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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평등이란 사회에서 인간의 평등이 구현되는 바를 가리킨다.

개념편집

인간의 평등은 사회적 조건이 구비되었을 때 실현가능하다. 근세초기에 인간이 평등해야 한다는 이념을 내세운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은 사회적으로 출생과 함께 매우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분적인 불평등을 타파하지 않고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활발하게 자기의 개성을 개발해서 자아를 실현할 수가 없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큰 뜻을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농부의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는 상태는 그 개인의 큰 불행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원하는 바를 힘껏 행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 평등의 원리가 높게 제창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근세인은 과거의 신분적·계급적 구속에서 해방되어 각자가 자기의 재능과 희망을 최대한 발휘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근세의 자유는 인격의 평등에서 도출된 또 하나의 이념이고 실천이라고 할 수가 있다.

농노적(農奴的)인 구속이나 노예의 신분적 구속의 배제는 인격의 평등 때문이고 그러한 구속이 배제된 결과는 모든 사람이 상하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실현케 한 점이다. 자유주의의 결과 근세 시민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한마디로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의 발전이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진전했다는 사실이다.인류는 주로 농업을 주된 산업으로 생활하는 삶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농업 위주의 사회에는 생산력에 있어서나 생산수단에 있어 그리 큰 변화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인간의 생활도 비교적 간단하고 검소하며 또 물질적인 생활이 인생에 대해서 지니는 비중도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서 산업혁명을 치른 결과 인간의 물질적 생활 정도는 과거의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가 없을 만큼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물질적 문명은 과거와 같은 소수의 왕공(王公)이나 귀족들만이 누리는 특권적인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이 다같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범인간적(凡人間的)이란 데에 그 특징이 있다. 따라서 근대사회는 물질적 풍요가 그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이고, 인간의 생활은 이러한 풍요한 물질 속에서 편리하고 고도로 발달된 생활수단의 혜택 속에서 삶을 즐기는 시대로 되었다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회에서는 물질 그 자체가 인간생활 속에서 차지하는 몫이 크고 값지게 됨을 피할 길이 없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인류는 물질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물질적인 차이가 인간의 전 생활영역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근대시민들의 그것보다는 훨씬 적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생활수단이 고도화함에 따라 이제는 물질의 다과(多寡)나 빈부의 차이는 인간의 행과 불행을 판가름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되고, 가난은 그대로 불행과 직결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가 성숙해 감에 따라 사회 속에는 현격한 빈부의 차이가 생겨나고, 이 차이는 이제는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무서운 장벽을 이루게 되었다. 인간의 평등, 즉 인격의 평등에서 시작된 근대가 격심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가 난숙해짐에 따라 이러한 지나친 생활조건의 불평등은 마침내 인격의 평등 그 자체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는,경제적 생활의 격심한 불평등 속에서 인격의 평등을 부르짖는다는 것은 무한한 용기와 조건의 뒷받침이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이젠 인격의 평등을 명실상부하게 이룩하기 위해서는 격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는 사회적 제조건과 제도의 형성이 절실하다 하겠다.

평등 사회편집

세계사는 근·현대 사회를 평등사회로 규정한다.말 그대로 사회와 인간이 평등해졌다는 것이다.과거의 봉건사회는 신분의 귀천이 있어 귀족과 양반이 권력과 부를 독점,세습하고 대다수 양민과 노비를 혹사시키고 착취하던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불평등사회였으나 근현대에는 평범한 사람과 민중이 직장과 사회,국가의 주인으로서의 [역할과 권력]을 평등하게 행사할 수있는 사회다.그러나 기이하게도 대부분의 대중은 평등사회라는 말을 낯설어하며 평등과 평등사회의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반세기에 걸친 독재정치하의 대중조작과 우민화,반공이데올로기 세뇌때문이다.

평등이념의 맹아는 멀리 올라가지만 평등의 실질적 구현은 18세기 시민혁명의 성공에서 비록됐으니 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뿌리깊은 사상이다.시민혁명 당시의 유럽은 상위 2%정도의 귀족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한 채 나머지 98%의 시민과 노예를 지배하던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사회였다.프랑스혁명은 이런 야만을 뒤엎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즉 만인이 평등한 참 인간의 시대를 최초로 열었다.그러나 이때의 평등은 법,제도상의 평등었지 실질적 평등은 아니었다.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이 나오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노동자,농민 등 약자들도 인간답게 평등하게 살수있게 되었다.러시아혁명은 유럽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오히려 유럽이 더 정치,경제적으로 만인이 평등한 생활을 누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그러나 여자,아이들의 인권과 평등은 아직 요원했다. 1968년의 세계적 68 혁명으로 여성 등의 사회적 약자들의 실질적인 권리가 보장되고 명실공히 인류평등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평등은 소수의 부르주아 시민에서 노동자, 여성 순으로 확장, 보장되었고, 다시 법적 평등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평등으로 영역과 폭이 확대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양반과 상민·노비로 갈려 소수의 양반층이 민중을 가혹하게 억압,착취하던 야만시대를 동학사상의 대두로 혁명이 발발하여 세상이 뒤바뀌기 시작했다.동학도들끼리는 남녀노소,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서로를 평등하게 대우하고 하늘처럼 섬겼다(사인여천,인내천).그러나 식민기를 거치면서 평등사상이 희박해졌고 오랜 독재정치로 완전히 평등사상은 사라졌다.그리고 5,18광주항쟁과 87년 6월민중항쟁으로 민주주의가 부활함으로써 평등사상도 겨우 빛은 보게 되었다.그러나 이런 도도한 평등의 세계사와 생생한 민족적 체험이 있었음에도,현재 한국사회는 전혀 평등하지가 않다.경제,군사적으로는 선진을 넘어 일류국가를 부르짖으면서도 인간의 상당한 경제적 평등은 고사하고 평등의 초보단계인 법적 정치권력적 평등도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사회복지 수준,사회구성원의 대다수인 노동자의 지위와 권한,여성의 권리 등에 있어 일류는커녕 거의 중후진국 수준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경제,군사 선진국답게 정치·경제적 평등수준과 사람들 모두의 권익 보장도 선진국다워야 정상이지 이렇게 불균형한 기형적인 나라에서 무슨 희망과 믿음이 있겠는가!

평등이냐,불평등이냐 하는 문제는 인간이냐,인간이 아니냐 하는 문제로 인류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평등한 사회이면 인간다운 세상이고 그렇지 않고 불평등하면 짐승의 세계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역사의 확고한 언명이고 판단이다.지금 한국에서 요구되는 것은 당장 선진국처럼 평등사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역사의 보편적 이치인 인간평등주의에 대한 관념을 일깨우고 마음껏 평등을 주장,설파하고 널리 세상에 확산시키는 것이다.불행히도 한국은 헌법상 사상과 언론,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악법과 굳어진 관습으로 평등주의에 대해 자유롭게 말도 못하는 사회다.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정치권력적으로,경제,사회적으로 대통령과도 맞먹는 엄연한 주권자로서 존엄하게 평등한 존재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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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편집

  1. 강만길《고쳐쓴 한국근대사》창비/ 캘리니코스《평등》울력ㅡ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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