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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는 발해의 중요 도시인 5경 가운데 하나였다. 서경 압록부는 옛 고구려 땅으로서 발해당나라에 조공을 하는 통로에 위치한 도시였다. 조공하는 길을 압록부에 둔 것은 바닷길로 당나라와 통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1]요사》(遼史)에는 발해의 서경 압록부가 고구려 때의 고국성(→고구려의 국내성을 말한다.)으로 성의 높이가 3장이고 동서 및 남북 너비가 20리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다.

서경 압록부는 발해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세운 정안국의 수도였다. 서기 936년 경 발해의 귀족 출신인 열만화남경 남해부에서 서경 압록부로 이동하여 938년 경 정안국(定安國)을 건국하였다. 거란이 세운 요나라는 985년 정안국의 수도인 서경 압록부를 공격하여 이듬해인 986년 1월에 멸망시키고, 그 땅에 녹주를 필두로 한 4개 주(州)를 설치하여 직접 지배하였다.

서경 압록부의 현재 위치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은 《발해고》 1권본에서 서경 압록부가 지금의 압록강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러나 유득공은 《발해고》 4권본에서 서경 압록부의 위치를 강계 동북 200리의 압록강 건너편으로 다르게 비정하였다. 서경 압록부는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바이산 시 린장(臨江)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다. 당시 서경 압록부는 발해당나라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크게 번영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행정구역편집

주명 한자 대략적 위치 비고
신주 神州 바이산 시 린장 시 발해의 체제가 어느정도 안정된 중후기에 압록부의 부치가 환주에서 신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나 린장 시에서 발해의 서경이라고 할 만한 발굴성과가 나오지 않아 여러 이견이 나오고 있다. 요사 지리지에는 신록현(神鹿縣), 신화현(神化縣), 검문현(劍門縣)의 속현을 두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환주 桓州 퉁화시 지안 시 환도성지역 발해가 압록부를 설치한 초기 압록부의 부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요사지리지에는 환도현(桓都縣), 신향현(神鄕縣), 기수현(淇水縣)의 3개현을 속현으로 두었다고 기록되었다.
풍주 豐州 바이산 시 푸쑹 현 신안촌 신안고성, 혹은 창바이 조선족 자치현 창바이 현성 고구려에선 반안군(盤安郡)으로 불렀으며 안풍현(安豊縣), 발각현(渤恪縣), 습양현(隰壤縣), 협석현(硤石縣)을 속현으로 두었다고 요사 지리지에 기록되어있다. 1983년 지역주민들이 야채밭에서 농사를 짓다가 연화문 와당, 포문 기와, 어망추, 동궁형 기둥을 발견하면서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래 발해의 주거지터와 도성이 신안초에서 발견되었다. 압록부로 유력한 린장과 신안고성과의 거리가 요사 지리지, 발해고에서 언급한 210리와 거의 같아 신안고성을 풍주로 비정하게 되었다.[2] 하지만 담기양, 동북아역사재단은 창바이 현성으로 비정하기도 했다.
정주 正州 퉁화 시 퉁화 현적백송 비류국의 고지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요사 지리지에는 옛 현이 기록되어있지 않다.


각주편집

  1. 유득공 지음, 송기호 옮김, 《발해고》, 홍익출판사, 2000년 1월 10일, 102쪽.
  2. 무송 신안유적지, 동북아역사재단 [1][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