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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rality편집

  • 한국물리학회 용어집: (1995안) 손지기/키랄리티 -> (조정안) 손지기, 나(사)선성.
  • 대한화학회 용어집: 1)나사선[성,형] 2)손대칭성 3)키랄성

일단 나선성 정도가 어떨까요? 엔싸이버에는 "나선성"이 생물의 spirality라는게 좀 걸리긴 하지만요. -- ChongDae (토론) 2009년 10월 19일 (월) 16:36 (KST)

나선성(나선도)은 Helicity를 가리키는 용어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손대칭성이 적절할 것 같아보였지만 Chirality와 Chiral Symmetry는 또 다르니 Chiral인데 Symmetry가 있으면 손(지기)대칭성이라고 하고 그냥 Chirality 자체를 뜻할 때는 손지기로 하는 것이 일단은 적절할 것 같습니다. Merongb10 (토론) 2009년 10월 20일 (화) 06:25 (KST)

반갑습니다~편집

오호~ 수학에 관해서 편집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Š.ßULLET. (토론) 2009년 11월 2일 (월) 20:35 (KST)

Cuyo편집

"꾸쇼"인가요? 아르헨티나라면 스페인어권일텐데요. -- ChongDae (토론) 2009년 11월 24일 (화) 13:24 (KST)

일단 "쿠요"로 바꾸었습니다. 위키의 아르헨티나 멘도사 페이지를 참고했는데 쿠요인지 꾸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Merongb10 (토론) 2009년 11월 25일 (수) 04:23 (KST)

이휘소 반박내용 출처필요편집

출처를 제시해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브리태니커정도의 신뢰성을 가진 백과사전에 대한 반박이라면 그에 준하는 반박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휘소 토론란이나, 여기 댓글로 근거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Park6354 (토론) 2010년 1월 19일 (화) 03:54 (KST)

소모적인 논쟁이므로 굳이 반박을 해야할까 망설여지지만 근거를 대보겠습니다. 우선 인용하신 정부의 관변 뉴스 홍보지인 '공감코리아'[1]나 '중앙선데이'[2]의 기사에 나오는 오펜하이머나 압두스 살람의 이휘소 박사에 대한 과도한 칭찬은 저의 기억으로는 공 모작가의 허구의 전기소설과 그것을 상당수 베껴 만들어진 김 모작가의 '무궁화..'소설 광고에서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가 쓰는 기사나 브리태니커가 그렇게 권위를 가진다고는 저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실제 사실이 궁금하시면 강주상 교수의 이휘소 평전을 읽어보시면 비교적 소상히 나와있으며 1999년 헤라르뒤스 엇호프트의 노벨상 수상 당시 한국물리학회의 '물리학과 첨단기술'이라는 잡지에 나온 다른 교수들이 작성한 특집 기사들[3]이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당 시대를 살았던 국내 입자이론학자들의 이휘소 선생에 대한 평가도 '서거 전에 이루었던 업적만 가지고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실제로 그 정도 업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고려대 강주상 교수는 엇호프트, 벨트만과 함께 수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내었지만[4] 게이지이론 재규격화에 대한 그들의 업적은 방향과 시도 방법 개척의 대부분은 벨트만에 의해, 그리고 마지막 핵심적인 기여가 그의 당시 지도학생 엇호프트에 의해 이루어졌고 단지 이휘소의 당시 큰 기여는 그들의 연구결과를 다른 학자들이 재해석해서 알아들을 수 있게 다시 표현해주고 관련 연구로의 확장에 길을 터준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도 '노벨상'을 언급할 정도는 아니며, 그와 같은 과장된 찬사는 국외에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당시 세계 정상권의 학자였던 그의 능력을 보았을 때 10여년 더 생존했더라면 그에 필적한 업적 한 개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정도입니다. (고등과학원 김정욱, 서울대 김진의, 김제완, 고려대 강주상 교수 인터뷰들 참고) 물론 압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중 이휘소 박사에게 큰 영감을 주거나 받은 사람들(엇호프트, 와인버그, 살람 등)의 이휘소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는 사실이지만 무슨 '그가 나를 대신해서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아인슈타인보다 뛰어났다'등의 황당한 수식어는 오히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관련 분야의 학자들이 항상 그와 같은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제까지 제가 원문으로 본 세계 최정상급의 학자 본인의 입에서 나온 이휘소에 대한 평가 중 가장 최상의 찬사는 다음과 같은 것 정도입니다.
미국물리학회 뉴스: 박사님은 수많은 논문들을 쓰셨지만, 공저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왜 그런가요?

