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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김씨

한국의 성씨 중 하나

삼척 김씨(三陟 金氏)는 강원도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김위옹(金渭翁)은 경순왕의 손자로, 실직군왕(悉直郡王)에 봉해졌다고 한다.

삼척 김씨 (三陟 金氏)
관향강원도 삼척시
시조김위옹(金渭翁)
또는 김위(金偉) 또는 김추(金錘)
중시조김인궤(金仁軌) / 김정휘(金正暉)
집성촌강원도 삼척시
강원도 동해시
강원도 인제군
강원도 영월군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장항리
함경남도 영흥군 순령면 송전리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도화1리
주요 인물김위, 김인궤, 김상, 김률, 김미, 김령, 김건, 김동현
인구(2000년)79,985명 (96위)
비고삼척 김씨 대종회

목차

역사편집

시조 김위옹(金渭翁)은 경순왕의 손자로, 그의 음덕을 입어 고려조에 검교·사농경을 거쳐 은청광록대부상주국좌승상을 지내고, 삼한벽상공신과 실직군왕(悉直郡王)에 봉해졌다고 한다.[1][2][3]

《씨족원류》·《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는 시조가 경순왕의 후예 지양주사(知襄州事) 김위(金偉)라 한다.

후손 김인궤(金仁軌)는 고려 충렬왕때 전법총랑(典法摠郞) 호군전객령(護軍典客令)을 역임하고 조현대부(朝顯大夫)에 올랐는데, 아버지는 대장군 김윤성(金允成)이다. 그는 안동부(安東府) 가야향(加也鄕) 사람인데, 호군(護軍)의 벼슬에 올라 1284년(충렬왕 10)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워 그 향(鄕)을 춘양현(春陽縣)으로 승격시켰다.[4] 1393년(태조2) 금자광록대부문하시중(金紫光祿大夫門下侍中)에 증직(贈職)되고, 왕으로부터 서대(犀帶)를 받았다. 일파(一派)를 형성하였다.

《김씨 분관록》에 삼척 김씨경순왕 아들 삼척군(三陟君) 김추(金錘)의 후예, 또 지양주사(知襄州事) 김위(金偉)의 후예, 또 호군(護軍) 김인궤(金仁軌)의 후예라 한다.

시조의 선계에 대해편집

시조 김위옹(金渭翁)의 아버지는 경순왕의 8자 삼척군(三陟君) 김추(金錘)라 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 1784년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에는 경순왕의 8자가 김종(金鐘)이라 한다. 이후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경순왕 8자들이 등재되기 시작하였는데, 족보에 옮기는 과정에 김종(金鐘)을 김추(金錘)로 개명(改名)하고, 시호를 작호(作號)하는 등 가필(加筆)을 심하게 하였다. 또한 김추(金錘)를 비롯한 「김은열 묘지명」에 등장하는 경순왕의 8자들의 이름은 『고려사』 등의 문헌(文獻)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金石文)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산 김씨(善山 金氏)도 경순왕의 8자라는 일선군(一善君) 김추(金錘)를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는데, 《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 김추(金錘)를 시조로 하는 김씨(金氏)계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각종 자료 및 견해가 난무하고 있어 좀더 고증을 거쳐야 될 것으로 보인다.[5]

본관편집

삼척은 삼한시대에 실직국(悉直國)이었는데,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일시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으나, 505년(신라 지증왕 6) 신라가 다시 회복해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삼척군으로 개칭되고, 강릉(江陵)·명주(溟州)의 관하가 되었다. 영현으로 죽령(竹嶺)·만경(滿卿)·우계(羽溪)·해리(海利)를 관할 하였다.

995년(성종 14) 척주(陟州)로 승격되고, 1018년(현종 9) 삼척현으로 강등되어 동계에 속했다가 1377년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었다. 1393년(태조 2)에 태조의 5대조 목조(穆祖)의 외향이므로 부(府)로 승격되어 부사가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척주·진주 등의 별호로 불렸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강릉부 삼척군, 1896년강원도 삼척군이 되었다. 1986년에 삼척읍이 삼척시로 승격되었다.

