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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文鮮明; 음력 1920년 1월 6일, 양력 2월 25일~ )은 대한민국의 종교인으로, 통일교 즉,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전신)의 창시자이다.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통일교의 최고 목회자이다. 그의 영향력은 그의 조국인 대한민국보다는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더욱 강하다.[1] 1960년대 이래로 현재까지 두익사상에 의한 남북통일을 주장하며 [2] 반공승공 운동을 벌여온 그는,[3] 언론을 통하여 미국 등 서방세계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미쳐왔을 뿐 아니라,[4] 1990년구소련의 당시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회동을 가지고, 1991년북한의 당시 주석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고 통일방안을 논의하는 등 남북통일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5]

생애 편집

출생 및 집안 배경 편집

문선명은 평안북도 정주군 덕달면 덕성동 출생으로 남평 문씨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종조부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애국지사, 문윤국 목사로 3.1 독립운동 평안북도 총책임자로 오산학교 직원과 생도 및 교회신도, 오산 주민들을 이끌고 만세 시위운동을 벌이다 옥고를 치루었다.[6] [7][8]그 이후로도 피신을 다니다 강원도 정선에서 생을 마감하였는데, 집안재산을 모두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어 집안이 파산나고 말았다. 아버지(문경유)는 학자 타입이고, 어머니(김경계)는 활동적인 여장부 타입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6남 7녀 중 2남으로 태어났으며, 형 문용수의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9]

어린 시절 편집

어린 시절(7-13세)에는 자연을 벗삼아 서당에서 유교논어, 맹자 등을 공부하였다. 차자에게 공부를 시키면 객사하는 집안 전통이 있어서 그도 학교를 늦게서야 가게 되었다. 14세에 신식학문을 접하기 시작하여, 15세에 오산학교에 입학한다. 1년 뒤, 정주 공립 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세(1938년)에 졸업한다. 정주의 유지들이 모인 졸업식에서 일본과 일본식 교육에 대하여 단상에서 비판하는 즉흥적인 자원 연설을 하였으며, 그 이후로 경찰들에게 지목받기 시작한다. 본래 유교 집안이었으나, 10여 세 때에 전가족이 개신교에 입교한다. [10] 16세 부활절 아침에 예수가 계시에 나타나, 고통받고 있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께서 슬퍼하고 계시니,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를 하였다고 한다. [11]

서울 및 일본에서의 유학생활 편집

1938년에는 서울로 올라와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를 다니며, 조선예수교회[12] 계열의 명수대예배당[13]에서 반사(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그 당시, 창경원이나 흑석동, 상도동 일대에서 전도활동을 하였다.[14]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부설 고등공업학교 전기과에 유학하였다. 이 곳에서 원리와 공산주의 및 진화론에 맞선 사상체계를 정립한다. 또한, 한인학생회를 통하여 항일지하학생운동을 벌였다. [15]

1940년대 남한에서의 활동 편집

졸업 후 귀국한 그는 1943년 12월 최선길[16]과 약혼하였고, 1944년 3월에는 서울에 있는 가시마구미 경성지점 전기부에 취직하였다. 1944년 5월 예수교 이호빈 목사의 주례하에 결혼하였다. 1944년 10월에서 1945년 2월 사이에는 경기도경찰부에서 감옥생활을 하며, 일본에서의 활동에 대한 취조와 고문이 이어졌다. 1945년 10월에는 돈 문제 때문에 1주일 가량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후, 1946년 4월까지 김백문 목사의 '이스라엘수도원'[17][18]에 참여한다. 이 곳에서 김백문 목사는 계시에 의하여 모든 신자가 보는 앞에서, 전세계의 솔로몬왕의 영광이 그에게 임하게 될 것을 축복해 주었다고 한다. [19]

