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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찾아서 : 경성, 쇼우와 62년(碑銘을 찾아서 : 京城, 쇼우와 62년)》은 대한민국소설가 복거일이 1987년에 발표한 장편 대체 역사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본 제국 추밀원 의장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저격에서 부상만을 입었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해,[1] 대체 역사 속 1980년대의 일본 제국을 배경으로 한다.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
비명을 찾아서 상권 표지.jpg
상권 표지
작가 복거일
원제 碑銘을 찾아서. 京城, 쇼우와 62년
국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언어 한국어
장르 대체 역사
출판사 대한민국 문학과지성사
일본 세이코 서점
출판일 대한민국 1987년 3월 1일
일본 1987년 10월
미디어 유형 도서

각 장의 앞에는 여러 매채들을 발췌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문단이 있는데, 주제를 강화해 주는 격언들과 세계관을 설명해 주는 가상의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는 본문과 가상의 글들을 통해 배경을 천천히 서술해 나간다. 또한 이 소설에는 국한문 병용과 작가 고유의 외국어 표기가 적용되어 있다.

목차

줄거리편집

기노시다 히데요(木下英世)는 노구찌(野口) 그룹 산하 한도우(半島) 경금속 주식회사 과장이자 시집도 낸 적이 있는 무명 시인이다. 히데요는 부장 승진에서 내지인에게 밀려 탈락된 이후, 조선인이 내지인에 비해 차별받는 것을 부당하게 여기게 된다.

히데요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과 그로 인한 조선의 독립을 가정한 대체 역사 소설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을 접하며 일본에 대한 반감을 떠올리고, 일본의 금서 <독사수필>을 읽고 공식 역사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 마침 세이슈우의 큰아버지 댁을 방문하다 우연히 큰아버지로부터 죽산 박씨 족보를 보게 되고, 조선의 언어와 역사에 대해 듣게 되면서 조선인은 스사노오 노미꼬도의 자손이며 수천 년 전 일본의 징꼬우 황후가 조선을 정복했다는 공식 역사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히데요는 집으로 오던 길에 세이슈우의 고서점에서 <조선 고시가선(朝鮮 古詩歌選)>을 구입하게 되고, 그 책에 실린 사이찌엥조우지조우의 시들을 읽고 조선의 언어와 역사에 대해 더 알아보기 시작한다. 조우다이(城大)의 도서관에서 <한불(韓佛) 사전>을 복사하고 1971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조선의 역사를 찾게 된다.

모또야마에 살던 장모가 사망하여 장례를 위해 안삥샤꾸오우지를 찾은 히데요는 절의 주지 소우고우(소공, 小空) 스님을 만나고 조선어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던 소공 스님은 히데요에게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조선어로 낭독한다. 소공 스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반하지만, 히데요는 한용운의 의발을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된다.

회사에서 내지로 출장을 가게 된 히데요는 교토제국대학 도서관에서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의 조선의 옛 역사책들을 찾아내 복사하고 조선으로 돌아오나 그사이 일본에서 일어난 정변 이후 강화된 보안검색 때문에 가네우라 공항에서 입국 도중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된다. 고문과 심문을 번갈아 받던 그는 '전선사상보국연맹'의 하꾸야마에게 교육을 받고 연맹에 참가하게 된다. 그에게서 변절한 가야마 미쯔로우 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히데요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히데요는 석방 이후 조선 독립의 필연적 이유를 깨닫고, 언젠가 올 독립의 그 날을 위해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자신의 석방을 위해 아오끼 소좌에게 몸을 허락한 것을 알게 된다. 히데요는 아내의 생일에 그가 집으로 초대한 아오끼가 술에 취해 히데요의 중학생 딸 게이꼬를 성희롱하는 것을 보고 마침내 그를 낚싯줄로 교살한다. 결국 히데요는 집을 나와 명맥만 유지되는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 떠난다.