스티븐 와인버그: 네, 저는 공동연구를 잘 하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함께 연구하는 것이 즐겁던 단 한 명이 있었는데 Ben Lee였습니다. 그는 불행히도 1977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저는 Ben과 몇 개의 논문을 썼는데, 그 중 하나는 우주론에 대한 것으로 널리 인용되었고, 꽤 중요한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는 공동연구를 좋아하지 않아요. 부분적으로는 나는 글이 작성되어야 하는 방식에 강한 나만의 고집이 있기 때문이지요. 설사 공동연구를 하면서 내용에 대해 서로 공평하게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고 해도 주로 실제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제가 담당하는데, 왜냐면 저는 다른 사람들이 글을 쓰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죠.
출처: PRL Top Ten: #1 A Model of Leptons

스티븐 와인버그는 거의 파인먼 급의 생존해 있는 학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한 엇호프트는 서울대 이수종 교수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결국 1999년에 이르러서 벨트만 교수와 내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 결정적 내용이었다. 벨트만 교수는 이 분야, 즉 양-밀 게이지 장이론의 양자현상 계산방법론의 개척자이었다. 그는 이 문제에 관한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 분석하였다. 다만, 마지막 결정적인 부분이 내가 중요하게 기여한 부분이며, 이는 모두 이휘소 박사의 업적으로부터 얻은 영감의 결과이다.

(중략)
이휘소 교수는 명성에 걸맞게 아주 정직한 학자였다. 그는 자신이 이 분야에서 보탠 업적이 정직하고 공정하게 평가되도록 항상 노력하였다. 그는, 전혀 반대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많은 미국의 물리학자들과는 달리, 그 자신에 합당한 학문적 기여도 이상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휘소 박사와 오랜 친구인 벨트만 교수는, 그 이후 학회에서마다 그의 불같은 성미를 이기지 못하고 이휘소 박사에게, 이 박사의 논문들이 자신의 업적에 새로운 것을 아무 것도 더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에 관한한 아무런 공로도 인정할 수 없다고 소리지르기 시작하였다. 이럴 때마다 이휘소 박사는 내게 개인적으로 다가와, 벨트만 교수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가 보기에는 이휘소 박사가 모두 옳았다. 그가 우리의 계산 이후, 이 문제에 관하여 발표한 논문들은 모두 상당한 가치가 있는 일들이었으며, 그에 관한 업적은 충분히 인정받아야만 하였다.
출처: 1999년 노벨 물리학상에 즈음하여

