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학교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사립 종합대학

숭실대학교(崇實大學校, Soongsil University)는 1897년에 설립된 개신교 미션스쿨로서 사립대학이다. 1938년 자진 폐교까지 평양에 캠퍼스가 있었으나, 분단 이후 서울에 캠퍼스를 두게 되었다. 현재 캠퍼스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 369 (상도동 551)에 있다.

숭실대학교
Soongsil University


숭실대학교 노천극장
표어역사로 미래를 여는 대학
건학이념진리와 봉사
종류사립 종합대학
설립1897년 평양 숭실학당
1925년 숭실전문학교
1954년 대학기관 숭실대학
1971년 종합대학 숭전대학교
1987년 숭실대학교
종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학문 관련 제휴
SFPU
OCUC
총장장범식 (15대)
설립자윌리엄 M. 베어드
학교법인숭실대학교
학부생 수19,486명(2022년)[1]
대학원생 수3,026명(2022년)[1]
교직원 수
  • 전임교원: 510명(2022년)[1]
  • 기타교원: 938명(2022년)[1]
국가대한민국
위치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 369
규모9대학, 8대학원
교지: 124,448m2 (2011년 3월)
교사: 198,415m2 (2011년 3월)[2]
상징물백마 목튤립
웹사이트숭실대학교 홈페이지
Map 숭실대학교의 위치

교육 이념 편집

숭실대학교는 기독교정신에 바탕을 둔 진리와 봉사를 교육이념으로 한다.[3]

역사 편집

숭실학당(1897 ~ 1925) 1897년 10월 10일에 평안남도 평양부 신양동에서 개교한 숭실학당(현, 평양직할시 중구역 보통문동[4])은 1900년에 정규과정의 중등교육을 실시하고, 1906년에 학당 내 대학부를 설치하면서 합성숭실대학으로 출범하였다.[5][6] 조선총독부는 1932년 《조선교육대관》에서 “숭실대학은 대정 원년(1912) 조선총독의 인가를 얻으니 조선에서 대학의 명칭은 이것을 효시로 한다.”고 하였고 《동아일보》는 1936년 6월 3일자에서 “숭실대학이라 하면…조선 최초의 대학이니…”라고 하여, 숭실학당이 학당내에 대학부를 최초로 내걸었음을 보도하였다. 이어 1910년 이화학당에서 대학부를 설치하였고 1915년 경신학교(현 연세대 전신)에서 대학부를 설치하였다.[7] 다만 이러한 대학이라는 명칭은 당시 고등교육기관이랄게 없던 한반도에서 컬리지를 번역하여 학당내 만든 자채적 학부일뿐 실제 학위를 수여허는 대학기관은 아니었기에 실직적으로 당시 한반도 유일의 대학기관은 경성제국대학뿐이었다.

숭실전문학교(1925 ~ 1938) 1912년 11월 25일,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학교 인가를 했으나 1925년 대조선 교육방침(소위, 문화 통치)으로 숭실학당을 전문학교로 승격하였다. 1938년 3월 4일, 숭실전문학교는 일본 제국의 억압적인 통치와 강제적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자진 폐교하였다.[8] 신사참배와 친일활동을 했던 당시의 다른 대학들에 비교해 볼 때 이는 진정으로 민족을 위한 학교였다는 평가도 있다.

역할 편집

숭실대학교는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에서 평양 지역 항일운동의 중심이 되어 105인사건, 국민회사건, 3·1운동, 광주학생운동, 신사참배 거부운동 등에서 투철하고 일관된 민족정신을 발휘하였고, 서북지방 인재 교육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또한, 문화적 암흑기이던 당시에 전도 활동을 비롯하여 음악·체육·문예활동 등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숭실축구단이 주축이 되어 1929년부터 서울팀과 벌인 경평축구전은 많은 국민을 열광하게 만들었다.현재 60여 개의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고, 운동부로 축구부를 육성하고 있다. 교내 행사로 10월 숭실축전에서는 동문간담회·체육대회·학술활동·예술행사 등이 진행된다.

