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Xakyntos/2010년

활성화된 토론

김해경

오랜만이네요. 근데 김해경 이 문서 원래는 금관경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나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0년 2월 8일 (월) 11:20 (KST)

안녕하세요. 금관경으로 잘 알려져 있긴 합니다만, 일단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명칭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금관경은 넘겨주기로 처리한다는 것이 깜빡 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2월 8일 (월) 11:28 (KST)


곤양군과 곤미

수고가 많습니다. 엇그저께인가 옛 곤양군에 대한 문서로 곤미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곤미는 곤양군의 고대 명칭이고 마지막에 일제에 의해 반토막나서 사천하고 하동에 흡수되기 전의 이름이 곤양군이죠. 곤양군으로는 지금까지 사천시에 링크되어 있었습니다만 곤미문서를 작성한 뒤에 공양군을 그리로 돌렸습니다. 오늘 보니가 곤양군은 사천으로 되돌려져 있고 제 사용자 토론에 고대명칭에 넘겨주지 말랍니다. 조선시대 명칭은 현재의 행정구역과 대응시켜야 한다나요? 일단 답장에 제 생각을 적어놓고 일단은 지켜볼 작정이지만 솔직히 좀 웃기는게 차라리 곤양군문서를 독립시켜서 거기에 작성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방식도 괜찮겠다 싶어서 그리 했는데 제목이야 고대명칭이더라도 해당지역의 역사를 다 적었고 거기다 해당하는 지역에 대한 문서를 적었으면 거기로 넘겨주기를 해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굳이 꼭 현재지명에 대응시켜야 한다는 게 좀 꽉 막힌게 아닌가 싶은데 말이죠.PS. 써놓고 보니 좀 두서가 없네요.--駕洛國(가야) (토론) 2010년 2월 11일 (목) 03:41 (KST)

제 생각에도 현대에 와서 완전히 없어져 버린 지명이라면 고대 지명이던 조선시대 지명이던 간에 독립적인 문서가 필요하긴 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현대와 거의 완전히 대응될 수 있는 지명이라면, 예를 들어 예전에는 군이었다가 시로 변경된 경우라면 모를까, 이번 건은 곤양군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곤미로 놔두어도 무방할 것 같네요. 사천으로 링크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확하다고 생각됩니다. 제 의견은 그러합니다만, 조금 더 중의를 모아 지침을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2월 11일 (목) 09:22 (KST)

반스타 드림

  트롤스타
저는 Xakyntos님의 낙랑군 문서 관련 편집에 대해서 이 반스타를 드립니다. -- 행유 (토론 / 기여) 2010년 2월 26일 (금) 22:20 (KST)
과분한 칭찬, 감사드립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2월 26일 (금) 22:27 (KST)


청주 (9주) 문서를 고쳐도 될까요?

오래간만입니다. 진주의 고대이름은 실제로는 거타이고 거열은 옛 거창지방인데 이름이 비슷해서인지 옛날 기록에 혼동해서 쓰였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반영해서 적고자 합니다만?--駕洛國(가야) (토론) 2010년 3월 4일 (목) 12:58 (KST)

내용의 추가나 오류의 수정은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백과사전인데 그런 것을 무엇하러 물어보세요. ^^;;--Xakyntos (토론) 2010년 3월 4일 (목) 14:25 (KST)


청주 문서는 작성자를 알고 있고 작성된지 얼마 안되었으니까요.^^;--駕洛國(가야) (토론) 2010년 3월 4일 (목) 14:27 (KST)

방금전에 내용을 고치고 좀더 추가했는데 어떤가요? --駕洛國(가야) (토론) 2010년 3월 5일 (금) 00:18 (KST)

환단고기와 고대상고사에 대해..

