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申潤福筆 風俗圖 畵帖)은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 말에 혜원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를 엮은 연작 화첩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첩으로 여겨진다. 혜원풍속도(蕙園風俗圖), 혜원풍속도첩(蕙園風俗圖帖), 또는 혜원전신첩(惠園傳神帖)이라고도 부른다.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申潤福筆 風俗圖 畵帖)
(Album of Genre Paintings by Sin Yun-bok)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국보
종목국보 제135호
(1970년 12월 30일 지정)
수량1첩(30폭)
시대조선시대
소유전성우
주소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성북동, 간송미술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이 화첩은 신윤복의 호인 혜원을 따서 붙여졌으며, 총 30장의 작품으로 구성되어있다. 일본으로 유출된 것을 1930년 간송미술관의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이 일본 오사카의 한 고미술상에게서 사들여 새로 표구를 했다. 전형필과 함께 문화재 유출을 막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오세창표제발문을 썼다. 이 작품은 각기 가로 28cm, 세로 35cm이며 한지에 그림을 그리고, 짤막한 글과 함께 낙관이 곁들여져있다. 주로 한량기생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냈으며, 18세기 말의 풍속과 복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에서 국보 제13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림편집

소년전흥편집

소년전홍(少年剪紅, 젊은이가 붉은 꽃을 꺾다)

춘색만원편집

춘색만원(春色滿園, 봄기운이 뜰에 만연하다)

정변야화편집

정변야화(井邊夜話, 밤 우물가에서 이야기하다)

이부탐춘편집

이부탐춘(嫠婦耽春, 과부가 색을 탐한다)

주사거배편집

주사거배(酒肆擧盃, 주사에서 술을 마시다)

홍루대주편집

홍루대주(紅樓待酒, 홍루에서 술이 나오길 기다리다)

연소답청편집

연소답청(年少踏靑, 젊은이들의 봄 나들이)[1]

상춘야흥편집

상춘야흥(賞春野興, 무르익은 봄날의 들판에서 여흥을 즐기다)은 후원에서 악기 연주회를 즐기는 한량을 묘사하고 있다.[2]

쌍검대무편집

쌍검대무(雙劍對舞, 양손에 칼을 들고 대작하여 춤을 추다)는 기생 두 명의 검무를 묘사한 그림이다.[3]

무녀신무편집

무녀신무(巫女神舞, 무당이 신들린 춤을 추다)

납량만흥편집

납량만흥(納凉漫興, 피서지에서 흥이 무르익다)

산 속에서 기생과 가무를 즐기는 양반을 묘사한 그림이다.

노상탁발편집

노상탁발(路上托鉢, 길거리 탁발)

청금상련편집

청금상련(聽琴賞蓮, 가야금을 들으며 연을 구경하다), 혹은 연당야유(蓮塘野遊, 연못 야유회)는 기생을 끼고 연못 구경을 하는 양반을 묘사한 그림이다.

화제는 다음과 같다:

座上客常滿
酒中酒不空

이는 공융의 말인 “자리엔 항상 가득하고 항아리엔 술이 비지 않는다”(坐上客恒滿 樽中酒不空)에서 온 것이다.

이승영기편집

이승영기(尼僧迎妓, 비구니가 기녀를 맞이하다)

문종심사편집

문종심사(聞鍾尋寺, 종소리를 들으며 절을 찾아가다)

주유청강편집

주유청강(舟遊淸江, 맑은 강 위에서 뱃놀이를 하다)

화제는 다음과 같다:

一笛晩風聽不得 피리는 늦바람에 들리지 아니 들리지만
白驅飛下浪花前 흰갈매기 꽃물결 앞으로 날아 내려온다

계변가화편집

계변가화(溪邊街話, 시냇가의 이야기)

단오풍정편집

단오풍정(端午風情, 단오날의 풍경)

휴기답풍편집

휴기답풍(携妓踏楓, 기녀를 태우고 단풍을 밟고 지나간다)

월야밀회편집

월야밀회(月夜密會, 달 뜬 밤의 밀회)

삼추가연편집

삼추가연(三秋佳緣, 세 명이 가을에 맺은 아름다운 인연)

쌍륙삼매편집

쌍륙삼매(雙六三昧, 쌍륙에 푹 빠지다)

기방무사편집

기방무사(妓房無事. 기방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중상봉편집

노중상봉(路中相逢, 길가에서 만나다)

청루소일편집

청루소일(靑樓消日, 청루에서 시간을 보내다)

표모봉욕편집

표모봉욕(漂母逢辱, 세탁하는 여인이 욕된 일을 당하다)

야금모행편집

야금모행(夜禁冒行, 심야에 금지를 무릅쓴 나들이)

월하정인편집

월하정인(月下情人, 달 아래의 연인)

화제는 다음과 같다.

月沈々夜三更 달 흐릿한 밤 삼경
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라

두번째 글귀는 김명원의 시 월하정인에서 온 것이다.

2011년 천문학자 이태형은 초승달 모양의 달이 위를 향하여 볼록할 수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 그림이 월식을 그린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신윤복의 활동 시기, ‘삼경’이라는 글귀와 달의 고도, 당시 날씨 기록 등을 근거로 이것이 1793년 8월 21일 일어난 부분월식이라고 추정했다.[4]

유곽쟁웅편집

유곽쟁웅(遊廓爭雄, 유곽에서 싸움이 벌어지다)

임하투호편집

임하투호(林下投壺, 수풀 아래서 투호놀이를 하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