해방과 재건 편집

숭실대학(1954 ~ 1971) 일본 제국이 패망한 뒤, 숭실의 재건이 논의되었지만 당장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전쟁 직후인 1953년영락교회가 숭실대학재건기성회와 숭실대학재단이사회를 조직하고 문교부에 '숭실대학 설립인가'를 요청했다. 1954년에 설립이 허가되면서 자진 폐교 16년만에 평양 숭실학당은 대학기관으로 승격하여 서울 숭실대학교로 재건되었다. 숭실대학은 영락교회의 임시건물을 임시 캠퍼스로 사용하다가, 1957년에 상도캠퍼스의 완성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1967년 한국기독교박물관을 개관하고 1969년 컴퓨터라는 용어마저 생소하던 때 대한민국 최초로 컴퓨터공학 교육을 실시했다.

대학 통합과 분리 편집

숭전대학교(1971 ~ 1987) 1971년 대전대학(현재의 한남대학교)과 통합하면서 '숭전대학교'(崇田大學校, 실대학 + 대대학)로 교명이 바뀌었고, 그 해 12월에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 그 후 두 개의 대학으로 독립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아래 1982년 10월 재단이사회에서 두 대학의 분리를 정식으로 결의하여 문교부에 승인 요청을 하였으며 1983년 3월 새학기를 맞아 정식으로 분리 운용하게 된다.

교명 환원 이후 편집

숭실대학교(1987 ~ 현재) 1987년, 개교 90주년을 계기로 교명을 숭전대학교에서 숭실대학교로 환원했다.[9] 그리고 1997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더 큰 변화와 발전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2005년부터 본격화된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따라 형남공학관, 조만식기념관, 웨스트민스터홀, 레지던스홀, 학생회관, 전산센터, 교육문화복지센터 등의 쾌적하고 혁신적인 교육환경을 갖추기 시작했다.[출처 필요]

캐치프레이즈 편집

 
2012학년도 가을학기 캐치프레이즈

숭실대학교에서는 매학기마다 캠퍼스 주변에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선보인다. 2011학년도 봄학기부터는 매학년도, 매학기 목표에 걸맞은 다양한 낱말을 활용하고 있다.

최초로서의 자부심, 최고를 향한 자신감
 
— 숭실대학교의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
  • 이전 캐치프레이즈
학기 캐치프레이즈
2010학년도 겨울학기 2011 숭실다움, 새로운 출발
2011 숭실다움, 새로운 희망
2010학년도 가을학기 113th Anniversary 숭실다움, 최초의 이름의 세상을 움직이는 힘.
113th Celebration 숭실다움, 세상을 새롭게 합니다.
2010학년도 여름학기 숭실다움, 세상을 새롭게 합니다.
21세기 글로벌 융합기술의 메카, 숭실융합기술원 출범.
2010학년도 봄학기 학생이 만족하는 강한 대학,
모두가 함께하는 변화
2009학년도 겨울학기 2010 금융학부 신설, 글로벌 금융전문가 양성.
2010 숭실다움, 세상을 새롭게 합니다.
2009학년도 가을학기 1897 최초로서의 자부심,
2009 최고를 향한 자신감
2009학년도 봄학기 숭실다움,
세상에는 숭실다움이 필요합니다.
2008학년도 가을학기 태양이 뜨거운가,
숭실의 젊음이 뜨거운가
2008학년도 봄학기 Soongsil University 111th since 1897
2007학년도 110th Global Brain Soongsil University
2006학년도 The First University in Korea, 109th Soongsil University

캠퍼스 소개 편집

 
초봄 설경 (2010년 3월 10일)
 
진리관 3층 복도(2008년 8월)
 
레지던스홀 (2010년 3월)
 