등장 인물편집

  • 기노시다 히데요(木下英世/박영세, 朴英世). 1987년 기준 39세. 게이조우 데이고꾸 대학 상학과 출신으로 만주에서 소좌로 전역한 후 노구찌 그룹 산하 한도우 경금속 주식회사의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향은 세이슈우이다. 부인 세쯔꼬와는 선을 통해 결혼했으며, 이 때문에 소설 내에서는 세쯔꼬보다 부하직원 도끼에에게 마음을 둔다.
  • 기노시다 세쯔꼬(木下節子). 히데요의 부인으로, 모또야마의 명가 출신이다. 결혼 전 성은 리노이에(李家)이다.
  • 기노시다 게이꼬(木下惠子). 히데요와 세쯔꼬의 외동딸로, 중학교 3학년이다.
  • 기노시다 헤이따로우(木下平太郞/박원신, 朴元信). 히데요의 큰아버지로, 세이슈우에 거주한다. 세이슈우로 내려온 히데요에게 조선의 언어와 역사에 대해 들려준다.
  • 시마즈 도끼에(島津時技). 한도우 경금속 직원. 히데요의 직속 부하로, 시마즈 요시히로의 직계 후손인 화족이다. 히데요를 짝사랑하나 에릭 앤더슨과 결혼한다.
  • 에릭 앤더슨. 스웨덴계 미국인. 한도우 경금속과의 합작 투자 대상인 미국 기업 '유사라무'의 직원. 도끼에와의 결혼 이후 유럽으로 부임한다.
  • 야마시다 소우따로우(山下曾太郞). 한도우 경금속 과장으로, 히데요의 경쟁자이다. 오사카 대학 출신으로 입사도 늦었으나, 내지인이라는 이점과 군부 요직의 외삼촌 덕분에 히데요 대신 부장으로 진급한다.
  • 아오끼 류우사부로우(靑木龍三郞) 소좌. 보안대 소속의 헌병 소좌. 세쯔꼬의 후배인 아오끼 리에(靑木李技)의 남편으로, 세쯔꼬를 농락하고 게이꼬를 성희롱하다 히데요에게 살해당한다.
  • 소우고우(소공, 小共) 스님. 샤꾸오우지의 주지. 한용운의 의발의 두 번째 계승자로, 한시에 능하며 히데요에게 <님의 침묵>을 조선어로 낭독해 주고 한용운의 의발을 전수한다.
  • 하꾸야마 마사오미(白山正臣). 조선 평론가 협회 간사이자 전선사상보국연맹 회원이자, 히데요의 '갱생교육' 강사이다. 본래 촉망받던 평론가이나, 일본에서 열린 학회에서 가야마 미쯔로우의 소설 원본을 발견하여 처음 조선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독립운동을 시도하고, 고문을 받고 전향한다.

언급된 인물편집

  • 사노 히사이찌(佐藤久一). 도쿄제국대학 교수이자 <독사수필>의 저자. 1987년 쿠데타 이후 체포된다.
  • 도우고우 노부오(東郷展男). 해군 출신의 조선 총독.
  • 아베 하루노리(阿部治憲). 소설의 시작 시점의 일본 수상.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전쟁 실패와 민주화 운동 진압 실패의 책임을 물어 사퇴한다.
  • 사또우 게이스께(佐藤圭介). 아베 총리 후임으로 들어선 공군 예비역 대장 출신 수상. 공군이 조각한 내각이나 결국 육군의 쿠데타에 무너진다. 이후 연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 아라끼 마사야스(荒木昌保) 중장. 사또우 내각을 뒤엎은 쿠데타의 주역인 육군 중장으로 쿠데타 당시 보직은 수도군단장. 처음에는 히또쯔바시 대장을 내세우나 자신이 전면에 나서 수상이 된다.
  • 히또쯔바시 히로모또(一橋廣元) 대장. 육군 참모차장으로서 아라끼의 쿠데타를 묵인하는 대가로 호국군사위원회 위원장이 되나 아라끼에 의해 제거된다.

