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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희(裵恩希, 1888년 1월 15일 ~ 1981년 9월)는 장로교 목회자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일제 말기 신사 참배를 거부한 몇 안되는 목회자이기도 하다. 분열전 대한민국의 연합된 장로교단 총회장을 지냈다. 배은희목사는 대한민국 제2국회의원이며, 대한국민당의 첫발기준비 위원장 이기도하다. 더불어, 배은희목사는 초대 고시위원장이기도하다.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나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장로교 교단이 신사참배 강요에 따라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목회자들의 창씨개명을 강제했을 때, 전북 지역 목회자 80여 명 가운데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단 두 사람 중 한 명이다.[1]

해방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창당에 참여하였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전라북도 지부장을 거쳐 1945년 12월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주장에 찬성하여 1948년 5.10 총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1948년 윤치영, 신익희, 이청천, 임영신, 이인 등과 함께 대한국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신익희, 이청천 등의 탈당으로 약화된 대한국민당을 지도하였고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그러나 이후 윤치영, 이범석, 임영신 등이 제거되면서 그도 정계에서 축출된다.

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대한민국 의정총람》, 국회의원총람발간위원회, 1994년
  • 배은희 - 대한민국헌정회
  • 김수진 (2005년 9월 20일). 〈제32회 총회장 김응순 목사 (1946-1947년)〉. 《총회를 섬겨온 일꾼들》.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ISBN 89-398-0643-3.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
  전 임
권오훈
제2대 국회의원(달성군)
1952년 2월 6일[2] ~ 1954년 5월 30일
대한국민당
후 임
조재천
 

각주편집

  1. “교회 100년사 - 제4장 전시체제 강화로 교계가 고통받다 (1930~1945)”. 전주서문교회. 2007년 8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5월 29일에 확인함. 
  2. 전임자 권오훈 의원이 1951년 1월 26일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