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동

산내동(山內洞)은 대전광역시 동구에 속한 행정동으로 충남 금산군 추부면과 경계를 이루며 동쪽에는 충북 옥천군 군서면 그리고 서쪽에는 대전광역시 중구와 접하고 있다. 식장산만인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농지역으로 근교농업이 발달하였다.

대전광역시 동구
산내동
山內洞
Sannae-dong
Donggu1-map.png
면적50.39 km2
인구 (2012.12.31.)22,251 명
• 인구 밀도441.6 명/km2
• 세대7,823가구
법정동낭월동, 대별동, 이사동, 대성동, 장척동, 소호동, 구도동, 삼괴동, 상소동, 하소동
• 통·리·반37통 179반
동주민센터대전광역시 동구 산내로 1326
웹사이트산내동 주민센터

역사편집

산내동은 백제 때는 우술군, 신라때는 비풍군 고려초기에는 회덕현, 현종 9년(1668) 이후에는 공주부에 속했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회덕현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말기 고종 32년(1895)에는 회덕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남면의 대별리 일부와 응전리를 병합하여 구도리라 하고 대전군 산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11월 1일 대전부 신설에 따라 대덕군에 편입되고 1989년 1월1일 대전직할시에 편입되었다. 현재 행정동은 산내동이며 10개의 법정동이 있다.

산내 학살사건편집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 - 산내에서 옥천으로 가는 곤룡터널을 지나기전에 있는 낭월동 곤룡골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좌익수감자들을 학살한 사건이 일어났다.[1]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군경은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복역수, 예비검속자, 보도연맹원을 학살했다. 1950년 7월 3일부터 며칠간 진행된 '피의 살육제'에서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대전·충남지역 보도연맹원 1800~3000명(최대 7천명까지 추정)이 학살되었다. 당시에 처형된 대표적인 인물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던 이관술이었다. 울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관술은 해방 직후에는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로동당의 간부였다.

이관술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대한민국 대법원은 2015년 3월 31일 국가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수감 중인 사람을 전쟁이 발발했다는 이유로 총살한 것은 불법부당하다"며 "국가는 유족에게 1억 6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

'정판사 위폐사건'이란, 조선공산당 간부 및 조선정판사 직원들이 공모하여 조선정판사 인쇄시설을 이용해 1945년 10월 하순부터 1946년 2월까지 총 6회에 걸쳐 1200만 원의 위조지폐를 찍었다는 것이다.

산내학살사건의 주범은 심용현이었다. 심용현 중위는 대전형무소 정치범을 산내 골령골로 끌고가 '사격 개시' 명령을 내리는 등 소위 1, 2차 골령골 학살을 지휘하고 점검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그 결과 1950년 6월 28~30일경 산내 보도연맹원 1400여 명과 1950년 7월 초에 형무소 재소자 1800여 명을 합쳐 모두 3200여 명이 학살됐다. 결론적으로 그의 손에서 3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3]

그는 1954년 12월 중령으로 예편한 후 성신학원 이사장을 4차례 역임했고, 1986년 4월 사망했다. [4]

법정동편집

  • 낭월동(朗月洞)
  • 대별동(大別洞)
  • 이사동(二沙洞)
  • 대성동(大城洞)
  • 장척동(長尺洞)
  • 소호동(小好洞)
  • 구도동(九到洞)
  • 삼괴동(三槐洞)
  • 상소동(上所洞)
  • 하소동(下所洞)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