언급된 실존 인물편집

배경편집

 
비명을 찾아서에서의 1987년(쇼와 62년)의 아시아 지도

시간적 배경은 책이 집필된 것과 같은 시기인 1987년(쇼와 62년)이다. 소설은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암살 기도에서 부상만을 입었고, 그 뒤에도 16년을 더 생존했다는 대체 역사적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정계에 있어 온건파의 구심점이었고, 군국주의 세력을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생존은 다이쇼 시대의 일본 정국과 동북아시아의 정세, 전 세계 역사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체 역사편집

1910년 한국을 합병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통치를 강화해 1920년대 초반까지 조선을 대륙 진출의 전진 기지로 만든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는 내각과 군부 사이 협조 속에서 국제 여론을 무마해가면서 만주를 세력권 안에 넣는다. 1940년대 초반에는 미국으로부터 '만주국 문제'에 대한 양해를 얻는 데 성공해 동북아시아에서 지도적 위치를 구축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미국과 영국에 우호적인 중립을 지켜 큰 번영을 누린다.[8]

조선편집

조선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통치된다. 조선 총독은 현역 또는 예비역 육군, 해군, 공군 대장만이 될 수 있으며, 일본 내에서 수상 다음의 지위를 차지하여 수상으로 가는 정치적 능력의 시험대로 여겨진다.[9] 총독 관저는 지신다이(慈信臺)라 불린다.

이토 히로부미 초대 총독에 의해 추진된 '조선의 내지화 정책'은 역대 총독들에 의해 계승되어, 조선은 일본에 완전히 동화된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력히 추진된 '국어 상용 운동'으로 조선어는 1940년대 말까지 한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조선 역사 왜곡 작업과 '비국어 서적 폐기 정책'에 의해 조선의 역사도 말살된다. 1980년대의 조선인들은 대부분 충량한 황국 신민이 되고, 압제와 모멸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10] 역사책에서도 징꼬우 황후의 조선 정벌 이후로 조선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조선인의 기원은 스사노오 노미꼬도라고 교육된다. 조선사에 대한 책들은 모두 교토제국대학으로 옮겨지며, 족보의 제작과 소유 또한 출판사업법과 치안유지법에 저촉된다.

조선의 인구는 약 5천만 명이며, 빈부 격차는 대단히 크다. 조선총독부는 내지의 공해산업을 조선으로 유치하고, '조선 환경 보전 공사'를 통해 헤이안호꾸도우 산지나 가이바 고원 등의 오지에 매립지를 만들며, '신생활 운동'으로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도우요우 다꾸쇼꾸(東洋拓殖)가 센스이왕 간척 사업을 주도한다. 조선 최대의 도시 게이조우는 인구 약 3백만 명, 면적은 도쿄의 1/4이며, 1992년 하계 올림픽게이조우에서 열릴 예정이다. 후요에는 징고우, 게이조우에는 야스꾸니 진자(靖國神社)가 지어져 있다.[11] 1956년의 제국의원법 개정 이후 조선에서 15인의 칙선 귀족원 의원과 각 도부군협의회에서 3인씩 선출되는 45인의 중의원 의원을 선출하고 있다.[12]

상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7년 고종 승하와 '정사년 만세 운동' 이후 설립된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이 '만주국 문제'에 대해 타협점을 찾은 이후 몰락하여 테러리즘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73년 상해 중산 국제공항에서 '일본 제국 항공사' 여객기에 대한 공격으로 수뇌들이 체포되고, 현재는 소속 인원도 중국 태생의 조선인들뿐이다.[13]