형남공학관 (2010년 12월 11일)
건물명 번호 기능 설명
베어드홀 01 대학본부
자연과학대학
숭실의 설립자인 윌리엄 베어드의 이름을 땄다.
경상관 02 경영대학
경제통상대학
1973년에 건립되어 교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상관 재건축 계획에 의해 2015년 철거됨.
문화관 03 공과대학
(건축학부)
정문에 위치한 건물로 각종 교양선택 수업이 이루어진다.
안익태기념관 04 평생교육센터 숭실의 동문인 작곡가 안익태 선생을 기리는 건물이다.
형남공학관 05 학사지원처
공과대학
2005년 8월에 완공된 건물로써 김형남 총장을 기리고자 하는 의미에서 딴 건물이다.
교육관 06 숭실대학교 ROTC 단과대학과 학과(부)를 불문하고 다양한 수업이 이루어진다.
백마관 07 인문대학
(생활체육학과)
주로 교양필수 및 교양선택 과목이 이루어지는 건물이다. '백마'는 숭실의 상징동물이다.
한경직기념관 08 교목실 채플 및 교내 주요 행사를 위한 건물로, 1997년 숭실을 재건한 한경직 박사를 기리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구 생활문화관 09 숭실대학교 중앙도서관 1998년에 건립된 학생/교직원식당과 생활협동조합 건물이었다. 2014년 10월 현재, 비어있으며 필요 입주시설 협의 중이다.
벤처중소기업센터 10 금융학부
숭실대학교 대학원
2001년에 건립되었으며, 대학원 및 각종 벤처기업이 입주한 건물
진리관 11 법과대학
베어드학부대학
2008년 9월에 리모델링을 마친 후 인문관에서 법학관으로, 2012년 2월에 법학관에서 진리관으로 건물명이 변경되었다.
조만식기념관 12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종합강의동으로, 2007년에 완공되었으며 고당 조만식을 기념하는 건물이다.
한국기독교박물관 13 한국기독교박물관 숭실대학교의 역사 안내 및 각종 유물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이다.
중앙도서관 14 숭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료실 및 열람실 공간
연구관 15 베어드학부대학 교수 연구동.
커밍홀 16 인문대학 선교사인 D. 커밍으로부터 이름을 딴 구 사회과학대학 건물.
글로벌브레인홀 17 숭실대학교 생활관 구 기숙사.2010년 레지던스 홀 완공으로 현재 고시연구반 전용 기숙사.
레지던스홀 18 숭실대학교 생활관 제 2기숙사 (민자기숙사)
전산관 19 숭실전산원
소프트웨어 특성화 대학원
숭실전산원 건물
미래관 20 봉사장학과
학생복지위원회
구 학생회관. 2011년 신 학생회관 완공 후 리모델링하여 미래관으로 건물명 변경.
정보과학관 21 IT대학 IT대학을 위한 건물이며 주로 컴퓨터학부 학생들이 전공 수업을 듣는 곳이다. 지하에는 컴퓨터학부 학생만 출입가능한 스페이스N (NHN에서 지원), T-MAX 창의관(티맥스에서 지원)등의 공간이 있다. 본 캠퍼스와 길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 전용 학생식당이 있다.(2015년 4월 학생식당 철수)
웨스트민스터홀 22 숭실대학교 대학원 2007년에 완공되었으며 네이버의 지원을 받은 네이버스퀘어도 있다.2014년 현재 계약만료 후 인터넷 까페 운영
대운동장 23 생활체육학과 2011년에 새롭게 세워진 잔디 축구장
테니스장 24 - 본교 학생 및 교직원의 운동 공간
농구장 25 - 본교 학생 및 교직원의 운동 공간
창의관 26 산학연구마을 2011년에 완공된 공간. 당초엔 숭실전산원 건물이었으나, 아산나눔재단에 임차하여 정주영 창업캠퍼스가 있었고, 2013년 산학연구마을 수도권 거점 센터 선정으로 현재 각종 기업 입주.
학생회관 27 생활협동조합
동아리
2011년에 완공된 대공연장, 학생 및 교직원식당, 스낵코너, 학생자치공간.
120주년 기념관 & 동문회관[예정] 2016년 맞이하는 개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모금된 기부금으로 건립 예정.
외국인 기숙사 캠퍼스와 떨어진 장승배기 33-2 번지 위치. 2014년 현재 외국인 기숙사로 리모델링 중

중앙도서관 편집

역사 편집

  • 1954년 5월 10일 상도동 캠퍼스에서 정식 개관했다. 정식 개관 이전에는 영락교회의 부속건물을 이용하는 등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미국의 장로교회와 재미 교우회의 도움으로 4000여 장의 장서를 보유하고 석조건물을 신축했다.[10]
  • 1967년 10월 10일 개교 70주년을 맞아 독립건물로서의 도서관을 준공했다.
  • 1994년 도서관 자동화 시스템 '오아시스(Oasis)'를 도입했다.
  • 2007년 3월 학술정보센터 소속에서 중앙도서관(정보지원처 중앙도서관)으로 변경되었다.