안녕하세요~ 여러번 글올렸던 사람입니다. 제소개를 일단하자면 학생이고요 몇번 고쳤었죠. 적어도 민족주의적 성격을 조금 띄고 있는 학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일단, 고대사에 관한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고대사 반만년이라고하죠? 님도 아실듯 하지만, 여러 문헌에는 반만년 이상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일단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지금 현재 고대사에 관한 증거물이 중국에 분포한다는 것입니다. 실재로 중국 동북쪽에 대거로 적송총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중국측에서는 이를 진시황릉으로 착각하고 파보았죠, 하지만 탄소측정연대를 해보니 몇천년이 앞선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보니 자기들 양식으로 제조된 유물들이 아니였고, 기마민족의 성격을 띈 유물들이라 했습니다. 또 한가지는 그 적성총이 쌓여진 방식이 고구려 전통의 기법인 들여쌓기 공법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중국은 이 문명을 붉은산 즉 홍산문명이라 칭하고 여러므로 동북공정이 끝날때 까지 공개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미국인 비행기 조종사가 찍은 사진으로 인해 파문이 생기게 되었지요. 이는 우리나라 유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 추정을 하기는 어렵지만말이죠.. 이로봤을때 고조선 이전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가설이 성립하기도 매우 좋은 조건이고요.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학계사람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죠. 당연히 우리나라 것이 아니란듯이말이죠. 이것이 겨우 민간단체의 후원으로 인해 여러 재야사학계로 넘어가 연구가 시작 된 것이고요. 또한 환단고기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보면 역사책 하나하나가 발굴되고 유적이 발굴되면 어떻게든 연구하려 하는 마당인데, 우리나라는 그걸 보면서도 무조건 위서다, 우리게 아니다, 잘못된거다 라고 치부시키는데, 과연 옳은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 물론 저는 왜곡이라던지 날조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사연구의 정의상 객관적 입장의 역사가 있는 것이고 주관적 입장의 역사가 있는 것이죠. 이 둘을 모두 연구하는 것이 바로 역사가들의 임무이고요. 하지만 우리나라 정통학계의 입장은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자료를 사용하거나 기껏해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사용하여 연구를 하죠, 더군다나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문벌귀족으로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모두 부정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아시겠지만 역사는 무조건 승자의 편입니다. 중국의 기록이라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라는 유명한 책 역시도 원본은 송나라때 분실 되었다죠? 하물며 환단고기라는 책이 나왔는데 20세기 이후의 책이라고 그냥 버려두다니.. 어이가 없지않으세요?? 자민족 중심이 강한것도 문제지만.. 이역시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정통국사학계는 바뀌어야 합니다. 재학사학계를 감싸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정통 국사학계보다 재학사학계가 지금 하고있는 행동이 조금 더 나아 보일뿐 저는 솔직히 그 어느쪽 편도 들고 싶지 않네요.. 실제로 이승헌 박사가 국학원을 짓는다고 할때 한 말씀이 이것을 국회의원이 허락해 준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썩은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죠.. 국학원이라는 것은 나라에서 주관해야 할 것.. 정통사학계가 아라서 해주어야 할 것을 민간단체가 돈을모아 짓다니.. 말이 안되는 것이죠.. 국학이란 말 그대로 국가의 학문이니까요. 결론은 어느 역사서건 항상 승자의 편이였고 이다음 순간도 영원할 겁니다. 어쩔수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중국기록보다는 한국기록을 읽고싶다는 것이고, 평양성까지 만리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병도보다는 그래도 친일했다가 얌체같이라도 빠져나온 재야사학계가 좀 더 낫다는 것 뿐입니다. 이상입니다.. 저는 사실 학생의 입장으로써 우리나라 정통 국사학계가 모범을 보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화가 납니다. 어른들의 세상.. 더럽다고 들었는데 바꾸는데 한발자국 앞장서 주세요^^--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Faalponce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수고 많으시네요.

Power9411에 의해 편집된 문서를 복구하시느라 수고 많으시네요.^^

저 사용자는 오늘 가입하자마자, 계속 발해사와 관련된 부분을 수정하고 있어 그것을 원상복귀하느라 애를 많이 먹고 있는 상태인데 어느새 또 편집을 해놨네요. --가람 (토론) 2010년 6월 2일 (수) 22:38 (KST)

수고하십니다. ^^--Xakyntos (토론) 2010년 6월 2일 (수) 22:43 (KST)


위키백과:사용자 문서를 호도하지 마세요.

허무맹랑한 얘기로 어느 특정 사관과 사학자를 호도하거나 매도하지 마세요. 백:아님#위키백과는 당신의 웹페이지가 아닙니다. 위키백과:사용자 문서#사용자 문서에 쓰면 안 되는 내용을 참고해 주세요. 그런 내용은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쓰는 거고 여기서는 당신의 사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하등의 영향을 받을 곳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곳 위키백과 편집의 내용을 인터넷에 멋대로 유포하지 마세요. 허위유포에 해당합니다. 紫桃꽃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02:51 (KST)

일반 블로그에서처럼 지나치게 긴 내용이라는 지침을 참고하십시오. 귀하와 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위키백과와 관련이 없는, 지나치게 많은 내용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격적이거나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귀하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언제 허무맹랑한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위키백과의 지침 어디에도 사용자문서에 허무맹랑한 이야기 하지 말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귀하의 지나치게 길고 철저하게 독자연구인 글을 지적한 것 뿐입니다. 제 사용자문서는 누군가 합리적인 지적을 하신다면 얼마든지 지울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 사용자 문서 정도의 짧고 얌전한 글은 귀하를 제외한 누구도 지적을 하지 않는군요? 귀하는 제가 아는 것만 2~3번씩이나 지적을 받는데 말입니다. 자중하시지요. 귀하의 사용자 페이지에 아무리 써 봤자 아무도 안읽습니다. 저도 보기가 참 안쓰럽군요.--Xakyntos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09:21 (KST)

