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용어 목록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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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이란, 《보살영락본업경》 하권의 〈7. 대중수학품(大衆受學品)〉에 따르면, 제1의제(第一義諦)에 계합[順]하여 일어나는 을 말한다. 이에 비해, (惑) 즉 번뇌(煩惱)는 제1의제(第一義諦)에 위배[背]되어 일어나는 을 말한다.[1][2]

선근 편집

1. 선근(善根)은 온갖 (善) 또는 선법(善法)을 내고 행하게 하는 근본(기초 또는 기본)이라는 뜻으로, 무탐(無貪, purity· 무진(無瞋, good will· 무치(無癡, wisdom)의 3선근(三善根)을 줄여서 간단히 선근(善根)이라고 한다.[3] 근(根)이라는 것은 이들 3가지가 (善)을 일으킴에 있어 뛰어나다는 것과 3가지 불선근(不善根)을 가까이 대치한다[近對治]는 것을 말한다.[4][5] 즉, 이들 3가지가 4성제무위 무루멸제(滅諦, 열반)에 이르는 길인 유위 무루도제(道諦: 8정도, 6바라밀 등의 수행)를 닦을 수 있게 하는 기초(기본 또는 근본)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2. 선근(善根)은 좋은 과보(果報)를 받을 좋은 원인[因]을 뜻한다. 불교의 인과설에 따르면, (善)한 행동 또는 공덕이라는 선근을 심으면, 즉 한 원인을 뿌리면 반드시 그에 따른 과보 또는 열매[果]를 맺게 된다.[3]

선두 편집

선두(禪頭)는 잔투(산스크리트어: jantu, 팔리어: jantu)의 다른 말이다.

선법 편집

선법(善法, 산스크리트어: kuśalā dharmāh) 또는 착한 법은 온갖 한 교법의 줄임말로, 5계(五戒) · 10선(十善) · 3학(三學) · 6바라밀(六波羅蜜: 6도(六度)라고도 한다) 등 이치에 맞고, 자기와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法) 또는 도리(道理)를 말한다. 5계(五戒)와 10선(十善)은 세간(世間)의 선법, 즉 자신과 세상을 편안하고 이익되게 하기 위해 닦는 선법이다. 3학(三學)과 6바라밀(六波羅蜜)은 출세간(出世間)의 선법, 즉 생멸 변화하는 미혹한 세계를 벗어나 해탈 경계에 들어가기 위해 닦는 선법이다. 이들 세간과 출세간의 (法), 교법(敎法) 또는 도리(道理)들에는 깊고 옅음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이치에 맞고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또는 도리이므로 모두 통칭하여 선법(善法)이라고 부른다.[6][7][8] (참고: (善))

선본 편집

선본(善本)은 본(本)을 원인(原因)으로 해석하는가 아니면 근본(根本)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 2가지 뜻이 있다.[9][10] 선근(善根)에도 이러한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이 때문에 선본선근은 동의어로 간주되고 있다. 다만, 무탐 · 무진 · 무치3선근(三善根)에서의 선근(善根)은 '근본'의 뜻으로 해석되는데, 이런 측면에서는 선근은 '(직접적) 원인'의 뜻보다는 '근본'의 뜻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11][12][13]

본(本)을 원인(原因)으로 해석하는 경우 선본(善本)은 (善) 즉 공덕(功德)이 원인이 되어 뛰어난 결과를 낳는다는 뜻이 된다. 즉, 좋은 결과를 얻을 청정한 행위를 뜻한다.[14]

본(本)을 근본(根本)으로 해석하는 경우 선본(善本)은 (善)의 근본 즉 공덕(功德)의 근본이라는 뜻이 되어, 유정으로 하여금 일체(一切)의 선법(善法)과 공덕(功德) 또는 덕행(德行)을 일으킬 수 있게 하는 바탕 또는 근거가 되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15][16]

예를 들어, 무탐선본이라고 말할 때, 문맥에 따라, 무탐원인이 되어 어떤 뛰어난 결과낳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 무탐이 일체의 선법공덕성취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선사 편집

1. 선사(禪師)는 선정(禪定)에 통달한 승려를 부르는 호칭이다.

2. 선사(禪師)는 법계제도에서 여러 계급들 가운데 하나의 명칭이다.

3. 선사(善思)는 (善) 즉 공덕(功德)을 짓는 정신적 행위를 말한다.

선사(善思) 또는 착한 사(思)의 마음작용을 3가지로 나눈 선사(善思) · 불선사(不善思) · 무기사(無記思)의 3사(三思) 가운데 하나이다.[17][18] 선사(善思)는 (思) 즉 의업(意業)을 짓고 만드는[造作] 것, 즉, 공덕(功德)을 짓는 정신적 행위[意業]를 말한다.[19][20][21][22]

4. 선사(善士, 산스크리트어: sat-puruṣa, sātpauruṣya, manuṣyājāneya, sat)는 아라한(阿羅漢) · 성현(聖賢) 또는 수행자(修行者)를 뜻한다.[23][24][25][26][27][28]

선심소 편집

선심소(善心所, 산스크리트어: kuśala-caitasa)는 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그룹[位]의 6가지 세부 그룹인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 별경심소(別境心所: 5가지) · 선심소(善心所: 11가지) · 번뇌심소(煩惱心所: 6가지) ·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20가지) · 부정심소(不定心所: 4가지) 중의 하나이다.[29][30]

선심소는 그 성질이 오로지 (善)인 마음작용(심소법)들의 그룹을 말한다.[31][32][33][34]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성질이 자성선(自性善) 또는 상응선(相應善)이면서 4일체(四一切)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같은 성격을 가진 마음작용(심소법)들의 그룹을 말한다. 불교에서 (善)이란, 부파불교에서는 결과를 기준으로 보아서 편안하고 즐거운 과보[樂報]를 받을만한 것을 (善)이라고 하며, 대승불교에서는 현재 · 미래에 걸쳐 자기와 남을 순익(順益)하는 것을 말한다.[35] 순익(順益)에서 순(順)은 '편안하게 하다, 안락하게 하다, 도리(道理)에 따르게 하다'의 뜻이며,[36] 익(益)은 '이롭게 하다, 돕다, 넉넉하게 하다, 향상되게 하다'의 뜻이다.[37]

유식유가행파법상종에 따르면, (信, sraddhā· 정진(精進, vīrya· (慚, hrī· (愧, apatrāpya· 무탐(無貪, alobha· 무진(無瞋, adveṣa, apratigha· 무치(無癡, amoha· 경안(輕安, praśrabdhi· 불방일(不放逸, apramāda· 행사(行捨, upekṣa· 불해(不害, ahiṃsā)의 11가지 마음작용선심소를 구성한다.[38][31][32][39]

선자타종 편집

선자타종(善自他宗)은 《유가사지론》 제15권에 따르면, 논의 장엄[論莊嚴]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인 선자타종(善自他宗) · 언구원만(言具圓滿) · 무외(無畏) · 돈숙(敦肅) · 응공(應供) 가운데 하나이다.[40][41]

선자타종(善自他宗)은 문자 그대로는 '자(自)와 타(自)의 종지[宗]를 잘하는[善] 것'으로, 자신이 속한 종파의 종지(宗旨)와 교법[法]과 계율[毘奈耶]을 잘 이해하고 수행하고 설명할 수 있고 또한 비록 다른 종파의 종지와 교법과 계율을 수행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을 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40][41]

선체 편집

선체(扇搋)는 산스크리트어 ṣaṇḍha의 음역어로, 구역(舊譯)에서는 황문(黃門)이라 의역한다. 무근(無根) 또는 무세근(無勢根)이라고도 하는데, 22근 가운데 하나인 남근이나 여근을 갖지 않은 유정을 말한다. 즉, 생식기가 없는 유정을 말한다.[42][43][44][45]

선품 편집

선품(善品)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선의 품류' 즉 '선한 유형의 것' 또는 '선한 것 하나 하나' 즉 '각각의 선'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선품(善) 또는 선법(善法)과 동의어이다.[46]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선품이라고 할 때는 특히 근본정려(根本靜慮) 즉 근본정(根本定)을 말한다. 즉, 선품색계4선무색계4무색정의 각각을 가리키는 낱말로 특히 사용된다. 이 경우 어떤 근본정려에 들어간 후 그것을 원만(圓滿)히 하는 것을 만선품(滿善品)이라 하고, 그것을 완전히 성취하는 것을 성선품(成善品)이라 한다. 이 둘을 통칭하여 성만선품(成滿善品)이라 한다.[47][48][49][50][51][52]

집론》과 《잡집론》에 따르면, 성만선품(成滿善品) 즉 선품원만성취하는 것은 (勤)의 마음작용본질적 작용[業]이다.[47][48][49][50]

설식 편집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설식(舌識)은 (識), 즉 마음, 즉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의 6식신(六識身) 가운데 하나로,[53][54] 설근[舌]과 미경[味]을 (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설근의 인식[舌識]을 말한다. 이 때 설근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미경소연(所緣)이 된다. 설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미경에 대한[於舌所識味] 모든 이정당요별(已正當了別) 즉 과거요별[已了別] · 현재요별[正了別] · 미래요별[當了別]을 통칭하여 안식(眼識)이라 이름한다.[55][56]

설촉 편집

설촉(舌觸)은 안촉(眼觸) · 이촉(耳觸) · 비촉(鼻觸) · 설촉(舌觸) · 신촉(身觸) · 의촉(意觸)의 6촉(六觸) 가운데 하나이다.[57][58][59][60] 설촉신(舌觸身)이라고도 한다.[61][62][63]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설촉(舌觸)은 설근[舌]과 미경[味]을 (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설식(舌識)이 생겨날 때의 설근 · 미경 · 설식3화합(三和合)으로 인한 [三和合故觸]이다. 이 때 설근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미경소연(所緣)이 된다. 설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미경에 대한[於舌所識味] 모든 (觸: 3화합) · 등촉(等觸: 평등한 3화합) · 촉성(觸性: 3화합의 성질) · 등촉성(等觸性: 평등한 3화합의 성질) · 이촉(已觸: 과거의 3화합) · 촉류(觸類: 3화합의 등류)를 통칭하여 설촉(舌觸)이라 이름한다.[64][65]

설촉소생사 편집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66][67]

설촉소생사(舌觸所生思)는 설근[舌]과 미경[味]을 (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설식(舌識)이 생겨날 때, 설근 · 미경 · 설식3화합(三和合)으로 인해 [三和合故觸]이 생겨남동시에 또한 이 (觸)이 (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이 되어서 생겨나는 (思)이다.
이 때 설근설촉소생사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미경설촉소생사소연(所緣)이 된다. 설촉설촉소생사(因: 직접적 원인)이 되고 (集: 집기)이 되고 (類: 등류)가 되고 (生: 생겨나게 함, 생상)이 된다. 그리고 설촉소생사설촉소생작의(舌觸所生作意) 즉 설촉으로 인해 생겨난 작의(作意)와 상응한다.
설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미경에 대한[於舌所識味] 모든 (思: 심조작, 마음으로 짓고 만듦) · 등사(等思: 그 모두에 대한 심조작) · 증상등사(增上等思: 그 모두에 대한 뛰어난 심조작) · 이사(已思: 과거의 심조작) · 사류(思類: 심조작의 등류) · 심작의업(心作意業: 마음으로 의업을 지음)을 통칭하여 설촉소생사(舌觸所生思)라 이름한다.

