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 하사당

순천 송광사 하사당(順天 松廣寺 下舍堂)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교 건축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63호로 지정되었다.

순천 송광사 하사당
(順天 松廣寺 下舍堂)
(Hasadang Dormitory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종목보물 제263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수량1동
시대조선 시대
소유송광사
위치
주소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송광사 (신평리)
좌표북위 35° 0′ 7″ 동경 127° 16′ 35″ / 북위 35.00194° 동경 127.27639°  / 35.00194; 127.27639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 편집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도의선사가 처음 세웠지만 대부분의 건물이 허물어져 고려 중기 보조국사가 제자들에게 당부하여 다시 지었다. 지금의 절은 조선 광해군 14년(1622)에 다시 고쳐 세운 것이다.

그 중 스님들이 생활하던 하사당은 대웅전 뒤 한층 높은 곳에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왼쪽 2칸이 툇마루를 갖춘 온돌방이고 오른쪽 1칸은 부엌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장식을 겸하는 간결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부엌 지붕 위로 네모 구멍을 내고 조그만 환기구를 만들었는데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 스님들이 생활하는 승방(僧房) 건축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화재수리보고서(발췌) 편집

1. 건축양식(建築樣式)

『승평속지(昇平續誌)』에「松廣寺新羅末慧隣禪師始創 吉祥寺而居之僅一百間居僧不過三四十名也」로 되어 그 창건(創建)이 신라말(新羅末)로 믿어진다. 창건당시의 사명(寺名)을 길상사(吉祥寺)라 하였으나 선찬보조국사비명(宣撰普照國師碑銘)에「上自潛邸素重其道及卽位命改山名爲曹溪山修禪社」라 하여 도중에 수선사(修禪社)라 고쳐 불렀음을 알 수 있고 다시 『승평속지』에「熙宗四年戊辰歲 上聞而嘉之 御題曰曹溪山松廣寺」라 하여 왕명(王命)에 의하여 송광사(松廣寺)라 명명하였다한다. 그후 임진왜란(壬辰倭亂)과 헌종(憲宗) 8년(1842)에 병화(兵火) 및 화재(火災)를 입었고 6.25동란 때 또다시 재해(災害)를 입어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로는 우화각(羽化閣),천왕문(天王門), 침류루(枕流樓), 종루(鐘樓), 임경당(臨鏡堂), 법성료(法性庵), 영산전(靈山殿), 약사전(藥師殿) 등 사지(寺地) 입구에 있는 건물들과 동방(東方) 고대(高臺) 위에 있는 하사당(下舍堂), 삼일당(三曰堂), 응진전(應眞殿),진영당(眞影堂) 그리고 국사전(國師殿)과 남방(南方)에 있는 화엄전(華嚴殿)일곽(一郭)뿐이다.[참조]순천 송광사 국사전

국사전 북측(北側) 약 50미터 떨어져 있는 정면(正面) 3칸 측면(側面) 3칸 내부 1고주(高柱) 및 퇴칸(退間) 주심포(柱心包) 맞배집 5량(樑)으로 가구된 일종의 승방(요사채)이다.

정면을 마주하고 우측(右側) 2칸은 툇마루와 방으로 되어있고 우측 1칸은 부엌을 내어 지붕 위 환기창(換氣窓)까지 가설(架設)했던 것을 1968년

보수시 본 환기창은 뚜렷한 이유 없이 철거되었다. 주초(柱礎)는 비교적 지면(地面)에서부터 높게 놓아 일부는 완전히 가공되었고 일부는 가공치 않은 듯 하나 주좌(柱座)만은 가공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기둥의 엔타시스(배흘림)도 국사전과 거의 근사하다.

보의 단면은 국사전의 것이 직사각형 밑에 두 귀를 거의 원형(圓形)이 되도록 굴린데 비하여 하사당의 것은 고려 때부터 사용되어온 상후하협(上厚下狹)의 단면(斷面)을 가졌음이 특이하다. 포(包) 및 구조에 대하여도 이미 국사전과 비교하여 설명하였으므로 이상 생략하고자 한다.[참조]순천 송광사 국사전

사진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