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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말갈(白山靺鞨)은 말갈의 7부족 중 하나로 위치에 대해서는 백두산 주변과 연변 지역 일대로 보는 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최근 함경도 쪽으로 내려 보거나 연변 지역과 한반도 동북부 지역을 모두 포괄한 것으로 보는 설이 제기되었다.[1] 그러나 백산말갈의 동쪽으로 비정되는 어떠한 말갈 세력도 없음을 감안하여 연해주 남부 일대까지를 고고학적으로 백산말갈의 맥락에서 이해해도 큰 지장은 없기 때문에, 고구려의 책성 치소로 꼽히는 연변과 함께 연해주 일대도 백산말갈의 거주지로 추정된다.[2]

요대에 장백산삼십부여진(長白山三十部女眞)은 백산말갈(白山靺鞨)에서 기원한다고 추정하기도 하는데, 당·요(唐遼)때 일부 남하한 말갈-여진인을 받아들였으나 이 부의 주체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요나라 때에 이르러 이 갈레의 여진인들은 지금의 중국 연변 지구, 통화(通化) 지구 남부와 두만강 이남과 북한의 함경남·북 양도, 량강도·자강도, 곧 함흥평야 지구 일대에 거주했다. 요 성종 개태 원년(1012)에, 장백산삼십부여직(長白山三十部女直) 추장이 와서 공물을 바치고 작위와 봉록을 내려달라고 청하였다. 같은 해, 여진추장 마시저(馬尸底)[3]가 삼십성부락(三十姓部落)의 자제들을 거느리고 와서 고려에 토마(土馬)를 바쳤다고 하는데, 삼십성부락(三十姓部落)은 곧 장백산삼십부여진(長白山三十部女眞)이다. 이 두개의 사료는 동시에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으니, 적어도 이 때가 바로 1012년, 장백산여진(長白山女眞)이 이미 30부로 발전하여 부락연맹을 결성하고 적극적으로 외부관계에 관여하였다. 이 부는 《고려사》 등에서 동여진(東女眞)·동번(東蕃)·동북여진(東北女眞)으로도 칭하였다. 이는 지역으로부터 출발하여 고려를 중심으로 그 방향에 따른 칭호였다. 장백산삼십부녀진(長白山三十部女眞)은 요나라의 외십부(外十部)의 하나에 속하였는데, 요나라는 여기에 장백산여진국대왕부(長白山女眞國大王府)를 설치하였다. 이와 동시에 고려와도 일부 의부관계가 존재했다.[4]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김현숙 (2005). 《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 연구》. 모시는사람들. 438~479쪽. ISBN 9788990699305. 
  2. 강인욱 (2018년). “고고자료로 본 백산말갈과 고구려의 책성”. 동북아역사논총 (61): 46~47. 
  3. 고려사》원문은 '麻尸底'로 표기되어있다.
  4. 孟古托力(2000), 「女眞及其金朝與高麗關系中幾個問題考論」, 『滿語硏究』, 67~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