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Lexus/2013.5.1~2013.9.3

토론 추가
활성화된 토론

책 제목 한자 병기편집

안녕하십니까? 우연히 장충식 문서를 보고 몇 마디 드립니다. 책 제목의 한자를 함께 남길 때, ‘《만인보(萬人譜)》’식 말고 ‘《만인보》(萬人譜)’식으로 해 주세요. 위키백과:편집 지침 중 〈5.2.1 따옴표와 주요 문장 부호〉와 〈5.2.3 작품 제목 표시에 쓰이는 부호〉를 살펴보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고은 시의 전문을 남기셨던데, 생존 시인이니 당연히 시의 저작권이 그분에게 있는 것이고, 텍스트 인용은 세 문장 이하만 허용되니, 분류:인용 틀을 써서 세 문장 이하만 남기는 것이 좋겠습니다.--Eggmoon (토론) 2013년 6월 12일 (수) 09:51 (KST)

지적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고은 선생님의 만인보 인용은 장충식 이사장님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비롯한 것입니다. 고은 선생님은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이미 단국대학교 명예 박사학위와 더불어 단대신문에 게시된 내용 등을 통하여 허락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실탐구 2013년 6월 12일 (수) 13:22 (KST)

각 부처의 장차관 표편집

각 부처의 장차관 표에서 폭을 크게 줄이셨던데요. 너무 줄이셨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너무 타이트하다는 인식이 듭니다. 대수 같은 경우에는 '서리', '임시', '직무대리' 등과 같은 한글도 포함되어 있는데 무리하게 2줄로 나눌 필요성까지 있나 싶습니다. 이름 같은 경우에도 주석이 2개 오는 경우에는 하나가 내려가버립니다. 임기 역시 월과 일이 두 숫자(예를 들어 2000년 11월 11일~2001년 11월 11일)같은 형식이 되면 또 2줄이 되어 버립니다. 출신학교 같은 경우도 너무 줄이셨던데 그렇게치면 대한민국에 비해 교명이 긴 외국의 대학(예를들어 미국 시러큐스대, 영국 옥스퍼드대)의 경우에는 3줄로도 내려가게 됩니다(이 경우 대한민국의 서울시립대, 한국신학대와 같은 경우도 2줄이 됩니다.). 표의 폭은 제가 멋대로 정해놓은 거지만 최대한 1줄로 유지될 수 있도록 맞춰놓은 것이니 이 점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6월 23일 (일) 10:43 (KST)

음.. 그런데 '비고'가 한줄로 나와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네요. 2줄로 내려가는 경우도 제법 있거든요.
그리고 양이 많아 도와주시기 힘드시다면 제가 나중에 하도록 하지요. Lexus 님의 편집 방향도 고려해서 좀 더 효율적으로 편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6월 23일 (일) 11:02 (KST)

1차적으로 수정은 해놓았지만 아직 덜된 문서나 수정이 필요하는 미흡한 문서는 Sjsws1078흑메기님이 효율적인 편집으로 매듭해 주시길 바랍니다. 진실탐구 2013년 6월 23일 (일) 11:43 (KST)

단국대 문서편집

진실탐구님 안녕하세요. 제 사용자 토론에 남겨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항상 단국대학교 문서를 가꿔 나가시는데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편집을 많이 못해서 개인적으로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요. 세심한 배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함께 문서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잘 편집해나갔으면 합니다. :-)--라떼처럼 토론 2013년 7월 31일 (수) 19:24 (KST)

문서 제목을 정하실 때편집

안녕하세요? 항상 유익한 내용으로 위키백과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계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최근에는 각종 신화, 설화, 민담 등을 정리하여 올리고 계시는데, 백과사전에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시간을 내서 정리하려다가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는데, Lexus 님께서 이렇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문서의 제목을 정할 때, 몇 가지 의견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1. 문서 제목을 단어별로 띄어쓰기 : 신라박혁거세신화 --> 신라 박혁거세 신화와 같이 단어별로 띄어서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표제어를 정할 때, 단어별로 띄어서 쓴 것을 표제어로 하고, 붙여서 쓴 것을 넘겨주기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띄어쓰기를 할 경우, 위키 검색에 더 잘 노출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2. 제목에 국가명 생략 : 신라박혁거세신화 --> 박혁거세 신화라고 제목을 짧게 정하면 좋겠습니다. 굳이 '신라'라는 나라 이름을 앞에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신라김알지신화 --> 김알지 신화, 부여동명왕신화 --> 동명왕 신화, 동부여금와왕설화 --> 금와왕 설화, 고구려추모왕신화 --> 추모왕 신화, 가야김수로왕신화 --> 김수로왕 신화, 신라석탈해신화 --> 석탈해 신화 ... 이런 식으로 문서의 표제어를 짧게 변경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8월 10일 (토) 20:17 (KST)

