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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法頂, 속명(본명) 박재철(朴在喆), 1932년 11월 5일(음력 10월 8일) ~ 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불교 승려이자 수필가이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 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무소유 사상'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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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法頂
서울 길상사의 법정 선사 추모당
서울 길상사의 법정 선사 추모당
작가 생애
본명 박재철
朴在喆
출생 1932년 11월 5일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리
사망 2010년 3월 11일(2010-03-11) (77세)
대한민국 서울 성북구[1] 서울 길상사에서 폐암으로 사망
직업 불교 스님
수필가
저술가
언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 전라남도 목포고등상업학교 졸업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상학과 3학년 중퇴
종교 불교
작가 정보
활동기간 1954년 ~ 2010년
장르 수필
가족 관계
주요 작품
영향
기타 정보

1955년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다. 그러나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로 인해 17년 동안이나 살았던 불일암을 뒤로 하고 1992년 4월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홀로 수행 정진하게 된다.

2010년 3월 11일을 기하여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8세, 법랍 55세로 입적(入寂)하였다. 그의 기일은 불교식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1월 26일로 지낸다.

목차

생애편집

젊은 시절과 무소유 사상편집

1932년 11월 5일(음력 10월 8일)에 전라남도 해남군 우수영(문내면)에서 태어났다. 우수영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6년제 였던 목포상업중학교에 진학했고, 이후 전남대 상대에 입학하여 3년을 수료, 중퇴하였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이던 1955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60년에는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였다. 1972년에는 첫 에세이집 <영혼의 모음>을 출간하였다. 1973년 함석헌 선생이 주도했던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였고,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 1975년에는 인민혁명당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 그 해 10월 수행자의 본래자리로 돌아가고자, 당시 부도만 남아있던 송광사 자정암 터에 토굴을 지어 홀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철저한 자기 질서 속에 무소유 사상을 설파하고 텅 빈 충만의 시기를 보냈으며, 이 무렵인 1976년에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무소유>를 발간하였다. 〈무소유〉는 370만 권이 판매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2]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편집

이후 17년간 불일암에서의 생활을 이어갔으나, 그곳에서의 수많은 저서 집필로 인해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면서 사람의 발길이 잦아지게 되었다. 이에 법정은 1992년 4월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 정진하게 되었다.

1993년 7월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로 독립기념관과 창덕궁 부용정 연못의 연꽃이 모두 뽑혀졌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 어이없는 심정을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을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세속 일에 관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날로 각박해져만 가고 메말라만 가는 우리 심성을, 세상과 자연을 두루 맑고 향기롭게 가꾸면서 살아가자"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주창하게 된다.

1994년 3월 26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선포 기념행사로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법정 스님과 함께 하는 실천 큰 모임, 출발 맑고 향기롭게' 대중 법문을 개최하였다. 맑고 향기롭게 모임은 범종교, 범종파 순수 시민운동으로 회원 각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후원하는데 힘입어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맑고 향기롭게 장학금'을 마련해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매년 학비를 지원하는 등의 운동을 펼쳤다. 이후 회원과 후원금의 규모가 증가하자 1996년 12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고, 법정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3]

1997년 12월 14일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 한국 천주교 성직자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자, 이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 24일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져 종교간의 화합을 보여 주었다.[4]

말년과 입적편집

2003년 12월, 월간 〈맑고 향기롭게〉에 〈내 그림자에게〉라는 글을 통하여 길상사 회주(會主)와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직책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뒤에서 도울 것이라 약속하며 길상사에서 짝수 달마다 해오던 법회를 봄, 가을 두차례만 할 뜻을 밝힌다. 그러나 주위의 거듭된 만류로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직 사임은 철회하였다.

이때쯤부터 '회주 스님', '큰 스님', '이사장 스님'이란 명칭을 일절 사용하지 못하고 '어른 스님'이란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통해 밝힌 입장과는 달리 동안거, 하안거 해제, 결제, 길상사 창건 기념일, 부처님 오신 날 등 길상사의 큰 행사에는 산에서 내려와 어른 스님으로서 책임을 다하였다.

2007년부터는 폐암이 발병해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2009년 겨울에는 강원도의 오두막에서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요양했지만, 병세가 악화돼 서울 강남구의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였다.[2]

2010년 3월 11일 오전 길상사로 옮겨졌고, 오후 1시 51분에 입적하였다. 법정 스님의 장례는 "많은 사람 수고만 끼치는 일체 장례의식 하지 말라"며 이나 수의를 마련하지 않고 승복 입은 그대로 다비하라는 평소 뜻에 따라, 영결식 등 별도의 장례절차 없이 진행되었다. 3월 12일에는 스님이 수행했던 전남 순천시 송광사로 운구해 13일 오전 11시에 다비하였다.[2]

법정은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그의 저서들은 모두 절판, 품절 되었다. 그 후 그가 쓴 책들의 수요가 늘어 일부 책들은 가격이 10만 원 가까이 치솟을 만큼[5]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저작권자가 절판 유언을 남겼더라도 출판권은 출판사에게 있기 때문에 더 출판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3월 22일, 법정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그의 유언을 존중하여 모든 책을 절판하기로 합의하였다. 다만 이들 책을 미리 사재기한 사람들이 웃돈을 주고 파는 경우도 발견되어, 법정 스님의 뜻을 모욕한다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잦아졌다.[6]

이와 같이 혼란이 벌어지자, 법정의 저서에 대한 저작권을 양도받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출판사 측은 2010년 말까지만 그의 저서를 판매하기로 결정하였다. 일정 기간 그의 저서를 판매토록 한 후에는 모두 수거하여 완전히 절판했다. 이로 인해 출판가의 혼란은 다소 진정되었다. 2018년 이후로는 일부 서적과 미발표 원고 등이 일부 판매되고 있다.[7]

관련 책편집

저서편집

법정을 다룬 책편집

각주편집

  1. “법정스님, 오늘(11일) 입적, 다비식은 13일 순천 송광사 엄수”. 뉴스엔. 2010년 3월 11일. 2010년 3월 11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2. “법정 스님 입적…가실때도 ‘무소유’”. 동아일보. 2010년 3월 11일. 
  3. 이 당시 법정은 이사장이라는 세속 직위는 서류상의 직책일 뿐이라며, 이사장 대신 '회주(會主)'라는 호칭을 사용하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4. 천주교-불교 종교 초월한 교감 확산 1998년 2월 27일 조선일보
  5. 편집부 (2010년 3월 18일). “법정스님 책, 너도 나도 `사자` 열풍”. 이데일리. 2010년 3월 18일에 확인함. 
  6. 유상호 기자 (2010년 3월 22일). “출판업계 "법정 스님 유지 따라…" 책 절판 합의”. 한국일보. 2010년 3월 22일에 확인함. 
  7. 도, 재기 (2018년 5월 14일).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삶과 정신, 책과 사진집, 전시회로 만난다”. 《경향신문》. 2018년 8월 20일에 확인함. 

관련 항목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