북한에서의 활동 편집

1946년에는 삼팔선을 넘으라는 하늘의 계시를 받고 가족은 남한에 남겨둔 채 홀로 평양으로 떠나게 된다. 1946년 6월에는 북한 정부의 신종교에 대한 탄압정책에 따라서, 종교를 사칭해 사기를 쳤다는 명목으로 허호빈복중교가 적발되었다. 문 목사는 복중교와 관련이 있다는 죄목으로 조사를 받았으며, 남한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월북하였다는 이유로 간첩혐의가 덧붙여졌다. 간첩혐의에 대하여서는 뚜렷한 혐의가 나타나지 않아서, 사회질서문란죄로 1946년 8월부터 11월까지 수감되었다. 출옥 후 종교활동을 통하여 신도 수가 점차적으로 많아졌으나, 북한의 종교말살정책과 개신교 측의 고발로 인하여 다시금 간첩혐의로 1948년 2월부터 5월까지 평양내무서 및 형무소에 수감된다. 5월에는 흥남노무자수용소로 이송되었으며, 이 곳에서 1950년 10월까지 강제노역을 당한다. 이 곳에서 12명의 제자를 전도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 흥남에 상륙한 유엔군에 의해 석방되었다. 10일간의 평양귀환 길에 문정빈, 박정화 등 옥중에서 전도한 네 명의 제자가 따라나섰다. 평양에서 다시 40일간 지승도, 옥세현, 정달옥, 김원필 네 명의 제자를 수습하여 평양을 떠난다. 1950년 12월 4일 평양을 떠나, 27일에 서울에 도착한다.[20][21].

1950년대 남한에서의 활동 편집

서울에 1주일 간 체류 후, 1951년 부산광역시로 피난하여 토담집을 짓고 부두노동, 목공, 미군 초상화 그리는 일 등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교리인 《원리원본》을 집필하여 1952년 완성하면서 부산과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상을 바탕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한다. 지승도, 옥세현, 김원필, 이기완, 강현실 등이 초기의 신자였다. [22] 1953년에는 대구로 개척 전도를 하며 세력권을 넓혀 나갔다.

1954년 5월 서울로 기반을 옮기며 정식적으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설하였다. 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도활동을 벌이다, 1955년에 통일교를 믿는 이대 연대 학생 및 교수들에게 퇴학 및 퇴직 명령이 내려지면서 기반이 약화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한국전쟁 당시 병역기피 혐의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다. 10월에 혐의에 대한 무죄판결이 나고, 문 목사는 100일간의 수용소 생활을 마친다. 그의 아내 최선길은 수감기간 동안 문 목사와 통일교에 대한 비난을 공공연히 하였으며, 교도소에 이혼장을 들고 찾아와서 이혼을 종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3년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하였으나, 계속되는 이혼 요구에 못 이겨서 석방 직후 도장을 찍고 만다. 같은 시기, 청파동 본부교회로 기반을 옮기고 정착한다.

1957년 교리서 《원리해설》(1966년원리강론(原理講論)》으로 증보되었음)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종교활동을 시작하면서, 1958년에 일본(최봉춘), 1959년에 미국(김영운, 김상철)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초창기부터 해외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59년 청파동에 통일산업 공장을 세우며, 경제사업을 시작한다.

1960년대 남한에서의 활동 편집

1960년부터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라는 대규모 합동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다. 1960년에는 문 목사와 한학자 여사의 성혼식과 3쌍의 초대교인들이 참가한 축복결혼식이 열렸다.[23] 1961년에 33쌍이 더 축복결혼에 참여함으로써, 36쌍 축복가정이 탄생하였다.[24] 같은 해, 장녀 문예진과 장남 문효진이 탄생하였다.[25]

미국에서의 활동 편집

1976년 워싱턴 대회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 박보희 총재의 국회 연설 댄버리 레이건과의 관계 부시와의 관계

주요 활동 및 업적 편집

문선명 목사는 종교인이지만, 하나님의 뜻이 세상의 전반에 걸쳐서 파고들어야 한다는 그의 믿음 때문에 UN 뿐만 아니라, 각국의 정치, 경제, 언론, 과학, 문화, 교육 등 전분야에 걸쳐서 국제적인 사업을 펼치고 있다.[26]

UN 활동 편집

문 총재는 기존 UN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UN 갱신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하여, 천주평화연합(UPF)이라는 민간기구를 만들어 민간 차원의 세계적인 평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를 모태로 하여 기존 UN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즉, 현재까지 UN을 이끌어온 국가대표들을 하원으로 설치하고 새롭게 종교계, 문화계, 교육계의 국제적인 지도자들로 구성된 상원을 창설해 이것이 하원을 보완하고 하원이 그것을 존중하고 현실화한다는 방안이다. 이를 통하여, 양원의 상호존중으로 글로벌 이슈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기구는 기존 유엔이 각국 정부 대표들로 구성, 운영되는 데 반해, 192개 유엔 회원국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문화계 지도자들이 민간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자국 대표로 참여하는 범세계적인 민간 기구이다. 이를 통하여, 지역주의국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존 유엔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평화 정착, 분쟁 해결, 빈곤 추방 및 환경 보전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27] [28][29]