현실 비명을 찾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안변 (Anbyŏn) 안삥(安邊) (Anpin)
장진 (Changjin) 나가즈(長津) (Nagazu)
추가령 (Chugaryong) 슈우카레이(楸哥嶺) (Shukarei)
해주 (Haeju) 까이슈(海州) (Kaishu)
함흥 (Hamhŭng) 교우난(興南) (Kyonan)
함경남도 (Hamgyŏngnam-do) 강꾜우난도우(咸鏡南道) (Kankyonan-do)
허천 (Hŏchŏn) 고가와(虚川) (Kogawa)
정주 (Jŏngju) 조우슈우(定州) (Joshu)
개마고원 (Kaema Plateau) 가이바 고원(蓋馬高原) (Kaiba Plateau)
길주 (Kilju) 기쯔슈우(吉州) (Kitsushu)
고원 (Kowŏn) 다카하라(高原) (Takahara)
금야 (Kŭmya) 에이교우(英興) (Eigyo)
온성 (Onsŏng) 낭요우(南陽) (Nanyo)
백두산 (Paektu-san) 하쿠도우상(白頭山) (Hakudo-san)
평양 (Pyongyang) 헤이조우(平壌) (Heijo)
평안북도 (P'yŏng'anbuk-do) 헤이안호꾸도우(平安北道) (Heianhoku-do)
낭림산맥 (Rangrim Mountains) 로우링 산맥 狼林山脈) (Rorin Mountains)
삼방협 (Sambang-yong) 산보우교우(三防峽) (Sanbokyo)
신의주 (Sinŭiju) 신기슈우(新義州) (Shingishu)
원산 (Wŏnsan) 모토야마(元山) (Motoyama)
  대한민국
안동 (Andong) 안도우(安東) (Ando)
봉황산 (Bonghwang-san) 호우오우상(鳳凰山) (Houou-san)
북악산 (Bugak-san) 게이호쿠상(京北山) (Keihoku-san)
부산 (Busan) 가마야마(釜山) (Kamayama)
부여 (Buyeo) 후요(扶餘) (Fuyo)
청주 (Cheongju) 세이슈우(清州) (Seishu)
천수만 (Cheonsuman) 센스이왕(淺水灣) (Sensuiwan)
충청북도 (Chungcheongbuk-do) 쭈우쇼우호쿠도우(忠清北道) (Choshohoku-do)
충청남도 (Chungcheongnam-do) 쭈우쇼우난도우(忠清南道) (Chushonan-do)
충주 (Chungju) 쭈우슈우(忠州) (Chushu)
충무로 (Chungmuro) 혼마찌(本町) (Hon-machi)
도화동 (Dohwa-dong) 도우카마찌(桃花町) (Toka-machi)
동두천 (Dongducheon) 토우도우가와(東豆川) (Todogawa)
동작동 (Dongjak-dong) 도우자꾸마찌(銅雀町) (Dozaku-machi)
김포국제공항 (Gimpo International Airport) 가네우라 공항(金浦空港) (Kaneura Airport)
광흥창 (Gwangheung-chang) 오오꾸라마찌(大倉町) (Okura-machi)
경부선 (Gyeongbu Line) 게이가마 선(京釜線) (Keigama Line)
경원선 (Gyeongwon Line) 게이모또 선(京元線) (Keimoto Line)
한강 (Hangang) 강가와(漢江) (Kangawa)
한남동 (Hannam-dong) 간남마치(漢南町) (Kannan-machi)
흥인지문 (Heunginjimun) 도우다이몬(東大門) (Todaimon)
홍성 (Hongseong) 고우조우(洪城) (Kojo)
전라도 (Jeolla-do) 젤라도우(全羅道) (Zenra-do)
전주 (Jeonju) 젠슈우(全州) (Zenshu)
진해 (Jinhae) 찡까이(鎮海) (Chinkai)
조치원 (Jochiwon) 조우치엥(鳥致院) (Chochiin)
만리동 (Malli-dong) 만리마찌(萬里町) (Manri-machi)
마포구 (Mapo-gu) 아사우라구(麻浦區) (Asaura-ku)
목포 (Mokpo) 보쿠우라(木浦) (Bokuura)
명동 (Myeong-dong) 메이지마찌(明治町) (Meiji-machi)
남산 (Namsan) 게이난상(京南山) (Keinansan)
삼청동 (Samcheong-dong) 미기요마찌(三淸町) (Migiyo-machi)
서울 (Seoul) 게이조우(京城) (Keijo)
서울역 (Seoul Station) 게이조우 역(京城驛) (Keijo Station)
소요산 (Soyo-san) 쇼우요우상(逍遥山) (Shoyo-san)
숭례문 (Sungnyemun) 난다이몬(南大門) (Nandaimon)
수원 (Suwon) 미즈하라(水原) (Mizuhara)
원남동 (Wonnam-dong) 엔난마찌(苑南町) (Ennan-machi)
양화대교 (Yanghwa Bridge) 다이니강가와바시(第二漢川橋) (Dai-ni-kangawa-bashi)
영등포구 (Yeongdeungpo-gu) 에이도우라구(永登浦區) (Eidoura-ku)
용산구 (Yongsan-gu) 류우야마구(龍山區) (Ryuyama-ku)

