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찰스 스탠리 마틴

벤저민 찰스 스탠리 마틴 경(Sir Benjamin Charles Stanley Martin, 1891년 7월 18일(1891-07-18) ~ 1957년 6월 3일(1957-06-03))은 예비역 영국 해군 대령 출신 외교관 겸 정치가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미국과도 친분을 갖던 그는 1947년 10월 1일 이후 남조선 과도정부 시대 서울 미군정청에서 스탠리 키섬(Stanley Keessumm)이라 지칭되었었고 1948년 2월 29일에서 1948년 3월 16일까지 미 군정 남조선 과도정부 서울특별자유시를 방한(訪韓) 시절 이영덕(李英悳)이라는 한국어 이름을 사용하였다.

벤저민 찰스 스탠리 마틴
李英悳
Stanley Keessumm
Benjamin Charles Stanley Martin
지브롤터 총독 예하 행정공보비서관
임기 1946년 2월 15일 ~ 1947년 2월 2일
군주 조지 6세 (영국 군주)
총독 랠프 이스트우드 (지브롤터 총독)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
수상 프란시스코 프랑코 (에스파냐 총통 겸 총리)

신상정보
출생일 1891년 7월 18일(1891-07-18)
출생지 잉글랜드 아일 오브 와이트 주 뉴포트
사망일 1957년 6월 3일(1957-06-03)(65세)
사망지 영국 자치직할식민지 남아프리카 나탈 주 피터마리츠버그
거주지 잉글랜드 햄프셔 주 윈체스터
잉글랜드 런던
캐나다 뉴 펀들랜드 주 세인트 존스
학력 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1923년)
정당 무소속
친인척 이복 종조부 스탠리 해리스 마틴(Stanley Harris Martin)[1][2]
종교 잉글랜드 성공회개신교(장로회)
서훈 KBE(대영 제국 훈장)
DSO
웹사이트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1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2
군사 경력
군복무 영국 해군
복무기간 1907년 3월 16일 ~ 1944년 2월 29일
최종계급 예비역 영국 해군 대령
지휘 전대장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생애편집

어린 시절과 그 후 군 시절편집

영국 잉글랜드 아일 오브 와이트 뉴포트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영국 잉글랜드 햄프셔 주 윈체스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07년 영국 해군 하사 임관하여 그 후로 거듭 진급하면서 위관 장교 계급에도 이르게 된 그는 영국 해군 위관 장교 시절 1차 대전에도 참전하였고 1922년에서 1923년까지 미국 유학을 한 그는 그 후 1939년 영국 해군 중령 시절에는 2차 대전에도 참전하였으며 2차 대전 참전 중이던 1941년 1월 31일을 기하여 영국 해군 대령 진급하였고 1944년 영국 해군 대령 예편하였다.

영국 해군 대령 예편 이후와 만년편집

예편을 한 후 지브롤터 총독 예하 비서관 직책을 잠시 지냈으며 1947년 2월 26일을 기하여 기사(knight) 작위를 받은 후 1948년 1월 31일을 기하여 준남작 작위를 받은 그는 1948년 2월 29일에서 1948년 3월 16일까지 당시 아직 미 군정 남조선 과도정부 서울특별자유시를 미군정청의 초청 받음으로 인하여 내한(來韓)하였는데 그 당시 이영덕(李英悳)이라는 한국어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존 리드 하지 장군을 비롯한 미군정청 간부급 주한미군과 미군정청 재류 영국 및 미국 출신 양국 외교관들은 그를 이닉슨(李Nixon)·리 닉슨(Lee Nixon)·스탠리 키섬(Stanley Keessumm)이라 지칭키도 하였다. 그 후 그는 캐나다 뉴 펀들랜드 주 세인트 존스를 거쳐 영국 자치직할식민지 남아프리카 나탈 주 피터마리츠버그에 건너가서 훗날 1957년에 별세할 때까지 영국 자치직할식민지 남아프리카 나탈 주 피터마리츠버그에 거주하였다.

각주편집

  1. 한국식 이름은 이금순(李錦純), 참고로 '이금순(李錦純)'이 중국어 독음으로는 '리진춘'이 된다.
  2. 참고로 여담이지만 그의 이복 종조부(이복 작은할아버지, 친할아버지의 배다른 남동생.)인 스탠리 해리스 마틴(Stanley Harris Martin, 한국식 이름은 이금순(李錦純), 참고로 '이금순(李錦純)'이 중국어 독음으로는 '리진춘'이 된다. 생몰연대: 1870.07.23. 출생~1941.05.31. 하세)은 영국 햄프셔 주 윈체스터 출신 외과 전문의 겸 개신교 장로회 선교사인데 의사가 되고 나서 1906년 캐나다로 이주를 하였고 그 후 동양 국가로 의료 관련 선교 내방하였으며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룽징과 일제 강점기 조선국 함경북도 무산에서 의료 활동하였고 만저우 지린 룽징 제창병원 원장 봉직을 하는 등 사회사업가 활동하였는데 1919년 3월 13일 만저우 룽징 조선촌에서 거행된 삼일 대한 독립 만세 운동 시절 시위에 참가로 인하여 일군의 총에 부상을 입은 조선인들을 제창병원으로 이동시켜 진료하고 삼일 만세 시위에서 일군의 총격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을 위한 대규모 합동 장례식을 개최하여 1968년 3월 1일을 기하여 작은할아버지 스탠리 해리스 마틴(Stanley Harris Martin)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