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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충청수영성(保寧 忠淸水營城)은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9호 보령오천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8월 24일 대한민국사적 제501호 충청수영성으로 승지정[1]되었고, 2011년 7월 28일 보령 충청수영성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2]되었다.

보령 충청수영성
(保寧 忠淸水營城)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종목 사적 제501호
(2009년 8월 24일 지정)
시대 조선시대
소유 국·공·사유
관리 충청남도 보령시(보령시장)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931번지 일대
정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보령오천성
(保寧鰲川城)
대한민국 충청남도기념물(해지)
종목 기념물 제9호
(1973년 12월 24일 지정)
(2009년 8월 24일 해지)
정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목차

개요편집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9년(1596),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 1일 일본군에 패하여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또한,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곳이다.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城址)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로써 충남의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海路) 요해처(要害處)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문화재(사적) 지정 사유편집

충청수영성은 성지(城址)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관적으로도 우수한 상태이며, 수영성의 입지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아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지정되었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 제2009-69호, 《충청수영성 사적 지정 및 지형도면》, 문화재청장, 2009-08-24
  2. 문화재청고시제2011-116호,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고시》,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7560호, 392면, 2011-07-28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