요즘 '김수로왕'이나 금와왕하면 신라인이나 고구려인으로 생각하는 대학생도 생겨나 역사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실감케됩니다..그래서 그 문제를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요즘의 세대들이 역사에 관심이 별로 없다보니 어느 시대의 무슨 나라인지 잘 모르분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위키백과에서 관리나 편집하시는 분들은 역사에 관심이 많고 세세한 부분까지 옳게 혹은 틀리게 작성되었는지 판별할 수가 있지만요..그래서 일부러 구별을 해보았던 거지요..나라를 넣다보니 띄어서 쓰게되고 더욱 길어지는 제목이 되어 결국 붙여쓰고 말았습니다..다른 백과사전류의 제목도 띄어서 혹은 붙여 사용하기에 위키백과의 최대 장점인 넘겨주기가 있다는 생각에 다소 읽기에 불편하더라도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그러나 관심과 의견에 감사드립니다..그리고 거듭 주신 반스타에 감사드리며 고히 간직 하겠습니다..요즘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항상 행운을 함께하여 건승하십시요..진실탐구 (토론) 2013년 8월 11일 (일) 07:58 (KST)
1. 띄어쓰기 : 저도 개인적으로는 단어별로 모두 띄어서 쓰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만, 현행 한국어 위키백과의 다른 문서들이 단어별로 띄어쓰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기존 관례를 존중하여 띄어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 국가명 생략 : 인물명 앞에 국가명은 생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김수로왕이 신라의 왕인지 가야의 왕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하여, 가야 김수로왕이라고 표제어를 정하지는 않은 것처럼, 국가명 없이 김수로왕 신화(또는 수로왕 신화)라고 표제어를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조선 이순신이라고 하지 않고, 박혁거세신라 박혁거세라고 하지는 않으며, 링컨미국 링컨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8월 21일 (수) 01:16 (KST)

반스타를 드립니다.편집

  신화 반스타
한국의 신화, 설화, 민담 등을 잘 정리해 주신 Lexus 님에게 이 반스타를 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8월 10일 (토) 22:07 (KST)

송구스럽지만 잘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죽전동 (용인시) 분리 관련편집

빈약한 동 문서의 내용을 채워주신 것에 대해서는 감사합니다만, 죽전1동과 죽전2동으로 문서 분리를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문서 내용도 별 차이가 없고, 선사유적 내용도 죽전1동, 죽전2동에 모두 해당되는 내용이라 분리의 실효성이 없는 듯합니다. 다른 모든 번호가 붙은 행정동은 해당 법정동 문서에 통합되어 있습니다. 다시 합쳐봐도 괜찮을는지요. -半月 (·) 2013년 8월 17일 (토) 14:25 (KST)

죽전동은 1.2동으로 나눠있어 여러가지 서술에 제약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위치 및 교통에 혼동을 주기도 합니다. 모쪼록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병합이 쉬울 정도로 문서 내용이 별로 차이가 없는데 서술에 제약이 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교통은 병합 시 본문 참조 넣고 버스 번호만 적는 식 등으로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半月 (·) 2013년 8월 17일 (토) 14:39 (KST)
여기 행정구역 프로젝트 토론에 ##1동, ##2동 식의 문서 생성을 삼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半月 (·) 2013년 8월 17일 (토) 15:00 (KST)
견해가 좀 다른 것같습니다..그것은 종로1·2·3·4가동, 종로5·6가동은 행정동이라는 표현처럼 같은 동사무소에서 관리하는 경우에는 해당이 될 것같습니다만 엄연히 행정동이나 법정동이 분리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좀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귀하 말씀대로라면 종로1.2.3.4가동 관할 종로1가, 종로2가, 등등 다 만들어야 할까요? 이것 또한 법정동이 분리되어있는 예이죠.
이전 토론 중 “... 다른 백과사전(예, 향토문화대전)도 분리되어 명시하는데...”에 덧붙여, 다른 백과사전 중 향토문화대전 말고 어느 백과사전이 분리해서 나오나 알고 싶네요.
덧붙여, 토론이 매듭지어지지도 않았는데 문서를 또 분리하시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만... -半月 (·) 2013년 8월 18일 (일) 06:59 (KST)
유래를 같이 하는 동은 분리해도 내용이 많이 겹친다고 이전에 건 링크에 나와 있습니다. 오히려 분리는 같은 문서를 두 개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죠. 대부분이 양쪽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내용이라 양쪽 문서 보완하고 손보면 문제 없이 절반 이상의 내용이 같은 문서를 두 개 만들 수 있다니까요?-半月 (·) 2013년 8월 18일 (일) 07:50 (KST)

최근 추가하신 내용에 대한 경고편집

고조선, 단군조선, 신시 등의 문서에 하신 편집을 삭제하였습니다. 해당 문서에 추가하신 내용들은 출처도 불분명하고 내용 자체가 항목과 무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므로 명백한 삭제 대상입니다. 예를 들어 단군조선에 하신 편집을 한 번 봅시다.

다만 문헌상 존재하는 부여국동명왕 신화와 고구려의 해명태자 설화를 통해서 당시 상황을 조금은 추정할 수 있다고 본다. 단군조선이 멸망한 시기(B.C 238년경) 이후에 부여성은 고구려의 북부여성이며 발해의 부여부(扶餘府)인데, 요(遼)나라가 발해를 멸한 뒤 부여부 지역에 황룡부(黃龍府)를 설치했고, 그것이 금대(金代)에 융안부(隆安府)가 되며 오늘날의 농안부근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위 내용이 들어 있는 부분은 문헌기록 항목입니다. 대체 저 내용과 문헌기록이 무슨 관계입니까? 그리고 애초에 저 내용 자체도 단군조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여성 및 황룡부의 위치에 대한 내용입니다. 도대체 저 내용이 단군조선#문헌 기록 항목에 왜 들어가야 합니까? 게다가 단군조선이 멸망한 시기라고 써 놓은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고조선 문서에 추가하신 내용과 연관지어 살펴보죠.