설촉소생애 편집

  12연기
혹: 주황
업: 파랑
고: 노랑
 
① 무명
② 행
③ 식
④ 명색
⑤ 6입
⑥ 촉
⑦ 수
⑧ 애
⑨ 취
⑩ 유
⑪ 생
⑫ 노사
v  d  e  h

설촉소생애(舌觸所生愛)는 안촉소생애 · 이촉소생애 · 비촉소생애 · 설촉소생애 · 신촉소생애 · 의촉소생애6애신(六愛身) 가운데 하나이다.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68][69]

설촉소생애(舌觸所生愛)는 설근[舌]과 미경[味]을 (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설식(舌識)이 생겨날 때, 설근 · 미경 · 설식3화합(三和合)으로 인해 [三和合故觸]이 생겨나고 그런 후 이 (觸)이 (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이 되어서 생겨나는 (愛)이다.
이 때 설근설촉소생애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미경설촉소생애소연(所緣)이 된다.
설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미경에 대한[於舌所識味] 모든 (貪) · 등탐(等貪) · 집장(執藏) · 방호(防護) · 탐착(耽著) · 애락(愛樂)을 통칭한다. 즉, 미각적 대상에 대한 (貪) · 그 모두에 대한 탐[等貪] · 꽉 쥐어서 간직함[執藏] ·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막아 수호함[防護] · 빠져서 들러붙음[耽著] · 갈망하며 좋아함[愛樂]의 마음작용을 통칭하여 설촉소생애(舌觸所生愛)라 이름한다.

성법 편집

성법(聖法, 산스크리트어: ārya-dharma)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성자(聖者)의 (法) 또는 성스러운 인데, 부처 또는 성인의 가르침을 뜻한다.[70] 또한, 부처 또는 성인의 가르침은 성지(聖智), 무루지(無漏智) 또는 무루혜(無漏慧)를 획득하여 성인의 지위에 들게 하고 나아가 완전한 깨달음(무분별지)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성법무루혜를 뜻한다. 이와 관련하여 세친은 《구사론》에서 (聖, 산스크리트어: ārya)이라는 말은 오직 무루혜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등에서는 심불상응행법 가운데 하나인 이생성(異生性) 즉 범부성(凡夫性)[71]을 정의함에 있어 성법부득(不得), 즉 무루혜(得)하지 못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72][73]

慧有二種。有漏無漏。唯無漏慧立以聖名。

지혜[慧]에는 유루혜와 무루혜의 2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 중에서 무루혜에만 '성(聖)'이라는 명칭을 쓴다.

— 《구사론》 제26권 〈7. 분별지품(分別智品)〉. 한문본 & 한글본

何等異生性。謂於聖法不得假立異生性。

이생성(異生性)이란 무엇인가? 성법(聖法)을 (得)하지 못한 것을 [실재하는 인 것처럼] 가립하여 이생성이라 한다.

—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한문본 & 한글본

성인 편집

불교에서 성인(聖人, 산스크리트어: ārya)은 성자(聖者)라고도 하는데, 다음의 3가지 뜻이 있다. 이 가운데 첫 번째의 것이 범부(凡夫)에 대하여 성인이라고 할 때의 성인(聖人)의 본래의 의미이다.[74][75]

1. 중생 제도를 위하여 출현한 부처보살 등을 말한다.[75][76]

1. 무루혜(無漏慧)를 일부라도 성취한 사람을 말한다. 《구사론》 제26권 〈7. 분별지품(分別智品)〉에서 세친은 "지혜[慧]에는 유루혜와 무루혜의 2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 중에서 무루혜에만 '성(聖)'이라는 명칭을 쓴다(慧有二種。有漏無漏。唯無漏慧立以聖名。)"고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무루혜를 성혜(聖慧) 또는 무루성혜(無漏聖慧)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중생 제도를 위하여 출현한 부처보살 등을 말한다.

3. 덕이 높은 고승을 존칭하여 성자(聖者) 또는 성인(聖人)이라 부르기도 한다.

성지 편집

성지(聖智)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성스러운 지혜 또는 성인의 지혜로, 무루혜(無漏慧)의 다른 말이다. 출세간의 지혜, 무루지(無漏智), 성혜(聖慧) 또는 무루성혜(無漏聖慧)라고도 하며, 간단히 무루(無漏)라고도 한다.

성질 편집

성질(性質, 性)은 어떤 (法: 개별 실체)이 가진 자기만의 특성으로, 다른 과 구별되게 하는 것이다. 성격(性格) · 성품(性品) · 자성(自性) 또는 자상(自相)이라고도 한다.[77][78][79][80]

불교에서는 행위 외에 별도로 행위자자아를 세우지 않고, 성질 외에 별도로 성질을 가진 자를 세우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성질[自性]이 곧 (法: 개별 실체)이라고 본다.[81][82]

예를 들어, 영납성(領納性: 받아들이는 성질) 즉 지각이 곧 (受)라는 이며, 영납성 외에 별도로 이 성질을 소유한 (受)라는 이 있지 않다고 본다.[83][84]

마찬가지로, 취상성(取像性: 형상(形相)을 취하는 성질) 즉 표상이 곧 (想)이라는 이며, 취상성 외에 별도로 이 성질을 소유한 (想)이라는 이 있지 않다고 본다.[85][86]

마찬가지로, 심조작성(心造作性: 정신면에서의 조작하는 성질) 즉 의지가 곧 (思)라는 이며, 심조작성 외에 별도로 이 성질을 소유한 (思)라는 이 있지 않다고 본다.[17][18]

마찬가지로, 심의식(心意識)이라는 성질 즉 집기(集起) · 사량(思量) · 요별(了別)의 성질이 곧 마음[心]이라는 이며, 심의식 외에 별도로 이 성질들을 소유한 마음[心]이라는 이 있지 않다고 본다.[87][88]

성취 편집

성취(成就, 산스크리트어: samanvāgama, 팔리어: samannāgama) 또는 잃지 않는 것(得)의 일종으로 이미 획득한 것을 상실하지 않는 힘을 뜻한다.[89][90] (참고: 획득)

성품 편집

성품(性品)은 성질(性質, 性)의 다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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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細)는 미세한 것 또는 미세한 법이라는 뜻으로, 5온 각각이 가지는 과거(過去) · 미래(未來) · 현재(現在) · (內) · (外) · (麤) · (細) · (劣) · (勝) · (遠) · (近)의 총 11가지의 품류차별 또는 품류, 즉 11품류 가운데 '세'를 말한다.[91][92]

의 경우에는 무대색(無對色: 대할 수 없는 색, 즉 질애성이 없는 색),[93][94] 또는 의근에 의하여 인식되는 을 뜻한다.[95][96] 또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유견유대(有見有對) · 무견유대(無見有對) · 무견무대(無見無對)의 3색, 혹은 욕계계(欲界繫) · 색계계(色界繫) · 불계(不繫)의 3색을 상대적으로 볼 때, 전자는 후자에 비해 거친 이고 후자는 전자에 비해 미세한 이다.[93][94]

 ·  ·  · 의 경우 무대색(無對色: 대할 수 없는 색, 즉 질애성이 없는 색)을 소연으로 하여 일어난  ·  ·  · , 또는 의근소의로 하여 일어난  ·  ·  · 을 뜻한다. 또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유견유대(有見有對) · 무견유대(無見有對) · 무견무대(無見無對)의 3색, 혹은 욕계계(欲界繫) · 색계계(色界繫) · 불계(不繫)의 3색을 상대적으로 볼 때, 전자를 소연으로 하여 일어난  ·  ·  · 은 후자를 소연으로 하여 일어난  ·  ·  · 은 비해 거친  ·  ·  · 이고 후자를 소연으로 하여 일어난  ·  ·  · 은 전자를 소연으로 하여 일어난  ·  ·  · 에 비해 미세한  ·  ·  · 이다.[93][94][95][96]

세간 편집

세간(世間, loka, laukika)은 세속의 유위의 세계를 의미한다. 세간에 대해 비세속의 무위의 세계 또는 무위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세간을 벗어난 것' 또는 '세간 너머의 것'이라는 뜻에서 출세간(出世間)이라 한다.[97][98][99]

세간의 정견 편집

세간의 정견(世間의 正見)은 세간(世間)의 바른 견해[正見]라는 뜻으로, 4가지 세간의 지혜 즉 4가지 유루혜(有漏慧)인 4혜(四慧)를 말한다.[100][101] (참고: (見))

세간의 지혜 편집

세간의 지혜 또는 세속적인 지혜유루혜(有漏慧)의 다른 말로, 3혜(三慧) 또는 4혜(四慧)를 말한다. (참고: (見))

세간정견 편집

세간정견(世間正見)은 세간(世間)의 바른 견해[正見]라는 뜻으로, 4가지 세간의 지혜 즉 4가지 유루혜(有漏慧)인 4혜(四慧)를 말한다.[100][101] (참고: (見))

세간지 편집

세간지(世間智)는 세속지(世俗智)의 다른 말이다.

