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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왜성(甑山倭城), 가칭 부산왜성(釜山倭城)은 부산광역시 동구 성북로36번길 46[(범일동 산81-28]에 위치한 임진왜란일본군(倭軍)이 쌓은 일본성곽(왜성)이다. 왜군이 부산진성을 허물고 지었다.[1][2] 증산 왜성은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4일 임진왜란으로 부산진 첨사 정발(鄭撥)이 전사하고 본성인 부산진성이 함락되자 왜장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 부산진성을 허물고 서북쪽에 있는 증산(甑山)[130m]에 쌓은 왜성이다. 증산의 정상부를 삭평하여 남북 약 520m, 동서 최대 폭 약 190m의 본환(本丸)을 설치하였다. 그 아래쪽 동서 방향으로 2~3단을 이루며 남북으로 능선을 따라 좁고 길게 성벽이 둘러져 있다. 부산포 해전이 있었던 1592년 음력 9월 1일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장계(狀啓)에 따르면 당시 부산진성 내 건물들은 모두 철거되고 일본군의 가옥 주위에는 흙을 쌓아 새집과 같은 것이 100여 호 정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성 밖 동서 산기슭에도 집과 담이 연하여 300여 호가 있는데 그 중심에 절과 같이 큰 층계의 회벽 건물이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따라서 증산 왜성에는 전시에 장수가 지휘하는 곳[천수각(天守閣)]을 비롯한 토성과 해자 등 기본적인 축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산첨사 정발(鄭發)이 왜군의 선봉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한 첫 격전지이다.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의 조선원정군 제1진 1만 8,700여명이 부산 앞바다에 쳐들어오자 정발은 이 성에서 굳게 지키고 있었다. 왜적은 14일 새벽 짙은 안개를 틈타 지금의 우암동쪽으로부터 일시에 상륙하여 부산진성을 포위한 뒤 삼면으로부터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정발은 성 안의 군민과 더불어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했으며 마침내 부산진성은 함락되었다. 이 성은 임진왜란 중 왜군이 다시 축성하고 증산성이라 했는데, 이 증산성의 축성으로 부산진성은 허물어져 그 자취를 잃게 되었고, 현재 자성대(子城臺)라고 부르는 부산진지성만이 남아 있다.

각주편집

  1. 증산왜성, 부산역사문화대전 2019년 7월 23일 확인
  2. 부산 부산진성, 문화콘텐츠닷컴 2019년 7월 23일 확인 부산진성, 문화콘텐츠닷컴 2019년 7월 23일 확인 왜군의 영향으로 부산진성이 허물어져 완전히 멸실되기 전에 일본군이 다시 재축성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