정계 편집

정치적으로는 대한민국평화통일가정당을 설립하여 지난 18대 총선에 전 지역구에 국회의원 후보를 낸 바 있다.(의석 확보는 실패) 이후 네팔에도 같은 이름의 정당을 설립하여, 1명의 당선자를 내었다.[30][31]

경제계 편집

경제계에 있어서는 (주)일화[32] 통일중공업(주)(현재 S&T 중공업)[33], 일신석재 [34], 평화자동차 등의 여러 기업을 운영하여 활발한 활동을 보여 왔다. 특히, 평화자동차는 북한에 자동차 공장을 세워 휘파람이라는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어 남북교류에 기여하고 있다.[35]

언론계 편집

언론계에 있어서는 세계 4대 통신사의 하나인 UPI 통신사를 경영하는 한편, 미국에서 1977년 '뉴스 월드(News World)', 1982년 '워싱턴 타임즈(Washington Times)', 대한민국에서는 1989년 '세계일보', 일본에서의 세계일보(세까이니뽀), 중동미들이스트 타임즈(Middle East Times), 중남미티엠포스 델 문도(Tiempos del Mundo) 등을 창간하여 언론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36][37][38]

학문계 편집

학문계에 있어서는 국제과학통일회의를 주관하여 종교와 과학, 사상 등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새로운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39]

문화예술계 편집

문화예술계에 있어서는 그의 차남 문흥진 씨와 영혼결혼을 한 것으로 유명하며, 세계일보 회장을 지낸 박보희 씨의 딸인 문훈숙 씨가 단장으로 있는 유니버셜 발레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선화예술중학교, 선화예술고등학교 등을 운영하여 예술계의 인물들을 길러나고 있다.[40]

교육계 편집

교육계에 있어서는 앞서 언급한 예술학교 뿐만 아니라, 경복초등학교, 선정중학교, 선정고등학교, 선문대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청심국제중학교, 청심국제고등학교특수목적고등학교도 설립하였다. 미국에서는 UTS(Unification Theology School)를 설립하였으며, 브리지포트 대학을 인수받아 경영하고 있다.[41][42]

스포츠계 편집

문 총재는 개인적으로 축구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그는 (주)일화를 모기업으로 하는 성남 일화 축구팀을 만들었다. 성남 일화는 대한민국의 프로리그인 K-리그를 7차례나 우승할 정도로 명문팀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또한 브라질 상파울루에도 소로카바라는 프로축구팀을 인수받아서 운영하고 있다. 2000년에 A그룹 3부 리그의 팀을 인수받아서, 2002년에 2부 리그로, 2004년에 1부 리그로 승격하였고, 2008년에 상파울루 주 챔피언전에서 우승하였다.[43]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하여, 피스컵이라는 세계 명문 프로팀들간의 경기도 만들었다. 2003년부터 2년 주기로 대회가 열렸으며 2007년 제3회 피스컵까지 열렸다. 1회 대회에 PSV 에인트호번, 2회 때 토튼햄 핫스퍼스, 3회 때 올림피크 리옹이 우승했다. 2009년 제4회 대회는 스페인 마드리드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 대회는 올림피크 리옹, 레알 마드리드, 세비야 FC, 리가 데 키토, 유벤투스, F.C. 포르투, 성남 일화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44] 이 대회가 성공하자 2006년부터 국제 여자 축구 대회인 피스퀸컵(Peace Queen Cup)도 2년마다 개최하고 있다.

주요 교리와 주장 편집

문선명 목사는 16세 되던 1935년 부활절에 기도하던 가운데 예수로부터 '인류 구원 사업에 대한 엄중한 당부'를 받았다고 하며, 통일교회에서는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 메시아, 재림주로서 한학자 여사와 함께 "참부모님"이라 칭한다. 그의 사상은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기초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여기며, 기존 기독교와 유사한 교리를 표방하고 있으나, 여러가지 세부적인 측면에서 기존 기독교와는 상이한 부분이 많다.

