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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이라는 용어는 처음에는 "개신교"와 "기독교"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부정적 접두사인 "개"와 "기독교"를 합쳐서, 즉 기독교를 비하하여 부르는 용어로 사용하는 추세이다. 또한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1] 기독교, 기독교인(개신교·천주교인), 예수 등을 비판하는 용어로 활용되고 있다.

개독교는 대한민국에서 생겨난 신조어로 "개인독재교"의 줄임말이다. 일부 기독교인의 부정부패, 비리가 많았고 국내 이외에도 세계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많이 빚어와 그 내용들과 국내의 문제점들로 인하여 네티즌들로 부터 의미가 재부여, 재생산된 경우라 볼 수 있다.

계기 편집

사용 사례 편집

"기독교가 다 개독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 기독교에 희망이 있음을 알리려고 나왔다"

— 서울시청 옆 대한문 광장에서 신학과 07학번 차경민 씨가[5]
  • 2009년 6월 8일에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던 예수의 정신을 잃은 기독교와 장로 대통령을 지탄'한다는 취지로 사용한 표현이다.[5]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어 우리 주님의 권위는 떨어졌으며, 아프간에서의 의롭고 아름다운 순교는 파렴치한 기독교 신자들의 철부지 짓처럼 치부됐다."

— 한동대학교 14대 총학생회(회장 박총명)가[6]

무신론으로써의 입장 편집

이러한 '개독교' 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쓰는건 한국의 무신론자들이다. 또한, 무신론자들이 이러한 표현을 논리정연한 설명문, 반론문, 서적들을 통하여 재생산하기도 했다. 무신론적 입장으로써는 "헛소리는 비꼬는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비논리는 비논리로 밖에 대응될 수 없다) 라는 입장을 빌려 '개독교' 라는 발언을 자주한다.

위의 [사용 사례]에서의 인용문 중, "기독교가 다 개독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 라는 발언은 "일부일 뿐 다 똑같지 않다" 라는 개신교의 변명중 대표적인 '일부론' 으로써 무신론자들에게 많은 반박이 있어왔던 문제의 소지가 많은 발언이다. (아래 인용문 참조)

"기독교인들의 변명중 가장 치가 떨렸던 것은 어떠한 문제가 부각되면 항상 단지, '일부' 라고 주장하는 것이였다. 이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단지, 살인자 1명" 이 있다고 그 동네가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것인가 생각해보라. 더 나아가서 그 동네에 위험한 전염병이 "단지, 1사람의 전염자" 밖에 없다고 해서 그 지역을 국가에서 조치를 안한다고 생각해봐라 그것이 바로 기독교다"

— 자유사상가 주장,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반론중

주석과 인용 편집

  1. 남경욱 기자. “'한국 기독교 어디로…'포럼/ 개신교, 신랄한 자기반성의 자리”. 한국일보. 22면면. 
  2. 예수가 말한 이웃 사랑은 예수의 말 그대로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남, 내 것과 남의 것을 경계 지어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나와 남, 내 것과 남의 것의 경계를 없애는 데서 가능해지는 일이다. 내 것의 일부를 이웃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내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김규항 <예수전> 중에서
  3.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직을 하던 1980년에 서울 강남구 신사동 624-42번지에 외상으로 소망교회 예배당을 건축해 주고 그 댓가로 1995년 소망교회 장로안수 받았다. 개발이익을 국민 전체의 몫이 아니라 목자나 장로의 몫으로 둔갑하며 '독재'의 한 형태를 만들었다.
  4. 한국복자수도회 이상윤(베드로) 수사신부는 “촛불집회가 잦아들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정의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계사 향하는 길을 경찰이 막고 있지만 정의가 더 강하다고 믿는다. 시국미사는 계속될 것이다. 하느님 영광의 기본적 가치는 고통받고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일하는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 김은석 기자. “한신대, 촛불 들고 '예수 정신 되찾자'. 뉴스앤조이. 2009년 6월 14일에 확인함. 
  6. 최창민 기자. “한동대 총학 盧 전 대통령 분향소 반대”. 뉴스파워. 2009년 6월 1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