세로 편집

세로(世路, 산스크리트어: adhvan)는 시간(時間)의 다른 말이다.

세속지 편집

세속지(世俗智, 산스크리트어: saṃvṛti-jñāna, 팔리어: sammati-ñāṇa, 영어: worldly wisdom)는 10지(十智)와 11지(十一智) 가운데 하나로, 모든 유루지혜유루혜(有漏慧)를 말한다. 즉, 번뇌를 끊을 수 없는 세간의 지혜를 말한다. 세지(世智) · 세간지(世間智) · 속지(俗智) · 유루혜(有漏慧) 또는 유루지(有漏智, 산스크리트어: sāsrava-jñāna, 영어: defiled wisdom, wisdom with outflow)라고도 한다.[102][103][104][105][106] 세속지세속의 일을 아는 지혜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107]

세증상 편집

세증상(世增上)은 세간도덕과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 세간도덕과 다른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 세간도덕과 다른 사람들에게 존엄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에서 생겨나는 향상력[增上]을 말한다. 세증상(世增上)은 자신의 잘못(허물과 악행)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수치스럽게 여김으로써 자신을 반성하는 (愧)의 마음작용의 근거가 된다.[108][109] 타증상(他增上) 또는 세간력(世間力: 세간의 힘)이라고도 한다.[109][110][111][112][113][114]

세지 편집

세지(世智)는 세속지(世俗智)의 다른 말이다.

