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Kor Ph/보존토론4

활성화된 토론

IRC

시간이 어케 되시나요? 삭토에 대해 논의할 일이 있으니 좀 들어오세요. -- 윤성현 기여F.A 2009년 3월 23일 (월) 00:23 (KST)[]

좀 들어오세요. 시간 되심. -- 윤성현 기여F.A 2009년 4월 19일 (일) 00:18 (KST)[]
그냥 잠깐 들른 것인데다가 새벽이라 대화방까지 가면 일요일이라도 좀 힘들 것 같네요. 오후에 들르도록 하겠습니다.--Ph (토론) 2009년 4월 19일 (일) 00:20 (KST)[]
되도록 12시 이후에 오세요. (안 그러면 시간이 안 맞으니까..) -- 윤성현 기여F.A 2009년 4월 19일 (일) 00:24 (KST)[]
시간 되시나요? -- 윤성현 기여F.A 2009년 5월 2일 (토) 11:28 (KST)[]
시간은 있는데, 대화방으로 가기가 귀찮네요. ㅠㅠ--Ph (토론) 2009년 5월 2일 (토) 11:31 (KST)[]
오세요. 오랜만에 환담 좀 나누게요. -- 윤성현 기여F.A 2009년 5월 2일 (토) 11:32 (KST)[]

선정위원

지금 Ph님이 고3이라 수능으로 겨를이 없으실 것 같습니다만 혹 선정위원에 관심 없으십니까? 관심 있으시면 위키백과:알찬 글 선정위원회/투표 란에 입후보자 서명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윤성현 기여F.A 2009년 4월 5일 (일) 08:10 (KST)[]

아시다시피 수능 이전에는 일반적인 편집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일반적인 편집이래봤자 주말에만 가능한 것이지만요. --Ph (토론) 2009년 4월 5일 (일) 09:22 (KST)[]
주말에도 괜찮습니다. 제가 보기엔 ph님이 능력있게 잘하실 것 같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물리지 말아주십시오. -- 윤성현 기여F.A 2009년 4월 6일 (월) 02:13 (KST)[]
그렇습니까?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질문에 빨리 답변치 못한다는 것에 기인한 것입니다.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듯 싶습니다.--Ph (토론) 2009년 4월 7일 (화) 22:51 (KST)[]
네. 생각해 주십시오. 토론에 글 남기는 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니깐요. -- 윤성현 기여F.A 2009년 4월 8일 (수) 00:00 (KST)[]
여러번 들어오셨네요. 결정하셨나요? -- 윤성현 기여F.A 2009년 4월 10일 (금) 11:18 (KST)[]
정말 미안합니다. 수능 이전에는 편집 몇 번 하는 일 외엔 어떠한 일도 맡기 어렵겠습니다.--Ph (토론) 2009년 4월 11일 (토) 21:49 (KST)[]
그럼 혹시 IRC에 들어오실수 있나요? -- 윤성현 기여F.A 2009년 4월 12일 (일) 00:33 (KST)[]

퍼오시는 건;;

