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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수(宋玹壽, ? ~ 1457년 음력 10월 21일)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국구이다. 단종의 장인으로, 정순왕후의 아버지이다.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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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수
작위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사망일 1457년 음력 10월 21일
매장지 경기도 과천시
가문 여산 송씨
부친 송복원
배우자 여흥부부인 민씨
자녀 정순왕후
아들 송거

생애편집

출신과 국구 시절편집

생년은 명확하지 않다. 여산 송씨 지신공파의 후손으로[1], 지중추원사를 지낸 송복원의 아들이다[2]. 원래 세조의 친구였으며[3], 그 여동생은 세종의 적8남인 영응대군의 부인(대방부부인 송씨)이었다. 이 덕에 특별한 벼슬이 없이 지내던 그는 1445년(세종 27년) 처음으로 관직에 올라 전구부승(典廐副丞)이 되었다[4].

한편 풍저창부사로 있던 1454년(단종 2년) 음력 1월에 그의 딸이 간택에 참여했다가 단종의 왕비(정순왕후)로 책봉되면서[5][6] 그도 동지돈녕부사 및 여랑군에 봉해졌다[7]. 이어 같은 해 음력 6월 1일에 지돈녕부사로 관직이 오르고[8], 다시 음력 12월 2일에 판돈녕부사가 되었다[9]. 한편 세조 즉위 후에는 상왕 단종의 인척임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관장하거나 당상관의 자리에 있다고 하여 탄핵되었으나, 세조의 비호로 그냥 넘어간 적이 있다[10].

단종 복위 운동편집

세조실록》에 의하면 처음에 사육신의 단종 복위 역모에 가담했을 것으로 의심받던 그를 세조가 직접 위로하였다고 한다[11]. 그러나 결국 1457년(세조 3년) 음력 6월 21일,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고 영월로 유배를 가면서 송현수도 하옥되었다[12]. 당시 권완이 '상왕을 다시 세웠으면 매우 좋았을 것이나, 다만 이 일이 쉽지 않았다. 송현수와 교통하면서 역란을 음모하였다.'라고 증언하였고[13], 결국 송현수는 장형 100대에 처하고 먼 지방의 관노가 되었으며, 그 가족들도 역시 같은 곳의 노비가 되었다[14]. 한편 《세조실록》에 의하면, 이 때 여러 차례에 걸쳐 대간에서 송현수를 죽여야 한다고 간하였으나 세조가 듣지 않았다고 한다[15]. 그러나 결국 음력 10월 21일에 역시 역모에 가담했던 금성대군 및 송현수 등의 처형을 명하여 송현수가 사망하였는데, 단종이 이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16].

한편 세종의 부마로 정현옹주의 남편인 윤사로는 공신이 되자 송현수의 딸을 상으로 받기를 원하였는데, 당시 사관이 실록에 이를 기록하면서 윤사로를 비난하였다[17].

후손편집

송현수의 조카인 송영예종 때에 감찰로 있었는데, 역도의 무리라 하여 탄핵을 받아 예종의 재가까지 내려졌으나[18] 결국 파직은 되지 않았다[19]. 이어 1475년(성종 6년)에는 송현수의 아들 송거가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 특별히 허락되었다[20]. 이 때를 비롯하여 대간에서 수 차례에 걸쳐 송현수의 일족에 대해 탄핵하였으나 성종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21][22].

한편 1767년(영조 43년) 영조가 송현수의 후손을 찾아보라는 명을 내렸는데[23], 나주에 살던 송익량이라는 자가 송현수의 후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가 적발되어 곤장 60대를 맞는 일이 있었다[24].

복권편집

사후 약 240여 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년)에 단종이 복위되면서 송현수도 복권되고, 관향인 여산도 군에서 부로 승격되었다[25]. 또 이듬해부터는 그와 부인 민씨에 대해서 제사를 다시 올리게 되었다. 당시 숙종과천에 있던 송씨의 선산에 사람을 보내어 그 묘를 찾게 하였으나, 송현수의 무덤과 그 후손들은 찾지 못해 이 때 무덤을 수축하였다. 부부인 민씨의 묘는 비석에 희미하게 남은 글씨로 식별할 수 있었다[26].