일본편집

일본 제국은 모든 면에서 미국과 소련에 이어 세계 제3위의 강대국 지위를 누린다. 일본의 영토는 만주 사변 직후의 판도와 흡사하다. 가라후토치시마 열도를 포함하는 일본 본토와 함께 조선총독부대만총독부를 통치하고 있고, 요동 반도의 관동주, 산동 반도의 교주만을 조차지로 가지며, 국제연맹에 의해 남양 군도를 위임통치하고 있다.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이며, 일본에 의해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일본은 내지의 고급 인력과 자본, 조선의 노동력, 만주국의 자원을 결합하여 아우타르키를 형성하고 있으며, 일본과 만주국을 합하면 경제적으로는 소련을 앞서고 있다.

일본은 국내적으로 온건파 정권 이후 도우조우 히데끼가 1950~1960년대에 18년 동안 집권하고 쇼우와 유신 체제를 수립하며, 이후 육군, 해군, 공군 대장이 수상을 역임하는 통제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국가보위법, 치안유지법, 방공법 등을 통해 국민들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다. 황국신민증신민 번호를 전 국민에게 발급한다. 극장에서는 국가 연주와 제국 소식 상영이 이루어진다.[14] 수상 직속의 국가보안처황군특무사령부는 사회 각계에 영향력이 있다.

일본의 총 병력 규모는 약 240만이며, 자국산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육군, 해군, 공군이 군부의 세 축을 이루며, 공군은 해군 항공대 중심으로 발달해 1947년에 해군에서 분리된다. 1951년 4월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 부활으로 육군대신, 해군대신, 공군대신 자리에는 현역 중장 또는 대장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를 이용해 군부가 내각을 붕괴시킬 수 있다.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 1973년에는 '8·15 사건', 1987년에는 '7·31 궐기'가 발생하며, 부패가 심해 해군이나 공군의 수뇌들이 뇌물을 받기도 한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젊은이들은 육군사관학교해군병학교로 가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퇴역 군인들에게 고위 경찰직이나 기업 요직을 알선해 주고 있다.

1932년 만주 사변이 발생하고 1933년 만주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일본은 중국과 분쟁을 겪고 있다. 62사단 120만 병력을 보유한 관동군은 만주 일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 몽골인민공화국, 소련과 대치하고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유격전에 고전하고 있다. 일본은 1938년에 중화민국과의 전투, 1939년에 노몬한 전투, 1960년대에 소련과의 '흑하 사건'과 '기건 사건', 1985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찰합이성 전투에 처한다. 전시 체제가 유지되고 있어 연간 120시간의 예비군 훈련, 달마다 방공 훈련이 이루어진다. 국민정신총력연맹, 신생활운동본부, 국민의용대, 청년특별연성대, 애국반상회, 그리고 위안부로서의 데이신다이가 운영되고 있다.

만주국은 선통제 이후 제2대 후강희제가 왕조를 계승하고 있으며, 일본, 독일, 교황청, 이탈리아, 미국 등 53개국으로부터 승인받는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중국 해방 통일 전선' 등의 지하 조직들이 뻗어나가 경찰서와 일본 영사관에 테러 공격이 발생하고 있으며, 만주국의 대학생들에게서는 신경대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좌익 계열의 중국 통일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편집

세계는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 체제이나,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의 식민 제국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국제 연맹이 유지되고 있으며, 일본은 1940년에 미국과 함께 국제 연맹에 재가입하고, 소련도 재가입하게 된다. 상임이사국에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일본이 올라 있다.

미일 관계는 항상 우호적이며, 도우조우 히데끼가 미국 의회에서, 존 F. 케네디가 일본 의회에서 연설하기도 한다. 미국은 일본 - 만주국 - 중화민국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연결하여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항하는 전략을 위해 중화민국과 일본의 화해를 종용하며 미국, 일본, 중화민국의 연합을 추진하고 있다.[15] 이에 따라 중화민국은 만주국을 승인하게 된다. 소련은 식민 제국들에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중화인민공화국과 연합하고, 현재는 빅토르 그리신이 소련 서기장에 올라 있다.