  • ph님이 편집하신 위키백과판:철종은 1852년부터 친정을 시작했는데 점차 나이가 들고 친정의 경험도 쌓이면서 1859년부터 관리들의 부정을 공격하는 등 비교적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1861년에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련도감의 마보군(馬步軍)과 별기군(別技軍)의 군사를 이용하여 궁궐의 숙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봉건적인 통치기강이 무너지고 삼정(三政:田政·軍政·還穀)의 문란이 더욱 심해져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1862년 진주 단성지방을 시발로 하여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철종은 봉기발생지역의 수령과 관속을 처벌하여 흐트러진 봉건기강을 확립하는 한편, 농민의 요구조건을 일부 수렴함으로써 민심을 수습하려고 했다. 농민봉기가 잠시 가라앉은 5월 이후에는 삼정이정청(三政釐整廳)을 설립해 삼정의 개혁을 공포하고 재야유생층과 관료들에게 개혁책을 모집했다. 이때 마련된 삼정이정책은 주로 삼정운영의 개선에 초점을 두었으며, 법정 세액 이외의 각종 부가세를 일체 혁파하고 도결(都結)이나 방결(防結)을 폐지하고 환곡의 경우 토지세로 전환시키는 등 조세개혁의 원칙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가운데 지배층의 이해관계가 얽혀 삼정이정책은 시행되지 못했다. 한편 당시 사회의 혼란을 종교적으로 구제하려는 동학(東學)이 창시되어 새로운 세력으로 확대되자 이를 탄압하고 교주 최제우(崔濟愚)를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죄를 씌워 체포했다.
  • 브리태니커 판:철종은 1852년부터 친정을 시작했는데 점차 나이가 들고 친정의 경험도 쌓이면서 1859년부터 관리들의 부정을 공격하는 등 비교적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1861년에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련도감의 마보군(馬步軍)과 별기군(別技軍)의 군사를 이용하여 궁궐의 숙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봉건적인 통치기강이 무너지고 삼정(三政:田政·軍政·還穀)의 문란이 더욱 심해져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1862년 진주 단성지방을 시발로 하여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철종은 봉기발생지역의 수령과 관속을 처벌하여 흐트러진 봉건기강을 확립하는 한편, 농민의 요구조건을 일부 수렴함으로써 민심을 수습하려고 했다. 농민봉기가 잠시 가라앉은 5월 이후에는 삼정이정청(三政釐整廳)을 설립해 삼정의 개혁을 공포하고 재야유생층과 관료들에게 개혁책을 모집했다. 이때 마련된 삼정이정책은 주로 삼정운영의 개선에 초점을 두었으며, 법정 세액 이외의 각종 부가세를 일체 혁파하고 도결(都結)이나 방결(防結)을 폐지하고 환곡의 경우 토지세로 전환시키는 등 조세개혁의 원칙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가운데 지배층의 이해관계가 얽혀 삼정이정책은 시행되지 못했다. 한편 당시 사회의 혼란을 종교적으로 구제하려는 동학(東學)이 창시되어 새로운 세력으로 확대되자 이를 탄압하고 교주 최제우(崔濟愚)를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죄를 씌워 체포했다.

글자하나 안바꾸고 그대로 똑같습니다. Rlagmlrn5u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13:02 (KST)[]