원리강론 편집

통일교의 기본교리서인 원리강론유효원의 저작으로 전편 7장, 후편 6장으로 되어 있다. 전편은 창조원리·타락론·종말론·구주론·부활론·예정론·기독론으로, 후편은 제1-5장까지의 복귀원리와 제6장의 재림론으로 되어 있다.[45]

전편 편집

창조원리의 핵심은 하나님은 참사랑중화적 주체이시며, [46] 참사랑의 이상을 실체화시키기 위하여 피조세계를 창조하셨고,[47] 실체화된 피조만물은 역시 하나님을 닮아서 참사랑을 통한 수수작용(사랑과 미를 서로 주고 받는 작용)을 통하여 본연의 창조이상인 하나님을 중심한 사위기대(하나님과 주체, 대상, 주체와 대상의 사랑을 통한 합성체)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48] 사위기대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정이다. 한 가정은 남편과 아내, 자녀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연의 가정은 하나님을 중심하여 남편과 아내가 혼인을 맺고, 그 혼인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참사랑으로 맺어져서, 사랑의 합성체인 자녀를 낫게 된다는 것이다.[49]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하여 통일교에서는 하나님 중심의 가정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축복식"이라는 합동결혼 행사를 벌이고 있다.

타락론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창조원리는 온전한 것이지만, 인간은 미성숙기에 사랑 행위를 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당시 천사장은 인간을 돌보기 위한 집사와 같은 위치에 있었고, 이미 성숙한 입장이었으며 하나님이 자신보다 더 사랑하시는 여성 해와를 보고 자극을 느껴서 불법적인 사랑을 하였고, 해와는 자신의 타락 이후 아직 하나님의 원리권 내에 있는 남성 아담을 보고 자극을 느껴서 유혹을 하여 비원리적인 사랑을 하게 된 것이 타락의 시발이라는 것이다. [50]그 사건으로 인하여 이후의 모든 남녀간의 결합에 의한 사랑 행위는 비원리적인 행위가 되어 버렸으며, 그로 인하여 태어나는 자녀들도 비원리적인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51]사랑과 혈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인간타락에 개입되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을 대신한 참감람나무 메시아가 참가정을 이루어서 돌감람나무들과의 접붙임을 통하여 혈연을 통한 복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52]

종말론에서는 말세란 인류역사가 실제로 종말을 맞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역사가 끝을 맺고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주권이 지상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시점임을 말한다.[53] 종말론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두 번의 말세를 통하여 창조이상의 완성을 시도하셨다. 첫번째는 노아의 홍수심판 때이며, 두번째는 예수를 통한 말씀 심판이었다. 하지만, 두번 다 인간이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 하지 못하여 섭리가 연장되었으며, 예수의 재림 때가 마지막 말세라는 것이다. [54] 또한 말세 때의 현상을 나타내는 성경 구절을 통하여, 말세 때에는, 재림주님의 말씀 심판으로 사탄 주권이 무너지고 주님을 영접하는 성도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주권이 복귀되며, 구약/신약 시대의 영인들이 재림부활하고, 신약의 말씀은 재림주님의 새로운 말씀으로 대체됨을 주장한다.[55]

구주론에서는 예수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부분적인 구원섭리로서 이루어진 것임을 주장한다. 즉, 십자가 구원 섭리로 인류는 영적인 구원만을 이루었으며, 영육 아우른 구원을 위하여 예수는 다시 재림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56] 또한 구약성서에 예언된 엘리야는 세례요한이며, 세례요한의 예수에 대한 불신은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길을 가게 된 큰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57]

부활론에서는 부활을 인간이 타락으로 초래된 사탄주관권에 떨어진 입장으로부터 복귀섭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으로 복귀되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58] 또한, 아담가정으로부터 단계적으로 지상인에 대한 부활섭리가 이루어져 왔으며, 영인들은 지상인들의 부활섭리에 다양한 방법으로 관여하면서(윤회설과 연관이 있음) 간접적인 부활을 시도한다고 한다. [59]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예수의 재림기에는 모든 종교의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60]

예정론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지만, 뜻 성사에 대한 예정은 인간이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61]

