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강균

대한민국의 언론인

신강균(申岡均, 1959년 5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언론인이다.

신강균
申岡均
출생1959년 5월 11일(1959-05-11)(64세)
서울특별시
국적대한민국
학력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경력MBC 기자
MBC 보도국 국제부 베이징특파원
MBC 보도본부 통일방송연구소 소장
MBC 광고국장

학력 편집

경력 편집

진행 편집

수상 편집

이슈 편집

명품백 파문 편집

2004년 MBC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신강균의 뉴스 서비스 사실은’ 앵커였을 때 SBS 대주주인 건설업체 태영에 대한 비리 보도 이후 강성주 보도국장, 이상호 기자와 함께 태영 측과 동창 모임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선물을 받았다가 명품 백임을 알고 다음날 돌려주었음이 동석했던 이상호 기자에 의해 폭로되었다. 이 일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1] 정작 폭로한 이상호 기자보다 더 빠르게 돌려주었음이 확인되었다.[2]

이상호 기자, "(신강균) 삼성의 로비스트" 주장 편집

이상호 기자는 "X파일 취재 당시 담당 부장과의 협의 하에서 2개월 동안 삼성 관련 취재 사실을 신강균 앵커에게 철저히 숨겨왔다"며 "그가 삼성의 로비스트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신강균 부장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이상호 기자 발언의) 전후 맥락을 모르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3]

신강균 앵커 (직급상 차장급 기자)는 당시,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떠한 보직부장이, 프로그램 취재를 방해하는 진행자를 그냥 놔둘 수 있었겠는가?”, ”그랬다면 김학희 부장께서 바로 윗선에 보고해 진작에 교체를 하셨을 것이지 않겠는가?“라며, 이전에 삼성언론재단의 해외연수생으로 선발된 적이 있지만, 삼성언론재단의 해외연수생에는 한겨레신문과 민주당 파로 분류되는 언론사와 기자들도 상당수 선발되었다며, 중상이며 터무니없는 소설이라 했다.

문재인 정권출범후 법인카드문제 해고사건 전말 편집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함께 MBC 접수에 나선 최승호 사장과 민주노총, 5년 전인 2012년 말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자신이 주도했던 2012년 초 시작한 MBC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시 베이징 특파원이었던 신강균 국장을 본보기로 해고헀다.

MBC는 신강균 기자를 법인카드 부정 사용 등의 사유로 해고했다고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보고했다.[4]

민주노총 언론노조 MBC 본부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시작과 함께 MBC 접수에 나선다.

당시 MBC 사장이었던 김장겸 기자 (2017년 2월~ 2017년 11)는, 문재인 정부 (2017년 5월~) 시작 이후 온갖 수모와 모욕을 겪다가, 세월호 사태와 박근혜 탄핵으로 문재인 정부 등장에 앞장섰던 1등 공신 최승호와 민주노총 언론노조 MBC 본부등 친문 세력들이, 무력을 앞세워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들을 협박해 강제로 사퇴하게 만들고, MBC 사장 교체를 위한 방송문화진흥회의 과반수 이사 자리를 차지하면서, 해고당한다.

이렇게 MBC 사장 자리를 접수한 최승호 사장은, 5년 전인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선거 (박근혜 당선)에서, 2012년 초부터 시작한 170 일간의 MBC 파업 (문재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주도했던)에 동조하지 않았던 MBC 구성원들에 대한 보복을 시작한다.

그 보복의 본보기 중 하나가 당시 중국지사장 베이징 특파원으로, 당시 파업에 참여를 거부했던 신강균 기자였던 것.

베이징 특파원 신강균 기자는 2012년 초, 당시 미국 특파원 중 워싱턴에 주재했던 5년 후배 이모 기자로부터 특파원 파업을 주도해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이 특파원 :  신 선배가 특파원 파업을 이끌어 주셔야 하겠습니다. 본사 보도국이 총파업을 앞두고 있으니, 신 선배가 먼저 특파원 파업 성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강균 특파원 :  나는 과거에 파업과 단식조도 하면서 노조 초기에 기여를 많이 했는데, 신강균의 사실은..’ 명품 백 사건으로 억울하게 5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일만 했으면 하는데... 그런데 왜 또 파업을 하는가?

이 특파원 :  그 억울함은 잘 압니다만...

신강균 특파원 : 거기 LA에, 1년 입사 선배인 윤도환 특파원이 있는데 왜 후배한테 미루나?"

