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고등학교

대한민국의 사립고등학교
(송탄제일고등학교에서 넘어옴)

라온고등학교경기도 평택시 서정동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이다. 관내에 있는 운동부는 야구부가 대표적이다.

라온고등학교
Raon High School
교훈준비, 도전, 창조
개교1987년
설립형태사립
교장조원기
교감김홍배
국가대한민국
위치경기도 평택시 경기대로1376번길 38-6 (서정동)
학생 수468 명 (2020년 5월 1일 기준)
교직원 수54 명 (2020년 5월 1일 기준)
상징교목: 소나무, 교화: 배롱나무꽃
학교법인비룡학원
관할관청경기도교육청
웹사이트라온고등학교 홈페이지

학교 연혁 편집

학교 동문 편집

참고 자료 편집

사건 사고 편집

지난 1999년 2월 13일 밤 10시경,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에서 당시 송탄여자고등학교 3학년이던 송혜희(1981년생, 여자) 양이 실종되었다. 당일 송 양은 3학년 반 편성이 있어서 오전에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 오후 5시 30분경 남자친구를 만나러 남자친구의 집이 있는 평택시 서정동에 갔는데 친구들과 놀다 보니 이윽고 밤 10시가 되었고 막차 시간이 되자 송 양은 막차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막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친구들이 배웅했으며 남자친구가 살던 서정동과 송 양의 집이 있던 도일동은 불과 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갈 경우 10~20분 거리에 불과했지만 도일동 하리 지역이 원래 주민이 적은 지역이었고 막차 시간이라 당시 버스 안에는 송혜희 양과 30대로 보이는 남자 1명만 있었다. 당시 송 양이 탑승한 노선의 운행사인 평택운수에서 송 양이 탑승한 노선의 막차를 운행했던 버스기사는 밤 10시 15분경 송 양이 도일동 하리 입구 도일주유소 앞에서 내리는 것을 기억했으며 좀 신경이 쓰였던 점으로 술 냄새가 나는 의문의 남자가 송 양과 같이 내렸다고 증언했다. 당시 송혜희 양이 내린 버스정류장은 집에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고 때는 야간이었다. 게다가 집으로 가는 길은 논밭, 야산뿐인 어두운 골목길이라 항상 우범지대였다. 버스에서 내린 송 양은 앞에서 걸어가고, 남자는 조용히 송 양의 뒤를 따라 같이 걸어갔다. 이것이 송 양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며 현재까지 행방이 알수없는 상태이다. 송혜희 양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밤 11시경 아버지 송길용은 송 양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친구들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는 말뿐이었다. 다음날 새벽 6시경 가족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로 처리했다가 사건 발생 3일 후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송혜희 양의 일대 탐문 조사, 우범자 조사 등을 통해 단서를 잡으려고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송혜희 양이 버스에서 내릴 때 같이 내렸다는 남자가 사건과 관련된 용의자 또는 최후의 목격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그 남자를 찾기 위해 버스기사를 불러 조사했다. 이때 버스기사는 그 남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30대 정도 되는 남자였다.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으며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다.

°평택 시내에서 버스를 탔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 '어디를 가느냐'라고 물었더니 '도일동 하리부락'이라고 대답했다.

°몸에서 술 냄새가 났다.

°버스에서 내린 후, 도로를 건너지 않고 지하도로 향했다.

마지막 진술에서 주목할 점이 있는데 당시 "송 양은 버스에서 내린 후 도로를 건너 하리 마을로 향했지만 남자는 지하도로 들어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도로를 건너든, 지하도로 들어가든 하리 마을 방향인 것은 마찬가지다.

경찰은 이 의문의 남자를 찾기 위해 주변 마을까지 찾고 야간 기술학교와 일대 성매매 업소까지 수색했으나 끝내 남자를 찾을 수 없었고 송 양도 찾지 못했다. 만약 당시 버스에 CCTV가 있었으면 희망이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버스에 CCTV가 없었다. 당시 송 양이 내린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은 한밤중인 데다 인적도 드물고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좁은 골목길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인원을 투입해 논밭, 갈대숲, 하수구, 산 등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혜희 양은 끝내 발견되지 못했다.

