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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년과 1493년 사이 부르고뉴 영토 분할     합스부르크 가문     프랑스      느베르 백작 장 2세

상리스 조약은 1493년 5월 상리스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 1세프랑스의 국왕 샤를 8세 사이에 부르고뉴 계승에 관해 맺은 조약이다.

최후의 발루아 가 출신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이 1477년 낭시 전투에서 후계자를 두지 못한체 전사한 이후, 그의 친척 루이 11세는 그의 재산을 상속하기로 결정했고, 특히 번창한 플랑드르 백작령이 있는 부르고뉴령 네덜란드가 그랬다. 하지만 용담공 샤를의 딸 부귀공 마리와 그녀의 남편 막시밀리안 역시도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1479년 긴가트 전투라는 군대 충돌로 이어져, 마리와 막시밀리안에게 유리한 상태로 결론 지어졌다. 그럼에도 마리가 1482년에 사망하고 아라스 조약에 따라, 막시밀리안은 아라스가 포함된 아르투아 백작령과 부르고뉴를 프랑스에 넘겨야만 했고, 그의 딸 오스트리아의 마르게리타와 루이의 아들 샤를의 약혼에 따른 지참금으로 프랑스의 일부 영주령을 주었다.

프랑스 왕위에 오른 샤를 8세가 오스트리아의 마르게리타 대신 막시밀리안과 대리 결혼을 했던 안 드 브르타뉴와 혼인을 하면서, 막시밀리안은 그의 딸을 불러들였고 부르고뉴아르투아 백작령, 샤롤레를 회수했다. 1493년 샤를 8세는 나폴리의 국왕 알폰소 2세와 분쟁에 휩싸여, 결국엔 나폴리의 왕위를 얻어냈다. 상리스 조약 조건에 따라, 프랑스와 네덜란드 17주 사이에 적대 행위는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디. 추가적으로 분쟁 지역들은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넘겼고 아르투아와 플랑드르는 신성 로마 제국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두 지역에 여전히 강력한 법적 권리와 전초 기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1] 부르고뉴 공국 (디종을 수도로 하며, 을 수도로 하는 부르고뉴 백작령과 혼동을 유의해야함)은 프랑스에 남기로 하며, 1482년 프랑스에 양도되었다.

각주편집

  1. Potter, p. 255.

참고 문헌편집

  • Potter, David. A History of France, 1460-1560: The Emergence of a Nation-State. New Studies in Medieval History,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