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 (여말선초)
성부(成溥, 1359년 ~ ?)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성사달(成士達)의 아들이며, 성희안(成希顔)의 증조이다.
생애
편집처음에 음서(蔭敍)로 관직에 진출한 듯하며, 사설서령(司設署令) 관직에 있다가 1383년(우왕 9) 병과(丙科) 4위로 문과에 급제했다.[1]
이후 공양왕(恭讓王)조에 형부총랑(刑部摠郞)에 이르렀다가[2], 조선이 개국된 후에도 벼슬했다.
1394년(태조 3) 순군지사(巡軍知事)로서 산기상시(散騎常侍) 이거이(李居易)·사헌중승(司憲中丞) 박신(朴信)·형조정랑(刑曹正郞) 전시(田時)와 함께 수원부(水原府)에 파견되어, 왕화(王和)·왕거(王琚)·승려 석능(釋能)·김가행(金可行)·박중질(朴仲質)·이흥무(李興茂) 등을 붙잡아 국문했고[3], 이후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를 역임했다.
세종(世宗)조에는 노인으로서 대우를 받아, 1440년(세종 22) 양로연(養老宴)에 83인 중 한 명으로서 참석했고, 세종의 아버지 태종(太宗)과 같은 해 문과에 급제한 인연으로, 1446년(세종 28) 88세의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임명되었다.[4]
가족 관계
편집※두 부인 중 어느 부인이 첫째 부인인지, 두 아들이 어느 부인의 소생인지는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