정 국무상 권한대행 서리)

신상정보
출생일 1872년 6월 11일
출생지 조선 경기도 양주군 구주면 일교리
사망일 1958년 2월 20일(1958-02-20)(85세)
사망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 앤젤레스
거주지 대한제국 경기도 양주
대한제국 한성부
멕시코 시우다드 데 메히코
스페인 군주국 마드리드
미국 뉴멕시코 주 샌타페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 앤젤레스
본관 온양(溫陽)
경력 조선국 경기도 연천군 예하 군서기관
한국독립당 외교행정위원
정당 무소속
형제 형 1명
누나 2명
누이동생 1명
남동생 1명
배우자 한양 조씨 부인
자녀 6남 2녀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장로회) → 로마 가톨릭(세례명: 베르나르도)
서훈 2015년 3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 추서
웹사이트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1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2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3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4

본관은 온양(溫陽), (號)는 산남(山南)이며 스페인어 이름은 봉크스 크리스티아노 방날도 방(Bhoxz Christiano Bangnaldo Bhang)이다. 한국계 쿠바인들에게는 까를로스 까라까스(Carlos Caracas)라고도 불리었다.

주요 이력편집

청년 시절과 중년 시절편집

1890년 음서로 조선국 관직에 천거되었고 1893년 조선국 관료 직책을 사임하여 그 후 대한제국 유자(大韓帝國 儒者)로 활동한 그는 1899년 개신교 장로회 귀의하였으며 1902년에 미국 이주를 거쳐 1903년에 미국 영구거주권 취득을 한 그는 1906년에 멕시코로 재이주하였고 1907년 개신교 장로회 이탈 및 천주교 귀의하였으며 1908년에 미국 영구거주권 포기와 함께 멕시코 시민권 취득하였다. 1912년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오하키나 지방의회 평의원, 1913년 멕시코시티지방회 총무, 1926년 탐피코지방회 법무, 1927~1930년 총무, 1933년 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미국과 멕시코에서의 독립 운동편집

1905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대동교육회를 조직하였으며 1907년 정치적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대동보국회 결성에 적극 참가하였고 1916년을 전후한 시절에 수차례 국민의무금ㆍ독립의연금 등을 납부했으며, 1923년 미국 시카고에서 한국독립연구회를 창립하여 간사로 활동하기도 하였고, 1931년과 1944년 이후로 신한민보와 북미시보에 사설을 게재하여 재미한인들에게 민족의식 고취를 하는 데 앞장 섰다.

만년편집

1938년에 상배(喪配)하여 부인의 유골을 화장 후 시우다드 데 메히코 야산에 뿌린 그는 1945년 8월 15일 조선 광복을 멕시코 수도 시우다드 데 메히코에서 목도하였고 그 후 1946년 2월 초순에 미국 뉴 멕시코 주 샌타페이로 건너가 샌타페이에서 대한민국 귀국을 채비하였고 2년 후 대한민국 귀국 작전에 다다르던 차에 결국 1948년 8월, 미국 로스 앤젤레스에 거주하던 중 이승만 정권의 불신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입국이 거부되었고 그 후 자녀들이 상시 거주하던 멕시코 칸쿤과 쿠바 아바나와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을 전전하며 농사 등으로 소일하였는데 저혈압 증세가 악화되면서 1958년 2월 20일을 기하여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 앤젤레스 소재 장남 사저에서 장남 내외와, 남동생 부부와 처제 부부가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하였다.

그의 유해는 화장하여 로스 앤젤레스 땅에 뿌려졌으며 역시 사후 그의 자녀들은 모두 각각 미국멕시코쿠바에 거주하였다.

사후편집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고자 2015년 3월 1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 추서를 하였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