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이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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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이쿠왕(일본어: 尚育王 상육왕[*]; 1813년 8월 19일 ~ 1847년 10월 25일)은 류큐왕국 제2쇼씨 왕조의 18대 류큐 국왕(재위: 1835년 ~ 1847년)이자 제24대 류큐 국왕이다. 쇼코왕의 아들로 류큐 왕국의 마지막 왕인 쇼타이왕의 아버지이다. 동명은 시토쿠카네(思徳金)이며 서예가로도 알려져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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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이쿠왕
尚育王
King Sho Iku.jpg
지위
류큐왕국의 기 류큐왕국의 제24대 왕
재위 1835년 ~ 1847년
전임 쇼코왕
후임 쇼타이왕
이름
이칭 시토쿠카네(思徳金)
별호 아사겐(朝現)[1]
묘호 에보시오야(ja:烏帽子親) - 모오테에(毛廷勷)
이케시로오야카타야스콘(池城親方安昆)[2][3]
신상정보
출생일 1813년 8월 19일(1813-08-19)
류큐왕국 류큐왕국 슈리
(현 일본의 기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
사망일 1847년 10월 25일(1847-10-25) (34세)
류큐왕국 류큐왕국 슈리
매장지 1847년
류큐왕국 류큐왕국 슈리다마우둔(ja:玉陵)
왕조 제2쇼씨 왕조
부친 쇼코왕
모친 별기(別記)
배우자 사시키아지카나시(佐敷按司加那志)
자녀 쇼타이왕

아버지 쇼코왕이 세상을 떠나자 1835년(도광 15년)에 22세의 나이로 즉위한다. 하지만 소코왕의 건강 악화로[5] 1828년(도광 8년) 섭위하고 15세의 젊은 나이에 실질적인 왕위에 올랐다. 사족교육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등 학문적 분야에 주력했지만, 동시에 재정핍박을 불러오게 되었다. 이러한 재정 핍박은 결국 류큐왕국이 일본합병되어버리는 결과를 만들었다.[6] 그러던 중에 3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왕위는 둘째 아들 쇼타이왕이 승계했다.

재위중에 1844년(도코 24년), 프랑스 해군일본 나하에 내항하자, 프랑스측의 요구로 무역과 선교사 테오도르-오귀스탄, 포르카드체재(체류)시켜 선교(포교)하는 것을 허가했다. 1846년(도코 26년), 프랑스로부터 개국을 요구받고 입항을 허용했고, 프랑스 해군은 포르카드를 동반하여 귀국했다고 한다. 같은 해 영국 해군이 입항하여 선교사 베텔하임이 체류했다. 이듬해인 1847년(도코 27년), 기독교(크리스트교) 선교사들이 머물고 있다고(체재) 사쓰마번에 보고했다.

가족편집


각주편집

  1. 王代記[깨진 링크]』、53ページ
  2. 王代記[깨진 링크]』、58ページ
  3. 中山王府相卿伝職年譜 기록 사본 - 웨이백 머신』、17ページ
  4. “尚育王の「書」発見 1838年、国宝級”. 《琉球新報》 (일본어). 2019년 5월 16일에 확인함. 
  5. 통설로는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한다.
  6. “왕가의 보물 류큐 왕국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세계 유산”. 《琉球新報》 (일본어). 2019년 5월 16일에 확인함. 
전임자
쇼코왕
제24대 류큐왕국 국왕
1835년 ~ 1847년
후임자
쇼타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