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백년설(白年雪, 본명 : 이창민, 한국 한자李昌民, 이창민(李昌民)으로 개명하기 前 이름은 이갑룡(李甲龍)· 이갑용(李甲勇), 1914년 1월 19일 ~ 1980년 12월 6일)은 대한민국가수이다.

Picto infobox music.png
백년설
Baek Nyeon-seol interview.jpg
기본 정보
본명 이창민
출생 1914년 1월 19일(1914-01-19)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사망 1980년 12월 6일 (66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직업 가수
장르 트로트
활동 시기 1934년 ~ 1963년
배우자 심연옥
종교 불교여호와의 증인
대표곡
두견화 사랑 1939년
나그네 설움 1940년
번지 없는 주막 1940년
산팔자 물팔자 1940년
대지의 항구 1941년
고향설 1942년

목차

생애편집

경상북도 성주에서 출생하여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문학과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1934년 작사가 첫 데뷔한 그는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여 가수 데뷔하였고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 등을 연속 유행시켰다. 대표곡은 1940년 발표되어 이후 오랫동안 널리 불린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이며, 이 밖에도 〈삼각산 손님〉, 〈고향 길 부모길〉, 〈남포불 역사〉, 〈눈물의 백년화〉, 〈산팔자 물팔자〉, 〈천리정처〉, 〈아주까리 수첩〉 등 히트곡이 많이 있다.

1940년대를 대표하는 남자 가수로 활동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모은 남인수, 김정구, 진방남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한 편이라면, 백년설은 음정을 흔들어 구수하면서도 듣는이에게 절규하는 듯한 독창적인 호소력이 특징이다. 친근한 맛을 주는 백년설의 창법은 서민적인 취향의 노래와 잘 어울려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했다.

1941년 지원병제가 실시되면서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 등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친일 가요를 불러 친일파 논란이 일었다. 당대의 최고 가수였던 백년설은 남인수, 박향림과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러나, 그는 친일 행위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1]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을 지냈으며 1961년에는 한국연예협회 기획분과 위원장을 맡았다가 1963년에 은퇴했다. 가수인 심연옥과 결혼[2] 한 뒤 여호와의 증인에 귀의, 이후 연예계 관련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국제 무역을 운영하다가 1979년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함께 이민을 갔으며, 약 2년 후인 1980년에 미국에서 사망했다.

고향 성주에 생가가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헐렸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로 시작되는 〈나그네 설움〉의 가사를 새긴 노래비가 건립되어 있다.

각주편집

  1. 2010년 07월 20일 성주신문에서 자세한 내용을 검토할 수 있다.
  2. 김명환 (2007년 6월 9일). “[이야기로 듣는 옛노래] 전화통신 ① - 전화 첫 등장 … 애틋한 사랑 고백”. 충청투데이. 2007년 10월 31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