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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시리 카툰

복답실리(卜答失里) 태황태후

옹기라트 부다시리(弘吉剌 卜答失里, Будашири, ? ~ 1305년1340년)는 원 문종 투그테무르(图帖睦尔)의 정궁황후(재위:1328년1329년, (복위) 1329년1332년)이다. 성(姓)은 홍길랄씨(弘吉剌氏), 그녀의 부친은 노왕 조아불랄(魯王 雕阿不剌)이고, 모친은 원 무종의 누이인 노국대장공주 상가랄길(魯國大長公主 桑哥剌吉)이다. 그녀는 원나라의 유일한 태황태후였다.(따지도 원나라의 태황태후 중 하나이지만 추존 황후이므로 제외한다.)

생애편집

천력 원년 (1328년), 부다시리는 남편 투그테무르(图帖睦尔, 문종)가 천순제(天順帝)을 폐위시키고 황제가 되자 정궁황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투그테무르의 형 쿠살라(和世㻋, 명종)가 몽골과 차가타이 한국의 장군들은 모아서 월등한 대군으로 카라코룸으로 입성하자, 위기를 느낀 투그테무르는 쿠살라에게 양위를 하겠다고 선언, 자신을 스스로 황태제에, 부다시리를 태제비로 만들었다.

1329년 쿠살라(명종)가 죽자 투그테무르가 원 문종으로 복위, 부다시리도 황후로 복위하였다. 복위된 부다시리는 교활한 마음을 품고 자신의 심복 환관 바이주(拜住)와 함께 모략을 꾸며 쿠살라의 미망인인 바부샤(八不沙)를 살해(殺害)하였다. (이 사건은 투그테무르의 세력이 쿠살라의 세력, 즉 씨를 말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순 3년(1332년) 8월, 투그테무르(문종)가 상도(上都)에서 사망하면서 쿠살라(명종)의 아들을 계승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권신 엘 테무르(燕鐵木兒)는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광시(廣西)에 추방된 쿠살라의 장남인 토곤테무르(妥懽帖睦爾)대신 불과 6살의 차남 린친발(懿璘質班)을 선택, 즉위시켰다.

1332년, 린첸발(영종)이 황제로 즉위하자 그해 11월 부다시리는 황태후가 되었다. 그러나 린첸발은 황제가 된지 2개월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린친발이 사망하자, 엘 테무르는 투그테무르의 차남 연첩고사(燕帖古思, 엘 테구스)를 즉위시키자고 건의하였지만 엘 테무르의 권세가 커질 것을 염려한 부다시리는 그것을 거부, 영종의 이복형 토곤 테무르를 원 혜종으로 즉위시켰다. 원통 원년(1333년), 토곤 테무르(혜종)가 즉위 함으로 인해 부다시리는 태황태후의 칭호을 받고 임조칭제(临朝称制, 섭정)를 칭하는 동시, 자신의 2자인 연첩고사를 황태자로 올리자고 순제(혜종)에게 건의하였다.

지원 6년(1340년), 권신 바얀(伯顏)이 살해되었다. 복답실리는 자신의 2자(次子)인 황태자 연첩고사와 반역을 획책하였다는 혐의로 인해 태황태후에서 폐위(廢位), 대도(大都)에서 추방된 뒤, 토곤 테무르(혜종)로 인해 사사당했다. 향년 36세였다.(연첩고사는 고려에 귀향가는 도중, 살해되었다.)

가족관계편집

  • 부 : 노왕 조아불랄(魯王 雕阿不剌)
  • 모 : 노국대장공주 상가랄길(魯國大長公主 桑哥剌吉)

부다시리가 등장한 작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