참고 문헌 편집

각주 편집

  1. 축불념 한역 & T.1485, 하권 〈7. 대중수학품(大衆受學品)〉. p. T24n1485_p1021c21 - T24n1485_p1022a15. 5주지번뇌(五住地煩惱)
    "從十信乃至十向。自然流入平等道。無得一相眞實觀。一照相入初地道。佛子。復從是地正觀一照智中。入百萬阿僧祇功德門。於一相觀中一時行。乃至第十地。心心寂滅自然流入無垢地。佛子。復從是地以一照智。了一切業因業果法界無不一觀。以智知一切眾生識始起一相住於緣。順第一義諦起名善背第一義諦起名惑。以此二爲住地故。名生得善生得惑。因此二善惑爲本。起後一切善惑。從一切法緣生善惑名。作以得善作以得惑。而心非善惑。從二得名故善惑二心。起欲界惑名欲界住地。起色界惑名色界住地。起心惑故名無色界住地。以此四住地。起一切煩惱故。爲始起四住地。其四住地前更無法起故。故名無始無明住地。金剛智知此始起一相有終。而不知其始前有法無法云何。而得知生得一住地作得三住地。唯佛知始知終。是無垢菩薩一切智齊知自地。常住第一義諦中。自然流入妙覺海地。佛子。住是妙覺地中。唯現化可名。有無量義有無量名其出一體所謂妙果常住清淨至若虛空。不可思議不可說不可名數。不可名入界分可得。"
  2. 축불념 한역, 노혜능 번역 & K.530, T.1485, 하권 〈7. 대중수학품(大衆受學品)〉. pp. 57-58 / 62. 5주지번뇌(五住地煩惱)
    "십신(十信)에서부터 십향(十向)에 이르기까지 자연히 평등의 도(道)에 흘러들지만, 일상(一相)을 얻는 것은 아니고 진실하게 일조상(一照相)을 관하여 초지(初地)의 도에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다시 이 지(地)에서 바르게 일조지(一照智)를 관하는 가운데 백만 아승기의 공덕문에 들어가느니라. 일상관 중에서 일시에 행하여 나아가 제십지(第十地)에 이르기까지 온갖 마음이 적멸하여 자연히 무구지(無垢地)에 흘러드느니라.
    불자여, 다시 이 지에서 일조지로써 일체의 업인업과(業因業果)를 명료히 이해하되 법계를 하나로 관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것은 지혜로써 일체 중생의 식(識)이 처음 일상(一相)을 일으켜 연(緣)에 머무는 것을 아는 것이니라.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따라서 일어남을 선(善)이라 하고 제일의제를 등지고 일어남을 번뇌라고 이름 하느니라.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주지(住地)로 하기 때문에 생득(生得)의 선(善), 생득의 번뇌라고 하고, 이 두 가지 선과 번뇌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후의 일체 선악을 일으키느니라. 일체법의 연(緣)에 따라서 선과 번뇌의 이름이 생기고, 행위 함으로써 선을 얻고 행위 함으로써 번뇌를 얻지만 마음은 선도 아니고 번뇌도 아니니라. 이 두 가지를 따라 이름을 얻기 때문에 선과 번뇌의 두 가지 마음이 있느니라. 욕계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욕계주지(欲界住地)라고 이름하고, 색계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색계주지(色界住地)라고 이름 하며, 마음[心]의 번뇌를 일으키므로 무색계주지(無色界住地)라고 이름 하느니라. 이 네 가지 주지(住地)로써 일지(一地)의 번뇌를 일으키므로 처음 일어나는[始起] 것을 사주지(四住地)라고 하고, 이 사주지 앞에 다시 법이 일어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무시(無始)의 무명주지(無明住地)라고 하느니라. 금강지(金剛智)로써 이 처음으로 일어나는 일상(一相)은 끝이 있음을 아느니라. 그러나 또한 그 최초의 앞에 법이 있는지 법이 없는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지만, 선천적으로 얻는 일주지(一住地)와 행위 함으로써 얻는 삼주지(三住地)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시작을 알고 끝을 알 수가 있느니라. 이 무구(無垢)보살은 일체지로써 가지런히 자지(自地)를 알고 항상 제일의제 속에 머물면서 자연히 묘각해지(妙覺海地)로 흘러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이 묘각지(妙覺地) 중에 머물러 오직 화(化)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을 나타내자면 헤아릴 수 없는 뜻이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이름이 있느니라. 그 가운데 일체(一體)를 출생하면 이른바 묘과(妙果)가 항상 청정하게 머무는 것이 허공과 같아서 생각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이름으로 헤아릴 수 없고 이름으로 들어갈 수 없으나 과분(果分)은 얻을 수 있느니라."
  3. 운허, "善根(선근)". 2012년 9월 22일에 확인.
  4.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0a03 - T31n1585_p0030a04. 3선근(三善根)
    "無貪等者等無瞋癡。此三名根生善勝故。三不善根近對治故。"
  5.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 288 / 583. 3선근(三善根)
    "(『삼십송』의 제11게송에서) ‘무탐(無貪) 등’이라고 한 데서 ‘등(等)’은 무진(無瞋)과 무치(無癡)를 가리킨다. 이 셋을 근(根)이라고 이름한 것은 선을 일으키는 것이 뛰어나기 때문이고, 세 가지 불선근을 가까이 다스리기 때문이다."
  6. 운허, "善法(선법)". 2012년 9월 3일에 확인.
  7. 星雲, "善法". 2012년 9월 3일에 확인.
  8. 운허, "出世間(출세간)". 2012년 9월 3일에 확인.
  9. 星雲, "善本德本".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善本德本:  善本與德本之竝稱。一般指功德善根之本。此二者之意義,有同與不同二說。又「本」字解爲「原因」之義時,得勝果之善根、功德,稱爲善本、德本;解爲「根本」之義時,以一切善法、功德之根本,稱爲善本、德本。長阿含經卷九、法華經卷八等,皆以善根功德之積集爲善本、德本;法華經卷一及阿閦佛國經卷下,則以實相眞如或稱念佛名爲善本、德本,意爲眾善萬德之根本,即分別表示此二義。
     蓋天臺宗係以般若(能證之智)照明、實相眞如(所證之理)爲善本、德本。而在日本淨土眞宗,則以阿彌陀佛之名號爲一切善法之本,故稱善本;又至德成滿、眾禍皆轉,故亦稱德本。即關於阿彌陀佛之名號,雖有聖道門、淨土門等自力、他力之差別,然於諸善萬德之根本則竝無二致。日本淨土眞宗即根據無量壽經所說之「善本德本」,而以之爲阿彌陀佛四十八願中,第二十係念定生願之眞門修行者所修之名號,專賴此一善本德本之功能,以達其往生之願。〔法華文句(會本)卷十二、卷三十、顯淨土方便化身土文類〕 p4877"
  10. 곽철환 2003, "선본(善本)".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선본(善本): 좋은 결과를 얻을 청정한 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11. 星雲, "善根".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善根:  梵語 kuśala-mūla,巴利語 kusala-mūla。又作善本、德本。即產生諸善法之根本。據中阿含卷七大拘絺羅經載,比丘知善、知善根,是謂成就見、得正見,於法得不壞淨,入於正法中。無貪、無瞋、無癡三者爲善根之體,合稱爲三善根。不善根(梵 akuśala-mūla)則爲善根之相反,貪、瞋、癡等,即稱三不善根,或稱三毒。又善法爲得善果之根本,故亦可稱爲善根。〔大品般若經卷一序品、無量壽經卷上、佛本行經卷五降象品、悲華經卷八、舊華嚴經卷四盧舍那佛品、大寶積經卷七十八具善根品、入阿毘達磨論卷上、梁譯攝大乘論釋卷七〕(參閱「三善根」622) p4888"
  12. 운허, "善根(선근)".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善根(선근): (1) 좋은 과보를 받을 좋은 인(因)이란 뜻. 착한 행업의 공덕 선근을 심으면 반드시 선과(善果)를 맺는다 함. (2) 온갖 선을 내는 근본이란 뜻. 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무치(無癡)를 3선근이라 일컬음과 같은 것."
  13. 곽철환 2003, "선근(善根)".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선근(善根):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좋은 과보를 받을 착한 행위."
  14. 운허, "善本(선본)".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善本(선본): 본은 인(因)의 뜻. 좋은 결과를 얻을 원인. 곧 선근 공덕."
  15. 佛門網, "善本".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善本: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Good stock, or roots, planting good seed or roots; good in the root of enlightenment.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善的根本;德行的根本,參看「善」。(相關詞「爲諸善本、建立善本、念諸善本、善念諸善本、敗人善本、無有善本」)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平川彰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Akira Hirakawa
    解釋:
    kuśala-mūla, puṇya.
    頁數: P. 533
    出處: A Digital Edition of A Glossary of Dharmarakṣa translation of the Lotus Sutra by Seishi Karashima, 1998
    解釋:
    善本 (shàn běn)  ( “roots of merit” )
    {《漢語大詞典》3.441b(佛典)} ; {《大漢和辭典》2.1080b(佛典)} ;
    Dharmarakṣa: {106b3} 假使有人,儱戻自用,性不修調,薄德無福,心懷自大,著供養利,不備善本,離於解脱,難可成就(p)
     {K.267.5} -kuśala-mūla~
     Kumārajīva: {L.36a3} 善根"
  16. DDB, "善本".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善本:
    Pronunciations: [py] shàn běn [wg] shan-pen [hg] 선본 [mc] seon bon [mr] sŏn pon [kk] ゼンポン [hb] zen pon [qn] thiện bản
    Basic Meaning: wholesome roots
    Senses:
    # Syn. 善根. Planting good seed or roots; good in the root of enlightenment (Skt. kuśala-mūla, puṇya; Tib. dge ba'i rtsa ba). 〔瑜伽論 T 1579.30.618b16〕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Soothill, Hirakawa, YBh-Ind]
    # In the True Pure Land school 淨土眞宗, a name for Amitâbha 阿彌陀佛, since the name of Amitâbha is the source of all wholesome effects. 〔教行信證〕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644
    Bulgyo sajeon 454a
    Bulgyo sajeon 454-2
    Zengaku daijiten (Komazawa U.) 703c
    Iwanami bukkyō jiten 506
    Bukkyōgo daijiten (Nakamura) 852a
    Ding Fubao {Digital Version}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0260
    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2960c,3004a
    Bukkyō daijiten (Oda) 1068-1
    Sanskrit-Tibetan Index for the Yogâcārabhūmi-śāstra (Yokoyama and Hirosawa) {Digital Version}
    Soothill 369"
  17.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a12 - T26n1542_p0693a13. 사(思)
    "思云何。謂心造作性。即是意業。此有三種。謂善思不善思無記思。"
  18.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4 / 448. 사(思)
    "사(思)란 무엇인가? 마음에서 조작하는 성품[造作性]이니, 곧 그것은 의업(意業)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착한 사[善思]·착하지 못한 사[不善思]·무기의 사[無記思]이다."
  19.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4a24 - T31n1605_p0664a25
    "何等爲思。謂於心造作意業爲體。於善不善無記品中役心爲業。"
  20.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2, T.1605, 제1권. p. 8 / 159. 사(思)