. 따라서 국내외 학자들은 고조선을 한반도의 최초의 국가로 인정하고 다소의 논란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단군조선(BC 2333 ~ BC 238) · 기자조선(BC 1122 ~ BC 195) · 위만조선(BC 195 ~ BC 108) 등으로 구별해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학계 어디에서도 단군조선의 연대를 BC 2333~BC238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해당 연대는 《환단고기》와 같은 학계에서 위서로 판단하고 있는 기록에만 나오는 것으로 귀하께서 출처로 첨부하신 동북아역사재단 저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이 명백합니다. 즉, 가짜 출처에 해당합니다. 가짜 출처가 아니라면 해당 내용이 저 책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소위 재야사학의 주장에 해당하며, 위키백과의 원칙상 본문에 이렇게 막대한 비중으로 서술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애초에 본문 내용과 아무런 관련조차 없는 내용입니다. 뭔가 관련성이라도 있으면 짧게 요약해서 서술할 가치라도 있겠는데, 아예 문서의 주제와 관련성 자체가 없어요. 대체 이런 것을 왜 실어야 합니까?

이런 식으로 항목과 무관하고 쓸모 없는 내용을 추가하고 심지어 가짜 출처까지 다는 것은 심각한 위키백과의 원칙 위반입니다. 정확한 해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나 가짜출처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징계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3년 8월 19일 (월) 11:33 (KST)

덧붙여 다른 내용들에 대해서도 검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책임을 지셔야 할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3년 8월 19일 (월) 11:34 (KST)

가짜 출처에 대한 경고편집

방금 고조선 문서에 달았던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귀하께서 다신 내용은 저 책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더군요. 앞서 지적한 연도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해당 연도 문제만으로도 명백한 가짜 출처에 해당합니다. 《환단고기》에 근거하지 않는 한 기자조선과의 공존 884년이라는 연도는 아예 나올 수조차 없으니까요. 당연히 위 책에는 저 내용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하게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책을 과연 읽기는 하셨습니까?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내용에 대해서 왜 저 책을 출처로 다셨습니까? 확실하게 해명하지 않으시면 징계를 요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3년 8월 19일 (월) 15:04 (KST)

귀하의 발언을 토대로 귀하가 위 책을 읽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귀하는 전기 고조선(단군조선), 후기 고조선(기자조선), 위만조선의 구분을 따왔다고 말했죠. 하지만 이청규 교수의 전기 고조선과 후기 고조선, 위만조선은 단군조선, 기자조선과 관련이 없는 견해입니다. 이청규 교수가 말하는 전·후기 고조선은 BC3세기 경 연나라에게 밀려나는 것을 경계로 구분하는 것을 말하며, 애초에 북한의 시대구분론을 언급하면서 단군을 이야기했을 뿐, 전기 고조선과 후기 고조선에 대해서 단군이나 기자는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즉, 귀하는 저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목차 운운하는 것을 보니 목차만 보고 지레 짐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군요. 확실하게 말씀하십시오. 저 책을 읽었습니까? 읽지 않은 채로 저런 출처를 달았다명 명명백백한 가짜 출처가 됩니다. 확실하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3년 8월 20일 (화) 10:10 (KST)

Xakyntos (토론) 사용자에게 묻습니다..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겁니까?편집

『고려사』에 “평양에 도읍한 단군이 전조선(前朝鮮)이고 기자조선은 후조선(後朝鮮)이며… 41대 후손 준왕(準王) 때 연나라 사람 위만이 나라를 빼앗아 왕검성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조선(衛滿朝鮮)이다(卷58 志 卷12 地理)”라고 한다.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단군에 의한 조선을 전조선(前朝鮮), 기자에 의한 조선을 후조선(後朝鮮)이라 하고 위만조선을 후속시켜 고조선을 삼조선(三朝鮮)으로 나누고 있지만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이라는 이름 아래 단군조선, 기자조선을 포괄하고 있다.

위키백과에서도 이미 기술해 놓았듯이 기자조선은 단군조선과 같은 ‘조선’이지만, 구분을 위해 후조선이라 부르고 있다.. 학계에서 단군에 의한 조선을 전조선(前朝鮮), 기자에 의한 조선을 후조선(後朝鮮), 그리고 위만조선으로 구분하는 것이 고조선에 대한 대체적인 분류이다.

신채호(申采浩)는 한국의 상고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종래의 한국사의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식체계를 수립하였다. 종래의 단군·기자·위만·삼국으로의 계승과 단군·기자·삼한·삼국으로의 계승되는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신채호는 실학시대의 이종휘(李種徽)의 《동사(東史)》에서 영향을 받아 대단군조선·고조선·부여·고구려 중심의 역사인식체계를 수립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상고사』에 대한 설명 참조)

그러나 이청규 교수가 분류하는 전기 고조선과 후기 고조선, 위만조선은 위의 내용과 관련이 없다? - 이청규 교수가 말하는 전·후기 고조선은 BC 3세기 경 연나라에게 밀려나는 것을 경계로 구분하는 견해는 이미 환단고기의 단군조선(B.C 2333 ~ B.C 238)과도 상통하는 내용으로 삼국유사의 공존(병존)를 증명해주는 얘기가 아닌가요?