기독론에서는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예수님은 바로 그와 같은 가치를 완성한 인간이지 하나님 자신은 아님을 말하고 있다. [62] 타락인간은 자신의 창조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수님에게 접붙임으로써 중생할 수 있다. [63] 중생을 위하여서는, 아버지 되신 예수님과 어머니 되신 성신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와 같이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수수작용을 하여 기독성도들을 중생시킴으로써 온전한 사위기대를 이루는 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진정한 의미라고 한다.[64]

후편 편집

후편의 복귀원리에서는 인간 창조의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자녀가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는 엄청난 형벌이며 기존 교회에서 말하듯이 영광의 하나님, 찬미의 하나님이 아니라 고통의 하나님, 한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타락인간을 복귀하여 나가기 위하여 어떤 수고와 노력을 거쳐 나오셨는지에 대하여 성경역사와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복귀섭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65]

재림론에서는 예수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한국에서 지상탄생을 통하여 재림할 것이며, 재림시에도 지상 성도들에 의하여 박해를 받을 것이며, 결국 그 뜻을 이루어서 한국어가 세계공용어가 될 날이 올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66]

통일사상 편집

주요 철학,사상서로는 이상헌이 문선명 목사의 말씀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통일사상이 있다. 통일사상은 원상론, 존재론, 본성론, ..., 예술론, 교육론 등으로 구성된다.

원상론은 하나님의 원상이 어떠한 형태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원리강론의 창조원리와 가장 통하는 부분이다.

존재론은 피조세계 및 피조세계 각 개체의 존재의 기본원리에 대하여 기술한다. 역시 창조원리와 통하는 부분이다.

본성론은 인간에 대하여 논한다.

천성경 편집

문선명 목사의 말씀을 주제별로 선별하여 정리한 천성경이 최근 발간되어 신도들에게 두루 읽히고 있다.

기존 종교의 반응 및 관계 편집

개신교 편집

한편, 1979년 4월 대한민국 개신교계는 당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통일교에 관한 반박 성명을 발표하며 통일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선언하여 이단으로 간주하였다.[67] 하지만, 당시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장이자 연합신학대학원장이던 서남동 교수는 1969년 새문안교회에서 열린‘한국 기독교의 소종파 운동’이라는 주제의 신학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확실히 원리강론은 지금까지의 한국의 신학계가 산출한 신학서 중에서 그 양에 있어서나, 그 조직력에 있어서나, 그 상상력과 독창성에 있어서 최고의 것으로 인정 됨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리강론은 한국적인 신학을 지향하고 있는 점에서도 특이하여 여타의 시도들과 제안들에 도전하고 있으며, 세계교회의 갱신 기풍과 '새로움'에 대한 요망을 앞지르고 있는 점 등 주시와 연구의 대상이 됨직하다. ....신학적 창조력과 강렬한 신학체계의 장관을 이룬 원리강론은 한국신학의 한 우수한 프로덕션이다."[68]

기독교와 통일교 간의 대화를 추진한 바 있는 고 강원룡 목사 또한 통일교는 이단이 아니라 성경 해석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69]

카톨릭 편집

교황청의 입장, 밀링고 대주교, 통일교를 지지하는 사제들, 카톨릭 사제 축복식 등

불교 편집

지지하는 교파 문 총재의 막내 아들인 문형진 회장은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그 도중 많은 한국의 불교 승려들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성철 스님, 법정 스님 등과 친분이 있었다.

이슬람 편집

지지하는 사제들,아라파트

유대교 편집

이스라엘 평화대행진, 지지하는 사제들

천도교 편집

이철기 교령 사건

최근 동향 편집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과 설악면 일대에 1995년부터 천주청평수련원[70], 청심국제병원[71], 천정궁 박물관[72] 등을 세운 데 이어, 2006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화교육기관인 청심국제중학교·청심국제고등학교를 설립 인가받아 새로 개교했다.[73] 한편, 2005년 무렵에는 여수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한 정부의 기업도시 건설 계획에 참여하여,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일대에 대규모 부지의 매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74] 현재는 여수엑스포 유치에 큰 도움을 준 여수 화양지구 해양관광 레저단지 개발이 문 총재의 계획하에 (주)일상에 의하여 추진되고 있다.