현황 편집

  • 2010년 현재, 795,271권의 장서를 보유 중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동양서 517,207권, 서양서 186,804권, 고서 1,040권, 비도서 7,371권, 학위논문 82,849권이다.[11] 전년도에 비해 36,170권이 증가했다.
  • 열람실은 자유열람실로 운영된다. 8개의 열람실(총 1,879석)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열람실에서부터 제6열람실, 대학원열람실, 박사열람실이 있다.[12] 이외에 법학관 건물 내에 법학열람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 자료실은 자연과학도서실, 사회과학도서실(이상 3층), 인문과학도서실(4층), 참고도서실, 미디어룸(이상 5층), 정기간행물실(6층)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내부 좌석은 841석이다.[12]

독서후기클럽 편집

  • 2010학년도부터 학부생의 소양 증진을 목표로 중앙도서관을 중심으로 '독서후기클럽'을 개설했다. 분야별 교수들의 지도 아래 학부생들이 세미나에 참여한다.[13] 이 프로그램으로 '숭실대학교 중앙도서관'은 교육과학기술부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진행한 '2010년 대학도서관 평가'에서 교육·연구 지원서비스 분야 최우수 도서관으로 선정되었다.[14]

학부과정 및 대학원 편집

학부과정으로 2013년 3월 현재 9개 단과대학, 32개 학과, 10개 학부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원은 1개 일반대학원(인문사회 23개, 자연과학공학 17개, 학과간 협동과정 4개 학과)과 7개 특수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졸업학점은 133 학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2010-2012학년도 기준) 이 범위 내에서 교양필수 및 선택, 전공기초 및 선택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개신교 계통 대학교로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채플을 실시하고 있다. 교양필수로 6학기를 수강해서 졸업여건이 갖추어진다.(편입학생은 2학기) 학년과 계열에 따라 자동으로 수강 채플이 결정되는 형태이지만,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다른 시간의 공통 채플을 수강할 수 있다. 기존에 기독교도 위주의 활동이라는 지적이 수용되어 2010년 9월부터는 문화채플 위주의 '비기독교인 채플'과 함께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위한 '기독교인 채플'이 개설되었다.
  • 교양필수
교양필수 수강학점은 14학점이다.(2010학년도 기준) 현대인과 성서 I, 현대인과 성서 II, 섬김의 리더십, 컴퓨터 활용 I(엑셀), 컴퓨터 활용 II(파워포인트), 영어회화 I, 영어회화 II, 읽기와 쓰기, Prectical Reading & Writing 등 9개의 과목이 있다. 다만 '현대인과 성서 I'과 '현대인과 성서 II', '섬김의 리더십' 등의 기독교과목은 개인별 교양필수 수강학점(14학점)을 충족할 수 있도록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다.
'섬김의 리더십'은 2008학년도까지 '교양필수'에서 2009학년에는 '교양선택'으로, 2010학년도에는 다시 '교양필수'로 지정되었다. 'TOEIC 800'은 2009학년도까지 '교양필수'였으나, 2010학년도부터 폐강되었다.
  • 교양선택
교양선택 수강학점은 20학점 이상에서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교양선택 영역은 12개 영역(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정보와 기술, 봉사의 리더십, 창의성과 의사소통능력, 세계의 언어, 세계의 문화와 국제관계, 인간과 사회, 정치와 경제, 자연과학과 수리, 생활과 건강, 학문과 진로탐색)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5개 영역에 해당되는 강의를 선택하여 수강하면 된다. 2010학년도부터는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수강방식이 바뀌었는데, 이때 학생들은 핵심교양, 융합교양, 실용교양을 구분하여 수강해야 한다. 2010학년도 입학자는 '핵심교양'에 포함되는 영역의 강좌를 반드시 영역별 각 1개 이상 수강하고, '융합교양'에 포함되는 영역의 강좌는 인문/자연계열 기준으로 교차 수강해야 한다.
분야 구분 영역 이수방법
아래의 내용은 2010학년도 입학자부터 적용됨
핵심교양 글로벌 창의인재 봉사의 리더십, 창의성과 의사소통능력,
세계의 언어, 세계의 문화와 국제관계
각 영역별 1강좌 이상 수강
융합교양 인문과학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자연계열 학생은 1강좌 이상 수강
사회과학 인간과 사회, 정치와 경제
자연과학 자연과학과 수리, 정보와 기술 인문계열 학생은 1강좌 이상 수강
실용교양 생활문화 생활과 건강, 학문과 진로탐색
  • 전공기초 및 선택
전공기초는 대체로 15~18학점 이상, 전공선택은 전공기초를 포함해서 54학점 이상, 복수(연계)전공은 36학점 이상, 부전공은 21학점 이상 수강하면 된다.(2012학년도 기준)[15]