라고 하였습니다. 이 정도가 동시대를 살아온 최정상급 학자들의 이휘소에 대한 평가 수준이며,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학자였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허구의 소설을 제외한 그 어디에도 함부로 '노벨상' 운운 하는 수식어는 보지 못했으며 이는 위의 엇호프트가 평가한 '그 자신에 합당한 학문적 기여도 이상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 평소 이휘소박사의 철학에도 어긋난다고 생각됩니다. Merongb10 (토론) 2010년 1월 25일 (월) 20:11 (KST)
그렇군요. 제가 몰랐던 사실이 많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러나 '팬티가 썩은 과학자' 부분의 반박내용도 없는데 삭제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아무튼 링크해주신 특집기사중에 제자인 강주상 교수의 글 [5] 여기에서 '생존해 있었더라면 1999년에 수상했을 것이라는 견해' 정도는 실어도 되겠지요? 또한 말씀하신 반박내용들도 신뢰있다고 생각되지만 '제가 내놓은 근거를 정면으로 뒤집을 직접적인 반박'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압두스 살람의 노벨상 수상소감에서의 이휘소 박사 언급은 전문이 있어야 토론이 가능할걸로 보이는데 전문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위키백과에서 편집 분쟁 발생시 반대되는 주장이나 근거가 있을경우 병행표기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반론도 있다' 정도로 병행표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추상적으로 '노벨상 수상 언급'보다는 실명을 거론한 주장들을 있는 그대로 싣는게 가장 중립적인 대처라고 생각됩니다. --Park6354 (토론) 2010년 1월 26일 (화) 14:21 (KST)
서로 상충되는 주장이 있다고 해서 그것들을 나열하는 것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주장의 무게감이 공평하지 않고 한 쪽이 균형을 상실한 허위의 주장일 가능성이 높을 때는 둘을 같이 놓고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위키 백과에는, 기사나 허위의 사실을 근거로 쓰여졌을 위험이 큰 논쟁의 소지가 많은 글월들 보다는 관련 분야의 학자 대다수가 증언하고 직접 서술된 것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잘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들이 이휘소 선생이 대중에게 잘못된 평가와 수식어로 포장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유는, 그런 방식이 오히려 선생의 뛰어난 학자로서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욕얻어먹을 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해외나 관련 학계에서는 잘 거론되지 않는 노벨상 운운은 자칫 인물이 없는 한국민들이 (실제로는 미국인인 선생을 미화하여) 스스로를 자위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이것이 도리어 이휘소 선생 혹은 한국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벨상을 아깝게 놓친, 혹은 노벨상보다 더 한 업적을 이루고도 수상자가 되지 못한 학자들은 무수히 많지만 '노벨상을 받을 뻔 하였다'라고 인물정보에 적지 않습니다. 또한 '팬티가 썩은..' 이라는 표현도 인물 정보에 오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훌륭한 학자는 다 팬티가 썩은 사람이지만 그런 수식어를 달고 표현되지는 않으며 그런 것은 연예인 인물정보에 올라오더라도 불필요한 언급으로 삭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물 정보는 사실과 역사를 담는 것이지 소망이나 찬사는 글월의 함량을 떨어뜨릴 뿐입니다. 그런 맞지 않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선생이 훌륭한 학자였다는 것은 실제 있는 그대로의 정보로도 정직하게 잘 드러납니다.
참고로 압두스 살람이 1979년 12월 8일에 행한 노벨상 수상강연 전문에 등장한 이휘소에 대한 유일한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Both Weinberg and I suspected that this theory was likely to be renormalizable.’

Regarding spontaneously broken Yang-Mills-Shaw theories in general this had earlier been suggested by Englert, Brout and Thiry. But this subject was not pursued seriously except at Veltman’s school at Utrecht, where the proof of renormalizability was given by ‘t Hooft in 1971. This was elaborated further by that remarkable physicist the late Benjamin Lee, working with Zinn Justin, and by ‘t Hooft and Veltman.
와인버그와 나는 이론이 재규격과가 될 것이라 예측했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깨어지는 일반적인 양-밀스-쇼 이론에 따라 Englert, Brout, Thiry에 의해서도 일찌기 제안되었다. 하지만 해당 주제는 유트레히트의 벨트만 그룹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는데 1971년 그 곳의 엇호프트에 의해 비로소 재규격화의 증명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이후에 뛰어난 물리학자인 고 이휘소가 Zinn Justin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또한 엇호프트와 벨트만에 의해서도 더욱 자세히 연구되었다.
출처: [Nobel Lecture: Gauge Unification of Fundamental Forces]

이 강연 어디에도 '그가 나를 대신해서 이 자리에 있었어야 한다' 따위의 수식어는 나오지 않는군요. Merongb10 (토론) 2010년 1월 26일 (화) 20:46 (KST)
알겠습니다. 기사들이 전부 허구일 것이란 확신과, 기재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완강하시군요. 일부 반박하고 싶은 내용은 있으나 나름 근거있는 주장들을 보아 수긍하도록 하겠습니다.--Park6354 (토론) 2010년 1월 26일 (화) 20:58 (KST)

넘겨주기 문서편집

일단 먼저 문서를 만드신 후에 넘겨주기문서를 생성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특:끊긴넘겨주기에 끊긴 넘겨주기가 나오게됩니다. 일단 만드신 넘겨주기는 복구하겠습니다.--Park4223 (토론 / 기여) 2010년 2월 2일 (화) 01:47 (KST)

위키인용집 활용에 관해편집

답변을 작성하였으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위키피디아도 위키피디아인만큼 이런 문제는 저의 독단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인지라, 모두가 납득할 만큼 논의를 거쳐서 바꾸도록 합시다.--PostEinstein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12:10 (KST)

아 그리고 위에 보니까 Merongb10님도 저랑 같이 이휘소에 대해 잘못 이해되는 현실에 대해 반발심을 함께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나요? --PostEinstein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12:13 (KST)