    "어떠한 것이 사(思)심소법입니까? 마음을 조작하는 의업(意業)이 그 바탕이다. 선품ㆍ불선품ㆍ무기품 가운데에서 그 마음을 부리는 것으로 업(業)을 이루게 된다."
  2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13 - T31n1612_p0848c14
    "云何爲思。謂於功德過失及俱相違。令心造作意業爲性。"
  2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8 / 12. 사(思)
    "어떤 것이 사(思)인가. 공덕과 과실과 두 가지가 아닌 것에 대해 마음을 조작하게 하는 의업(意業)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23. 佛門網, "善士". 2013년 3월 14일에 확인
    "善士: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如親近善士中說。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平川彰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Akira Hirakawa
    解釋: sat-puruṣa, sātpauruṣya, manuṣyājāneya, sat.
    頁數: p. 523-533"
  24. 阿含辭典, "善士". 2013년 3월 14일에 확인
    "您所查詢的「善士」:
    眞人: 另譯作「善人、善士、正士」,1.指阿羅漢,如「未識眞人羅漢」、「提婆達兜以害眞人」。2.泛指修行人,如「世有眞人往至善處」。(相關詞「眞人法」)
    不知如眞法: 不知如實之法,參看「如實知」、「如實」,相當的南傳將文作「不熟練善人法」,「善人」另譯作「善士、正士、眞人」,參看「眞人」。"
  2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09 - T29n1558_p0021a17. 무괴(無愧)
    "爲諸善士所訶厭法說名爲罪。於此罪中不見怖畏說名無愧。此中怖言。顯非愛果。能生怖故。不見怖言欲顯何義。爲見而不怖名不見怖。爲不見彼怖名不見怖。若爾何失。二俱有過。若見而不怖應顯智慧。若不見彼怖應顯無明。此言不顯見與不見。何所顯耶。此顯有法是隨煩惱。爲彼二因說名無愧。"
  2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0 / 1397. 무괴(無愧)
    "또한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을 일컬어 죄(罪)라고 하는데, 이러한 죄에 대해 두렵게 보지 않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두렵다'는 말은 애호할 만하지 않은 과보를 나타내니, 그것은 능히 두려움을 낳기 때문이다.69)
    ' 두렵게 보지 않는다'는 말은 어떠한 뜻을 나타내고자 한 것인가? 그것(죄)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두렵게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죄의 과보)의 두려움을 보지 않는 것을 '두렵게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과실이 범하게 되는 것인가?
    두 가지 모두에 과실이 있게 될 것이니, 만약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지혜를 드러내게 될 것이며, 그것의 두려움을 보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무명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70)
    [두렵게 보지 않는다고 하는] 이 말은 견(見,즉 사견의 지혜)이나 불견(不見,무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이는 어떤 수번뇌(隨煩惱)의 법으로서 그러한 두 가지 원인(혜와 무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설하여 무괴라 이름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71)
    69) 미래에 지옥 등의 과보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서 현재 두려움을 낳게 되는 것을 말함.
    70) 즉 전자는 악과(惡果)인 줄 알면서도 두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견(邪見,판단의 慧를 본질로 함)이 되는 것이고, 후자는 두려워할 만한 과보를 초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명이 되는 것이다.
    71) 이러한 원인을 『현종론』 권제6(한글대장경200, p. 147)에서는 인근인(隣近因)이라 한다. 즉 사견과 무명의 동인이 되는 수번뇌를 일컬어 무괴라고 한다는 뜻. 이를테면 미래의 악과를 두렵게 보지 않는 무괴의 수번뇌에 의해 인과부정의 사견과 인과도리에 미혹하는 무명이 인기(引起)되어 현행하게 되는 것이다."
  27. 목건련 지음, 현장 한역 & T.1537, 제1권 〈1. 학처품(學處品)〉. p. T26n1537_p0453c07 - T26n1537_p0453c20. 5포죄원(五怖罪怨)
    "爾時世尊。告苾芻眾。諸有於彼五怖罪怨不寂靜者。彼於現世。爲諸聖賢同所訶厭。名爲犯戒自損傷者。有罪有貶。生多非福。身壞命終。墮險惡趣。生地獄中。何等爲五。謂殺生者。殺生緣故。生怖罪怨。不離殺生。是名第一。不與取者。劫盜緣故。生怖罪怨。不離劫盜。是名第二。欲邪行者。邪行緣故。生怖罪怨。不離邪行。是名第三。虛誑語者。虛誑緣故。生怖罪怨。不離虛誑。是名第四。飮味諸酒放逸處者。飮味諸酒放逸處緣故。生怖罪怨。不離飮酒諸放逸處。是名第五。有於如是五怖罪怨不寂靜者。彼於現世。爲諸聖賢同所訶厭。名爲犯戒自損傷者。有罪有貶。生多非福。身壞命終。墮險惡趣。生地獄中。"
  28. 목건련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5, T.1537, 제1권 〈1. 학처품(學處品)〉. p. 2 / 306. 5포죄원(五怖罪怨)
    "그때에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5포죄원(怖罪怨)이 있어 고요히 안정되지 못한 이는 현재 세상의 모든 성현에게서 다 같이 꾸지람과 괄시를 받을 뿐이요 계율을 범하여[犯戒] 자기 자신을 손상하는 이라 하며 죄도 있고 모자라기도 하여 태어나면 대부분 복이 없고[非福]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험하고 악한 세계[險惡趣]거나 지옥에 떨어지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산목숨을 죽이는 이[殺生者]는 살생한 인연 때문에 두려운 죄와 원한[怖罪怨]을 내어 살생을 여의지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첫째라 하고, 주지 않는데 취하는 이[不與取者]는 도둑질한 인연 때문에 두려운 죄와 원한을 내어 도둑질을 여의지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둘째라 하며, 삿된 음욕을 행한 이[欲邪行者]는 삿된 음행의 인연 때문에 두려운 죄와 원한을 내어 삿된 음행을 여의지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셋째라 하고, 거짓말을 한 이[虛誑語者]는 남을 속인 인연 때문에 두려운 죄와 원한을 내어 거짓말을 여의지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넷째라 하며, 여러 가지 술[酒]을 마시고 방일한 이[放逸者]는 여러 가지 술을 마시고 방일한 인연 때문에 두려운 죄와 원한을 내어 여러 가지 술을 마시고 방일한 짓을 여의지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째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5포죄원에 대하여 고요하고 안정하지 못한 이는 현재 세상에서는 모든 성현에게서 똑같이 꾸지람과 괄시를 받을 뿐더러 계율을 범해서 자기 자신을 손상하는 이라 하며 죄가 있고 모자람도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면 대부분 박복하게 살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험하고 악한 세계에 떨어져 지옥으로 들어가느니라."
  2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4, p. T31n1614_p0855b23 - T31n1614_p0855c06. 심소유법(心所有法)
    "第二心所有法。略有五十一種。
    分爲六位。一遍行有五。二別境有五。三善有十一。四煩惱有六。五隨煩惱有二十。六不定有四。
    一遍行五者。一作意二觸三受四想五思。
    二別境五者。一欲二勝解三念四定五慧。
    三善十一者。一信二精進。三慚四愧。五無貪六無嗔七無癡。八輕安九不放逸十行捨十一不害。
    四煩惱六者。一貪二嗔。三慢四無明。五疑六不正見。
    五隨煩惱二十者。一忿二恨。三惱四覆。五誑六諂。七憍八害。九嫉十慳。十一無慚十二無愧。十三不信十四懈怠。十五放逸十六惛沈。十七掉舉十八失念。十九不正知二十散亂。
    六不定四者。一睡眠二惡作。三尋四伺。"
  30. 星雲, "五位百法".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
  31.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29b17 - T31n1585_p0029b22. 선심소(善心所)
    "善位心所其相云何。頌曰。
     11善謂信慚愧 無貪等三根
      勤安不放逸 行捨及不害
    論曰。唯善心俱名善心所。謂信慚等定有十一。"
  32.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p. 283-284 / 583. 선심소(善心所)
    "선위(善位)의 심소의 양상은 어떠한가? 게송(『유식삼십송』의 제1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심소는 신(信)·참(慚)·괴(愧)와   무탐(無貪) 등 세 가지 선근2)  근(勤)·안(安)·불방일(不放逸)과   행사(行捨) 및 불해(不害)이다.
    논하여 말한다. 오직 선(善)으로서 심왕과 함께하는 것을 선심소라고 이름한다. 신(信) · 참(慚) 심소 등 반드시 열한 가지가 있다.
    2)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의 심소를 세 가지 선근[三善根]의 심소라고 한다."
  33. 황욱 1999, 54. 선심소(善心所)쪽"‘善心所’란 善心 중에서만 일어나는 一類의 심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34. 한국학중앙연구원 (1996).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유식사상(唯識思想)". 네이버 지식백과.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
    "선심소는 착한마음에서 작용하는 것을 뜻하며 11종의 작용이 있다."
  35. 운허, "善(선)".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
  36. "", 《네이버 한자사전》.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
  37. "", 《네이버 한자사전》. 2012년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
  3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4, p. T31n1614_p0855b27 - T31n1614_p0855b29. 선심소(善心所)
    "三善十一者。一信二精進。三慚四愧。五無貪六無嗔七無癡。八輕安九不放逸十行捨十一不害。"
  39. 황욱 1999, 53–59쪽.
  40. 미륵 조, 현장 한역 & T.1579, 제15권. p. T30n1579_p0359a22 - T30n1579_p0359b21. 논(論)의 장엄(莊嚴).
  41.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5권. pp. 493-495 / 829. 논(論)의 장엄(莊嚴).
  4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3권. p. T29n1558_p0013b23 - T29n1558_p0013c01. 여근과 남근의 2가지 증상[女男根二增上]
    "女男命意。各於二事能爲增上。且女男根二增上者。一有情異。二分別異。有情異者。由此二根令諸有情女男類別。分別異者。由此二根形相言音乳房等別。有說。此於染淨增上故言於二。所以者何。本性損壞扇搋半擇及二形人無不律儀無間斷善諸雜染法。亦無律儀得果離染諸清淨法。"
  4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3권. p. 112 / 1397. 여근과 남근의 2가지 증상[女男根二增上]
    "여근·남근·명근·의근은 각기 두 가지 일에 대해 증상의 작용이 있다. 바야흐로 여근과 남근의 두 가지 증상이란, 첫째는 유정의 다름[有情異 : 구역어는 衆生差別]이고, 둘째는 분별의 다름[分別異 : 구역어는 相貌差別]이다. 유정의 다름이란, [태초의 유정은 그 유형이 모두 같았지만] 이 두 근이 생겨남에 따라 제 유정으로 하여금 여자와 남자의 유형에 차별이 있게 되었던 것을 말한다. 분별의 다름이란, 이러한 두 근이 생겨남에 따라 형상과 말소리 유방 등의 차별이 있게 되었던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이것(여근·남근)은 염오함과 청정함 두 가지에 대해 증상력이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하든지[本性] 후천적으로 손괴(損壞)되었든지 간에 선체(扇搋) 와 반택(半擇)과 이형인(二形人)에게는 불율의(不律儀 : 즉 惡戒를 말함)나 무간업(無間業)이나 선근을 끊는 온갖 잡염법(雜染法)이 없으며, 역시 또한 율의(律儀)도 득과(得果)도 이염(離染)의 온갖 청정법(淸淨法)도 없기 때문이다.3)