“진한(辰韓)은 본래 연(燕)나라 사람들이 피난해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탁수(涿水)의 이름을 따서 거처하는 마을을 사탁(沙涿)이나 점탁(漸涿) 등으로 불렀다.” 신라인들의 방언에 탁(涿)을 읽을 때 도(道)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혹 사량(沙梁)이라고 쓰고, 량(粱)을 도(道)라고 읽었다.



단군조선이 기원전(B.C) 238년경(환단고기로 임의로 추정함)에 멸망하면서 72국으로 흩어져 살았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 第一卷, 제1기이(第一紀異) 72국(七十二國), 조선의 유민들이 70여 국으로 나뉘다)의 기록과 후한서(後漢書)에 이르기를 서한(西漢)은 조선의 옛 지역에 처음에는 4군을 두었다가 뒤에는 2부를 두었는데, 법령이 점차 번거로워지면서 갈라져 78국으로 나뉘고 각각 1만 호씩이다라고 하였다는 기록에 의거 연나라에 살던 단군조선의 유민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신라 말의 문장가이자 학자인 경주 사량부의 사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밝힌 《삼국유사》에서의 내용과 옛날 진한(辰韓)의 땅에는 6촌(六村)이 있었다는 전제로 전한 연(燕)나라 사람들이 피난해 온 사실과도 일맥상통하는 일이고 해명태자 설화와도 의미가 닿는 견해라 생각되는데 왜 글자하나, 숫자하나에 매달리는지 모르겠군요. 나무만 보지말고 숲을 보았으면 싶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밝히지만 책은 빌려 참조했고 책 전체는 읽지는 않았서도 부분적으로 읽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자신의 자행한 행동엔 전혀 반성도 없고 오로지 가짜출처로만 몰아가는 모습이 너무 감정적입니다. 서로간 편집의욕을 상실케하는 피곤한 일이니 이쯤 해둡시다. 진실탐구 (토론) 2013년 8월 20일 (화) 21:52 (KST)

책을 읽었다면 아실텐데요? 이청규 교수는 기자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한 일이 없고, 단군에 대해서도 북한 학계의 동향을 말할 때 딱 한 번 언급했을 뿐입니다. 이청규 교수가 말한 전·후기 고조선은 요령을 중심지로 하는 고조선과 평양으로 밀려난 고조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군이나 기자와는 눈꼽만큼도 관련이 없고, 고고학 및 문헌에 따른 해석입니다. 귀하께서 그렇게나 믿고 싶어하는 《환단고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병존 운운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으며, 애초에 단군과 기자의 실존 여부조차도 학계에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문제입니다. 이 모든 내용은 고조선이나 단군조선, 기자조선 항목에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귀하는 도대체 무엇을 본 것입니까? 증명은 무엇을 증명한단 말입니까? 애초에 《환단고기》의 단군조선은 BC 3세기 연나라에게 밀려나는 사건에 대해 언급조차 안합니다. 해당 사건은 엉뚱하게도 《북부여기》에 적혀 있거든요.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날조하는 과정에서 《동사강목》을 비롯한 조선 후기 고조선 관계 사료를 잘못 베끼는 바람에 BC 3세기의 사건인 해당 사건이 BC221년, 즉 연나라가 멸망한 다음해로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귀하께서는 이런 사실 따위 전혀 모르시겠지만 말이죠. 1979년판 《환단고기》(광오이해사본)에는 이 오류가 남아 있으나, 이유립이 교정을 다시 본 1983년판 《환단고기》(배달의숙본)에서는 이 부분을 先時라는 문구를 추가해서 바꿔 놓았죠. 이렇게 실시간으로 오류를 교정해서 다시 출판하는 모습까지 찾아볼 수 있는 명명백백한 위서인 《환단고기》 따위를 대체 왜 버리지 못해서 이 난리를 피우십니까?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책을 읽었습니까? 그리고 그 읽은 내용을 토대로 적었습니까? 현재 귀하는 책을 읽었다는 증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설사 읽었다 하더라도 해당 내용에는 그 책의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으므로 가짜 출처를 단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하게 해명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3년 8월 20일 (화) 23:46 (KST)
≪환단고기≫ 범례에 의하면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계연수가 1911년에 ≪삼성기 三聖紀≫·≪단군세기 檀君世紀≫·≪북부여기 北夫餘紀≫·≪태백일사 太白逸史≫ 등 각기 다른 4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다음 이기(李沂)의 감수를 받고 묘향산 단굴암에서 필사한 뒤 인쇄했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위키백과의 문서 환단고기 개요에 환단고기》는 《삼성기 상(上)》, 《삼성기 하(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의 각기 다른 시대에 쓰여졌다는 5권(4종류)의 책을 엮은 것이다.

일연은 정사(正史)인 『삼국사기』에서 기록하지 않은 신이한 일을 자신의 저서에서 기록한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밝혔다. 『삼국사기』에도 신이한 일이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어서 『삼국유사』처럼 전편을 꿰뚫지는 못한다.

