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병 신분으로 패(沛) 땅에서 일어나 고제와 함께 한나라에 들어갔고, 낭중(郞中)이 되어 영포를 친 공으로 중모후(中牟侯)에 봉해지고 식읍 2,300호를 받았다.[2] 선보성은 예전에 고제가 한미하였던 시절에, 고제가 위험에 처했을 때 말 한 필을 내어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열후에 봉해질 수 있었다.
문제 8년(기원전 172년)에 죽어 시호를 공(共)이라 하였고, 아들 선보증이 작위를 이었다.
- ↑ 사기에서는 선보성, 한서에서는 선우거(單右車)라고 하는데, 《색은》에 인용된 한서의 판본에서는 선보우거라고 하므로, 현행 한서 판본에서 '보'가 탈자된 것으로 여겨진다.
- ↑ 사기에서는 2,300호, 한서에서는 2,200호라고 한다.
선대 (첫 봉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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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중모후 기원전 195년 10월 을미일 ~ 기원전 1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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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아들 중모대후 선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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