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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합니다 (토론) 2014년 4월 29일 (화) 01:25 (KST)답변

삼황오제 문서의 편집에 주의하여 주십시오 편집

  Pbsrdigh님, 잠시 주목해 주세요. Pbsrdigh님이 삼황오제 문서에 해 주신 편집은 공개 발표되지 않은 주장이나 분석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문서를 편집하시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전의 편집 내용은 편집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다시 한번 편집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길라잡이질문방 등을 참고하시면 작성하신 내용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더 쉽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계속될 경우 관리자에 의하여 편집이 차단되거나 제한될 수 있습니다. 좋은 편집을 부탁드립니다.


삼황오제에서 제가 편집한 부분이 "공개 발표되지 않은 주장이나 분석이 포함" 되어 있어서 문서를 되돌렸다고 하셨는데 중국의 사학자이신 낙빈기 선생의 연구 결과나 그에 관해 쓴 책이 낙빈기 선생 혼자만의 주장이지 사학계 쪽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서를 되돌리신 것인가요? --Pbsrdigh (토론) 2014년 4월 30일 (수) 07:52 (KST)답변

일단 낙빈기의 책을 근거로 제시하시긴 했지만, 그 책에 대해서 아무런 출처도 없이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라는 식으로 평가하고 있는 부분이 문제가 됩니다. 명백한 독자연구에 해당하죠. 그리고 삼황오제에 대한 정설은 신화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빈기의 주장은 소수설로 분류되며, 이러한 소수설은 중요하거나 널리 알려진 소수설이 아닌 이상 문서의 제일 앞머리에서 언급될 가치가 없습니다. 게다가 Pbsrdigh님께서 편집하신 내용과 달리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삼황오제를 실존인물이라 주장하는 공정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즉, Pbsrdigh님은 틀린 내용을 서술하신 것이 됩니다. 삼황오제가 실존인물이라 주장하는 사람은 낙빈기 말고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주장들을 모두 일일히 실어야 할까요? 중국 정부 차원의 탐원공정과 같이 저명성이 있고 중요한 것이 아닌 이상 그런 주장들은 하나하나 언급될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Pbsrdigh님의 편집을 삭제하고 더 공신력있는 역사학계의 견해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4월 30일 (수) 09:25 (KST)답변

낙빈기의 연구 논문에 대해 출처를 밝히지 않고 연구 가치가 있다고 한 것에 대해선 제 개인적인 생각을 실은 것이므로 분명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현재까지는 삼황오제의 신화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낙빈기 선생의 경우처럼 삼황오제를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중국 사학계는 이에 대한 연구논문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낙빈기 선생의 저술서인 금문신고는 국내에서도 많은 블로그나 카페에서 이 책에 대해 소개가 되었고 무엇보다 제가 알아보니 서울의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대륙역사의 진실 금문신고 1 (한자표제:金文新考)~대륙역사의 진실 금문신고 7 (한자표제:金文新考)라는 제목명으로 총 7권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 했습니다.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을 모두 다 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 말씀에는 공감을 하지만 낙빈기 선생의 금문신고처럼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 도서(저술서)가 보관되어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내용이 있다면 하나 정도는 이런 주장을 하는 역사학자도 있습니다라는 식의 주장을 적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러한 주장이 사학계로부터는 역사적 사실임이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으므로 그런 내용을 문서 안에 적어 넣더라도 그냥 단순 참고할 만한 형태로 적어 넣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낙빈기 선생의 금문신고에 관한 내용의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서 중국의 역사학계로부터 사실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제가 편집했던 내용에서도 삼황오제는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는 낙빈기라는 사학자이자 금문학자가 있으나 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는 식으로 쓴 것입니다. 물론 역사학계로부터 인정 받지 못한 주장을 마치 사실인 것 마냥 맨 앞에 적은 것은 분명 님의 지적대로 저의 실수이고 과오였음은 인정합니다. 그 내용을 추가로 기술하더라도 앞에 적지 말고 본문에 따로 제목을 둬서 해당 내용에 대해 단순 참고용으로 간단하게 서술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보충 설명에 중국 사학계는 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해서...) --Pbsrdigh (토론) 2014년 4월 30일 (수) 12:28 (KST)답변