영어 위키백과에서의 이휘소(en:Benjamin W. Lee)편집

한국어와 일본어는 강주상 명예교수의 이휘소평전을 참고하여 한 언어를 보충하면 다른 언어도 똑같이 보충하면서 계속 채워 나가고 있는데, 영어 기사만큼은 영작문에 그리 능하지 않은 것도 있고, 석사 과정 연구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서 선뜻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몇 가지 추가를 해주셨더군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선 Alma mater에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넣으셨던데, Alma mater란 모교란 뜻의 라틴어이고, 또 엄밀히 말해 자신이 졸업한 그곳, 출신 학교를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이휘소는 6334제가 아닌 664 제도, 즉 소학교 6년, 중학교 6년, 대학교 4년 이런 시절에 중등교육과정에 들어갔으니, 경기고등학교가 아닌 경기중학교에 재학중이었던 것이 되고, 또 지금의 고2에 해당하는 경기중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것도 있고 전쟁중에 어수선하기도 하여, 학교를 더 오래 못 다닐 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정도 인정시험을 대신 치러서 대학교 입학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벤자민 리 선생은 경기중학교를 졸업하지 않으셨으므로, Alma mater에 집어넣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서울대학교도 그러한데, 애초에 공학부 화학공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물리학이 더 하고싶어서 문리과부 물리학과로 전과하고 싶어했는데, 학부내 전과는 쉬워도 학부간 전과는 거의 인정이 안되는 시기여서 실망을 거듭하다가 아예 서울대학교를 자주퇴학하고 미국 대학교로 편입유학을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벤자민 리 선생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으셨습니다. 벤자민 리 선생이 학부 졸업을 하신 곳은 서울대학교가 아닌 마이애미 대학입니다. 정리하자면, 벤자민 리 선생은, 고등학교졸업정도 인정은 검정고시로, 학부 졸업을 마이애미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피츠버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하셨으므로, Alma mater에는 이 세 대학만 나열하는 것이 맞습니다.

참고로, 초등학교입니다만, 초등학교는 경성사범학교 부속제1국민학교에 입학을 하였지만, 이후에 우리나라에 광복이 찾아와 경성사범학교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벤자민 리 선생에 있어서의 Alma mater는 경성사범학교 부속이 아니라, 서울대학교 사범부 부속국민학교가 되겠네요. 중학교는 경기중학교 재학 도중이긴 했지만, 지금으로 치면 경기'중학교'를 이미 졸업하고 경기'고등학교'를 재학하다가 자주퇴학하신 것이니 좀 애매하고요.

또한, 벤자민 리 선생이 태어난 때는 1935년으로, 그분이 태어난 곳은 지금의 원효로로 알려진 곳으로, 당시 지명은 모토마치였습니다. 그리고 벤자민 리 선생이 태어났을 당시, 지금의 서울에 해당하는 지역은 정확하게 케이죠우라고 불리웠고요, 지금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그리고 우리의 대한민국이 위치해 있는 이 한반도는, 당시에는 일제 강점기 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점령 과정의 불법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또한 개인적으로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그런 민족의 부끄러움이긴 하지만, 당시 우리 한반도는 지금의 일본국에 해당하는 구 일본제국의 영토였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독일 사람이지만, 출생지를 '독일 연방 공화국'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1991년인가요?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하고 생겨난 나라이지요.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태어났을 당시에는 카이저 빌헬름이 통치하고 있는 독일 제국 이라는 나라였습니다. 국기도 검정 노랑 빨강 삼색기가 아닌, 검정 하양 빨강에다가 한가운데에 다른 장식이 들어간 전혀 다른 국기이고요.

출생 당시, 생활 당시의 명명법을 존중하여 기술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케이죠우 부나 쵸센 이렇게 써놓았어도, Korea under Japanese rule도 병기를 하고 있고, 또한 케이죠우도 눌러보면 서울 기사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혼선을 빚을 일은 없을 겁니다. 여러가지 보충하신 부분들은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Alma mater부분과, 당시의 지명을 현재의 지명으로 바꿔 놓으신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다시 수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PostEinstein (토론) 2011년 6월 20일 (월) 19:49 (KST)

