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가례시 명백자청화수복문호

병인가례시 명백자청화수복문호(병인가례시 銘白磁靑華壽福紋壺)는 명문(銘文)에 의해 병인년 가례, 즉 1866년 고종명성황후 가례 때 사용되었던 것을 알려주는 항아리이다. 2011년 1월 13일 서울특별시의 문화재자료 제52호로 지정되었다.[1]

병인가례시 명백자청화수복문호
(병인가례시 銘白磁靑華壽福紋壺)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종목문화재자료 제52호
(2011년 1월 13일 지정)
수량1점
시대조선시대
소유서울특별시
위치
병인가례시 명백자청화수복문호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병인가례시 명백자청화수복문호
병인가례시 명백자청화수복문호
병인가례시 명백자청화수복문호(대한민국)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길 50
서울역사박물관
좌표북위 37° 34′ 12.53″ 동경 126° 58′ 17.5″ / 북위 37.5701472° 동경 126.971528°  / 37.5701472; 126.971528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구연부는 위로 올라갈수록 밖으로 벌어지는 형태이고 횡선문(橫線紋)과 초문(草紋)이 청화로 그려져 있다. 비슷한 시기의 호와 비교해 볼 때 구연부가 높고 긴 점이 특징이다. 어깨 부분에는 청화안료로 여의두문(如意頭紋)을 연속적으로 배치하고, 몸체에는 ‘壽(수)’자와 ‘福(복)’자를 도안화한 문자문이 그려졌다.

굽바닥에 청화로 쓴 큰 대(‘大’)자가 있어 대전(大殿)에서 사용되었음을 알려주고, 굽 주변에 한글로 ‘병인가례시큰뎐고간듕쇼이십듁’이라는 명문을 새겨 넣었다. 명문에 나타난 병인년은 당시 가례 기록과 대조를 통해 고종 3년, 즉 1866년에 거행된 고종과 명성후의 가례로 판단된다. 또한 뒤에 나오는 ‘큰뎐고간’은 대전(大殿) 곳간을 뜻하며, ‘듕 쇼’라는 명문은 대(大), 중(中), 소(小)를, ‘이십듁’은 20죽(1죽은 10개)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항아리는 병인년 고종 가례 때에 대전 곳간에서 쓰인 대ㆍ중ㆍ소 200개의 그릇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이 백자 항아리는 왕실 가례에 쓰였다는 확실한 사용처와 병인년이라는 연대가 기록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19세기 청화백자 항아리 중 당당한 크기와 기형을 지니고 있으며, 청화의 발색과 광택이 좋아 도자사적 가치도 크므로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52호로 지정되었다.

각주 편집

  1. 서울특별시고시 제2011-10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서울특별시장, 서울시보 제3022호, 239면, 2011-01-13

참고 자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