이어 정조 때인 1791년(정조 15년) 음력 2월 장릉 배식단의 정단에 배향할 32명 중 1명으로 선정되었으며[27], 정민(貞愍)의 시호가 내려졌다[28]. 이해 음력 9월에는 그의 무덤에 치제하고 작은 표석을 세우고, 묘지기 2명을 두었다[29]. 또 그의 후손을 등용케 하였다[30].

가족 관계편집

  • 조부 : 송계성 (宋繼性)[31]
  • 아버지 : 송복원 (宋復元)
    • 남동생 : 송정수 (宋玎壽)
      • 조카 : 송영 (宋瑛, ? ~ 1495년[31])
    • 여동생 : 영응대군의 처 대방부부인 (帶方府夫人, ? ~ 1507년)
  • 장인 : 여주 민씨 민소생 (閔紹生, 한명회의 장인 민대생의 동생)[32]
    • 부인 : 여흥부부인 민씨 (驪興府夫人 閔氏)
      • 아들 : 송거 (宋琚)
      • 딸 : 정순왕후 (定順王后, 1440년 ~ 1521년)
      • 사위 : 조선 제6대 왕 단종 (端宗, 1441년 ~ 1457년, 재위 : 1452년 ~ 1455년)

함께 보기편집

출처편집

  1. 김성회 (2014년 3월 25일).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70〉 송씨(宋, 松氏)·여산송씨(礪山宋氏) 시조 송유익 고려때 공 세우며 기틀 마련… 조선 들어 명문가로”. 세계일보. 2016년 6월 15일에 확인함.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송현수〉항목
  3. 《두산백과》〈송현수〉항목
  4. 세종실록 108권, 세종 27년 4월 25일 무진 2번째기사
  5. 단종실록 10권, 단종 2년 1월 8일 경신 1번째기사
  6. 단종실록 10권, 단종 2년 1월 10일 임술 4번째기사
  7. 단종실록 10권, 단종 2년 1월 14일 병인 2번째기사
  8. 단종실록 11권, 단종 2년 6월 1일 임오 3번째기사
  9. 단종실록 12권, 단종 2년 12월 2일 무인 1번째기사
  10. 세조실록 6권, 세조 3년 2월 14일 무신 1번째기사
  11. 세조실록 4권, 세조 2년 6월 13일 신해 1번째기사
  12.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6월 21일 계축 2번째기사
  13.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7월 15일 병자 3번째기사
  14.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8월 16일 정미 1번째기사
  15.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8월 30일 신유 2번째기사
  16. 세조실록 9권, 세조 3년 10월 21일 신해 2번째기사
  17. 세조실록 9권, 세조 3년 10월 24일 갑인 3번째기사
  18. 예종실록 6권, 예종 1년 7월 24일 을사 1번째기사
  19. 성종실록 5권, 성종 1년 5월 13일 경인 2번째기사
  20. 성종실록 52권, 성종 6년 2월 26일 을사 5번째기사
  21. 성종실록 67권, 성종 7년 5월 8일 경술 1번째기사
  22. 성종실록 157권, 성종 14년 8월 23일 계미 2번째기사
  23. 영조실록 109권, 영조 43년 8월 6일 정묘 2번째기사
  24. 영조실록 109권, 영조 43년 11월 23일 계축 2번째기사
  25. 숙종실록 32권, 숙종 24년 12월 28일 무진 1번째기사
  26. 숙종실록 33권, 숙종 25년 7월 15일 임오 2번째기사
  27. 정조실록 32권, 정조 15년 2월 21일 병인 2번째기사
  28. 정조실록 32권, 정조 15년 2월 25일 경오 1번째기사
  29. 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9월 24일 병신 1번째기사
  30. 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9월 25일 정유 1번째기사
  3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송영〉항목
  32. 이정근 (2011년 12월 2일). '왕비' 낳으려거든 이곳으로 발 뻗어라”. 오마이뉴스. 2016년 6월 1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