우선, Alma mater는 거쳐간 학교나 중도에 탈락한 곳도 위키백과에서는 관습적으로 넣는 것 같습니다. 일일히 출처를 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례를 많이 보았는데, 잠깐 검색해보니 유명인 중에서는 리드 대학교를 중퇴한 스티브 잡스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한 맷 데이먼의 영문 문서에도 동창생으로 표기하고 있네요. 졸업은 하지 않았다는 표기는 하는 경우도 있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본문 중에 나오니 굳이 하지 않았습니다. 표기를 하겠다면 넣으십시오. 학교라는 것이 그 자체로도 전쟁 중에 통합되었다가 분리되었다가 이름이 바뀌거나 하기도 하고, 나라마다 학제가 달라서 어떤 사람은 학점 은행 식으로 여러 곳을 다니기도 하는 경우도 있고 해서 위키의 여러 문서들을 보아도 칼처럼 명확한 권고 조항은 없는 모양입니다.
또한 한국의 공식 입장은 일제 강점기는 '강압적으로 체결된 불법조약'으로 성립되지 않은 조약입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의 출생지역 표기를 당시의 일본어로 적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언어란 해당 사회 구성원이 사용하는 언어로 표기되는 것이 맞으며, 일제 강점기의 일본어는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언어가 아닌 강제당한 언어였을 뿐입니다. 위키 문서의 출생 당시의 지명 표기에 있어서는 나치 독일이나 일제 시대의 경우 불법 점령국가 입장에서의 지명을 표기하는 경우나 그렇지 않은 경우를 모두 보았지만 오른쪽 정보 상자안에 담기는 내용으로써 그 정도 정보 제공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그 부분은 편집하신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생애 부문에서 해당 국가민이 동의하지 않은 불법 강점기의 강제 언어 사용으로 인한 지명은, 행정 구역이 강제로 개편되어 뭐라 특정할 수 없는 지명이 아닌 이상은, 해당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인정하는 지명을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영문 위키에서 인물 정보 상자란에 출생지나 사망지 표기에 국기 아이콘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권고 사항입니다. 또한 위키 백과는 개인이 저작권을 갖는 저작물도 아니므로 공동으로 편집하는 문서로써 굳이 내용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Merongb10 (토론) 2011년 6월 23일 (목) 00:0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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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나무위키, 리브레 위키 인디 관련 공동편집 행사편집

안녕하세요. 땅콩샌드라고 합니다. 위키백과, 나무 위키, 리브레 위키 사용자를 대상으로 인디 관련 주제 문서 공동 편집행사를 개최합니다.

이번주 토요일 오후 2시입니다. 관심 있으시면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onoffmix.com/event/48050 땅콩샌드 (토론) 2015년 6월 17일 (수) 11:41 (KST)

아인슈타인편집

특별한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문서 내용을 삭제하지 마십시오. 출처까지 달려 있는 내용을 삭제하셨는데, 명백한 백:문서 훼손입니다.--Wikitori (토론) 2015년 7월 3일 (금) 16:50 (KST)

출처 요구 부분에 독일어/영어 위키를 참고하여 출처를 추가하고 박스를 삭제한 것입니다.
또한 밀레바 마리치가 아인슈타인의 초기 저작에 관여하였다는 것은 밀레바 마리치의 영문 위키 항목 en:Mileva Marić에 그런 소문은 이러저러한 경로로 존재하나 그를 뒷받침 할 만한 뚜렸한 증거는 없다(There is no strong evidence to support the idea that Marić helped Einstein to develop his theories.)라고 출처들과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Merongb10 (토론) 2015년 7월 5일 (일) 20:24 (KST)

토론해 주세요.편집

토론: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서 토론을 열어서 여러 사용자의 의견을 먼저 모으셔야 합니다. 토론 없는 일방적인 대량 편집은 명백한 문서 훼손입니다. 경고드리니 앞으로는 주의해 주세요.-- Skky999 (토론기여) 2015년 7월 11일 (토) 07:30 (KST)

토론이 끝나는 시점은 토론 과정에서 상대방이 가져온 근거와 출처에 대해 더 이상의 반박이 없을 때입니다. 그 이후 아무런 논리적 반박도 근거 있는 출처도 제시하지 못하고서 문서를 되돌리기만 반복한다면 그것이 토론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며 문서 훼손입니다. --Merongb10 (토론) 2015년 7월 11일 (토) 18:29 (KST)

이메일을 확인하세요편집

안녕하세요, Merongb10 님: 이메일을 확인하세요! 제목: "The Community Insights survey is coming!" 질문이 있으시면 surveys@wikimedia.org로 이메일을 보내주십시오.

(English: Please check your email and spam! Subject is "The Community Insights survey is coming!" If you have questions, email survey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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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Wiki message delivery (토론) 2020년 9월 25일 (금) 04:23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