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서 (후한)

봉서(封諝, ? ~ 184년?)는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이다.

개요편집

184년, 장각은 한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거병하기로 하고, 3월 5일에 낙양을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장각은 궁궐내의 환관인 중상시(中常侍) 봉서(封諝)와 서봉(徐奉)을 거병 계획에 끌어들여 그들과 같이 거사하기로 하고, 형주(荊州)와 양주(揚州)에 군사들을 모아놓고 있던 자신의 부하인 마원의를 몰래 낙양에 잠입시켰지만, 장각의 부하인 당주(唐周)가 그 음모계획을 황제직속의 환관들에게 밀고하여, 음모계획은 탄로나게 되었다.

그 결과 마원의는 관군들에 의해 곧바로 체포되어 다음날 시장에서 거열(車裂)형을 받아 처형되었다.[1]

역사서에 따르면 그 후 영제가 "환관들 중에서 장각과 내통한 자가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처형되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봉서와 서봉은 음모가 탄로난 직후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출처 필요]

다른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범엽 (5세기) 《후한서》 〈제71권〉 “以白土書京城寺門及州郡官府,皆作「甲子」字。中平元年,大方馬元義等先收荊、楊數萬人,期會發於鄴。元義數往來京師,以中常侍封諝、徐奉等為內應,約以三月五日內外俱起。未及作亂,而張角弟子濟南唐周上書告之,於是車裂元義於洛陽。靈帝以周章下三公、司隸,使鉤盾令周斌將三府掾屬,案驗宮省直衛及百姓有事角道者,誅殺千餘人,推考冀州,逐捕角等。角等知事已露,晨夜馳敕諸方,一時俱起。皆著黃巾為摽幟,時人謂之「黃巾」,亦名為「蛾賊」。殺人以祠天。角稱「天公將軍」,角弟寶稱「地公將軍」,寶弟梁稱「人公將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