    3) 여기서 선체(ṣaṇḍha, 구역은 黃門)는 무세근(無勢根) 즉 남근이나 여근을 갖지 않은 자를 말하고, 반택(paṇḍaka, 구역은 故作黃門, 혹은 半擇迦)은 남근·여근을 갖지만 그 작용이 불완전한 성불구자를, 이형인은 양성, 즉 남근·여근을 동시에 갖은 자를 말한다. 즉 범인은 여근·남근으로 말미암아 불율의 즉 악계(惡戒)를 받아 지니기도 하고, 무간업을 짓기도 하며, 선근을 끊기도 하고, 또한 그것을 떠나 율의를 받아 지니기도 하고, 성도(聖道)에 들어 그 과보를 획득하여 성자가 되기도 하며 이욕(離欲)하기도 하지만 선체 등에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여근·남근은 염오법과 청정법에 대해 증상력이 있다는 뜻."
  44. 운허, "扇搋(선체)". 2013년 3월 3일에 확인
    "扇搋(선체): 【범】 Saṇḍha 무근(無根)이라 번역. 남녀근(男女根)을 갖추지 못한 이. 또는 근의 모양이 있더라도 그 세용(勢用)이 없는 사람. 곧 생식기가 없는 이와 및 성적 작용이 불능한 이. 고자와 같음."
  45. 星雲, "扇搋". 2013년 3월 3일에 확인
    "扇搋:  梵語 sandha 之音譯。意譯作黃門。指男子無生殖器者。有先天(本性扇搋)與後天(損壞扇搋)二種,各相當於五種不能男中之生不能男與病不能男。〔俱舍論卷三〕(參閱「五種不能男」1175) p4115"
  46. 阿含辭典, "善品". 2013년 4월 2일에 확인
    "您所查詢的「善品」:
    二十善品:
    二十個善的項目;二十個善的一邊,即「八正道」加上「正智」與「正解脫」的「十支道」及其每一支道所生起的善法。"
  47.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4b13 - T31n1605_p0664b15. 근(勤)
    "何等爲勤。謂心勇悍爲體。或被甲或加行。或無下或無退或無足。差別成滿善品爲業。"
  48.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2, T.1605, 제1권. p. 10 / 159. 근(勤)
    "어떠한 것이 근(勤)심소법입니까?
    피갑(被甲)의 방편이 약해지거나 쇠퇴하거나 도중에 만족하지 않는 굳센 마음으로 그 바탕을 삼는다. 선품(善品)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으로 업을 이루게 된다."
  49. 안혜 조, 현장 한역 & T.1606, 제1권. p. T31n1606_p0697c04 - T31n1606_p0697c08. 근(勤)
    "勤者。被甲方便無下無退。無足心勇爲體成滿善品爲業。謂如經說。有勢有勤有勇堅猛不捨善軛。如其次第應配釋被甲心勇等諸句。滿善品者。謂能圓滿隨初所入根本靜慮。成善品者。謂即於此極善修治。"
  50.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6, T.1605, 제1권. p. 19 / 388. 근(勤)
    "어떠한 것이 근(勤)심소법입니까?
    피갑(被甲)의 방편이 약해지거나 쇠퇴하거나 도중에 만족하지 않는 굳센 마음으로 그 바탕을 삼는다. 선품(善品)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으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성품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에서 업을 이루는 것’이란 계경의 말씀처럼 세력이 있고 근이 있어서 굳세고 견고하되 선액(善軛)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 그 차례에 맞춰서 피갑이나 마음이 굳센 것 따위의 여러 구절을 풀이해야 한다. ‘원만한 성품’이란 처음 근본정려(根本靜慮)에 들어가는 것을 모두 원만케 하는 것이다. ‘선품을 이룬다는 것’이란 여기에서 지극한 선법을 닦아 다스리는 것이다."
  51. 星雲, "根本定". 2013년 4월 2일에 확인
    "根本定:  梵語 dhyāna-maula。又作根本禪、根本等至、八定根本、八根本定。略稱根本。四靜慮(四禪)與四無色定等八者各有根本定與近分定二種。身仍在欲界,未生於色界或無色界時,以其修行完全斷除下地之修惑,其所得之上地定,稱爲根本定。然欲斷盡修惑以得此定殊非容易,故須先得準備行爲(加行)之定,即雖未斷盡修惑,而可藉壓伏,以致得定,即爲得根本定前在掙扎之位爲近分定。此爲根本定之入門。此復有八種,其中,初禪之近分,特稱爲未至定。〔大毘婆沙論卷八十、雜阿毘曇心論卷七、俱舍論光記卷二十八〕(參閱「九地」132) p4134"
  52. 운허, "根本定(근본정)". 2013년 4월 2일에 확인
    "根本定(근본정): ↔근분정(近分定). 하지(下地)의 수혹(修惑)을 끊고 얻은 정(定). 색계 초선(初禪)에서 무색계 제4천까지 각각 하나씩 근본정이 있으므로 8근본정이 된다."
  53.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49 / 448. 식(識)
    "식(識)은 무엇인가? 6식신(識身)이니, 안식(眼識)에서 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이다."
  54.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0c23 - T26n1542_p0700c24. 식(識)
    "識云何。謂六識身。即眼識乃至意識。"
  55.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1a03 - T26n1542_p0701a05. 안식(眼識)
    "眼識云何。謂眼及色爲緣生眼識。如是眼爲增上。色爲所緣。於眼所識色。諸已正當了別。是名眼識。耳鼻舌身意識亦爾。"
  56.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50 / 448. 안식(眼識)
    "안식(眼識)은 무엇인가? 눈이 빛깔을 반연하여 안식이 생기는데 이와 같은 눈을 증상(增上)으로 삼고 빛깔을 반연의 대상[所緣]으로 삼아 눈이 인식하는 빛깔에 대하여 이미·지금·막·앞으로 요별(了別)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식’이라 한다.
    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도 또한 그러하다."
  57.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14 - T02n0124_p0547c17. 촉(觸)
    "六處緣觸者。云何爲觸。謂六觸身。一者眼觸。二者耳觸。三者鼻觸。四者舌觸。五者身觸。六者意觸。是名爲觸。"
  58.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3 / 4. 촉(觸)
    "6처는 촉(觸)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촉인가.
    촉이란 6촉(觸)을 말하니, 첫째는 안촉(眼觸), 둘째는 이촉(耳觸), 셋째는 비촉(鼻觸), 넷째는 설촉(舌觸), 다섯째는 신촉(身觸)여섯째는 의촉(意觸)이다.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59. 星雲, "六觸". 2013년 5월 19일에 확인
    "六觸:  指眼觸、耳觸、鼻觸、舌觸、身觸、意觸等六種作用。觸,乃與一切心、心所法相應,而能使其觸對於境之精神作用;即爲根、境、識三者和合而產生之心所。故六觸即爲六根、六境、六識和合產生者;於凡夫位,則生愛染,稱爲「六觸生愛」。六觸即:(一)眼觸生愛,謂眼能觸對一切世間所有青黃赤白、方圓長短等種種顏色、形相而貪愛不捨。(二)耳觸生愛,謂耳能觸對一切世間所有絲竹歌詠等種種之聲,而貪愛不捨。(三)鼻觸生愛,謂鼻能觸對一切世間所有栴檀沈水等種種之香,而貪愛不捨。(四)舌觸生愛,謂舌能觸對一切世間所有珍饈美饌等種種之味,而貪愛不捨。(五)身觸生愛,謂身能觸對男女身分柔軟細滑及世間所有種種上妙衣服等,而貪愛不捨。(六)意觸生愛,謂意能觸對一切世間所有色聲香味觸等種種之法,而貪愛不捨。〔雜阿含經卷十三、俱舍論卷十、順正理論卷二十九、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 p1313"
  60. 곽철환 2003, "육촉(六觸)". 2013년 5월 19일에 확인
    "육촉(六觸): 육근(六根)과 육경(六境)과 육식(六識)이 각각 화합하여 일어나는 여섯 가지 마음 작용."
  61. 현장 한역 & T.124, p. T02n0099_p0085b04 - T02n0099_p0085b06. 촉(觸)
    "緣六入處觸者。云何爲觸。謂六觸身。眼觸身.耳觸身.鼻觸身.舌觸身.身觸身.意觸身。"
  62.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촉(觸)
    "6입처를 인연하여 접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접촉[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촉신(觸身)이니, 안촉신(眼觸身)·이촉신(耳觸身)·비촉신(鼻觸身)·설촉신(舌觸身)·신촉신(身觸身)·의촉신(意觸身)이니라."
  63. 곽철환 2003, "육촉신(六觸身)". 2013년 5월 19일에 확인
    "육촉신(六觸身): 신(身)은 산스크리트어 kāya의 번역으로, 어미에 붙어 복수를 나타냄. 육촉(六觸)과 같음."
  64.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1a05 - T26n1542_p0701a08. 안촉(眼觸)
    "眼觸云何。謂眼及色爲緣生眼識。三和合故觸。如是眼爲增上。色爲所緣。於眼所識色。諸觸等觸觸性等觸性已觸觸類。是名眼觸。"
  65.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50 / 448. 안촉(眼觸)
    "안촉(眼觸)은 무엇인가? 눈이 빛깔을 반연하여 안식이 생기나니,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觸]이 생긴다. 이와 같이 눈을 증상으로 삼고 빛깔을 반연하는 대상으로 삼을 적에 눈이 인식하는 빛깔에 대하여 모든 접촉이요 평등한 접촉[等觸]이며, 접촉의 성품[觸性]이요 평등하게 접촉하는 성품[等觸性]이며 이미 접촉하였고 접촉하는 종류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촉’이라 한다.
    이촉(耳觸)·비촉(鼻觸)·설촉(舌觸)·신촉(身觸)·의촉(意觸)도 또한 그러하다."
  66.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1a19 - T26n1542_p0701a25. 안촉소생사(眼觸所生思)
    "眼觸所生思云何。謂眼及色爲緣生眼識。三和合故觸。觸爲緣故思。如是眼爲增上。色爲所緣。眼觸爲因爲集爲類爲生。眼觸所生作意相應。於眼所識色諸思等思增上等思。已思思類心作意業。是名眼觸所生思。耳鼻舌身意觸所生思亦爾。"
  67.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51 / 448. 안촉소생사(眼觸所生思)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眼觸所生思]는 무엇인가? 눈이 빛깔을 반연으로 하여 안식이 생기나니,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반연되기 때문에 마음의 사(思)가 있는데, 이와 같이 눈을 증상으로 삼고 빛깔을 반연하는 대상으로 삼을 적에 눈의 접촉은 인이 되고, 쌓임이 되고, 종류가 되고, 나는 것이 되며,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와 상응하는 눈이 인식하는 빛깔에 대해서 모든 마음의 조작[造作:思]이요, 평등한 사[等思]요, 더욱 뛰어나게 평등한 사[增上等思]이며, 이미 지나간 사[已思]요 종류이며 마음으로 짓는 뜻의 업[心作意業]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이라 한다.
    귀·코·혀·몸·뜻의 조작으로 생기는 사(思)도 또한 그러하다."
  68.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1a25 - T26n1542_p0701a29. 안촉소생애(眼觸所生愛)
    "眼觸所生愛云何。謂眼及色爲緣生眼識。三和合故觸。觸爲緣故愛。如是眼爲增上。色爲所緣。於眼所識色諸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樂。是名眼觸所生愛。耳鼻舌身意觸所生愛亦爾。"
  69.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p. 51-52 / 448. 안촉소생애(眼觸所生愛)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랑[眼觸所生愛]는 무엇인가? 눈과 빛깔을 반연으로 하여 안식이 생기나니,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생기며 접촉을 반연하기 때문에 사랑[愛]이 있나니, 이와 같이 눈을 증상으로 삼고 빛깔을 반연하는 대상으로 삼을 적에 눈이 인식하는 빛깔에 대해서 모든 탐(貪)이요 평등한 탐[等貪]이며, 가져 간직하고[執藏] 막아 수호하며[防護] 즐겨 집착하고[取著] 사랑하며 좋아하는 것[愛樂]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랑』이라 한다.
    귀·코·혀·몸·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랑[愛]도 또한 그러하다."
  70. 佛門網, "聖法". 2013년 2월 2일에 확인
    "聖法: shèngfă