2008년 7월 19일, 서울 서초구 반포에서 회의를 가진 뒤 그와 그의 일가족과 몇몇 통일교도들이 탄 전용헬기가 경기도 가평군 청심국제병원 방면으로 귀환하던 중 악천후 속에 헬기가 장락산 정상 부근에 추락, 불시착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문선명의 일가족을 비롯하여 헬기 승무원까지 탑승자 전원이 헬기로부터 무사히 대피했고, 그 후 헬기는 폭발하여 전소되었다. 승무원을 포함한 총 16명의 탑승자는 모두 무사하며 중경상을 입은 3명을 제외한 문 총재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들은 경미한 상해만 입고 전원이 청심국제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규모의 헬기 사고는 전원 사망하는 경우가 많고, 전원이 사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유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그 날은 청심국제병원에서 외과의사들이 모이는 학회가 있어서 수준 높은 진료로 전원이 빠르게 완쾌하였다고 하여 통일교회 내부에서는 매우 기적적인 사건으로 일컫어지고 있다.[75]

2009년 1월 31일은 문선명 총재의 구순이었다. 이 날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 등 전세계 지도자들이 축하인사 및 선물을 보내서, 총재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90평생 그의 업적을 치하하였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을 통하여, 90년,80년,60년짜리 산삼 세 뿌리와 함께 축하의 글을 자수로 새긴 리본,장미 90송이와 백합 90송이를 담은 화병과 화환 등을 보내와 눈길을 끌었다. [76]

어록 편집

"공산주의는 8대, 70년만에 망한다."

-1967년 이래로 공산주의의 멸망을 예고하는 말을 자주 하였다.
실제로 공산주의혁명(1917년 3월 혁명)이 일어난지 72년째 되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8번째 소련 공산당 총수인 미하일 고르바쵸프 때에 소련 공산당이 해체되었다.[77]

“주체사상을 가지고 남과 북을 통일할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인간이 주체가 될 수 없다. 통일조국은 하나님주의로서만 가능하다”

-북한 만수대 국회의사당에서 전공산당 간부가 모인 앞에서 있었던 기조연설 중 테이블을 내리치며 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공산당 간부들은 분노했고, 문 총재의 수행원들은 김일성과의 회담은 당연히 무산될 것이며,
자신들도 무사히 북한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일성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며, "그렇다면 내가 한번 만나봐야겠구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북한 땅에 와서 할 말을 안 하고 가면 천법에 걸린다. 김일성 주석을 못 만나도 할 말은 다 하겠다”

-만수대 국회의사당 연설 후,“연설내용이 너무 강력하셔서 저들의 감정이 상한 것 같다”는 세계일보 박보희 회장의 보고에 대한 답변

“김 주석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형, 동생 하며 잘 해봅시다”

-김일성 주석에게 의형제를 맺을 것을 제의하며

“김 주석의 사망 소식을 들었지. 1991년도에 나를 초청하여 형제지의(兄弟之誼)까지 맺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네가 내 대신 평양에 들어가 조문을 하여라. 이것은 김정일 세대와 우의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되고 나라에도 유익한 일이기도 하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시 박보희 회장에게 조문을 지시하며

“뭐라고, 못 들어간다고! 내가 보내는 사람은 달라. 정 안 받으면 압록강을 헤엄쳐서라도 들어가. 알았어!”

-북한이 일체의 조문을 받지 않는다는 박보희 회장의 보고에 대한 답변[78]

