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徐恭, 1101년[1] ~ 1171년 8월 23일(음력 7월 20일)[2][3])은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이천이며, 서희의 현손[4]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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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년(인종 23년) 합문통사사인으로서 금나라 동경에 사신으로 다녀왔다.[5] 고려 의종 때 음서로 경령전판관이 되었다.[6]

1163년(의종 17년) 추밀원부사를 거쳐[7] 1164년(의종 18년)에는 병부상서 동지추밀원사가 되었다.[8]

1165년(의종 19년) 지추밀원사를 거쳐 판삼사사에 올랐다.[9]

왕을 호종해 서경에 갔을 때, 왕이 개경과 서경의 문관·무관 관료들에게 활을 쏘게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큰 촛불을 과녁 위에 꽂고 쏘게 하였는데, 서경 사람들은 많이 맞혔으나 개경에서 따라온 신하들 중에는 맞히는 사람이 없었다. 왕의 기분이 자못 좋지 않은 터에 서공이 첫 번째 화살로 촛불을 맞히고 두 번째 화살로 과녁을 맞히자, 왕은 크게 기뻐하며 비단을 하사하였다.[6]

담력과 책략이 뛰어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여섯 번이나 양계병마사로 부임하니 사졸들이 잘 따랐다.[6]

1171년(명종 원년) 8월 23일(음력 7월 20일)에 죽었다.[3]

전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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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사》 권94, 〈열전〉7, 서희 부 서공
  • 〈서공 묘지명〉(김용선 엮음, 《고려묘지명 집성》에 수록됨)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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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려사》 상에는 사망 연도 당시의 나이가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묘지명〉에는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이에 따른다.
  2. 《고려사》에는 이 날짜보다 하루 빨리 되어 있으나, 〈묘지명〉의 기록을 따른다.
  3. 〈서공 묘지명〉
  4. 〈묘지명〉에는 4대손으로 되어 있다.
  5. 《고려사》 권17, 〈세가〉17, 인종 23년(1145년) 3월 5일(경술)
  6. 《고려사》 권94, 〈열전〉7, 서희 부 서공
  7. 《고려사》 권18, 〈세가〉18, 의종 17년(1163년) 12월 30일(병술)
  8. 《고려사》 권18, 〈세가〉18, 의종 18년(1164년) 12월 22일(임인)
  9. 《고려사》 권18, 〈세가〉18, 의종 19년(1165년) 5월 13일(신유); 12월 30일(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