일연은 대업을 이룩한 역대 제왕이 모두 신이한 일이 있었던 것은 중국이나 우리 삼국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이제 그 신이한 일을 당당하게 기록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삼국사기』에서 기록하지 않았던, 단군조선과 위만조선, 그리고 조선왕 준이 세운 마한, 조선의 유민들이 흩어져 세운 72국, 오가야(五伽倻)와 부여 등등 삼국 이전의 고대국가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이로써 『삼국사기』에 빠져 있었던 고대사의 맥을 이을 수 있었다.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일연 지음, 신태영 옮김, 2012.8.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참조)

(일연은) 72국조를 통해, 『삼국유사』에서는 한(韓)의 종족을 조선의 유민으로 설정하여 조선→4군→2부→삼한 78국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상정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新羅史硏究會, 1996)

한편 72국조의 마지막에 붙은 세주에는 마한・진한・변한에 각각 “소읍(小邑)”이 있는데 모두 “국(國)”이라 칭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따르면 『삼국유사』에서는 “소읍”과 “국”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삼한의 “국”에 대해서는 『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한조에 마한과 진한 및 변진(변한)의 국명이 기록되어 있다. 즉 마한에는 원양국(爰襄國) 등 50여국이 있는데 대국(大國)은 만여 가(家), 소국(小國)은 수천 가라고 하였고, 진한에는 이저국(已柢國) 등 12국, 변진(변한)에는 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 등 12국이 각각 있었으며 대국은 4-5천 가, 소국은 6-7백가라고 하였다. 또 “국읍(國邑)”과 “읍락(邑落)”이라는 표현도 보이는데, “국읍”에는 “주수(主帥)”가 있었고 또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天君)”이 있었으며, “읍락”과 잡거(雜居)하여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고 하였다.

“읍락”은 본래 혈연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부락공동체적인 성격을 갖는 취락 단위였으나 삼한시대에는 이미 정치적 세력단위로 성장하였으며, 이들 읍락간의 차등화현상 속에서 삼한의 “국읍”이 등장하였다고 한다.(문창로, 2000) 그리고 “국”은 상대적으로 세력이 강한 중심의 “대읍락”을 지칭하는 “국읍”을 중심으로 하여, 재분배와 잉여생산물의 보관 등을 위한 경제적 기능, 외부세력과의 전쟁과 방어를 위한 군사적 기능, 다수의 읍락을 결집시키는 천군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기능을 가지고 있던 삼한의 정치세력 단위였다고 보고 있다.(이현혜, 1984; 권오영, 1995)

이들 “국”은 대체로 평균 인구 1만여 명으로 추측된 바 있으며, 준 국가단계인 군장사회(君長社會, chiefdom)로 이해하거나(김정배, 1986), 혹은 성읍국가(城邑國家)로 부르기도 한다.(천관우, 1989) 그러나 이 중 목지국(目支國), 사로국(斯盧國), 백제국(伯濟國), 구야국(狗邪國)과 같은 대국의 경우에는 이미 국가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기도 하며, 그 연장선에서 『삼국지』․『진서(晉書)』에 보이는 3세기 삼한의 왕들을 군사권과 대외교섭권까지 획득한 국가(state) 단계의 왕(king)으로 해석하기도 한다.(박대재, 2006) (김정배, 1986, 『韓國 古代의 國家起源과 形成』, 고려대학교출판부, 천관우, 1989, 『古朝鮮史․三韓史 硏究』, 일조각, 권오영, 1995, 「三韓社會 ‘國’의 구성에 대한 고찰」『韓國古代史硏究』10, 新羅史硏究會, 1996, 「『三國遺事』 譯註(3)」『朝鮮文化硏究』3, 문창로, 2000, 『三韓時代의 邑落과 社會』, 신서원, 박대재, 2006, 『고대한국 초기국가의 왕과 전쟁』, 경인문화사 참조)

Xakyntos (토론) 편집자가 위에 언급한 《북부여기》는 《환단고기》에 포함된 책인데 무슨말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군요..북부여기의 저자, 범장은 고려 말 금성(현 전라남도 나주)출신은 범장은 여말 충신으로 잘 알려진 정몽주의 제자로 호가 복애이므로, 복애거사라고도 불렀는데 공민왕 18년(1369)에 문과에 급제하여 덕녕부윤에 올랐던 분..이분이 아닌가요?

다시한번 묻습니다..대체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을 얘기하고자하는 겁니까?

한시대에 같이 역사를 배우고 공부하면서 왜 역사를 보는 눈이 편협적인가요? 오로지 단군신화를 꾸며진, 날조된 허구로 몰아대는 송호정과 맥을 같이하는 사람들 주장처럼 선사시대를 비롯한 한국의 상고사는 거짓이고 만들어진 얘기인가요?

현재 대한민국의 상고사에 대한 역사서라면 삼국사기, 삼국유사 계통의 역사서가 하나의 줄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명, 이암, 이맥, 이기, 이유립, 계연수같은 지식들이 편집한 환단고기라고 본인은 여겨지는데 그게 잘못된 겁니까? 왜 같은 책, 같은 내용을 읽어도 해석을 달리해야 하나요? 분명히 문서 전반에 참조된 내용(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환단고기 기타 역사서)과 동북아역사재단의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참조하여 맞춰보면 퍼즐처럼 조금씩 상고사의 사건들이 이루워져가는데 그것을 위서라는 말한마디로 평가절하하여 무시, 폄하, 폄훼하는 이유가 뭡니까?