이후 2012년 초부터 MBC는 특파원들과 기자들의 보도부문 파업을 시작했고, 그 해에는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4-5년 뒤 박근혜 탄핵 등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5년 전 MBC 본부에서 파업을 주도했던 최승호 교양 PD는 MBC 사장이 되고, 파업에 동참한 윤도환 특파원은 청와대에 들어가 홍보수석을 한다.


당시 파업을 거부했던 신강균 기자는 5년 뒤, 2018년 초, 문재인 대통령 당선의 언론계 공신 대가로, MBC 사장이 된 교양 PD 출신의 입사 동기 최승호 사장에게서, 과거  5년간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대라는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최승호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감사국을 시켜, 5년 전 파업에 불참하고 김장겸 사장 시절 광고국장을 역임했던 신강균 기자를 시범 케이스로 해고하기 위해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뒤진다.

지난 5년 동안 사원으로서, 모든 사원들이 법인카드로 받은 업무추진비 (월 약 3-40만 원으로서 MBC 사원이면 누구나, 내/외근 그리고 취재부서, 내근 관리부서할 것 없이 직능을 가리지 않고,  식비 보조금 조로 지급받는 복지수당 격인 금액) 와 광고국장으로써 사용한 법인카드 내역을, 무슨 업무로 어떤 회사의 누구와 업무추진했는지를 상세히 적어내라고 요구한다.

신강균 기자는, “매월 복지 차원의 월급 보조용 업무추진비를 MBC에서는 법인카드로 사용하게 했는데, 이 금액을 현금으로 주는 언론사들도 많다. 그래서 5년 전뿐만 아니라 10년 전에도 이 월급 보조의 업추비의 사용내역을 적어내란 요구가 한 번도 없었다. 1인 커피나 1인 식사를 할 수도 있는 비용의 내역을 5년 전까지 만난 사람과의 사용내역을 기억해 내길 요구한다. 어제 먹은 메뉴도 기억 못하는데 5년 전에 뭘 먹었는지 기억하라는 격.

"MBC 관계자에 따르면, 더군다나 신강균 기자는 당초 사표를 제출했지만 사측이 반려하고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 절차를 밟아 해고시켰다고 한다. 최승호 사장의 이 같은 조치에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일종의 본보기 사례와 보복 차원이라는 것이다.

..

이 관계자는 “또는 정해진 수순으로 피의 숙청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 편인 사람에게도 이렇게 단호하게 해, (따라서) 너희도 이제 재미없을 것 같다’ 이런 식”이라며 MBC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그들에게 공포심을 갖게 하는 일종의 시범케이스 차원이라는 설명이다."[5]

그리고 광고 유치를 위한 광고대행사와 광고주 영업 사용내역은, 창사이래 오래전부터 역대의 광고국장들도, 더군다나 김영란법 관련 등으로 인해,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대상자를 밝히지 않고  회사 이름만 적어낸다는 회사의 지침에 따라 작성해왔는데, '어떻게 소급적으로 그 당사자들의 이름들을 낱낱이 공개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인간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당사자 이름들은 공개할 수 없다'라고 하자, 감사국과 법무실에서도 최승호 사장의 지시에 대해 난감해 했다고 한다.

이에 신 기자는, 정권이 바뀌고 지난 파업의 불참자를 시범 케이스로 손본다 하니, 정년이 1-2년 남았지만 차라리 사표를 내겠다고 했는데, 기어코 최승호 사장은 이를 반려하며 해고 조치를 내렸고, 이에 대해 신기자는 염량세태[6]에 질려, 법적 대응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활동 편집

1. 카메라 출동 편집

1990년 카메라출동부 창설 멤버였던 신강균 기자와 권오성 카메라 기자는, 1년씩 담당 후 다른 부서로 이동한 다른 팀들과 달리, 4년 동안 한 팀으로 계속 근무하면서 ‘살아있는 곰에서 생 곰쓸개 즙 채취 현장’ 등등 다수의 특종으로 여러 수상 기록을 남겼다.

MBC 뉴스데스크 간판 프로그램인 [카메라출동]은, 이전 보도국 카메라 취재부의 영상기자들의 현장 중심 방송영상으로 화제가 되었고, 1990년부터는 보도기자들이 투입돼 카메라 출동 부가 신설 확대되면서, 파격적으로 4-5분씩의 장시간 리포트로 확장해,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을 크게 높였다.