2010년 1월 29일 인터넷 어디에서 "위키백과는 심심풀이 땅콩"이라고 잡담으로 올려놓고는 위키백과에 기여하는 작업은 특별한 정신적 소모가 필요 없이, 단순히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것이 많아 심심풀이 용으로 아주 최고다라고 너스레까지 하는 것을 보니 위키백과의 편집에 임하는 자세가 요정도밖에 안되는 것을 타인에게 편집자세를 지적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군요. "양의 탈을 쓴 교활한 여우"라고나 할까요? 그저 허탈한 웃음밖에 안나오네요. 당신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워 더이상 상대할 마음이 없습니다. 紫桃꽃 (토론) 2010년 6월 4일 (금) 07:00 (KST)

아, 한 개인의 주장이었군요.

가끔가다 듣는 이야기라 적어봤는데, 하단에 '그 외' 문단에 있는 글이었군요. 죄송합니다..;; --가람 (토론 · ) 2010년 7월 18일 (일) 19:13 (KST)

한사군 지도

파일:Korean Peninsula topographic map.png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GFDL/CC-BY-SA 이외의 라이선스 조건으로 배포하는 것은 라이선스 조건 위반입니다. (전염성 라이선스거든요.) 확인하고 수정 부탁드려요. -- ChongDae (토론) 2010년 9월 7일 (화) 15:29 (KST)

라이선스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임의로 올렸는데 그게 위반이었군요. 일단 수정해 봤습니다. 올바르게 수정된 것인가요?--Xakyntos (토론) 2010년 9월 7일 (화) 17:30 (KST)

왕검성

 의견 출처에 관해서 말씀드리는데요;; '삼국사기'는 {{서적 인용}}을 통해 출처를 표기하실 수 있습니다. --S7 Ta.】【Con. 2010년 9월 25일 (토) 14:04 (KST)

의견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문서에 인용된 책의 경우는 1차 사료에 해당하는데다 저작권도 소멸되어서 특정 출판사가 없고 페이지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도 없으며 기타 여러가지 문제로 서적인용 틀로 소화하기는 어렵습니다. 말 그대로 가장 기본적인 자료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석으로 제시되기 보다는 본문에 제시되어야 할 정도의 중요도를 가지거든요. --Xakyntos (토론) 2010년 9월 25일 (토) 14:08 (KST)

인신공격

[1] 님께서 발언하신 글중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 하는 거로군요. " 이글이 인신공격에 해당됩니다 주의해주세요.--정인우 (토론) 2010년 9월 25일 (토) 19:49 (KST)

개떡 같이 말씀하시고도 찰떡 같이 변명하시는 귀하께 더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인신공격은 단지 격한 말을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행동이라도 더 돌아보십시오.--Xakyntos (토론) 2010년 9월 25일 (토) 20:07 (KST)

되돌림 분쟁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에서 되돌림 분쟁 중인 내용에 대해 분쟁 이전인 10월 2일 판으로 되돌렸음을 알려드립니다. 토론:미나모토노 요시쓰네에서 분쟁 내용에 대해 토론을 통해 해결해보도록 합시다:) -- Min's (토론) 2010년 10월 4일 (월) 16:51 (KST)

환국 문서도 분쟁 이전의 상태인 8월 11일 판의 편집판으로 되돌렸음을 알려드립니다:-) -- Min's (토론) 2010년 10월 4일 (월) 16:56 (KST)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환국 문서는 특별히 더 추가된 것이 없어서, 편집분쟁 자체가 8월 11일 판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사용자는 토론을 진행할 생각이 없는 것 같군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데, 저분은 차단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10월 4일 (월) 16:58 (KST)
분쟁 중인 내용에 대해 일단 토론에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단지 분쟁 내용에 대해 분쟁 이전으로 되돌렸을 뿐, 해당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토론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 Min's (토론) 2010년 10월 4일 (월) 17:37 (KST)

사용자:킹제임스성경, 사용자:최문석에 대한 상황은..