꼭 저만 그런 것 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렇게 따지면 Knight2000님 등등이 생성한 역사 관련 문서는 다 퍼온 건데요. 그건 왜 추궁하지 않고 저한테만 괜히 난리시죠?--Ph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22:59 (KST)[]
인터넷에 떠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중 현재 판 (23판인가 그럴겁니다 아마15판이네요)은 저작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대로 퍼오시면 안됩니다. 퍼올 수 있는 백과사전은 글로벌 세계 대백과이지요.--..TTT..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23:04 (KST)[]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저에게만 지적을 한 것은 용납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내용이 문제가 된다면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수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Ph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23:07 (KST)[]
Knight2000님의 최근 기여를 대충 보자니, 글로벌 쪽에서만 긁어오셨더군요. 글로벌 쪽은 다음에서 저작권을 사들여서 저작권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것이지요.--..TTT..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23:08 (KST)[]
최근을 어떤지 몰라도 글로벌 도입 초창기에는 그 분도 브리태니커에서 가져오신 것이 많습니다. 제가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겠습니까?--Ph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23:10 (KST)[]
그대로 긁으셨으면 문제가 되는데.... 그런 부분이 이미 수정이 되어있는 건가요, 아니면 아직 방치되어 있나요?--..TTT..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23:14 (KST)[]
그런 문서가 한 둘이 아니라서 꼭 집어서 알려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그런 문서들을 찾아 내면 모두 수정하겠습니다. 아예 삭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Ph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23:26 (KST)[]
너무 그렇게 화내지는 마세요;; 김희구씨가 말투와 표현이 조금 서툰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고, 꼭 찝어서 ph님에게만 따지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9년 5월 21일 (목) 23:15 (KST)[]
원래 말투가 그런 분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뭐 샐러맨더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가만 있겠습니다만, 꽤나 빈정 상하는 말투군요.--Ph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23:26 (KST)[]
일딴 말투가 이상한(?)것에 대해선 사과드립니다.Rlagmlrn5u (토론) 2009년 5월 22일 (금) 12:32 (KST)[]
일딴 말투를 개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허나 님이 잘못한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Rlagmlrn5u (토론) 2009년 5월 22일 (금) 12:34 (KST)[]
퍼오는 것은 물론이구요, 다른 글을 기반으로 전반적인 내용을 작성하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 최담담 (토론) 2009년 5월 22일 (금) 12:38 (KST)[]
독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 관련 문서는 위키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현실을 직시하시죠.--Ph (토론) 2009년 5월 22일 (금) 14:58 (KST)[]
그건 위키백과에 대한 비판에도 실려있습니다.(인정하죠..) Rlagmlrn5u (토론) 2009년 5월 22일 (금) 16:54 (KST)[]
두분 다 말투를 좀 낮추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실수로 브리태니커를 가져온 문서들은 그 내용을 찾아내어 수정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특정판 삭제를 해야 합니다. 역사에 저작권 침해 내용이 남기 때문이죠.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9년 5월 22일 (금) 21:30 (KST)[]
말투가 격하게 나간 것은 미안합니다. 그러나 브리태니커에서 가져온 위키내 역사 관련 문서는 수 없이 많습니다. 이를 완전히 시정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문맥을 고쳐나가는 형식으로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타당할 듯 싶습니다.--Ph (토론) 2009년 5월 23일 (토) 18:42 (KST)[]
하지만 그 방법은 위키백과의 기본 정책인 백:저작권에 어긋납니다. 역사에 저작권 위반인 내용이 남아 있으니까요. 찾는대로 다 특정판 삭제를 해서 역사를 없애야 합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9년 5월 24일 (일) 15:55 (KST)[]
여기서 끝을 냅시다..;; Rlagmlrn5u (토론) 2009년 5월 24일 (일) 20:36 (KST)[]
에?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 의견 제안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떡하나요 ;;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9년 5월 24일 (일) 20:52 (KST)[]
아뇨 이문제를 끝낸다는게 아니고, 제말은.. 분쟁을 끝내고 화해모드(?)로 들어가자는 거죠..;; 계속 분쟁하다가는 싸움만 커질꺼 같아서 한말이였는데..;; Rlagmlrn5u (토론) 2009년 5월 26일 (화) 12:45 (KST)[]

반갑습니다.

오래간만입니다. 혹시 IRC 채팅방 접속 가능하신지요? BongGon (토론) 2009년 5월 30일 (토) 19:12 (KST)[]

개인 컴퓨터가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다만 내일 오전 중에 들어갈 수도 있겠습니다.--Ph (토론) 2009년 5월 30일 (토) 19:15 (KST)[]
아아,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웹 IRC로 오시면 프로그램 안 깔고도 접속하실 수 있습니다 :) BongGon (토론) 2009년 5월 30일 (토) 19:16 (KST)[]
http://barosl.com/webirc/로 들어오세요. BongGon (토론) 2009년 5월 30일 (토) 19:18 (KST)[]
지금 편집 마치고 막 다른 일을 하려는 참 이었는데 설명을 더 드렸어야 했었군요. 그래서 제가 내일 오전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 것 이었는데, 아무튼 지금 당장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Ph (토론) 2009년 5월 30일 (토) 19:21 (KST)[]

첼시 FA컵 우승~

첼시의 FA컵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Š.ßULLET. (토론) 2009년 5월 31일 (일) 13:12 (KST)[]

ㅎㅎㅎ 감사합니다. 올 시즌 마지막에서야 무관을 깨는 첼시 군요.--Ph (토론) 2009년 5월 31일 (일) 13:2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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