학생자치조직 편집

숭실대학교 총학생회 편집

숭실대학교의 학생회는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산하 동아리연합회, 총여학생회, 학생복지위원회, 졸업준비위원회, 외국인학생회 및 각 단과대학생회를 두고 있다.[16] 이 중 외국인 학생회는 2010년 학칙 개정을 통해 새로 설립되었다.[17] 숭실대학교 총학생회는 전대협, 한총련으로 이어지는 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였으며 97년 학내투표를 거쳐 한총련 탈퇴를 결의, 경찰서에 탈퇴서를 제출하였다.[1] (이에 대해서는 96년 연대사태의 여파를 피하기 위한 사회대학 학생회와 일부의 주도로 강행 된 것으로 보며 한총련의 대의 체계를 거치지 않고 경찰서에 탈퇴서를 제출하였다는 사실은 이후 탈퇴 무효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이후 2006년 46대 총학생회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을 가입을 추진하여 성사하였다. 2002년 42대 총학생회로 시작된 자주적 총학생회는 2012년 51대 총학생회(2004년 제외)를 마지막으로 10년의 학생운동을 완료하였다. 2012년 비운동권 총학생회는 한대련 탈퇴를 추진 성사하였다.

연도 기수 선거본부명 총·부학생회장
1992년 32대 새날 이정원(정치외교학과)
박석호(영어영문학과)
1993년 33대 강철 배건욱(전자공학과)
윤지열(사학)
1994년 34대 청년 오승직(경제과)
한은구(사학과)
1995년 35대 내일을 여는 김인수(전산과)
최샘(사회사업과)
1996년 36대 희망창조 갈원광(전산과)
박문성(회계학과)
1997년 37대 젊은 이재현(경영학과)
박지용(정치외교학과)
1998년 38대 정문이전 이학조(전산과)
이동현(화학과)
1999년 39대 민주주의 직접행동 박재경(경영학과)
김용욱(건축학과)
2000년 40대 당신의 행동에 내일을 건다 박중원(경영학부)
김혜정(컴퓨터학부)
2001년 41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책임감 김영수(산업공학과)
김응수(전기과)
2002년 42대 빛나는 청춘 기홍석(사학과)
오재진(벤처중소기업학과)
2003년 43대 푸른우리 청년질주 박제홍(경제학과)
김창주(화학공학과)
2004년 44대 yourSSU.com 표현하는 즐거움 당신의 총학생회 윤지민(컴퓨터학부)
김선우(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2005년 45대 젊은 그대! 미래를 쏘다 강주영(실내건축학과)
오미혜(영문학과)
2006년 46대 발상의 전환 권혁신(국제통상학과)
임승호(건축학부)
2007년 47대 해피투게더 최정민(국어국문학과)
서성균(경제학과)
2008년 48대 111% Upgrade[18] 용리브가(사회복지학과)
이상미(영어영문학과)
2009년 49대 Yes, we can![19] 배유진(불어불문학과)
여선웅(행정학부)
2010년 50대 희망PLAN[20] 유재준(정치외교학과)
김현민(정보통신전자공학부)
2011년 51대 U:US 박길용(사회복지학부)
강혜진(벤처중소기업학과)
2012년 52대 With You 이민형(컴퓨터학부)
이향림(법학과)
2013년 53대 Upgrade S 백종하(국어국문학과)
노형석(정보통신전자공학부)
2014년 54대 Let's 숭실 김주영(기계공학과)
윤홍준(수학과)
2015년 55대 믿음으로 EXCHANGE! 윤홍준(수학과)
조해리(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2016년 56대 함께가요 SSUMATE 김진아(정치외교학과)

김호근(기계공학과)

2017년 57대 당신을 위한 VALUE UP! 이서호(경제학과)

이지은(영화예술전공)

2018년 58대 당신이 주인공, SSU're U 송진태(벤처중소기업학과)

김예지(전기공학부)

2019년 59대 당신과 함께 변화를 쏘다

슈팅스타

우제원(기독교학과)

강결희(소프트웨어학부)

교내 언론 편집

  • 숭대시보 : 교내 신문이다.
  • The Soongsil Times : 영자 신문이다. 1982년 12월 'The Soongjun Times(숭전타임스)'라는 이름으로 창간하였고, 1987년 3월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 SSBS : 교내 방송국이다. 1971년 개국하였으며, 교내의 음성 방송을 담당한다.
  • SSIZEN.NET : 인터넷 방송국이다.
  • 숭실 교지편집위원회 : 1915년 9월 10일 숭실학보로 창간되었으며, 현존의 대학교지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 해의 전반적인 사회 이슈나, 교내 이야기 행사소식 등을 담아 학생들에게 정보전달을 해 주고 있으며 1년에 한번 발간되고 있다.