1. 세상에는 수많은 소수설이 있고, 그러한 소수설들을 담고 있는 책들은 국내에서 정식으로 출판된 것이면 대부분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됩니다. 심지어 음모론이나 창조론 같은 것을 주제로 하는 책들도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원래부터 법에 따라 국내에서 정식으로 출판된 출판물들은 모두 2권씩 국립중앙도서관에 강제로 보관되게 되어 있습니다. 즉, 낙빈기의 책이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은 그 주장의 신뢰성이나 저명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2. 물론 블로그나 카페에서 유명하다는 것 역시 위키백과에서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 저명성입니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그것은 신뢰할만한 출처가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그제서야 언급할만한 가치를 가지는 출처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언론 한두 개에서 보도하는 것을 일일히 싣다가는 위키백과 페이지가 모자랄 것입니다. 즉, 실제 위백에서 언급될만한 가치를 가지는 내용은 적어도 다수의 언론에서 중요한 비중을 두고 보도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위키백과의 사용자들은 많고 그분들께서 일일히 언론에 얼마나 큰 비중으로 보도되었는지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일개 인터넷 영세 언론에서 신뢰할만한 검토가 전혀 없이 나온 보도도 위백에 실리곤 하지요. 그러나 원칙적으로 보자면 그러한 내용은 실릴만한 가치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Pbsrdigh님께서 편집이 합당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셨으므로, 제가 드릴 말씀은 이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편집으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건필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4월 30일 (수) 15:39 (KST)답변

물론 말씀하신대로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 되어 있고 블로그 등에 소개가 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100% 신뢰성이나 저명성을 보장해 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블로그나 카페 같은 곳은 단순히 해당 책을 소개하고 있는 사이트들로 생각해야지 그 곳을 어떤 주장에 대한 출처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고 또한 사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죠. 출처는 다수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조건 하에서 신뢰할 수 있는 (한 두 곳이 아닌 다수 언론의 기사, 학술지, 연구자료, 출판사에서 출간한 서적)곳이어야 할 것입니다. 블로그나 SNS 그런 곳은 그냥 해당 연구 결과(서적)에 대한 관심도를 참고적으로 살펴보는 것이죠. 저도 블로그를 신뢰하는 출처 그 자체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소수설을 주장하는 모든 이들의 주장 내용을 문서 안에 전부다 기재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학자도 있는데 아직 그 주장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짤막하게 써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낙빈기 선생의 주장처럼 관심도가 비교적 많은 관심을 보이는 역사학자 1~2명 정도의 의견(주장) 1~2개 정도만 간략하게 실어서 해당 문서를 보는 분들이 100%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런 주장도 있구나 하고 참고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을 추가로 기재했다고 해서 그것이 기존에 작성된 문서 내용을 뒤집는다거나 전부 부정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로 기입된 내용이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소수(개인)의 판단이 아닌 다수의 그 문서를 본(읽은) 독자(위키 회원)분들의 의견이 모아져서 판단 되어져야 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제가 편집의 실수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100% 전부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실수였다고 인정하는 부분은 사견이 들어갔었던 점 (그전까지 중국 상고사에 대한 이만한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금문신고)은 없었기에 이는 중국 역사학계의 공식적인 인정 여부를 떠나서 거기에 실린 내용에 대해 중국 역사학계의 학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심도 있게 연구되어질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자료이다.) 이 부분이죠. 연구되어질 가치가 있다는 것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주장이었죠. 이것은 또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함으로써 마치 그 내용이 해당 문서를 보는 독자들한테 사실인 것처럼 굳어질 수 있게 오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도 분명 잘못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구나 하고 참고적으로만 알도록 서술했어야 하는데...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어떤 내용에 대해 추가적으로 쓰긴 썼는데 그런 주장을 뒷받침해 줄 만한 출처가 없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어떤 사실을 추가적으로 적어 넣는데 있어 그것이 개인적 의견이 아님을 출처를 밝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실수를 종합하면 출처도 없이 연구하면 좋겠다고 하고 한마디로 독단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달은 셈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가하려던 내용이 관심을 받는 학설이라도 할지라도 아직 사학계로부터 100% 사실이라고 인정 받지 못했는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것처럼 문서의 개요 혹은 정의 부분(맨 윗부분)에 적었다는 것은 분명 부적절한 편집 형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적더라도 따로 제목을 만들던가 해서 본문 뒷 부분에 적어 넣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부분도 앞의 두 가지 실수와 마찬자리로 앞으로는 지양해야 할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Pbsrdigh (토론) 2014년 4월 30일 (수) 21:02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