주석 편집

  1. 문선명선생을 미국 일본 선진국에서 왜 따르는가.
  2. 통일이념으로서의 두익사상 하나님의 뜻으로 본 남북통일, 제5장 제6절-3
  3. 문선명 선생은 세계적인 승공지도자 1986.5.29. 서울 롯데호텔
  4. 미국 언론계에 우뚝 솟은 워싱턴 타임스 1982.10.21. 서울 롯데호텔
  5. 심층취재 통일교 ② 10명 자녀 중 4명 공식 직함 갖고 활동 중 《월간중앙》
  6. 공훈전자사료관 내 자료 정주의 독립선언 부분 "정주에서는 문윤국(文潤國)·박기선(朴基宣)·최성득(崔聖得)·김사걸(金思傑) 제인의 주모로 가장 흉악한 적군의 압력 하에서 궐기할 때에, ...안팎으로 상응코자 하였다."
  7. 공훈전자사료관 포상자 공적조서 문윤국
  8. 공훈전자사료관 판결 대정 8년 형상 제177호 피고:기독교 목사 문윤국
  9. 2. 남평문씨 가문의 전통과 가정환경 (《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pp. 29-45)
  10. 제2절-5. 초기학습과 신앙입문 (《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11. 제3절-2. 예수님과의 영적 만남 (《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12. 1933년 원산에서 성립한 신비주의 교파.
  13. 신비주의적 경향 때문에 감리교로부터 이단으로 판정받아 교단에서 쫓겨난 교회이다(《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 교리》. 이중섭. 가톨릭 신문사, 2001. 222쪽.).
  14. 제4절-3. 체휼신앙의 심화 (《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15. 제4절-제5절 (《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16. 최선길은 일제 시대 때에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은 재건교회 출신이었다. 종족적 신앙기반과 참부모님(《참부모님 생애노정 2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17. 개신교로부터 이단으로 간주되던 종파였다 (《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 교리》. 이중섭. 가톨릭 신문사, 2001. 223쪽).
  18. 문선명 목사는 신도들에게 당시 이 교단이 개신교단 중에서 가장 신령적인 기준이 높았으며 김백문 목사를 통하여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연결이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참부모님 생애노정 2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19. 제6절 (《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20. 《참부모님 생애노정 2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21. 《신동아(新東亞)》통권 558호(2006년 3월).
  22. 서울에 살던 아내(최선길)와 7살 난 아들이 찾아와서 극적인 만남을 갖지만, 최선길과 그의 가문은 그 후로 문 목사를 극도로 반대하게 된다.(참부모님 생애노정 2권.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1999.)
  23. 36, 72, 124가정의 축복 축복가정과 이상천국 I page 768
  24. 33쌍 축복
  25. 신흥종교 레포트
  26. 하나님의 뜻으로 본 환태평양시대의 사관 통일교 문선명 총재 특별 강연문
  27. "세계평화는 한반도 통일로부터" 《뉴스메이커》 2001.8.24.
  28. 민간 평화 UN 시대 열린다 《종교신문》 2007.10.17.
  29. UPF 홈페이지
  30. 네팔 가정당 '신선한 돌풍'《세계일보》
  31. 네팔 가정당의 총선 승리 첫 국회의원 당선《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홈페이지》
  32. (주)일화 홈페이지
  33. 남북관계 훈풍 타고 "더 가까이" 《주간동아》
  34. 일신석재 홈페이지
  35. ‘최후의 야망’ 불태우는 문선명 《시사저널》 732호, 2003.10.
  36. “통일교, 지역개발사업으로 여수 침투” 《크리스챤 뉴스위크》
  37.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Sunday Journal USA》
  38. 세계일보《엔싸이버 백과사전》
  39. 부다피아 이웃종교 통일교 개요
  40. 문선명 총재 며느리 문훈숙 "이런 삶,내가 선택한 숙명" 《중앙일보 2006.11.16.》
  41.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 주요섭리기관 소개
  42. 학교법인 선문학원 소개
  43. 김흥태 구단주 “브라질 축구계 영웅 되다" BreakNews 2009.1.6.
  44. 피스컵 홈페이지
  45. 원리강론 목차 《원리강론》. pages 3-15. 1966.
  46. 원리강론 제1장 제1절-I.하나님의 이성성상 《원리강론》. pages 27.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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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하나님의 이상가정과 평화이상세계왕국 천주평화왕국시대 선포대회 말씀, 2006.3.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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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뉴스메이커 2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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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http://www.ipeacetv.com
  76. 90세 생일 맞은 문선명 총재‥오바마 축전ㆍ김정일 90년 산삼 보내 축하 《한국경제》
  77. 냉전종식의 비화-서울에서 평양까지(2) 가정연합 소식
  78.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남북통일을 위한 대장정 《헤드라인 뉴스》2007.10.

참고문헌 편집

  • 《참부모님 생애노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성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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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사상요강(두익사상)》. 통일사상연구원. 성화출판사, 1961.
  • 《천성경》.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성화출판사, 2005.
  • 〈문선명(文鮮明)〉,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회사, 2000.
  • 《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 교리》. 이중섭. 가톨릭신문사, 2001.

바깥 고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