위키백과:관리 알림판/2010년 10월#분쟁을 유도하는 계정들에 참고하시면 됩니다. -- Park4624 (토론) 2010년 10월 4일 (월) 20:28 (KST)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파일:统一新罗图(Unified Silla).jpg 이런 파일을 계속 주장하는 사용자 때문에 그럽니다만.. 실례가 안 된다면, 도독부와 관련된 지도를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가람 (논의) 『One day, one hour』 2010년 10월 4일 (월) 21:13 (KST)

저도 왠지 그 사용자를 알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 지도를 계림도독부 관련으로 사용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편집인지라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계림도독부는 사실상 설치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웅진도독부, 안동도호부와 함께 각각 신라, 백제, 고구려에 해당하는 지역이므로 통일신라 지도를 계림도독부로 연결하게 되면 틀린 것이 됩니다. 게다가 엄밀하게 말해서 설치 자체가 되지 않은 행정구역의 지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10월 4일 (월) 21:28 (KST)
관련이 없는 지도는 도독부 만이 아니라서 좀 걱정입니다. 그 덕분에 일본어판에서 편집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어판에 만들어 놓은 '계림도독부' 문서에도 저 파일을 계속적으로 추가하고 있고요.. 아무튼 답변 감사합니다.^^ --가람 (논의) 『One day, one hour』 2010년 10월 5일 (화) 00:01 (KST)

그리고.. 이 편집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는데, 확인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밑에 설명도 한자로 써서 해석한다고도 애먹었는데 도통 모르겠네요... --가람 (논의) 『One day, one hour』 2010년 10월 7일 (목) 14:22 (KST)

저 탁본은 정확한 물건입니다. 제가 설명만 한글로 바꿔놓았어요. 관구검기공비라고 관구검이 고구려를 쳐들어가서 국내성 밑에다가 새겨놓은 비문입니다. ^^--Xakyntos (토론) 2010년 10월 7일 (목) 20:08 (KST)

관리자 선거 알림

Xakyntos님!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현재 2010년 10월 7일 (목) 11:45 (KST) 부터 2010년 10월 21일 (목) 11:45 (KST)까지 Ha98574관리자 선거가 진행되고 있으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며, 찬성 또는 반대로서 서명해 주신다면 관리자 선거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관리자 후보를 직접 검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Irafox (토론) 2010년 10월 17일 (일) 19:04 (KST)

중국 대륙에서의 백재의 존재

요서 경략설로 일축하여 통 삭제 하셨더군요. 그 부분은 en:Baekje#Baekje's presence on the continent을 번역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2006년 10월 26일 백제의 요서 지배설이 처음 등장한 문서(전문서와 비교본)부터 시작해서 여러 유저들에 의해서 편집되고 현재까지 대륙에서의 백제의 존재라는 제목의 내용이 포함되어 en:Baekje 자체는 보호 문서로 지정되어 지금은 편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독자연구가 아니라는 것은 알수 있죠. Xakyntos님이 대륙사관을 싫어하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역사가가 아닌 제가 보기에도 그 문서는 환단고기 같은 재야사학과는 거리가 먼, 백제의 전성기 역사인 듯 싶습니다. 그러므로, en:Baekje의 문서까지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단지 제목을 대륙백제설로 바꾼건 빼고는 원문을 거의 그대로 번역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의 토론을 거쳐, 다시 복원해 놔도 될 듯 싶습니다.--문헌앵벌이꾼 (토론) 2010년 11월 21일 (일) 18:14 (KST)

제 토론방에 남기신 대륙백제 부정설 잘 보았습니다. 정녕, 거짓이라면 여기서만 논의될 문제가 아닙니다. en:Baekje는 현재 보호되어 있으므로, 님이 영작 좀 할줄 아시면, 거기 토론글에다가 "양쯔강 하류 이상의 대륙 백제는 명백한 거짓"이라는 뜻과 근거를 제시해서, 영어판 위키피디아 관리자의 조정으로 영어 유저들이 그 부분을 삭제 할 수있게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그 부분을 그대로 번역했던 것과 같이, 다른 언어들로도 그대로 번역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영어판 문서도 부정되는 이 시점에서, 실제 내가 보고있는 문서들도 의심하게 되는 한 유저가. 진실은 저너머에...' 어쩌면, 제가 그 부분의 최초 발견자 일수도 있습니다. 4년넘게 영어판에서 다뤄졌었는데도 말이죠. 그런데 반-재야역사가가 몰랐으니, 제가 알려드린겁니다. ^^; 이건 뭐 제2의 아틀란티스도 아니고말이죠. ^^ --문헌앵벌이꾼 (토론) 2010년 11월 21일 (일) 22:26 (KST)
(지나가다가) 혹시, 'Although controversial, some Chinese and Korean records indicate that Baekje territory included parts of present-day China, across the Yellow Sea.' 이 구절만 말씀하시는 건가요? --가람 (논의) 『Carpediem』 2010년 12월 4일 (토) 23:07 (KST)

선덕여왕

삼국유사에는 비담의 난이 10여일 지속됐다고 하고, 삼국사기에는 왕이 정월 8일에 죽었다고 합니다. 이를 종합하여 선덕여왕이 비담의 난 도중에 죽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서술은 양쪽 사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학자들이 해석한 바가 있을까요? adidas (토론) 2010년 12월 18일 (토) 02:5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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