국제 연맹의 확대로 인해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과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스페인 내전 종결은 1940년으로 늦춰지게 되며,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웬델 윌키가 당선된다.[16] 독일은 1942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나 1947년 미국의 드레스덴, 브레멘 원자폭탄 투하와 함께 패전한 후 점령국 미국의 도움으로 전후 복구에 성공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한 폴란드와 수도 바르샤바동서로 분단된다.[17] 스페인은 군사 독재가 유지되고 있다.

식민 제국들의 식민 지배가 계속되면서 일부 식민지들은 종주국에 너무 동화되거나 경제적, 문화적으로 종속되어, 식민지 주민들이 자신들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식민지들로는 영국의 로디지아나이지리아, 프랑스의 코친차이나세네갈, 벨기에의 콩고, 포르투갈의 동아프리카, 소련의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일본의 조선 등이 있다.[18]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북부에서는 베트민과 프랑스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국제 연맹의 중재로 프랑스와 베트민이 제네바에서 휴전 협상을 진행한다.

중국에서는 제2차 국공 합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국민당의 공산당 토벌로 1936년 모택동, 주은래, 주덕 등 핵심 간부진이 연안에서 전사해 공산당은 와해되나, 1940년 유소기가 다시 공산당을 재건하여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50년 11월 신강성을 거점으로 '신강 소비에트'를 수립하여 화북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하여 1952년에는 신강성의 태반과 감숙성 북부를 차지하게 되고, 1953년 4월 내란을 선언한 국민당 정부는 장개석의 실정으로 인해 몰락한다. 공산당의 '토지 개혁 선언'으로 전세는 반전되어 1956년 2월 공산당이 북경천진을 점령하고 3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지만, 황하 남쪽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일본군이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일본의 '도우조우 선언'이 발표되자, 1956년 7월 정주에서 이종인팽덕회가 양국 대표로서 휴전 협정을 맺어 황하를 경계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대치하게 된다.[19] 현재 중국 대륙에는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만주국 세 나라가 들어서 있다. 중화민국과 접한 상해는 국제 연맹의 감독 하에 자유시로 지정되며, 각국의 조계 및 명맥만 유지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위치해 있다.[20]

《2009 로스트 메모리즈》와의 설정 논란편집

2002년작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와 설정이 비슷하여 논란이 되었으나 영화 제작사에서 판권을 사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각주편집

  1.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 상, ISBN 89-320-0979-1, 문학과지성사, 2010, p. 9.
  2.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 하, ISBN 89-320-0980-5, 문학과지성사, 2010, p. 52.
  3. 현실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해군을 지휘하다가 미 해군의 공격으로 전사했다.
  4. 《비명을 찾아서》 상, p. 70.
  5. 현실에서는 1970년에 자살하여 원로출판인 와시오 켄야 선생이 청년시절인 1970년대의 큰 사건으로 요요기계와 비요요기계의 학생운동과 함께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을 《편집이란 어떤 일인가》에서 다루기도 했다.
  6. 《비명을 찾아서》 하, p. 226.
  7. 《비명을 찾아서》 하, p. 47.
  8. 《비명을 찾아서》 상, p. 10.
  9. 《비명을 찾아서》 상, p. 43.
  10. 《비명을 찾아서》 상, p. 11.
  11. 《비명을 찾아서》 상, p. 25.
  12. 《비명을 찾아서》 하, p. 41.
  13. 《비명을 찾아서》 상, p. 251.
  14. 《비명을 찾아서》 상, p. 69.
  15. 《비명을 찾아서》 하, p. 139.
  16. 《비명을 찾아서》 상, p. 89.
  17. 《비명을 찾아서》 하, p. 242.
  18. 《비명을 찾아서》 상, p. 248.
  19. 《비명을 찾아서》 상, p. 77.
  20. 《비명을 찾아서》 상, p. 250.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