    出處: Buddhistdoor
    解釋: 聖法 (1) The correct teaching, true dharma. (2) Elements, or affairs associated with holiness, sageliness, etc.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The holy law of Buddha; the law or teaching of the saints, or sages.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解釋: ārya-dharma, ārya-vastu-naya, dharma.
    頁數: P.2970"
  71. 星雲, "異生性". 2013년 2월 2일에 확인
    "異生性: 梵語 prthag-janatva。舊譯爲凡夫性。凡夫者,乃指六道之中未得佛法之有情眾生。異生性,即眾生成爲凡夫之依據或原因在於不得佛法。意指凡夫之愚異生性。異生,即凡夫;異,含有別異、變異二義。因凡夫輪迴五趣(或六道),受種種別異之果報;又凡夫由種種變異而生邪見、造諸惡,故稱異生。準此,異生性即指使眾生成爲凡夫之本性,亦即通常所謂「見惑」之煩惱種子。
     關於其體性,諸部之間有異說:(一)小乘犢子部,認爲異生性係以欲界見苦所斷之煩惱(即十隨眠)爲其體性;屬於欲界所繫縛,具有染污性,而爲「見道位」時所斷除者,攝於「相應行蘊」中。(二)小乘說一切有部之正統主張,認爲聖道之非得(亦即不能獲得聖道)之性爲異生性之體性;屬於三界所繫縛,不具染污性,而爲「修道位」時所斷除者,攝於「不相應行蘊」中,而別有自體。(三)小乘經部,不另立體性,而以聖法未生時相續之分位差別稱爲異生性,此係一種「假立」之異生性,亦即不承認有異生性存在,而僅假立名相以說明之。(四)唯識大乘,亦屬假立之異生性,即於分別而起的煩惱、所知二障之種子上假立爲異生性;而異生之凡夫若能至見道位時永斷此二障,方可稱爲聖者。亦即以分別而起之二障爲異生性,若不斷此性則不得爲聖者,故初地所斷之惑,又稱爲「異生性障」。〔大毘婆沙論卷四十五、俱舍論卷四、成唯識論卷九、成唯識論述記卷三〕"
  72.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5c21 - T31n1605_p0665c22. 이생성(異生性)
    "何等異生性。謂於聖法不得假立異生性。"
  73.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2, T.1605, 제1권. p. 19 / 159. 이생성(異生性)
    "어떠한 것이 이생성 불상응행법입니까? 성법(聖法)을 얻지 못한 것을 임시로 세워서 이생의 성품이라 한다."
  74. 운허, "凡夫(범부)". 2012년 11월 11일에 확인
    "凡夫(범부): ↔성자(聖者). 지혜가 얕고, 우둔한 중생. 불교에서는 대승·소승을 물론 하고, 견도(見道) 이전으로 올바른 이치를 깨닫지 못한 이는 다 범부라 한다. 그 가운데서 4선근위(善根位)를 내범(內凡)이라 하고, 3현위(賢位)를 외범(外凡)이라 하며, 외범 이하는 저하(底下)의 범부라 함."
  75. 星雲, "聖人". 2012년 11월 11일에 확인
    "聖人:  (一)梵語 ārya。又稱聖者、聖。指證得聖智,而在見道位以上之人;此因見道位以上之人終將完成無漏之聖智,故稱之。  (二)指佛、菩薩及權化之人(方便示現爲人,而德高者)。  (三)對高僧或碩德之尊稱。印度人即尊稱諸論師爲「聖者」;日本對高僧亦尊稱爲「聖人」"
  76. 운허, "聖人(성인)". 2012년 11월 11일에 확인
    "聖人(성인): 불·보살. 또는 중생 제도를 위하여 출현한 성자(聖者)."
  77. 운허, "體性(체성)". 2012년 11월 5일에 확인
    "體性(체성): 물건의 본질을 체라 하고, 체가 변하여 고쳐지지 않는 것을 성이라 하니, 체가 곧 성."
  7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4 / 1397쪽.
  79. 운허, "自性(자성)". 2012년 9월 12일에 확인.
  80. 星雲, "自性". 2012년 9월 12일에 확인.
  81. 권오민 2003, 164-172. 행위자쪽.
  82. 운월 2005, 4. 행위자쪽.
  83.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a10 - T26n1542_p0693a11. 수(受)
    "受云何。謂領納性。此有三種。謂樂受苦受不苦不樂受。"
  84.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4 / 448. 수(受)
    "수(受)란 무엇인가? 받아들이는 성품[領納性]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즐거운 느낌[樂受]·괴로운 느낌[苦受]·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樂受]이다."
  85.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a11 - T26n1542_p0693a12. 상(想)
    "想云何。謂取像性。此有三種。謂小想大想無量想。"
  86.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4 / 448. 상(想)
    "상(想)이란 무엇인가? 형상을 취하는 성품[取像性]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작은 생각[小想]·큰 생각[大想]·한량없는 생각[無量想]이다."
  87.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2b27 - T26n1542_p0692b29. 마음[心]
    "心云何。謂心意識。此復云何。謂六識身。即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88.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1 / 448. 마음[心]
    "심(心)이란 무엇인가? 마음[心]·뜻[意]·의식[識]을 말한다. 이것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6식신(識身)이니,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다."
  8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192 / 1397쪽.
  90. 星雲, "成就". 2012년 9월 7일에 확인.
  9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p. T29n1558_p0004c14 - T29n1558_p0005a02. 11품류(十一品類)
    "論曰。諸有爲法和合聚義是蘊義。如契經言。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劣若勝。若遠若近。如是一切略爲一聚。說名色蘊。由此聚義蘊義得成。於此經中。無常已滅名過去。若未已生名未來。已生未謝名現在。自身名內。所餘名外。或約處辯。有對名麤。無對名細。或相待立。若言相待。麤細不成。此難不然。所待異故。待彼爲麤未嘗爲細。待彼爲細未嘗爲麤。猶如父子苦集諦等染污名劣。不染名勝。去來名遠。現在名近。乃至識蘊應知亦然。而有差別。謂依五根名麤。唯依意根名細。或約地辯。毘婆沙師所說如是。大德法救復作是言。五根所取名麤色。所餘名細色。非可意者名劣色。所餘名勝色。不可見處名遠色。在可見處名近色。過去等色如自名顯受等亦然。隨所依力應知遠近麤細同前。"
  9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p. 35-37 / 1397. 11품류(十一品類)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유위법의 화합·적취(積聚, rāśi)의 뜻, 이것이 바로 '온(skandha)'의 뜻이니, 계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다. 즉 "존재하는 모든 색으로서 혹은 과거의 것이거나, 혹은 현재의 것이거나, 혹은 미래의 것이거나, 혹은 내적인 것이거나, 혹은 외적인 것이거나, 혹은 거친 것이거나, 혹은 미세한 것이거나, 혹은 저열한 것이거나, 혹은 수승한 것이거나, 혹은 멀리 있는 것이거나, 혹은 가까이 있는 것, 이와 같은 일체의 것을 간추려 하나의 무더기[一聚]로 삼은 것을 설하여 '온'이라고 이름한다"고 하였으니, 이 같은 사실에 따라 적취의 뜻은 온의 뜻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의 내용 중에서 무상하여 이미 멸한 색을 일컬어 '과거의 것'이라고 하였고, 아직 이미 생겨나지 않은 색을 일컬어 '미래의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미 생겨났지만 아직 낙사(落謝)하지 않은 색을 일컬어 '현재의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자기의 소의신을 '내적인 것'이라고 이름하였으며, 그 밖의 색을 '외적인 것'이라고 이름하였는데, 혹 어떤 경우 처(處)에 근거하여 분별하기도 한다.69) 또한 유대색(有對色)을 일컬어 '거친 것'이라고 하였으며, 무대색(無對色)를 일컬어 '미세한 것'이라고 하였는데,70) 혹 어떤 경우 상대적(相待的)인 관점에 따라 설정하기도 한다.71)
    만약 '상대적인 관점에 따라'라고 말한다면,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72)
    이러한 힐난은 옳지 않으니, 상대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그것에 대해 거친 것은 [그것에 대해] 미세한 것이 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해 미세한 것은 [그것에 대해] 거친 것이 되지 않으니, 이는 비유하자면 아버지와 아들, 고제와 집제의 경우 등과도 같다.73)
    또한 염오(染汚)의 색을 '저열한 것'이라고 이름하였고, 불염오의 색을 '수승한 것'이라고 이름하였으며, 과거·미래의 색을 '멀리 있는 것'이라고 이름하였고, 현재의 색을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이름하였다.
    내 지는 식온(識蘊)의 경우에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나 여기에는 약간의 차별이 있다. 즉 5근을 소의로 하는 식을 '거친 것'이라고 이름하며, 오로지 의근을 소의로 하는 식을 '미세한 것'이라고 한다. 혹은 지(地, 즉 3계 9지)에 근거하여 분별하는 경우도 있으니, 비바사사(毘婆沙師)가 설하는 바가 그러하다.
    그런데 존자 법구(法救, Dharmatr ta)는 다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5근에 의해 파악된 것을 '거친 색'이라 이름하고, 그 밖의 것(즉 5근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것)을 '미세한 색'이라 이름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不可意]을 '저열한 색'이라 이름하고, 그 밖의 것을 '수승한 색'이라고 이름한다. 또한 볼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것을 '멀리 있는 색'이라고 이름하고, 볼 수 있는 곳에 존재하는 것을 '가까이 있는 색'이라고 이름하며, 과거 따위의 색은 그 명칭이 드러내는 바와 같다. 그리고 수(受) 등도 역시 그러하지만 다만 소의(所依)의 힘에 따라 '멀리 있는 것'이라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74)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의 경우는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69) 5근은 내적인 색, 6경(법경에 해당하는 것은 무표색)은 외적인 색이다.
    70) 유대색이란 질애(對礙, pratigha) 즉 공간적 점유성을 지닌 색을 말하는 것으로, 5근·5경을 가리키며, 무대색이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무표색을 가리킨다.
    71) 유견유대(有見有對)·유견무대(有見無對)·무견무대(無見無對)의 3색, 혹은 욕계계(繫)·색계계·불계(不繫)의 3색을 상대적으로 볼 때, 전자는 후자에 비해 거친 색이고 후자는 전자에 비해 미세한 색이다.
    72) 예컨대 욕계·색계·불계(不繫)의 색, 혹은 유견유대·무견유대·무견무대의 색에 있어 전자는 후자에 대해 거친 것이고, 후자는 전자에 대해 미세한 것이라고 할 경우, 색계의 색과 무견유대색은 미세한 것이면서 거친 것이라고 하는 두 가지 존재 양태를 지니게 되는 모순을 갖게 된다.
    73) 어떤 이는 그 아버지에 대해서만 아들이고 아들에 대해서만 아버지일 뿐이며, 또한 어떤 법은 집인(集因)에 대해서만 고과(苦果)이고 고과에 대해서만 집인이 될 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
    74) 수(受) 등의 법은 처소가 없기 때문에 바로 원근을 분별할 수 없으며, 다만 그것들의 소의가 미치는 힘에 따라 원근을 분별할 수 있을 뿐이다."
  9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 T29n1558_p0004c20 - T29n1558_p0004c23. 추(麤: 거친 것)와 세(細: 미세한 것)
    "有對名麤。無對名細。或相待立。若言相待。麤細不成。此難不然。所待異故。待彼爲麤未嘗爲細。待彼爲細未嘗爲麤。猶如父子苦集諦等"
  9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 36 / 1397. 추(麤: 거친 것)와 세(細: 미세한 것)
    "또한 유대색(有對色)을 일컬어 '거친 것'이라고 하였으며, 무대색(無對色)를 일컬어 '미세한 것'이라고 하였는데,70) 혹 어떤 경우 상대적(相待的)인 관점에 따라 설정하기도 한다.71)
    만약 '상대적인 관점에 따라'라고 말한다면,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72)
    이러한 힐난은 옳지 않으니, 상대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그것에 대해 거친 것은 [그것에 대해] 미세한 것이 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해 미세한 것은 [그것에 대해] 거친 것이 되지 않으니, 이는 비유하자면 아버지와 아들, 고제와 집제의 경우 등과도 같다.73)
    70) 유대색이란 질애(對礙, pratigha) 즉 공간적 점유성을 지닌 색을 말하는 것으로, 5근·5경을 가리키며, 무대색이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무표색을 가리킨다.