BC 3세기경, 고조선(단군조선)지역에 무슨일이 발생했는데 환단고기처럼 BC 238년에 단군조선이 멸망했는지 아니면 《동사강목》처럼 BC 221년에 연나라가 멸망했는지 추정하여 알아보는 것이 한국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저 위의 인용문에 언급했듯이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공존(병존)으로 보았던 것이고 강단사학자들도 이제는 새로운 긍정적인 시각으로 상고사를 바라보려는데 유독 Xakyntos (토론) 편집자만은 이상한 해석으로 엄단주의에 입각하여 한민족 상고사 문서 곳곳에 대못을 쳐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소명이라구요? 그쯤 했으면 서로간의 다른 주의, 주장, 역사관과 가치관의 차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알고 있으니 동조시키려 하지말고 이제 결과나 지켜봅시다..진실탐구 (토론) 2013년 8월 21일 (수) 09:03 (KST)

아직까지도 가짜 출처의 진위가 의심된다면 위키백과의 최대의 강점이자 장점인 문서의 〈역사〉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고조선 문서의 〈이 문서의 기록〉에서 〈선택한 판을 비교하기〉를 누르면 고스란히 문서의 역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절대 눈가림으로 속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보면 판별이 가능합니다. 고조선 문서 기록들을 찾아보면 보여지겠지만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내놓은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책의 출처 참조는 다른 편집기여자분의 (출처필요)라고 달아놓아 그것을 요구대로 맞춰주기 위해 합당한 〈복수의 출처제공〉을 하였던 것이지요..가나다라...주석에는 복수의 출처 참조가 기록이 되기에 절대 속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이미 밝혔듯이 가짜출처는 성립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서야 Xakyntos (토론) 편집자의 헛된 오해와 추측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껴집니까? 누구나 얼마나 잘못된 추측이었는지 지금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진실탐구 (토론) 2013년 8월 24일 (토) 05:05 (KST)

주의 부탁드립니다편집

위키백과:사용자 관리 요청/2013년 제34주#사용자:Lexus 차단 재요청에서 Lexus님의 기여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독자 연구성 기여는 위키백과에서 권고하지 않는 점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3년 8월 25일 (일) 15:08 (KST)

<독자 연구성 기여>에 대한 주의 겸허히 받아드리겠습니다..진실탐구 (토론) 2013년 8월 29일 (목) 03:25 (KST)

최치원개천절 문서 수정 주의편집

또 다시 같은 위키백과 원칙 위반을 하셨습니다. 최치원 문서에서 최치원과 천부경의 관련성은 일부 소수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므로 그렇게 자세하게 언급될 가치가 없습니다. 게다가 최치원 문서에서 아주 장황하게 부도지에 대한 아무 관련도 없는 내용을 장황하게 넣으셨더군요. 귀하께서 써 놓은 부도지 관련 내용에서 최치원은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도지 문서 상에도 최치원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대체 최치원과 부도지가 무슨 관련이기에 그런 내용을 넣으셨습니까? 뭔가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니 썼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귀하가 써 넣은 내용을 읽어 보십시오. 최치원과 관련된 내용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아요. 인용문의 첫머리에 최치원의 발언이 나오긴 합니다만, 그것과 부도지는 아예 무관합니다. 대체 왜 이런 내용을 쓰셨습니까?
또 제가 직접 해당 내용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은 출처를 달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출처랍시고 장황하게 최치원 문집을 종류별로 모조리 나열셨더군요.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해당 내용이 그 문집에 나오는지 나오지 않는지 여부조차 확인이 불가능한 그런 식의 출처는 가짜 출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다. 설마 장장 수십권에 달하는 그 문집을 귀하께서 다 읽어보셨다는 의미는 아니겠지요. 이런 게 바로 가짜 출처입니다.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다시 또 이런 편집을 하실 시에는 분명하게 징계를 요청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3년 8월 27일 (화) 14:28 (KST)

한번 정말 확인해 볼래요?편집

정말 드러운 인간같군요..경고합니다..쫓아다니며 편집방해를 하지마시요..최치원과 천부경의 관련 내용이 수록된 책들이 만일 하나라도 밝혀진다면 어떻게 할래요? 최치원과 개천절에 관련된 책들을 님에게 확인이라도 받으면서 참조할까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는지..참 이해가 안되네요..진실탐구 (토론) 2013년 8월 27일 (화) 16:32 (KST)

확인할 필요도 없는데 말입니다. 제가 왜 《신동아》의 기사를 출처로 제시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문창후전집》에 천부경이 실려 있거든요? 밝히고 말고를 따질 필요도 없어요. 귀하의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멀쩡히 천부경에 대한 사실이 적혀 있는 책을 냅두고 왜 본인조차 읽어본 적이 없는 다른 수많은 최치원 관련 서적들을 쓸데없이 나열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천부경 운운하는 내용을 첨부하시고 싶으시면 그냥 확실한 출처인 《최문창후전집》 하나만 쓰면 땡이에요. 왜 다른 책들, 심지어 귀하가 읽어 본 적조차 없는 책들을 넣느냐 이말입니다. 다른 관련 책들에는 천부경 운운이 안나와요. 혹여 나온다고 쳐도 《최문창후전집》이 출처이기 때문에 다른 책들은 넣을 필요 자체가 없단말입니다. 이게 가짜 출처가 아니면 대체 뭐가 가짜출처입니까?
출처를 대려면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명백하게 적혀 있는 내용을 쓰십시오. 관련도 없는데다 본인이 읽어 본 적도 없는 가짜 출처를 달지 말고 말입니다. 귀하가 이런 식으로 엉망인 출처 제시를 계속하는 한 저 역시 귀하의 편집을 주시하고 필요할 때는 징계를 요청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3년 8월 27일 (화) 23:18 (KST)

