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설
성악설(性惡說)은 공자(孔子) · 맹자(孟子)와 더불어 유가(儒家)의 대표적 사상가 중 한 명인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가 주장한 인간의 심성(心性)에 대한 학설로, "인간의 본성(本性)은 악(惡)하다"는 학설이다.[1]
순자의 성악설은 그의 저서 《순자》의 〈성악(性惡)〉편에 나타난 화성기위(化性起僞: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라는 명제로 대표된다. 즉, 사람의 본성은 악하여, 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립 및 의의
편집예(禮), 즉 사회제도의 연구에 힘쓴 사람은 공자의 만년의 제자였던 복자하(卜子夏)였다.[2] 그리고 그의 제자인 이회(李悝: 기원전 455~395)는 위나라에서 개혁정치를 펴고 또한 법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2] 이회는 예(禮)를 사회적인 규범이라고 파악하여 그것을 법(法)이라는 형식으로 전개하였다.[2] 복자하에서 이회로 이어지는 이 유가 분파를 숭례파(崇禮派)라고 한다.[3][4] 하지만 숭례파의 가장 유명한 학자는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인 순자(荀子)였다.[2]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惡)이며, 항상 욕망에 의해서 쟁란(爭亂)을 일으키는 존재라고 보았다.[2] 그렇기 때문에 쟁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요(堯) · 순(舜)과 같은 왕자(王者: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으로 왕도의 실천자)가 예(禮)를 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2]
순자는 인간성을 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仁)보다도 오히려 규범으로서의 예(禮)를 중시하고, 이 예(禮)야말로 인간의 사회나 정신뿐만 아니라 자연계에도 통하는 법(法: 法則)이라고 하였다.[2]
따라서 예(禮)를 통하여 인간은 자연계를 향하여 적극적으로 작용을 가하는 일이 가능해졌다.[2] 또한 예(禮)와 법(法: 法則)이 동일시됨으로써 법(法)의 사회질서의 이념(理念)으로서의 의의가 높아져, 제자백가의 하나인 법가(法家)의 사상적인 기반이 이루어졌다.[2]
비록 관련 사상가로 춘추시대의 자산(子産: 기원전 585?~522)이나 전국시대의 이회(李悝: 기원전 455~395), 상앙(商鞅: 기원전 ?~338) 등이 있었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법(法)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정치적 기술이라고 여겨져 있었다.[2] 이후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의 성악설이 등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법(法)의 개념을 이념의 장(場)으로 드높임으로써 법가(法家)는 비로소 사상의 한 유파로 성립되었다.[2] 법가의 대표적 인물인 한비자(韓非子)는 순자의 문하생이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