    71) 유견유대(有見有對)·유견무대(有見無對)·무견무대(無見無對)의 3색, 혹은 욕계계(繫)·색계계·불계(不繫)의 3색을 상대적으로 볼 때, 전자는 후자에 비해 거친 색이고 후자는 전자에 비해 미세한 색이다.
    72) 예컨대 욕계·색계·불계(不繫)의 색, 혹은 유견유대·무견유대·무견무대의 색에 있어 전자는 후자에 대해 거친 것이고, 후자는 전자에 대해 미세한 것이라고 할 경우, 색계의 색과 무견유대색은 미세한 것이면서 거친 것이라고 하는 두 가지 존재 양태를 지니게 되는 모순을 갖게 된다.
    73) 어떤 이는 그 아버지에 대해서만 아들이고 아들에 대해서만 아버지일 뿐이며, 또한 어떤 법은 집인(集因)에 대해서만 고과(苦果)이고 고과에 대해서만 집인이 될 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
  9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 T29n1558_p0004c26 - T29n1558_p0005a02. 법구(法救)의 해석
    "大德法救復作是言。五根所取名麤色。所餘名細色。非可意者名劣色。所餘名勝色。不可見處名遠色。在可見處名近色。過去等色如自名顯受等亦然。隨所依力應知遠近麤細同前。"
  9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 37 / 1397. 법구(法救)의 해석
    "그런데 존자 법구(法救, Dharmatrāta)는 다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5근에 의해 파악된 것을 '거친 색'이라 이름하고, 그 밖의 것(즉 5근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것)을 '미세한 색'이라 이름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不可意]을 '저열한 색'이라 이름하고, 그 밖의 것을 '수승한 색'이라고 이름한다. 또한 볼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것을 '멀리 있는 색'이라고 이름하고, 볼 수 있는 곳에 존재하는 것을 '가까이 있는 색'이라고 이름하며, 과거 따위의 색은 그 명칭이 드러내는 바와 같다. 그리고 수(受) 등도 역시 그러하지만 다만 소의(所依)의 힘에 따라 '멀리 있는 것'이라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74)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의 경우는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74) 수(受) 등의 법은 처소가 없기 때문에 바로 원근을 분별할 수 없으며, 다만 그것들의 소의가 미치는 힘에 따라 원근을 분별할 수 있을 뿐이다."
  97. 운허, "出世間(출세간)". 2012년 10월 25일에 확인.
  98. 星雲, "出世間". 2012년 10월 25일에 확인.
  99. DDB, "世間". 2013년 4월 22일에 확인
    "世間:
    Pronunciations: [py] shìjiān [wg] shih-chien [hg] 세간 [mc] segan [mr] segan [kk] セケン [hb] seken [qn] thế gian
    Basic Meaning: world
    Senses:
    # Conventional, mundane, worldly. The secular world. The logograph 世 means 'transient,' while the logograph 間 means 'within.' The transient world of phenomenal appearances. Used with similar connotations in early classical Chinese texts such as the  Shiji 史記.(Skt. loka, laukika; loka-dhātu, sarva-loka, sarga, jagat; Tib. 'gro ba, 'jig rten pa)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Nakamura, Yokoi, Iwanami]
    # The people of the world; this world; sentient beings 人間. The customs of the secular world; conventions 俗.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Nakamura]
    # In texts that discuss doctrines of levels of practitioners, this term is equivalent in meaning to 'unenlightened sentient being' 凡夫. In bodhisattva path theory, it usually refers to persons who are at the stage of the ten faiths 十信, ten understandings 十解, or ten practices 十行, thus being contrasted with the term 'transmundane' 出世間, which refers to the world perceived by enlightened practitioners, such as bodhisattvas in the ten grounds 十地, and buddhas. [Charles Muller]
    # The 'container world' (器世間); the unconditioned realm (Skt. bhājana-loka). [Charles Muller]
    # (Skt. alokôttaratva, iha, *iha-loka, kusaṃskṛta, kṣetra, jaga, jana, jīva-loka, nara-loka, prajā, bhūta, bhūtala-maṇḍala, manu-jāḥ, mahā-jana-kāya, medini, loka-yātrā, lokika, lokya, laukikī, laukikya, vīthī, saṃsār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Also in: CJKV-E
    # Cf. Karashima (Lokakṣema Glossary): view / hide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618
    Bulgyo sajeon 471a
    Zengaku daijiten (Komazawa U.) 657b
    Iwanami bukkyō jiten 487
    Japanese-English Zen Buddhist Dictionary (Yokoi) 602
    Zengo jiten (Iriya and Koga) 5-P6
    Bukkyōgo daijiten (Nakamura) 816b
    Fo Guang Dictionary 1524
    Ding Fubao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0069
    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2919b,1596a
    Bukkyō daijiten (Oda) 1026-1
    Sanskrit-Tibetan Index for the Yogâcārabhūmi-śāstra (Yokoyama and Hirosawa)
    (Soothill's)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165
    Lokakṣema's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Karashima) 434"
  10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권. p. T29n1558_p0010c03 - T29n1558_p0010c16. 세간정견(世間正見).
  10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권. p. 84-86 / 1397. 세간정견(世間正見).
  102.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4a03. 세속지(世俗智)
    "世俗智云何。謂諸有漏慧。"
  103.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9 / 448. 세속지(世俗智)
    "세속지(世俗智)란 무엇인가? 모든 유루의 지혜[有漏慧]이다."
  104. 佛學辭彙, "世俗智". 2012년 12월 29일에 확인
    "世俗智 [py] shìsúzhì [wg] shih-su-chih [ko] 세속지 sesokchi (ja) セゾクチ sezokuchi (1) Worldly wisdom. The wisdom possessed by unenlightened people, equivalent to "defiled wisdom," or "wisdom with outflow" 有漏智. One of the "ten kinds of wisdom" 十智. (Skt. saṃvṛti-jñāna; Pali sammati-ñāṇa) 〔倶舍論〕"
  105. 星雲, "有漏智". 2012년 12월 29일에 확인
    "有漏智: 梵語 sāsrava-jñāna。爲「無漏智」之對稱。指煩惱未斷盡的世間智慧。又作俗智、世間智、世智、世俗智。此智慧雖觀緣一切有爲、無爲之法,然多以世俗之法爲主,故又稱世俗智。又此智帶有有漏煩惱之過非,而無斷除一切迷理煩惱之力,一般多指凡夫外道之生得慧(與生俱來之慧),及聞、思、修三慧而言。〔俱舍論卷二十六、順正理論卷七十三、瑜伽師地論卷七十三〕"
  106. 星雲, "十智". 2012년 12월 29일에 확인
    "十智: 梵語 daśa jñānāni。(一)就有漏智及無漏智之性分爲十種。(一)世俗智(梵 sajvrti-jñāna),多取世俗境之智,即有漏慧之總稱。(二)法智(梵 dharma-jñāna),緣欲界四諦之理,斷欲界煩惱之無漏智。(三)類智(梵 anvaya-jñāna),隨法智而生之無漏智,緣色、無色界四諦之理斷其煩惱。(四)苦智(梵 duhkha-jñāna),(五)集智(梵 samudaya-jñāna),(六)滅智(梵 nirodha-jñāna),(七)道智(梵 mārga-jñāna),後四智乃各斷四諦所屬煩惱之智。(八)他心智(梵 para-citta-jñāna),了知欲界與色界現在心、心所法,及無漏心、心所法之智。(九)盡智(梵 ksaya-jñāna),(十)無生智(梵 anutpāda-jñāna),後二智皆於無學位所起之智慧;盡智爲無學位之聖者,遍知我已知苦、我已斷集、我已證滅、我已修道,係與漏盡之「得」俱生之無漏智。無生智於無學位遍知我已知苦,復更無知;我已斷集,復更無斷;我已證滅,復更無證;我已修道,復更無修,係與非擇滅之「得」俱生之無漏智。又大般若經卷四八九舉出前十智外更加如說智,共爲十一智。若智以無所得而爲方便,知一切法如說之相,即是如來一切相智,稱爲如說智。〔俱舍論卷二十六〕 "
  107. 곽철환 2003, "십지(十智)". 2013년 1월 5일에 확인
    "십지(十智): 모든 지혜를 열 가지로 나눈 것.
    (1) 세속지(世俗智). 세속의 일을 아는 지혜.
    (2) 법지(法智). 욕계의 사제(四諦)를 체득한 지혜.
    (3) 유지(類智). 색계·무색계의 사제(四諦)를 체득한 지혜.
    (4) 고지(苦智). 욕계·색계·무색계의 고제(苦諦)를 체득한 지혜.
    (5) 집지(集智). 욕계·색계·무색계의 집제(集諦)를 체득한 지혜.
    (6) 멸지(滅智). 욕계·색계·무색계의 멸제(滅諦)를 체득한 지혜.
    (7) 도지(道智). 욕계·색계·무색계의 도제(道諦)를 체득한 지혜.
    (8) 타심지(他心智).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
    (9) 진지(盡智). 자신은 이미 고(苦)를 알았고, 집(集)을 끊었고, 멸(滅)을 체득했고, 도(道)를 닦았다고 아는 지혜.
    (10) 무생지(無生智). 자신은 이미 고(苦)를 알았기 때문에 다시 알 필요가 없고, 집(集)을 끊었기 때문에 다시 끊을 필요가 없고, 멸(滅)을 체득했기 때문에 다시 체득할 필요가 없고, 도(道)를 닦았기 때문에 다시 닦을 필요가 없다고 아는 지혜."
  108. 황욱 1999, 54–55쪽.
  10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24. 괴(愧)
    "云何爲愧。謂世增上於所作罪羞恥爲性。"
  11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3 / 12. 괴(愧)
    "어떤 것이 괴(愧)인가. 세간의 증상함에 있어서 죄 짓는 것을 부끄럽게 여김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111.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 T.1613, p. T31n1613_p0852a20 - T31n1613_p0852a22. 괴(愧)
    "云何愧。謂他增上。於所作罪。羞恥爲性。他增上者謂怖畏責罰。及議論等。所有罪失。羞恥於他。業如慚說。"
  112.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 K.619, T.1613, p. 7 / 24. 괴(愧)
    "무엇을 뉘우침[愧]이라고 하는가?
    타인의 뛰어남에 의해 지은 죄에 대해서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성질로 한다. 타인의 뛰어남에 의함이란 꾸지람과 벌 및 그에 대한 논리 등을 두려워함을 말한다. 지은 죄와 잘못이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수치스럽다. 행동양식은 부끄러워함[慚]에서 말한 것과 같다."
  113.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29c16 - T31n1585_p0029c19. 괴(愧)
    "云何爲愧。依世間力輕拒暴惡爲性。對治無愧止息惡行爲業。謂依世間訶厭增上。輕拒暴惡羞恥過罪。對治無愧息諸惡業。"
  114.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 286 / 583. 괴(愧)
    "무엇을 ‘괴(愧)심소’15)라고 하는가? 세간의 힘에 의지해서 포악함과 악법을 가볍게 여기고 거부함을 체성으로 삼고, 무괴(無愧)를 다스리고 악행을 멈추게 함을 업으로 삼는다. 세간에서 꾸짖고 싫어하는 증상력에 의지해서 포악함과 악법을 가볍게 여기고 거부하고,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며 무괴를 다스리고 여러 악업을 멈추게 한다.
    15) 괴(愧, apatrapā)심소는 ‘남부끄러움’, 즉 타인의 비방을 두려워하고 왕법(王法)의 형벌을 두려워해서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심리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