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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군수리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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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군수리사지(扶餘 軍守里 寺址)는 1935년~1936년의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된 사지(寺址)로서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면적은 11,213m2이다.[1]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4호로 지정되었다.

부여 군수리 사지
(扶餘 軍守里 寺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종목사적 제44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면적11,213m2
시대백제
위치
부여 군수리 사지 (대한민국)
부여 군수리 사지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19번지
좌표북위 36° 16′ 8.36″ 동경 126° 54′ 26.79″ / 북위 36.2689889° 동경 126.9074417°  / 36.2689889; 126.9074417좌표: 북위 36° 16′ 8.36″ 동경 126° 54′ 26.79″ / 북위 36.2689889° 동경 126.9074417°  / 36.2689889; 126.9074417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부여 군수리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의 절터로,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1935년 일본 사람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그 결과 중문·목탑·금당·강당 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1탑 1금당의 구조임이 밝혀졌다. 백제 사찰에서의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는 이 절터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는데,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을 일직선으로 배치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금당터의 기단은 기와를 쌓아 만든 것이 특징이며, 유물은 절터에서 골고루 출토되었다. 먼저 강당터 남쪽에서 금동관 조각이 나왔고, 금당터 주위와 탑터에서는 약 1,150점의 옥과 금당 서쪽에서는 금동제방울·구두 모양의 금구가 출토되었다. 또한 연꽃무늬·덩굴무늬가 아름답게 조각된 상자 모양의 벽돌과 금제고리·작은 구슬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목탑의 중심부에서는 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보물 제330호)·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29호)과 칠지도·철못·삼족토기를 비롯한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칠지도이다. 칠지도는 중심에서 양쪽으로 각각 세가지씩 칼이 뻗어있어 7개의 칼날을 가지고 있는 칼이다. 이와 비슷한 백제 칠지도 하나가 일본에 있어 백제와 일본의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말해주고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 있으며 백제시대 초기인 6세기 중엽쯤에 창건된 가람으로 추측된다. 그 구조는 남쪽으로부터 중문·탑·금당·강당이 세워진 흔적이 보이며, 금당 좌우로는 건물지 각 한 개씩(역시 금당으로 추측됨), 그리고 강당의 좌우에는 종루(鐘樓)·경장(經藏)이라고 생각되는 건물지가 한 개씩 보인다. 각 건물지의 윤곽은 병치된 평와열(平瓦列)로 구획되고 있으며, 탑지는 초석의 배치로 보아 정면 9간(間)의 건물이었다고 믿어지며, 그 탑지 중심부의 지하에서 금동보살입상·석조여래좌상 등 불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공예품이 발굴되었다. 금당 3동(棟)이 동서 방향으로 병립해 있는 점이 주목된다.

출토 문화재편집

각주편집

참고 자료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