가짜 출처에 대한 재경고편집

귀하께서 확인해 보자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래서 확인 했습니다. 천부경과 최치원의 관계에 대한 출처로 단 것에서 천부경에 대한 언급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현재 “「최치원의 역사서술」(조인성,『역사학보』94·95, 1982)” 논문을 직접 확인했으며, 이 논문에는 천부경이라는 글자는 단 한글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른 출처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확실하게 대답하십시오. 귀하는 저 논문을 읽었습니까? 저 논문을 읽고 해당 내용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술하셨습니까? 저는 귀하가 또 다시 읽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출처를 서술했다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다른 출처들도 확인한 뒤에 다시 징계를 요청할 것입니다. 결국 귀하는 이정도밖에 안되는군요.--Xakyntos (토론) 2013년 8월 28일 (수) 10:07 (KST)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추태로 무엇을 하자는지 모르겠지만 정신나간 사람인지 출처인용을 한 책에서 천부경에 대한 얘기를 왜 찾아야 하지요? 문서가 분명히 최치원에 대한 문서인데 왜 천부경에 대한 출처를 왜 찾아야 한다는 얘기인지 모르겠네요..착각하지마세요? 천부경에 대한 '가짜 출처'는 천부경 문서에서 주장할 일이지 최치원의 문서에서 왜 천부경을 인용된 책마다 찾아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Xakyntos (토론) 사용자의 말은 전혀 이치에도 맞지 않습니다..어거지로 자신의 문서방해의 짓거리를 자꾸 합리화시키지 마세요? 이것은 확실한 문서방해에 해당하는 중대한 경고사항입니다..그래서 단호히 경고합니다..앞으로 절대 문서방해를 하지 마세요..경고합니다..진실탐구 (토론) 2013년 8월 28일 (수) 11:56 (KST)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귀하는 최치원 문서 전체에 대한 출처로서 해당 내용을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천부경에 대한 설명문에 출처를 달았고, 물론 다른 내용들도 일반적인 최치원에 대한 내용이 아닌, 귀하가 추가한 지극히 소수설에 해당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출처랍시고 저 방대한 저서 및 논문 목록을 달았죠. 그러니 당연히 귀하가 추가한 내용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귀하가 천부경에 대한 설명에다가 7개나 되는 출처를 달아 놓았으니 당연히 그 7개에 진짜 천부경에 대한 내용이 있는지 찾아야 하는 겁니다. 그게 출처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그리고 없으니 그것은 가짜 출처죠.
이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출처 제시의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귀하야말로 출처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시나본데, 출처란 해당 내용이 나온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다는 겁니다. 귀하처럼 책을 읽지도 않고 그냥 최치원에 대한 책·논문이니까 다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출처란 실제로 존재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나서 그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에다 다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귀하는 가짜 출처를 단 겁니다. 귀하야말로 본인의 잘못된 편집 행위를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내용이 없으니 가짜 출처라고 하는 겁니다. 이번에는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징계를 요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3년 8월 28일 (수) 12:12 (KST)

위키백과의 문서편집이 단어하나마다 하나하나 해당된 책의 출처를 달아야한다는 법칙이 어디있지요? 위키백과가 논문을 작성하는 겁니까? 신문기사나 저술과 저작에 의한 책자를 만드는 겁니까? 그저 아마츄어리즘에 의거하여 사실적인 내용을 수록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으로 알고 있는데 착각은 Xakyntos (토론) 사용자가 하고 있는 겁니다..그리고 왜 〈가짜 출처〉라고 몰아대지요? 인용된 책자들 중에 하나라도 천부경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절대 〈가짜 출처〉가 될 수 없고 문서 자체가 최치원라는 문서니까 〈가짜 출처〉는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또한 별도로 출처제공으로 인용된 '신문기사'나 '서책'은 이미 그자체로 출처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Xakyntos (토론) 사용자의 주장은 어거지고 헛된 주장이라는 것입니다..진실탐구 (토론) 2013년 8월 28일 (수) 16:55 (KST)

