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쇼 시게무네

벳쇼 시게무네(일본어: 別所重宗, 교로쿠 2년(1529년) ~ 덴쇼 19년 음력 6월 6일(1591년 7월 26일)는 센고쿠 시대·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무장, 다이묘이다. 重棟라고도 한다. 벳쇼 나리하루의 삼남.

생애편집

겐키 원년(1570년), 조카(큰형·벳쇼 야스하루의 아들)인 벳쇼 나가하루가 가독을 잇자 둘째형·요시하루와 함께, 그 보좌역이 되었다.

에이로쿠 11년(1568년), 오다 노부나가의 부축을 받고 상경한 아시카가 요시아키 밑으로 벳쇼 일문을 이끌고 달려가는 등 노부나가와의 협조노선을 채택하고 있을 무렵의 벳쇼 가문에서는 그 외교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노부나가와 하시바 히데요시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요시하루와는 사이가 나빴다. 벳쇼씨 수령인 나가하루가 노부나가에게 반역하자(미키 전투), 이에 반대해 오다 진영(織田陣営)이 되었다. 식량공세에 시달린 미키성(三木城)이 못 견뎌 개성했을 때 나가하루에게 최종적으로 개성 교섭을 벌였던 것은 시게무네이었다.

덴쇼 13년(1585년), 히데요시에 의해서 다지마 야기성 1만 5천 석을 수여받았다. 그 후에는 히데요시의 가신으로서 규슈 평정(九州平定)과 오다와라 정벌(小田原征伐)에 종군했다. 사카이()에서 은거했다고 전해진다.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누나를 맞아 장자(長子)인 마사유키(正之)는 마사노리의 양사자(養死子)[1]가 되었다.

차자(次子) 무네하루(宗治, 몬도(主水))는 하타모토(旗本)로서 도쿠가와 가문을 섬겨 오사카의 진(大坂の陣)인 덴노지·오카야마 전투(天王寺・岡山の戦い)에서 전사(戰死)했다. 뒤를 요시하루가 이었다.

전임
벳쇼 나가하루
벳쇼 가문 당주
1580년 ~ 1591년
후임
벳쇼 요시하루
제1대 야기번 번주 (벳쇼 가문)
1585년 ~ 1591년
후임
벳쇼 요시하루
  1. 예전에, 호주(戶主) 상속인인 양자(養子)를 이르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