기숙사 편집

숭실대학교 기숙사는 기존에 활용되어 온 글로벌브레인홀(제1생활관)2010년 3월에 완공된 레지던스홀(제2생활관)로 구성되어 있다.

자매결연 편집

49개국 212개 대학교와 교류·친선관계를 맺고 있다. (2013년 3월 7일 기준)
자세한 내용은 본교 홈페이지 Archived 2011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 또는 국제교류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학교 동문 편집

숭실대는 100년이 넘는 역사에서 많은 저명한 동문들을 배출하였다.

작가 황순원, 김동인, 황석영(동국대로 옮겼음),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시인 김현승, 독립운동가 손정도, 김형직, 조만식, 임시 국무총리와 장관, 제1대 국회의원, 경희대 학장을 역임한 이윤영, 종교계의 노벨상을 수상한 한경직, 공기업 사장과 도지사, 농림부 장관, 숭실대 총장 등을 역임한 이효계, 황보경 YG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김영태 현대백화점 사장 등 각계각층으로 진출한 것이 특징이다.

역대 역임 교수 편집

운동부 편집

축구 등 여러 종목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축구부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숭실학교 축구부는 1927년 일본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하는 등[21] 초창기 한국 축구 발전에 공헌하였다.[22]

각주 편집

내용주


참조주
  1. 숭실대학교 (2022). “숭실대학교 대학정보공시”. 《대학알리미》. 
  2. “학교 현황”. 숭실대학교 홈페이지. 2012년 2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11월 27일에 확인함. 
  3. “교육이념 및 비전”. 2013년 4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4월 9일에 확인함. 
  4. 김병수 (2000년 6월 9일). “숭실대, `평양캠퍼스 복원' 대북접촉 착수”. 연합뉴스. 2010년 12월 22일에 확인함. 
  5. 배명철 (1997년 10월 5일). “[기획] 개교 1백주년 맞는 숭실대 어윤배 총장”. 조선일보. 2020년 10월 26일에 확인함. 
  6. 김명배 (2008년 11월 4일). 이인성, 편집. “베어드의 교육이념, 민족운동의 본거지”. 숭대시보. 2020년 10월 26일에 확인함. 
  7. 송민섭 (2006년 10월 10일). “숭실대, 성대, 연대, 고대… 국내 최고(最古) 대학은 어디?”. 세계일보. 2020년 10월 26일에 확인함. 
  8. “숭실대학교 숭실史”. 2013년 4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4월 9일에 확인함. 
  9. “숭실대학교 연혁 - 숭실대학교”. 2015년 7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4월 9일에 확인함. 
  10. 숭실대학교 중앙도서관 연혁[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1. 숭실대학교 중앙도서관 2010년 장서현황[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2. 숭실대학교 중앙도서관 열람좌석현황[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3. 유석재 (2010년 9월 24일). “대학들 '창의력의 보고' 古典·名著읽기 열풍”. 조선일보. 2010년 12월 11일에 확인함. 
  14. 옥철 (2010년 12월 1일). “대학도서관 평가서 연세대 1위”. 연합통신. 2010년 12월 11일에 확인함. 
  15. “숭실대학교 대학요람”. 2010년 8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9월 3일에 확인함. 
  16. 숭실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17. 공휘민 (2010년 10월 15일). “외국인 학생회, 너무 성급하지 않나?”. 숭대시보. 2016년 9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2월 25일에 확인함. 
  18. 이소현 (2007년 12월 3일). “2008학년도 학생회 선출돼”. 숭대시보. 2016년 9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2월 25일에 확인함. 
  19. 강태욱 (2009년 3월 30일). “총학ㆍ공대ㆍIT대ㆍ정통전 학생회장단 당선”. 숭대시보.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2월 25일에 확인함. 
  20. 천주연 (2009년 11월 30일). “총학투표율 과반수넘어, 새 출범”. 숭대시보. 2016년 9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2월 25일에 확인함. 
  21. 韓國(한국)축구의 揺籃(요람) 高校球界(고교구계) 어제·오늘·내일
  22. 축구熱風(열풍) 몰고올 大統領金盃(대통령금배) (2) 高校蹴球(고교축구) 어제 오늘

같이 보기 편집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