항목을 설명하는 주요한 개요에 자기 생각을 근거없이 적으면 사실적인 내용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고 보는 사람에게 잘못된 지식을 주게 됩니다. 최치원 문서의 옛 판본을 보니 “특히 8l자로 구성된 천부경은 단군의 가르침을 단군의 신하 신지(神志)가 전문(篆文, 전서체의 문자)으로 비석에 새겨 전해오던 것을 최치원이 이를 한자로 번역하여 태백산(묘향산) 꼭대기의 바위에 새긴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다.”라는 문장에 방대한 참조 주석을 달았는데 그 중 하나라도 최치원이 천부경을 한자로 번역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면 이 문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장에 참조 주석을 달았다는 것은 이 참조에 포함된 모든 것이 이 문장의 근거가 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라도 천부경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절대 〈가짜 출처〉가 될 수 없고”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하나라도 천부경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절대 진짜 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Lexus님이 출처에 대한 개념을 잘못 아시는 겁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3년 8월 29일 (목) 10:22 (KST)
"8l자로 구성된 천부경단군의 가르침을 단군의 신하 신지(神志)가 전문(篆文, 전서체의 문자)으로 비석에 새겨 전해오던 것을 최치원이 이를 한자로 번역하여 태백산(묘향산) 꼭대기의 바위에 새긴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내용은 별도의 출처로 제공된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이라는 책자에 분명히 수록된 내용입니다. 1997년에 연세대학교출판부에서 출판한 책이라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저자 유동식 선생에 대해서는 1922년, 황해 평산군 남천 출생. 1973 ~ 1988년 연세대 신과대 교수로 재직했다는 사실과 최치원의 풍류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수록한 내용입니다..

견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하지만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이라는 책자를 분명히 별도의 출처로 제공하였고 기타 출처 책자는 최치원 문서자체의 내용을 복수 출처로 제공하였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주요한 개요에 자기 생각을 근거없이 적으면 사실적인 내용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고 보는 사람에게 잘못된 지식을 주게 됩니다..이라는 내용은 어떻게 현 상황에 연결을 지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책자 376페이지 중 64페이지에 실려 있다는 기록까지 찾을 수가 있습니다..정보화시대에 이러한 검색까지 하지말고 오로지 책자를 스스로 찾아 읽어야 출처로만 제공할 수 있다니 이것이 이치에 맞지 않은 Xakyntos (토론) 사용자의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개천의 본래의 뜻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는, 환웅(桓雄)이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上元 甲子年)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라는 내용은 재상 한국편(한국편)(2005년 출판사, 이가서)과 『대종교중과육십년사』(대종교총본사간, 1971)에 수록된 내용으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같은 얘기이지만 최치원이 언급했다는 신라 6촌부락(신라 6개 성씨의 기원)의 내용은 쉬운 예를 들어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지명의 지리학』(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08년 5월 28일 푸른길 출판)에서 인터넷 검색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지명의 지리학』의 437페이지 중에서 39페이지에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을 Xakyntos (토론) 사용자는 인터넷 검색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직접 읽은 책자만으로 출처 제공이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그래서 임의로 삭제 및 되돌림, 수정, 짜깁기를 해놓고 〈가짜 출처〉로 몰아대는 현실에 있습니다.. 과연 어떤 방법이 옳고 그른 것인지 명확히 밝혀 앞으로는 쫓아다니면서 편집방해를 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해둘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위키백과 관리자분들의 공정한 판단과 의견이 있으시길 바랍니다..진실탐구 (토론) 2013년 8월 29일 (목) 10:52 (KST)

누차 말씀드렸고 Synparaorthodox 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출처란 출처가 달린 문장의 내용을 보증하는 증거로서 다는 겁니다. 그러니 귀하가 천부경 운운하는 내용을 보증하는 출처를 제시하려면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하나만 쓰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귀하는 스스로 읽어보지도 못한 방대한 출처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출처에는 천부경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는 것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그러니 가짜 출처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위키백과가 논문을 쓰는 것인가”라고 물으셨는데, 논문을 쓰는 것 만큼이나 위키백과는 엄정한 출처를 요구합니다. 위키백과에서 출처 제시 의무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을 때, 모든 사용자가 원칙적으로 동의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모든 내용은 문장 하나하나마다 모두 출처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상식적인 선에서 출처 제시는 적당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만, 어쨌든 원칙은 모든 문장, 심지어 문장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모두 출처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위키백과의 원칙입니다. 아니, 이건 위키백과를 떠나서 학문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러니 귀하가 하는 식으로 출처를 다는 건 명백한 가짜출처에 다름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인터넷 검색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직접 읽은 책자만으로 출처 제공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귀하가 제시한 논문을 확인한 방법조차도 인터넷,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문 학술 논문 사이트를 검색해서 한 일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인정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대다수의 인터넷 검색 결과는 위키백과에서 인정되지 않는 수준의 출처라는 겁니다. 귀하는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을 출처로 제시하셨습니다만, 위에 직접 쓰셨다시피 저 책을 읽지 않으신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에 이러이러하게 써 있다는 인터넷 검색 결과가 정확하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하실 것입니까? 인터넷, 그것도 신문기사나 전문적인 사이트가 아닌 포털 사이트의 일개 보통 사람이 쓴 서평이나 기타 일반인이 쓴 사설에 곁다리로 언급된 내용이 정확하다는 보증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위키백과는 인터넷 사이트의 내용은 출처로 불충분하다고 명확하게 공시해놓고 있습니다. 적어도 해당 내용이 있다는 신문기사나 전문적인 웹사이트가 아닌 이상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로는 위키백과의 출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합니다. 물론 이는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다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제발 부탁인데 위키백과의 원칙과 지침이라도 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만 읽고 편집을 해도 제가 이렇게 괴롭힐 일이 훨씬 줄어듭니다. 일주일 뒤에 차단이 풀리고 나시면 제발 제가 링크한 위키백과의 지침이라도 좀 숙지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3년 8월 29일 (목) 23:1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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