인물편집

고려편집

  • 김자영(金自英) : 김위옹(金渭翁)의 첫째 아들, 교위(校尉)
  • 김자남(金自男) : 김위옹(金渭翁)의 둘째 아들, 삼중대광(三重大匡) 태사(太師)
  • 김정위(金正位) : 김자영(金自英)의 증손, 동래부사(東萊府使)
  • 김도남(金圖南) : 공조참판(工曺參判), 한성판윤(漢城判尹)
  • 김중순(金仲淳) : 상장군(上將軍)
  • 김계순(金季淳) : 상장군(上將軍)
  • 김난손(金蘭孫) : 정국원종이등공신
  • 김득강(金得綱) : 용담부사
  • 김보(金寶) : 병조참정(兵曹參正), 공조참판(工曹參判), 부 김양좌(金良佐)
  • 김윤성(金允成) : 대장군(大將軍)
  • 김정휘(金正暉) : 도통사(都統使), 대장군(大將軍)
  • 김유(金儒) : 전리총랑 친종호군(典理摠郎親從護軍), 대호군(大護軍), 부 김정휘
  • 김산수(金山壽) : 안동 부사
  • 김득강(金得江) : 대사간(大司諫), 부 김산수(金山壽)
  • 김인궤(金仁軌) : 호군(護軍), 충렬왕때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움, 일파(一派)를 형성
  • 김의궤(金義軌) : 1347년(충목왕 3) 급제, 문하시랑(門下侍郞), 호부상서(戶部尙書), 형 김인궤(金仁軌)
  • 김위(金偉) : 지양주사(知襄州事)
  • 김광연(金光演) : 전리판서

조선편집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8명을 배출하였다.[6]

  • 김천봉(金天奉) : 조선 개국원종공신
  • 김상(金尙) : 1405년(태종 5) 식년시 동진사 급제, 숙천부사((肅川府使), 부 김충민(金忠敏), 조부 김위(金偉)
  • 김률(金硉) : 1478년(성종 9) 친시 급제, 제주목사, 부 김원신(金元信), 조부 김창(金敞), 조부 김충민(金忠敏)
  • 김미(金亹) : 1522년(중종 17) 식년시 급제, 한림(翰林), 옥당(玉堂),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부 김률(金硉)
  • 김병충(金秉忠) : 중종반정의 정국공신(靖國功臣)
  • 김양보(金良輔) : 내시(內侍), 선조 때 호종공신(扈聖功臣) 3등
  • 김취장(金就章) : 1630년(인조 8) 문과 급제, 형조정랑(刑曹正郞)
  • 김령(金坽) : 1682년(숙종 8) 문과 급제, 병조좌랑(兵曺佐郞), 현감(縣監), 부 김두찬(金斗燦)
  • 김의택(金儀宅) : 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
  • 김사남(金士男) : 한성좌윤(漢城左尹)
  • 김기문(金起文) : 왕자사부(王子師傅)
  • 김충민(金忠敏) : 한성부윤
  • 김응한(金應漢) : 좌부승지
  • 김억수(金億壽) : 호조판서
  • 김문수(金汶秀) : 고종 때 장연부사

근·현대편집

  • 김상태(金尙台. 1864-1912) : 한말의병장, 1990년 건국훈장독립장 추서
  • 김건 : 한국은행 총재

분파편집

  • 교위공파 - 김자영(金自英)
    • 상서공파(尙書公派) - 김려
    • 금자광록대부공파(金紫光祿大夫公派) - 김인궤
    •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 - 김의궤
    • 합문지후공파(閤門祗侯公派) - 김유
    • 호부상서공파(戶部尙書公派) - 김해
    • 수의부위공파(修義副慰公派) - 김인
    • 양간공파(良簡公派) - 김흥례
  • 태사공파 - 김자남(金自男)
    • 지정주사공파(知定州事公派) - 김리
    •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 - 김응
    • 첨정공파(僉正公派) - 김극
    •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 김충
    • 무공랑공파(務工郞公派) - 김제
    •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 김수
    • 사정재훈공파(司正載勳公派) - 김천봉
    • 부령공파(部令公派) - 김정실
    • 대사간공파(大司諫公派) - 김덕강
    • 보공랑공파(保功郞公派) - 김덕영
    • 진사공파(進士公派) - 김서
    • 병절교위공파(秉節校慰公派) - 김거
    • 병절교위공파(秉節校慰公派) - 김순

항렬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