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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재(徐錫宰, 1935년 2월 15일 ~ 2009년 12월 26일)는 대한민국정치가이다.

서석재
徐錫宰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35년 2월 15일(1935-02-15)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
(現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사망 2009년 12월 26일(2009-12-26) (74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본관 달성
학력 동아대학교 경제학 학사
경력 신민당 총재비서관
신민당 조직국장
민주한국당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제29대 총무처 장관
국민신당 최고위원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국민통합21 선거대책위원회 고문단장
국민통합21 상임고문
열린우리당 특임고문
대통합민주신당 특임고문
이투데이 대표이사 회장
배우자 전순발
자녀 슬하 2남 3녀
종교 불교
의원 선수 5
정당 무소속

목차

생애편집

서석재는 1935년 2월 15일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다. 1957년동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아고 교사로 재직하였다. 1968년신민당의 총재인 김영삼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상도동계의 좌장격인 최형우와 함께 2인자로 불렸다.

생전 그의 신장은 164cm이고 그렇게 단신임에도 온몸을 던져 YS를 보좌하는 모습 때문에 '작은 거인'으로도 불렸다. 1987년김영삼김대중이 창당한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고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던 중 1989년동해시 재선거의 후보를 매수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서석재는 탈당하였고 궁지에 몰린 김영삼1990년 3당합당에 참여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1992년제14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사하구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여 사조직 '나라사랑실천본부'를 관리하며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3년동해시 재선거 후보 매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1994년 12월김영삼의 신뢰로 총무처 장관에 임명되었다.

1995년에 장관 재직 중 노태우의 4000억원의 비자금이 있다고 주장하였다가 민정계의 반발로 장관직에서 사퇴하였다. 그러나 이후 박계동이 주장한 노태우전두환의 5000억원의 비자금을 폭로하게 하여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 및 군사 정권에 대한 재판을 이끌어냈다.

1997년제15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이회창 사이에 감정이 악화되자 그는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이인제가 창당한 국민신당에 입당하였고 최고위원이 되었다. 이는 이인제의 출마와 함께 이회창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후 국민신당새정치국민회의의 통합으로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지냈으며 2000년제16대 총선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09년 12월 26일에 7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학력편집

경력편집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1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서구) 11대 민주한국당      39.06% 74,447표 1위  
제12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서구·사하구) 12대 신한민주당    51.74% 122,309표 1위  
제13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사하구) 13대 통일민주당     58.71% 83,731표 1위  
제14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사하구) 14대 무소속      44.73% 68,300표 1위  
제15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사하구 갑) 15대 신한국당      64.41% 44,988표 1위  
제16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사하구 갑) 16대 무소속    13.96% 9,257표 2위 낙선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