[영상의 힘을 확인한 ‘카메라 출동’_MBC 신강균 기자]

2. 시사매거진 2580 편집

 
프로그램설명

[7]






TV 심층 탐사보도 (DEPTH REPORT) 대명사인 MBC [시사매거진 2580] 첫 회, 첫 아이템을 방송했고, 이후 최장수 재직 기자로 남아있다. (약 6년)

시사매거진 2580

3. 뉴스서비스 사실은... 편집

  • MBC 미디어비평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 등 공중파 방송사의 소위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탄생 배경과 그 영향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MBC와 KBS의 미디어비평 프로그램들, 결국 지난 20여 년을 돌이켜보면,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은 반대 정파를 비난하고 정권 탈취를 위한 여론 선동과 정치공작을 위한 정치권의 도구였다는 건 언론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현재의 뉴미디어 시대에 도래해 유튜브나 SNS를 이용한, 대국민 여론전을 위한 미디어 전쟁 시대를 나름 예고했던 것이다.

한국의 TV 방송이 신문 보도의 비평이란 목적을 에둘러 감추고, 미디어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한 건,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3년 차인 2001년, 김중배씨가 MBC사장  (2001년 3월 ~ 2003년 3월)[8] 으로 취임하면서 부터이다.

광주 출신이면서 한국일보,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한겨레 편집 위원장과 사장, 언론개혁시민 연대 상임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두루 거쳤던 김중배 MBC 사장의 취임은, 당시 MBC는 물론 KBS까지 보도부 문의 기자들은 물론, 정치 시사 문제에 집중했던 교양 PD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다.

MBC는 김중배 사장 취임과 함께, 2001년 3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신문들의 보도와 논조를 비평하는 [MBC 미디어비평] 이란 주간 단위 프로를 창설했고, 아나운서실의 손석희 아나운서를 초대 진행자로 지명했고, 성경환 아나운서가 그 뒤를 이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2003년 2월~) 취임과 동시에 MBC 사장에 2003년 3월 이긍희 사장이 취임하고, 자사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지지부진했던 시청률 극복을 위해, 당시 시사매거진 2580부의 취재기자였던 신강균 기자를 새 진행자로 지명하며 프로그램 활성화를 기했고,

KBS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3년 6월 [미디어 포커스]라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를 비평하는 주간 단위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새로 편성했다.


  • 한국TV 시사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의 이름을 내건 최초의 TV시사컨텐츠


2001년 당시 15년 차 기자였던 신강균 기자는, 1994년부터 보도국의 유일한 탐사 프로그램인 [시사매거진 2580]에 가장 오래 근무했던 기자로서, 미국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뉴욕의 CBS방송의 [60 MINUTES] 본부를 취재하게 된다. [60 MINUTES]는매회 60분 동안에 3명의 기자가 나와 각각의 주제를 심층보도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시사매거진 2580의 포맷도 CBS의 [60 MINUTES] 포맷을 거의 그대로 차용한 프로그램이었다.

신강균 기자는, CBS가 [60 MINUTES] 방송 30주년을 맞아, 좀 더 젊은 기자들로 [60 MINUTES 시즌 2]를 출범시킨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국 뉴욕의 CBS 본사 취재를 진행했는데, 좀 더 젊은 기자들로 충원한다는 [60 MINUTES 시즌 2]의 기자들의 평균 나이도 55세를 넘는 사실에 감명받고 (오리지널 [60 MINUTES]의 출연 기자들의 평균 나이는 70세를 넘었다 한다) 정년 때까지 2580부에 있을 것이라며, [시사매거진 2580 시즌 2](가명) 같은 후속 프로그램의 다양화에 관심이 컸다 한다.

그러던 차에, 그동안 시청률이 지지부진하던 MBC의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새 진행자로 신강균 기자가 지명된 이후, 담당 부장과 선배 기자들과 함께, 평소 예능 PD로서 보도 프로그램의 활성화에 관심이 많았던 부산 출신의 최 모 PD를 영입해 그의 디렉팅을 받아들이며, 예능프로그램 같은 세트 배열과 기자와 패널 출연을 혼재시키는 반 예능 포맷을 적용하고, 미국의 유명 방송인 래리 킹 처럼 와이셔츠에 멜빵을 메고 진행하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방영된 이후, 많은 호평과 관심을 받으며 한국의 래리킹 라이브 (LARRY KING LIVE), 자니카슨 쇼 (JONNY CARSON SHOW)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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