수사에 진전이 없자 경찰은 때마침 사건 발생일이 설날 사흘 전이었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설을 보내기 위해 귀성한 전입자일 수 있다'는 것에 가능성을 두고 도일동 일대, 평택 일대를 샅샅이 조사했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당시 경찰이 단순 가출로 처리해 버려 3일이나 방치하다가 수사하지를 않나, 목격자를 상대로 용의자의 몽타주 작성과 탐문 수사도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잠적했다고 단정짓는 등 사실상 경찰 스스로가 이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만들어 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송혜희 양이 실종된 동네는 작은 동네였고 당시 범인을 목격한 목격자도 있었기 때문에 몽타주 작성과 탐문 수사만 제대로 했다면 많은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인지 송혜희 양의 아버지는 사건 이후 경찰을 불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사에 계속 진전이 없자 경찰은 수사를 잠정 중단했으며 납치 및 인신매매 사건으로 추정되던 이 사건은 결국 2014년 2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송혜희 양의 실종 후 부모는 생업을 포기하고 딸을 찾아나섰다. 송혜희 양의 아버지 송길용은 도일동에서 아내와 2명의 딸과 함께 살고 있던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특히 차녀 송혜희 양은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영특한 아이였고 지역구 국회의원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던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무엇보다 송혜희 양은 밝고 성실한 성격으로 주변에서 인기도 많았다고 한다 송혜희 양의 실종 이후 부모는 생업을 포기하고 딸을 찾아나섰지만 어머니는 결국 우울증으로 전단지 끌어안고 농약 먹고 자살했고 아버지 송길용씨는 아직도 찾아다니고 있다. 송 양이 사라진 버스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중장비 교육학원과 합숙소가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전국 미아·실종자 찾기 모임의 회장인 나주봉 회장은 "송 양을 따라 간 남자가 아마도 이 학원의 수강생이자 송 양을 납치한 유력 용의자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송혜희 양의 언니는 결혼 후 자식을 낳아 아버지를 모시며 살고 있지만 송 양의 아버지는 딸의 방을 당시 그대로 보존해 놓고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고 트럭을 송 양의 사진으로 도배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25년째 딸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 동안 송 양의 아버지는 딸을 봤다는 수백 번 가까이 되는 제보를 받고 전국 어디든 찾아갔으나 안타깝게도 모두 송혜희 양과 비슷한 사람이거나 장난전화 또는 착오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전단지와 현수막을 거는 등 개인적으로 조사를 계속했지만 생업을 그만두고 무리하게 많은 양의 전단지와 현수막을 배부하며 돌아다니느라 상당한 금액의 빚이 쌓여 신용불량자가 된 데다 건강도 악화되고 말았다. 사건 이후 송혜희 양이 다니던 고등학교와 집 일대는 개발이 이루어져 사건 당시의 모습과 상당히 달라졌으며 송혜희 양의 집도 개발지역에 포함되어 결국 이주하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송 양의 아버지는 지금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현수막을 걸어 딸을 찾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평택시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송 양의 사진을 내건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 주세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볼 수 있었는데 2014년 들어 많이 없어졌다가# 2017년부터 평택 일대에서 현수막을 다시 붙이기 시작했고 여전히 서울 시내 주요부에서도 이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현재도 서울 시내 및 수도권 지역에서 송혜희 양을 찾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송혜희 양이 실종된 버스정류장에서 2002년 9월 실종되었다가 141일 만에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전옥분(당시 42세)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버스정류장이 송혜희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같은 버스정류장과 일치한다. 게다가 당시에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모녀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한 소문이 많이 돌았고 실제로 당시 이 일대는 치안이 좋지 못해서 성범죄 피해가 빈발하였으며 의문점이 남은 채로 종결된 사건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한다.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